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2권 - 9화 (442/513)

《442》2부 22권 - 9화

만찬장 바닥이 요란하게 흔들렸고, 천장에서 장식물들과 패널들이 쏟아져 내렸다.

바닥에 처박혔던 강성태가 악착같이 의식을 붙들고 고개를 돌린 옆에 이병렬과 유섭우가 처참한 몰골로 널브러져 있었다.

보기는 흉했으나 날아가 처박힌 덕분에 최소한 죽지는 않았다.

곤잘레스 이두안은?

강성태는 상체를 비틀어 단상 쪽을 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깨진 머리에 흙먼지가 내려앉아 핏빛 진흙을 뒤집어쓴 듯한 고룡동이 존 보스만의 굵은 팔뚝을 잡아당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끄응.”

강성태는 악착같이 상체를 세웠다.

무엇보다 폭발의 충격으로 귀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 바람에 보이는 모든 장면이 ‘음소거’ 버튼을 누른 텔레비전 화면처럼 멀찍하게 느껴졌다.

구석에서는 원탁 테이블을 거대한 성벽처럼 세워둔 필리핀 조직원들과 신강남파 식구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었고, 고룡동이 그들에게 뭔가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꿈틀.

그 직후에 이병렬이 버둥대는 몸짓으로 바닥을 짚고서 상체를 세웠다.

‘씨발.’

당장 이병렬이 뱉어내는 욕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꿈틀대며 고개를 드는 이병렬의 입 모양이 분명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둘 달려온 필리핀 조직원들과 신강남파 식구들이 강성태를 부축했고, 스크린 바깥을 살피느라 홀을 빠져나갔었던 아르윈이 거짓말처럼 말끔한 모습으로 달려왔다.

“키란을 살펴줘!”

제대로 듣기조차 어려웠지만, 강성태는 키란을 부탁했다.

키란을 찾아 고개를 돌렸던 아르윈이 안쪽을 향해 뛸 때, 강성태는 고룡동 일행이 있는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홀을 가로지른 직후였다.

존 보스만의 아래, 광주 식구들 틈에서 곤잘레스 이두안이 몸을 세웠다.

간신히 상체를 일으킨 곤잘레스 이두안과 존 보스만이 복잡한 감정을 담은 눈으로 강성태를 보았다.

찌이이-잉.

그 직후에 강성태의 귀에서 요란한 쇳소리가 울렸다.

이전에 용병 생활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곤잘레스 이두안은 강성태의 상태를 알지 못한다. 그런 그가 무언가를 말하며 강성태를 보았다.

통로, 알았나, 정도만 입 모양을 통해 이해했다.

“죄송하지만, 뭐라고 하는지 안 들립니다.”

강성태의 대꾸를 들은 곤잘레스 이두안이 기가 막힌 웃음을 토해낸 뒤에 시선을 돌렸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은선곤이 다가오고 있었다.

샤프한 이미지를 강조했던 은색 안경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역시나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모습이었는데 예상과 달리 약이 바싹 오른 얼굴이었다.

그래. 그렇게 하나둘 적응해.

찌이이-잉.

또다시 쇳소리가 요란하게 울었다.

손을 든 강성태가 귀 위쪽을 쳐대는 옆에서 곤잘레스 이두안이 은선곤의 팔목을 잡았다. 강성태를 돌아보았던 그가 은선곤을 이끌며 홀의 중앙으로 걸었다.

“위험합니다!”

굵직한 존 보스만의 음성이 어렴풋하게 들렸다.

들린다, 염병할.

이제 겨우 들린다고.

존 보스만의 경고대로 아직 천장에서 간간이 흙먼지가 쏟아지고 있어서 언제 구조물이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오늘 밤의 테러처럼 우리의 프로젝트는 위험합니다. 이익이 큰 만큼 노리는 조직과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 곤잘레스 이두안은 한국의 파트너 두 사람과 함께 반드시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겠습니다.”

은선곤을 옆에 세운 곤잘레스 이두안의 음성이 점점 더 확실하게 강성태의 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러분에게 약속한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서 기대하는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당당하게 서 있는 곤잘레스 이두안과 은선곤의 뒷모습 너머에서 몸을 감췄던 사업 파트너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여러분께 나의 파트너를 소개합니다. 오늘 테러를 막아낸 한국의 강성태 회장입니다. 그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테러에서 우리를 지켜냈듯이 멕시코의 신도시를 통제하고 지배할 겁니다. 그가 여러분의 이익 또한 지켜내리라 확신합니다.”

다부지게 서서 외쳤던 곤잘레스 이두안이 고개를 돌려 강성태를 찾았다.

쇼맨십은 정말 죽인다. 그리고 이럴 때 그의 의도를 외면하는 건 진짜 미련하고 바보 같은 짓이었다.

강성태는 곤잘레스 이두안의 오른편으로 움직였다.

원탁 테이블 뒤에 있던 사업 파트너들이 이익이라는 말에 홀린 듯이 앞으로 나와 있었다.

“곤잘레스 회장님, 미스터 은,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 여러분을 모셨던 동료들과 함께 신도시를 분명하게 지켜내겠습니다.”

옆을 돌아보았던 사업 파트너들이 신강남파 식구들과 필리핀 조직원들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짝. 짝. 짝. 짝.

시작은 오른쪽 중간에 있는 사업 파트너였다.

그가 손뼉을 치기 시작하자 전염이라도 된 듯 함께 있던 이들이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박수를 보내주었다.

프로 레슬링 대회 우승, 아니면 선거에서 당선을 확신하는 듯한 포즈, 은선곤의 손을 잡은 곤잘레스 이두안이 양팔을 위로 들어 박수를 보내는 사업 파트너들에게 그의 의지를 전했다.

안전을 위해서 여기까지가 좋았다.

마침 호텔의 안전 요원들과 직원들, 흰색 복장의 의료팀이 홀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존 보스만이 그의 경호팀과 다가와 곤잘레스 이두안을 감싼 다음이었다.

테이블에서 몸을 뺀 보리스 파리오가 무거운 얼굴로 다가왔다.

“이보게, 곤잘레스. 마카오에서 출국할 때까지만 미스터 강에게 경호를 부탁하세.”

그렇다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미스터 강?

곤잘레스 이두안이 대놓고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오늘 일로 내 처지가 어떻게 될지 짐작하지 않나? 출국할 때까지만일세. 그때까지만 자네와 자네 동료들이 나를 경호해주게.”

곤잘레스의 시선이 지닌 의미를 알아차린 것처럼 보리스 파리오가 애절한 청을 내놓았다. 곤잘레스 이두안의 앞에서 이런 요구사항을 내놓을 정도라면 그의 사정이 몹시 다급하다는 고백과 같았다.

“나는 곤잘레스 회장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익 충돌이라 회장님의 경호를 맡을 수 없습니다.”

그것참. 통쾌한 답변이구만.

곤잘레스 이두안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미스터 강은 나의 파트너지, 부하 직원이 아냐. 그리고 그가 거절한 이상 내가 다른 말을 하기도 어려워.”

더할 수 없이 차갑고 냉정한 표정으로 곤잘레스 이두안이 거절의 뜻을 내놓았다.

‘네가 중국 정부나 삼합회의 손에 죽어도 알 바 아니고, 차라리 그렇게 되는 게 앞으로 있을 신도시 건설에 좋은 본보기가 돼줄 테니 나는 그걸 막을 마음이 없다.’

거기에 보리스 파리오를 바라보는 곤잘레스 이두안의 눈빛이 바라는 점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원하는 건 뭐든 협조할 테니 마카오에서만 나가게 해주게.”

“그런 부탁을 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나?”

어떤 면에서 사업은 섭충명의 목을 잘라낸 것만큼이나 잔인한 결정을 요구할 때가 있었고, 곤잘레스 이두안은 그런 부분에서 결코 주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잔인한 의사를 밝힌 곤잘레스 이두안이 차가운 눈빛을 끝으로 몸을 돌렸다.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한 테러가 발생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심지어 염려하던 공사 확정까지 단숨에 결정 나서 오히려 전화위복이라 할 만했다.

이제 남은 걸 처리하고.

고개를 돌렸던 강성태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이세종을 떠올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

모든 일이 사람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었다. 그 변하지 않는 진리는 강성태에게도 적용되었는데 원인은 이세종이었다.

테러로 인해 부상을 입었음에도 이세종은 악착같이 객실로 움직여 카메라에 담긴 장면들을 편집해 서울로 보냈다.

[마카오 호텔에서 테러 발생]

다른 방송국이 붉은색 글씨로 속보를 내보낼 때, JBC는 아예 호텔을 배경으로 기자를 세웠고, 설명 중간에 테러 영상을 띄우는 특종 중의 특종을 내보냈다.

“지금 제 뒤로 보이는 호텔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멕시코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축하하는 만찬이 있었고, 이 자리에는 세계 각국의 기업인, 공사를 수주하기 위한 한국의 컨소시엄 대표가 참석했습니다.”

앰블런스의 경광등 불빛, 들것에 실려 나오는 사람들, 구조대와 경찰, 마지막으로 아직 화려함을 잃지 않은 호텔을 배경으로 선 기자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만찬에서는 가장 먼저 한국의 컨소시엄 은선곤 대표의 축하 연설이 있었습니다.”

단상에 서서 홀을 향해 영어로 뜻을 밝히는 은선곤이 영상이 화면에 올라왔다.

“테러는 오늘의 주연인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이 등장하는 순간 발생했습니다.”

기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상이 바뀌고 총소리가 들렸다.

화면 가운데로 강성태가 튀어나왔고, 이어서 존 보스만의 경호팀과 고룡동, 광주 식구들, 이병렬과 유섭우가 곤잘레스 이두안을 감싸고 통로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사이, 벽에 붙어 있던 신강남파 식구들과 필리핀 조직원들이 앉아있던 사업 파트너들을 데리고 구석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곤잘레스 이두안이 통로 앞에 도착하는 순간이었다.

“병렬아! 멈춰! 홀로 나와!”

내부를 통제하던 강성태가 급하게 고개를 돌리며 지르는 고함이 또렷하게 들렸다.

“나와! 나오라고!”

“What the fuck!”

통로를 막고서 곤잘레스 이두안을 밀어내는 바람에 존 보스만이 고함을 질렀다.

그 직후에,

콰으으으응!

화면이 거칠게 흔들리며 폭발과 함께 비명이 들렸고, 곤잘레스 이두안과 그를 지키던 일행이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보셨듯이 경호책임자의 정확한 판단이 아니었다면,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의 안위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어서 권총을 꺼내 아래로 내린 강성태가 통로로 달려가는 모습이 나왔다.

“존! 저쪽! 테이블 뒤로 가!”

통로를 향해 달린 강성태가 권총을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고함을 버럭 질렀다.

강성태가 지키는 뒤편에서 몸을 세운 존 보스만이 곤잘레스 이두안을 안아 들었다.

콰으으응!

그 직후에 두 번째 폭발이 천장에서 일어났고,

콰으으으응! 콰으으으응!

세 번째 폭발이 주방 통로에서 터졌다.

화면에서 뒤로 날아간 강성태가 처참하게 바닥에 처박혔을 때였다.

뿌옇게 일어난 콘크리트 먼지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훅 뛰어나왔다.

화면이 그곳에서 멈췄다.

“테러의 주범으로 추정되는 인물입니다. 중국의 최대 폭력조직 소속으로 알려진 이 남자가 몸에 다이너마이트를 두르고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을 노렸습니다.”

이어진 화면에서,

“곤잘레스 이두아-안!”

섭충명의 절규가 들렸고,

“쏘지 마! 쏘지 말라고!”

강성태의 고함이 이어졌으며,

와락! 콰악! 철퍼덕!

곤잘레스 이두안을 향해 달리는 섭충명을 중간에서 덮치는 강성태의 모습이 흙먼지가 가득한데도 또렷하게 화면에 올라왔다.

이어진 장면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카메라들이 흔들렸고, 조명이 없는 데다, 흙먼지와 연기가 뿌옇게 실내를 가득 메웠기 때문이었다.

어수선한 장면이 이어지는 가운데 또다시 꽈으으으응, 하는 폭발이 있었다.

“한국의 경호팀장의 날카로운 판단과 적절한 조치, 경호팀의 대응 덕분에 현재 희생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어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듯한 화면에 곤잘레스 이두안과 은선곤의 모습, 그리고 곁에 선 강성태가 올라왔다.

“자살 폭탄 테러를 막아낸 경호팀장은 현재 치료 중으로 부상의 정도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보도의 반응은 대단해서 JBC는 해당 영상을 반복해서 틀었고, 경호 전문가들을 불러 상황을 되짚는 특별 보도를 연달아 내놓았다.

강성태가 예상하지 못했던 이세종의 발 빠른 보도였고, 특종에 대한 그의 집념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

이마와 볼, 목덜미에 거즈를 요란하게 붙인 로페즈는 지친 음성에 일부러 만들어 낸 분노를 가득 담았다.

“나도 모르는 계획이 있었다고 강성태 경호팀장을 설득했었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잡았고, 주방에 숨어 있었는데 삼합회가 독자적으로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린 겁니다.”

- 테러에 관한 보고는 받았다. 우리는 분명 삼합회가 어떤 테러도 일으키지 않겠다는 답을 얻었고. 조금 전에도 중국 정부로부터 유감이라는 뜻과 이번 테러는 삼합회의 몇 명이 일방적으로 저지른 행동이라는 답도 들었다.

스피커폰을 통해 불편한 변명이 늘어졌다.

“이렇게 되면 일단 가페는 곤잘레스 회장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멕시코 신도시에 지분을 얻어내는 게 가장 현명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당장 경호팀장은 물론이고, 곤잘레스 회장을 설득할 방법이 없습니다.”

- 지금처럼 가페를 지원해주기만 한다면 당장 우리가 불만을 품을 일은 없겠지. 곤잘레스 회장을 설득할 수 있겠나?

스피커폰을 통해 나온 질문을 듣기 무섭게 로페즈가 시선을 들었다.

어떻게 할까요?

로페즈의 시선을 향해 강성태는 검지를 들어 얼굴을 가리켰다.

“지금은 곤잘레스 회장보다 한국의 파트너 두 사람, 미스터 강과 미스터 은을 설득하는 게 빠를 거 같습니다. 한국으로 함께 움직이게 해주십시오. 그곳에서 신뢰를 얻은 뒤에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카르텔에 넘어갔다고 보고한 대원 두 명은 먼저 보내겠습니다.”

- 그들은 카르텔이 알아서 하겠지. 원하는 대로 해. 그리고 삼합회에서는 수거한 테러 주범의 머리를 박제로 만들어서 전시하겠다고 할 정도로 분노하고 있다. 그 점을 경호팀장에게 분명하게 전해.

“알겠습니다. 또 보고 드리겠습니다.”

종료버튼을 누른 로페즈가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머리칼의 위쪽이 타버려서 얼굴 모양이 전체적으로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들으신 대로 정리했습니다.”

“최소한 카르텔의 손에 가족이 죽는 건 면한 셈이군.”

강성태의 대꾸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눈알을 불쾌하게 굴렸지만, 로페즈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기회다. 엉뚱한 생각으로 기회를 버린다면 테러를 일으켰던 삼합회와 비슷한 최후를 맞게 될 거다.”

로페즈에게 경고한 강성태는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마와 목덜미, 여기저기 생겨난 상처가 많아서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강성태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이제 진짜 끝났나?

지긋지긋한 마카오를 떠날 생각에 그나마 홀가분한 기분으로 문을 나설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성태의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요란스럽게 울었다.

액정에 이모 장숙경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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