소설리스트

2부 22권 - 11화 (444/513)

《444》2부 22권 - 11화

테러가 발생했던 다음 날이었다.

마카오는 안전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듯 당국은 홍콩에서 지원 온 경찰들까지 호텔과 회의장 주변에 겹겹이 배치했다. 거기에 JBC 보도의 영향으로 세계적인 방송사들과 보도 전문 채널이 엄청난 숫자의 기자들을 파견하는 바람에 회의 참석자들보다 많은 방송 관계자들로 북적였다.

그 바람에 죽어 나가는 건 수행원들이었다.

막말로 만찬이 경호팀의 헌신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면, 본회의는 수행원들의 생명을 갉아먹으며 완성된 느낌이었다.

본회의 참석자들의 국기부터 진행 순서에 따른 준비, 예상 밖으로 몰려든 취재진을 위한 보도자료, 발언 순서에 따른 프롬프터 준비, 홍보 영상 시연 등, 옆에서 보기에 오늘 행사를 마치면 전부 쓰러지겠구나 싶을 정도였다.

더욱이 볼펜 하나를 가져다 놓을 때마다 신강남파 식구들에게 점검과 허락을 받아야 해서 그 까다로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물론, 테러가 준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세계적인 방송국과 보도 전문 채널들이 몰려들면서 멕시코 프로젝트는 엄청난 홍보 효과를 얻었다.

거기까지였다.

또다시 테러와 비슷한 특별한 이슈가 있기를 바라는 취재진의 잔인한 희망과 달리 본회의는 글자 그대로 물 흐르듯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곤잘레스 이두안에게 맞섰던 보리스 파리오가 회의에 불참한 탓에 김빠진 맥주처럼 반대 의견조차 없었다.

가장 먼저 프로젝트를 계획했던 곤잘레스 이두안의 회의 개최 발언이 있었다. 이어서 프로젝트 대표 선임 투표가 있었으며, 바로 결과를 발표했다.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에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나는 멕시코 시에라마드레 산맥의 개발과 신도시 건설 사업의 대표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한국의 컨소시엄을 공식 파트너로 지정하겠습니다.”

단상에 선 곤잘레스 이두안이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맞은 편에 앉았던 사업 파트너들이 공산당 전당 대회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어서 단상에 오른 은선곤은 은색 안경이 상징하는 냉철한 모습으로 도전을 함께하게 돼서 영광이라는 감사의 뜻을 먼저 전했고, 반드시 성공해 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빤한 발표 중간중간 방송사의 카메라들이 곤잘레스 이두안과 은선곤의 동선을 따라 함께 움직이는 신강남파 식구들을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JBC 보도를 통해 곤잘레스 이두안을 지켜내는 모습과 사업 파트너들을 구석으로 데려간 뒤에 원탁 테이블을 방패처럼 세우는 움직임에 대한 반응이 워낙 커서 어쩌면 당연한 취재였다.

강성태는 양손을 앞으로 잡은 자세로 통로 안쪽에 서 있었다.

입구와 주변을 경찰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서 만약 곤잘레스 이두안을 또다시 노린다면 남은 공간은 통로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강성태가 보기에 신강남파 식구들은 잘 해내고 있었다.

이런 경험이 멕시코 신도시 건설에 도움될 테고, 그곳에서 마주칠 마피아나 카르텔을 상대하는 데도 커다란 힘이 된다.

그 외에도 깡패 조직 신강남파가 아니라 국제회의를 지켜낸 조직, 삼합회와 야쿠자를 눌렀고, 마피아, 카르텔과 맞서는 조직이라는 이미지를 얻은 것도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이득이었다.

행사는 무탈하게 막바지를 향해 달렸다.

멕시코 신도시 건설의 성공을 다짐한 은선곤이 단상에서 벗어나 곤잘레스 이두안의 곁으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어젯밤에 곤잘레스 이두안이 했던 것처럼 손을 뻗어 그의 손목을 잡았다.

번쩍, 두 사람이 손을 높게 드는 순간, 앞으로 있을 사업의 성공과 그에 따른 이익을 기대하는 사업 파트너들의 박수가 홀을 가득 메웠고,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

강명그룹 정세원 회장은 집무실의 벽 뒤에 넣어둔 TV를 통해 회의를 지켜보았다.

지시했던 대로 은선곤은 공사를 움켜쥐었다.

그뿐만 아니라 수십억의 비용을 뿌려도 얻지 못할 홍보 효과마저 얻었다. 당장 저 뻔하고 지루한 회의가 세계 20여 개 국가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것만 봐도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수준이었다.

기쁘고 반가운 소식에도 정세원은 웃지 못했다.

멕시코 신도시 건설의 대표 정도로 인생을 마감했으면 싶었던 은선곤이 호랑이의 등에 올라앉아 포효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테러를 막아낸 건 은선곤이 아니었다.

만약 테러에서 곤잘레스 이두안이 중상을 입었거나 사망했다면 은선곤은 실 끊어진 연처럼 돼서 신강남파라는 폭력조직의 기획을 맡은, 그저 그런 양아치로 찌그러질 수도 있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 건가?

아니면 은선곤을 저렇게 높이 띄울 정도로 강성태라는 인물이 대단한 걸까?

이제 와서 컨소시엄 대표를 교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홍콩에서 곤잘레스 이두안은 은선곤을 앞세워 인터뷰를 진행했었고, 만찬장과 본회의에서 연달아 손을 잡아 올리며 사업 파트너들에게 은선곤을 각인시켰다.

마지막에는 세계를 상대로 은선곤이 파트너라며 발표한 상황이었다.

과연 곤잘레스 이두안은 정세원의 이런 심정을 예상하고 미리 대비했던 걸까?

그런데도 정세원이 은선곤을 대표에서 밀어낸다면?

공사를 놓칠까 염려한 그룹들이 강명그룹을 제외한 새로운 컨소시엄을 구성해 은선곤을 대표로 임명할 게 분명했다.

어쩌면 지경그룹 천중명이 나서서 은선곤을 데려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세원은 늘 이런 순간을 염려했었다.

항상 고개 숙이던 은선곤이 두려웠던 이유는 언제고 기회를 잡으면 정세원보다 높이 날아버릴 것만 같은 불안함 때문이었다.

“그놈 참.”

은선곤은 선친을 닮았다. 지독할 정도로.

그가 씁쓸하게 바라보는 TV 화면 속에서 은테 안경을 쓴 은선곤은 조명을 혼자 다 받은 양 빛나고 있었다.

**

조태완은 박노익을 불러 건물 1층에서 TV를 함께 보았다.

테러 영상이 보도된 다음 날 아침이었다.

신강남파 식구들은 물론이고, TV를 틀어놓은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거의 모든 채널이 회의 장면을 보도하고 있었다.

은선곤의 뒤를 따라 움직이는 이병렬과 유섭우를 보며 조태완은 멋쩍은 웃음을 흘려냈다.

어딘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특히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욕을 입에 담고 살던 이병렬이 TV 화면 속에서 진중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자 어색함을 넘어서 닭살이 돋는 듯한 이질감도 느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형님?”

박노익의 감탄에 조태완은 고개만 끄덕였다.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행사의 경호를 맡았다.

테러가 있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TV에 중계되는 본회의를 멋지게 경호하고 있으니 어쩌면 박노익의 감탄은 당연한 일이었다.

“보는 저도 심장이 뜨거워지는 기분인데 밑에 동생들은 어떻겠습니까?”

이건 무슨 소리지?

어색한 게 아니라 심장이 뜨거워져?

홍삼 달인 물을 마시던 조태완이 시선을 주었을 때였다.

슬쩍 고개를 움직인 박노익이 곁을 지키던 김석문과 덩치들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김석문과 덩치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카오 회의장에서 활약하고 싶은 욕망, 강성태와 함께 저런 순간에 주인공이 되고 싶은 덩치들의 열기가 조태완의 눈에 분명하게 들어왔다.

“우리 보스가 노린 게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지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형님. 이렇게 눈으로 보여줬는데 어떤 놈들이 반기를 들겠습니까?”

박노익의 현실적인 평가를 들으며 조태완은 불쑥 늙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박노익과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가 알아챈 동생들의 열기를 조태완은 짐작조차 못 했다.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병렬의 바뀐 모습이 어색해서 닭살마저 돋았었다.

“보스는 왜 안 보이지?”

행여나 늙었다는 감정을 박노익이 알아챌까 봐 조태완은 엉뚱한 질문을 내놓았다.

“그래서 우리 보스가 더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형님. 어제 그런 활약을 했으니 다른 사람 같으면 한 번이라도 더 화면에 나오려고 애쓸 텐데, 우리 보스는 아예 모습을 감췄습니다. 아! 저기 보십시오, 형님!”

말을 하던 박노익이 급하게 손을 뻗어 TV 화면을 가리켰다.

통로 안쪽에서 양손을 앞으로 잡고 서 있는 강성태를 방송 카메라가 악착같이 화면에 담아내고 있었다.

잘났다, 진짜.

빈정대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조태완의 감정이었다.

귀에 이어셋을 걸었고, 정장 차림에 날카로운 눈매로 행사장을 지켜보는 강성태를 보며 조태완은 부러울 정도로 잘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언제 오지?”

“오늘 들어온다고 들었습니다, 형님.”

그런 뒤에 조태완은 문득 강성태가 얼른 보고 싶다는, 저렇게 TV 화면에서 빛나는 그와 마주 앉아 홍삼 달인 물을 함께 마시며 신강남파의 일을 의논하고 싶다는 욕심을 불쑥 떠올렸다.

**

통로 안에 서 있는 강성태가 화면에 잡히는 순간, 장숙경은 입술을 늘이며 눈물을 쏟아냈다.

“엄마는 왜…?”

장숙경을 탓하던 김민정이 뒷말을 삼켰다.

이상하게 장숙경의 우는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울렁이며 왈칵 눈물이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연락이 끊긴 세월 동안 어떻게 살아났는지를 장숙경과 김민정에게 알려주는 것처럼 강성태는 어두운 통로 안쪽에 서 있었다.

저런 위치에 올라서기까지, 그리고 어제의 테러에서 활약하던 능력을 얻을 때까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래놓고는 대뜸 아파트를 장만하라며 통장을 내밀었다.

키워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장숙경의 김치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던 강성태, 김민재와 김민경의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던 강성태, 서운할 정도로 독한 장숙경의 꾸지람에도 반항 한 번 하지 않던 강성태였다.

저런 삶을 거쳐 한국에 돌아왔을 텐데도 강성태는 늘 변함이 없었다.

“어젯밤 테러에서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을 구해낸 경호팀장으로 보입니다. 부상의 정도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더니 다행히 현장을 지킬 정도인가 봅니다.”

행사를 중계하던 기자가 강성태를 평가하고 있었다.

**

간호사들이 다급하게 안다미를 불렀다.

“안 선생님! 여기요!”

애써 외면하던 중계였다.

한국 시각으로 오전 10시와 11시의 중간이라 응급실이 한가하기는 했지만, 대놓고 TV를 볼 환경이 아니라서 다들 스마트폰을 통해 회의장을 지켜보았다.

“안 선생님!”

속삭이는 듯, 그러나 바쁘게 부르는 소리에 안다미는 데스크 위에 올려놓은 간호사의 스마트폰에 시선을 주었다.

강성태였다.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늘 말했던 것처럼 강성태는 어두운 통로에 서서 밝은 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빛을 향해 선 그림자처럼.

‘멋있네요.’

안다미가 차마 뱉지 못한 말을 삼킨 직후였다.

귀에 이어셋을 걸친 강성태가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며 눈빛을 빛냈다.

“어쩜! 어떻게 해?”

눈에 하트를 진하게 올린 간호사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감탄을 뱉어냈다가 곧바로 안다미의 눈치를 살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간호사의 과한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시선을 돌린 강성태의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안다미는 멕시코의 그 험악한 산속 움막에 뛰어들던 강성태를 떠올렸다.

“어머? 어머? 어쩌면 좋아요, 선생님?”

간호사가 저렇게까지 걱정할 일은 아닌 거 같지만, 지금은 멋진 배역을 맡은 탤런트 애인을 둔 심정으로 이해하는 게 현명한 처신이었다.

**

마침내 마카오 회의가 끝났다.

단상에 서서 역시나 공산당 전당 대회 느낌으로 손뼉을 치던 곤잘레스 이두안이 통로를 향해 몸을 돌렸다.

- 통로를 확인해.

존 보스만의 무전이 강성태의 귀에서 울렸고, 그 뒤에 곤잘레스 이두안이 몸을 돌렸다.

은선곤이 반걸음쯤 뒤에서 따르는 상황에서 통로에 들어선 곤잘레스 이두안이 강성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토록 환하게 웃는 곤잘레스 이두안은 처음이었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강성태가 그의 손을 마주 잡은 직후였다.

손을 당겨 강성태를 끌어당긴 그가 경기 종료 후 선수를 끌어안는 감독처럼 강성태를 안았다.

“고맙네, 미스터 강. 내 인생 마지막 프로젝트를 계획대로 시작하게 되었고, 내 조국 멕시코가 온전한 길로 들어설 기회를 잡았어. 이게 모두 자네가 지켜준 덕분일세. 정말 고맙네, 미스터 강!”

한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은선곤이 지켜보는 앞이었고, 거기에 수도 없이 많은 방송 카메라가 달려드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언제고 냉정하던 곤잘레스 이두안이 당장 천억쯤 빌려달라고 해도 흔쾌하게 받아들일 사람처럼 흥분해 있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곤잘레스 이두안이 뒤로 돌린 왼팔로 연신 강성태의 등을 다독였다.

“이제 들어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강성태에게서 몸을 뗀 곤잘레스 이두안이 흥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통로를 막아선 존 보스만이 흐뭇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경호팀에게도 휴식이 필요하겠군.”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다는 얼굴로 웃은 곤잘레스 이두안이 통로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밝은 빛 아래에서 활약했지만, 그가 쉴 곳은 그림자 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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