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2권 - 8화 (441/513)

《441》2부 22권 - 8화

단상 앞으로 움직인 남녀 진행자들이 그려낸 미소와 함께 홀 안쪽의 원탁 테이블과 그곳에 앉은 이들을 돌아보았다.

“좋은 밤입니다. 저는 오늘 만찬의 진행을 맡은 미키….”

“오라셀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원탁에 앉은 사업 파트너들의 반응으로 봐서 영화배우, 혹은 그 급의 연예인이지 싶었다.

“이 만찬을 시작으로 멕시코의 거대한 건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영광스러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남자 진행자의 축하 인사에 앉아 있던 사업 파트너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먼저 전야제 격인 만찬의 진행을 맡아서 영광이란 말씀을 드리고요. 참석하신 모든 분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두 진행자 모두 중국어 억양이 묻은 영어 발음이었다.

양손을 앞으로 잡은 강성태는 실내를 살피는 사이에도 진행자들의 시선을 수시로 확인했다.

교탁에 서 있으면 수험생의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가 모두 눈에 담기는 것처럼, 앞에서 진행하는 사람은 관객의 특이한 행동에 시선이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불편한 기색을 누르며 태연한 척하는 보리스 파리오, 이 사업에서 예상한 수익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사업 파트너들, 그들을 둘러싸고 대기 중인 필리핀 조직원들과 신강남파 식구들, 강성태는 수험생을 지켜보는 감독관처럼 홀 안을 쉬지 않고 훑었다.

홀의 구석에 서 있는 이세종이 기자에게 고개를 숙여 무언가를 지시하는 모습도 분명하게 확인했다.

“먼저 이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 분이 계십니다. 한국의 그룹 컨소시엄 대표 은선곤 씨입니다. 은선곤 씨를 박수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박수와 함께 앞쪽 테이블에 있던 은선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작한다. 긴장해.’

강성태는 신강남파 식구들에게 시선을 던진 뒤에 두 명의 진행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곳은 마카오였다.

삼합회의 앞마당이었고, 호텔 직원은 물론, 만찬을 진행하는 저 두 사람 역시 섭충명에게 어떤 협조를 할지 모르는 장소였다. 막말로 협박에 눌린 여자 진행자가 드레스의 아래에서 권총을 꺼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먼저 이 자리에 초대해 주신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님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나와 짧게 인사말을 전한 은선곤이 재킷에서 접어두었던 A4 용지를 꺼내 단상에 올려놓았다.

그는 두 명의 진행자들과는 비교하기조차 미안할 정도로 능숙한 영어로 오늘 만찬을 축하했고, 강성태가 부러워할 만큼 고상한 단어, 품격있는 억양으로 프로젝트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은테 안경, 샤프한 외모, 반짝이는 눈매, 고상한 영어, 단상에 선 은선곤은 마치 오늘의 주인공인 양, 빛을 발하며 공사 수주를 희망하는 한국 그룹의 의지를 전했다.

곤잘레스 이두안만큼이나 삼합회가 노리는 인물이 있다면 바로 지금 멋지게 사업 파트너들을 설득하는 은선곤이었다.

사람은 미래를 알지 못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실수나 실패를 줄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비하는 일이었다.

전반, 후반, 모든 시간을 잘 막아냈지만,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에 골을 먹으면 게임을 잃는 골키퍼처럼, 곤잘레스 이두안과 은선곤, 둘 중 누구를 잃어도 멕시코 신도시 건설에 커다란 차질이 생긴다.

‘은선곤, 너는 내가 지킬 테니까 지금처럼만 해.’

강성태는 볼이 씰룩일 정도로 굳게 각오를 다지며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네 숨소리가 들릴 때까지 호흡에 집중해. 내가 존경하는 선배는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거기까지 경험하지 못했다. 대신 호흡을 느끼면서 냉정해지는 건 분명하게 알았다.”

과거의 저주가 풀리지 않았다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섭충명의 계획을 알 때까지 지하차도를 달렸을 강성태였다.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한다.

후욱. 후욱.

입구는 확실하게 틀어막았다.

환풍구는 나사까지 확인했다.

조명 위에서는 키란이 저격용 소총을 들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고, 만찬장 벽을 타고 신강남파 식구들이 할당받은 원탁 테이블을 노려보고 있다.

“대한민국은 경이로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동안 쌓았던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랜드마크를 건설했으며, 이는 앞으로 있을 멕시코 신도시 건설에서 그 빛을 발할 것입니다.”

지정된 테이블을 바라보는 필리핀 조직원들, 입구와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배치된 히트맨들, 당장 섭충명이 밀고 들어올 곳은 없어 보였다.

후욱. 후욱.

강성태는 숨소리를 귀에 담으며 사업 파트너들이 앉은 원탁 테이블의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단상, 은선곤, 그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진행자, 프로젝트를 보여주기 위한 스크린…, 스크린?

강성태는 벽을 가리다시피 내려온 스크린을 확인한 뒤에 셔츠 깃에 매단 무전기를 손으로 잡았다.

“아르윈. 진행자 뒤편에 내려온 스크린 보이지? 스크린에 가려진 벽 너머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 다른 홀이 있는 건지, 아니면 복도인지, 호텔 외벽인지 정확하게 알아봐.”

- 알겠습니다.

영어로 건넨 지시였다.

키란과 호텔 복장을 한 필리핀 조직원들, 곤잘레스 이두안의 곁을 지키고 있을 존 보스만의 경호팀이 모두 들었고, 이해할 지시였다.

“강성태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훈련한 대로 움직여. 혹시 잘못 판단해서 문제가 생겨도 내가 모두 책임진다. 확신이 들면 주저하지 마.”

이번에는 한국어로 전한 말이었다.

지금은 곤잘레스 이두안이 등장할 통로 안쪽에 대기한 이병렬과 유섭우, 벽을 타듯이 서 있는 신강남파 식구들, 대기실에 있을 고룡동 일행을 위한 지시였다.

마이크에서 손을 내린 강성태가 시선을 돌렸을 때, 은선곤의 순서가 끝났다.

만찬장 안에 나직한 박수가 울릴 때였다.

- 바깥은 바로 통로입니다. 벽이 두꺼워서 탱크가 아니면 뚫지 못합니다.

아르윈의 답이 있었다.

분명 올 텐데, 그 개자식이?

어디지? 어디로 오는 거지?

장내에서는 두 명의 진행자가 오늘 이 자리가 빛나서 마카오의 밤이 더욱 아름답다는, 너무도 식상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점점 커지는 불안함에 강성태는 시선을 위로 들었다.

“키란. 조금이라도 이상한 느낌이 들면 무조건 방아쇠를 당겨.”

- 알겠습니다.

함께 무전을 듣고 있을 존 보스만의 목이 쭉 빠져나올 지시였다.

무전으로 지시를 마친 강성태가 통로를 돌아볼 때였다.

“이어서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주인공,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을 모시겠습니다.”

남자 진행자가 통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짝짝짝짝짝짝짝.

자리에서 일어난 사업 파트너들이 손뼉을 치며 곤잘레스 이두안을 기다렸다.

그 직후였다.

- 출발합니다.

긴장을 담뿍 담은 존 보스만의 굵직한 음성이 들렸다.

곤잘레스 이두안이 통로에서 모습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짝짝짝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더욱 요란하게 울렸고, 간간이 함성이 터졌다.

바로 뒤에서 따르는 이병렬과 유섭우를 확인한 강성태가 천장의 조명에 시선을 드는 순간이었다.

왔다!

이해하지 못할 감각이 강성태의 신경을 날카롭게 세웠고,

타아아-앙! 타앙! 타아-앙! 타다당! 타당!

입구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홀 안쪽으로 달려들었다.

“병렬아!”

강성태가 부르는 것과 동시에 이병렬과 유섭우가 가방을 펼치고는 곤잘레스 이두안을 감쌌다.

타당! 타앙! 타아앙! 타다당!

통로에서 뛰어나온 존 보스만의 경호팀, 고룡동과 광주 식구들까지 합세해서 그를 감쌌고,

“귀빈들 모셔!”

단상 앞으로 뛰어든 강성태는 세 곳의 입구 중앙에서 고함을 버럭 질렀다.

벽에 붙듯이 대기하고 있던 신강남파 덩치들과 필리핀 조직원들이 득달같이 지정된 테이블로 달려들었다. 그들이 정해진 사업 파트너들을 안다시피 붙들고 정해진 홀의 구석으로 움직였다.

강성태는 얼굴이 하얗게 변해 단상에 몸을 숨긴 진행자의 뒷덜미를 당겼다.

“저쪽 구석으로 가! 홀 안쪽!”

“예? 예!”

강성태가 진행자들을 구석으로 밀다시피 보낸 직후였다.

- 침입자입니다! 세 명입니다!

아르윈의 급한 무전이 들렸다.

세 명이라고? 고작 셋이서 총만 들고 이곳을 노려?

후욱. 후욱.

그 직후였다.

강성태의 눈에 담긴 세상이 느린 화면을 늘어놓은 것처럼 천천히 흘렀다.

가방을 펼쳐 곤잘레스 이두안의 앞을 막아선 이병렬과 유섭우, 그 뒤에서 곤잘레스 이두안을 둘러싼 존 보스만과 경호팀, 일제히 달려 나와서 곤잘레스 이두안 주변을 감싼 고룡동과 광주 식구들이 조금 전에 나왔던 통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병렬아! 멈춰! 홀로 나와!”

존 보스만과 경호팀이 통로를 향해 곤잘레스 이두안을 밀어대는 상황이었다.

이병렬과 고룡동의 시선이 악착같이 강성태를 향해 달려왔다.

“나와! 나오라고!”

고룡동과 광주 식구들이 럭비 선수처럼 통로로 밀어붙이는 경호팀을 힘으로 막아섰고, 밀쳐대는 존 보스만을 감당하기 위해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경호는 사전에 동선이 정해져 있다.

지금처럼 위급한 순간에 대비한 동선까지 모두 다.

“What the fuck!”

이해하지 못할 신강남파 식구들의 행동에 존 보스만의 욕설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콰으으으응!

통로 안쪽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며 곤잘레스 이두안을 감쌌던 일행이 줄에 묶여 당겨진 것처럼 홀 안쪽으로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거였구나!’

강성태는 품에서 권총을 꺼냈다.

사업 파트너들을 둘러싸고 구석으로 움직였던 필리핀 조직원들과 신강남파 식구들이 테이블을 방어막처럼 쌓고 있었다.

“존! 저쪽! 테이블 뒤로 가!”

통로를 향해 달린 강성태가 권총을 아래로 내린 상태에서 고함을 버럭 질렀다.

강성태가 지키는 뒤편에서 몸을 세운 존 보스만이 곤잘레스 이두안을 안아 들었다.

콰으으응!

그 직후에 두 번째 폭발이 천장에서 일어났고,

콰으으으응! 콰으으으응!

세 번째 폭발이 주방 통로에서 터졌다.

가스에 불이 붙은 건지, 아니면 가스관이 터진 건지는 몰라도 파랗고 노랗게 보이는 불길이 통로에서 튀어나와 홀 안을 휩쓸고 지나갔다.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누군가의 거대한 주먹을 맞은 것처럼 뒤로 날아간 강성태가 바닥에 처박혔을 때였다.

뿌옇게 일어난 콘크리트 먼지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훅 뛰어나왔다.

‘섭충명?’

놈은 바닥에 널브러진 곤잘레스 이두안을 향해 똑바로 달리고 있었다.

‘이익!’

통증을 무시하며 몸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후욱. 후욱.

두 번째로 세상이 느리게 흘렀다.

보인다.

이 지랄 같은 상황이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심지어 바닥을 짚은 강성태의 손과 권총에 뿌옇게 앉은 흙먼지와 콘크리트 파편에 맞아 피가 나오는 정강이와 허벅지, 어깨까지 모두 눈에 들어왔다.

“곤잘레스 이두아-안!”

권총도 들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섭충명은 곤잘레스 이두안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통로와 주방에서 있었던 폭발의 의미를 모른다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안쪽은 모두 죽는다.

“쏘지 마! 쏘지 말라고!”

통로에서 나와 곤잘레스 이두안을 향해 달리는 섭충명, 그를 향해 권총을 겨눈 존 보스만, 강성태는 그 중간을 향해 몸을 날렸다.

와락! 콰악! 철퍼덕!

들짐승을 덮치는 매처럼 강성태는 섭충명을 중간에서 낚아챘다.

놈의 가슴이 비정상적으로 단단하게 느껴졌고,

“강성태!”

시선을 마주친 섭충명이 괴기한 눈빛으로 강성태를 불렀다.

네놈 뜻대로 그냥 둘 거 같아?

휘릭! 휘익!

넘어진 상태에서 팔을 뒤로 돌린 강성태는 대뜸 쿠크리를 꺼내 섭충명의 오른쪽 팔뚝을 향해 휘둘렀다.

서거-억!

놀란 그의 눈이 커다랗게 변하며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휘릭! 서걱! 서거-억! 서걱!

곧바로 섭충명의 왼쪽 손목을 자른 강성태는 단박에 양쪽 겨드랑이를 갈랐다.

타아아앙! 타앙! 타아앙! 타앙! 타아앙!

주방이 있던 통로에서 연달아 권총 소리가 들렸을 때였다.

삑삑삑삑삑.

손목이 잘리고 겨드랑이가 갈라진 섭충명의 상체에서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디지털 음이 일정하게 울렸다.

“으하하하하!”

미친 웃음을 토해낸 섭충명이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입을 벌리고는 강성태의 어깨를 힘껏 물었다.

삑삑삑삑.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후욱. 후욱.

강성태는 뒤를 돌아보았다.

“다이너마이트다! 회장님을 구석으로 모셔!”

고함을 버럭 지른 강성태의 눈에 이병렬이 들어왔다.

“섭우야!”

유섭우를 부른 그가 강성태를 향해 달렸고, 그 너머로 천장에서 떨어진 키란이 텅 빈 홀 중앙에 쓰러져 있었다.

“오지 마! 다이너마이트라니까!”

이대로 이빨에 물린 채 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면 섭충명 넌 처음부터 날 너무 얕잡아본 거지!

일단 이 개새끼를 떼 놓고.

쿠크리를 쓰려고 해도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했다.

콰악.

강성태는 반질거리는 섭충명의 머리 대신 그의 얼굴을 오른손으로 잡고서 엄지로 눈을 깊게 찔렀다.

“끄아-악!”

비명을 토해내면서도 섭충명은 물고 있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야, 이 개새끼야!

내가 말한 게 있거든.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지옥?

얼마든지 가 주마.

내가 지키려는 경호대상을 지킬 수만 있다면.

휘릭. 푸-우욱.

강성태는 손목을 뒤틀어서 섭충명의 목에 쿠크리를 제대로 꽂아 넣었다.

서거-억.

목의 뒤쪽이 단숨에 갈라졌고,

휘릭. 서걱.

이어서 앞쪽이 갈라지며 섭충명의 몸뚱이가 떨어졌다.

원한이 깊었던 모양이었다.

강성태의 어깨를 물고 있던 섭충명의 머리가 몸을 세우는 순간까지 매달려 있었다.

“달려! 뒤로 가!”

강성태가 고함을 버럭 지르며 몸을 돌릴 때, 가방을 펼친 이병렬과 유섭우가 부딪치듯 달려들었다.

콰으으으으응.

눈앞이 뿌옇게 변했고, 이어서 세상의 모든 소리가 뚝 잘렸으며,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강성태는 허공을 날았다.

섭충명, 이 개새끼!

대가리는 남겼네?

엉뚱한 생각을 떠올린 직후였다.

털써-억! 철퍼덕!

세상 전체가 튀어 올라서 강성태를 때리는 듯한 엄청난 충격이 삽시간에 달려들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