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2권 - 7화 (440/513)

《440》2부 22권 - 7화

암살범이라 짐작했던 로페즈 니에토가 엉뚱하게 짐덩이로 바뀌면서 계획 일부가 비틀렸다.

무엇보다 그가 군의 상사에게 전화한 일로, 멕시코 정부와 중국 정부에 본의 아닌 영향력을 행사한 게 컸고, 다음으로 삼합회와 총질하는 도중에 숨을 거두고 싶다는 미친 소원을 내놓는 바람에 커다란 짐이 하나 늘어난 꼴이었다.

회의를 30분쯤 앞둔 상황이었다.

곳곳에서 인터뷰와 취재가 진행되는 동안, 혹시나 불러줄까 하며 눈치를 살피는 JBC 이세종을 향해 강성태는 가까이 오라는 눈짓을 던졌다.

표현이 좀 미안하기는 한데, 내내 주인을 바라보던 애완견이 미친 듯이 꼬리를 휘저으며 달려오는 모습, 눈짓 한 번에 다가오는 이세종은 꼭 그런 느낌이었다.

“경호를 담당하셨으니 함부로 나서지 말란 말씀이 있어서 눈치만 살폈습니다, 회장님.”

“누가 그래?”

“은선곤 대표께서 몇 번이나 당부하셨습니다.”

“인터뷰는 잘 찍었어?”

“은선곤 대표가 특별하게 대우해주기는 했는데 다른 방송사들과 특별한 차이가 없어서 그 점이 아쉽습니다.”

하얀 뼈에 주황색 살점이 감긴 간식을 바라는 애완견의 눈빛을 하고서 이세종이 아쉬워하는 점을 내놓았다. 비록 약삭빠르고 이익에 휩쓸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식구처럼 지냈던 이세종이었다.

“마카오까지 왔는데 특종 하나 해야지?”

“그렇게만 된다면 제 얼굴이 설 겁니다, 회장님.”

뭐냐? 뭔데?

이세종의 눈이 어서 빨리 뼈다귀를 던져 달라며 독촉하고 있었다.

강성태는 두어 걸음을 움직여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다른 방송사에서 보고 있으니까 고개 돌리지 말고 시선만 움직여.”

“예? 예.”

“입구 보이지? 그리고 반대편에 보면…. 고개 말고 시선만 돌려. 곤잘레스 회장이 등장하는 통로, 그 옆으로 음식을 가지고 나오는 주방 출구가 있어. 세 곳에 모두 카메라를 설치해서 연회가 끝날 때까지 찍어.”

이건 뭐지?

고개를 돌린 이세종의 눈이 직전과 다르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만찬 진행 시간이 한 시간 반입니다. 그동안 내내 카메라를 돌리고 있으면 다른 방송국이 눈치챌 겁니다. 당장 조명만 켜도 시선들이 달려오는데요.”

“답답하긴. 그냥 찍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조명을 켜면 되지. 내 생각에는 조명 없이 담는 게 현장감이 더 높을 거 같은데?”

“이벤트가 있습니까, 회장님?”

궁금해 미치기 직전의 이세종을 향해 강성태는 더할 수 없이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세계 유수의 방송국에서 우리 이 국장이 잡은 영상을 달라며 매달리게 될지 몰라.”

“예에?”

“그 정도로 화끈한 이벤트거든. 이걸 아는 사람은 곤잘레스 회장과 저기 덩치 큰 경호원 보이지? 존 보스만과 나밖에 없었는데 이제 이세종 국장까지 알게 된 거지.”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 은혜….”

강성태는 고개를 기울이려는 이세종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요란스럽게 하면 다른 방송사들이 눈치챌 거 아냐? 가능하면 카메라도 감춰서 설치했으면 싶은데, 되겠어?”

“소형 카메라가 있습니다, 회장님. 알아서 녹화하겠습니다.”

몇 번이나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라는 당부와 주의를 건네고 나서야 강성태는 이세종을 놓아주었다.

다음은 만찬장 한쪽에 있는 주방이었다.

피어오르는 불길, 뭔가를 지시하는 고함, 물과 도마 소리, 프라이팬에서 고기 익는 소리까지, 안으로 들어서자 전쟁터가 따로 없을 만큼 혼잡하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호텔 직원 복장으로 갈아입은 필리핀 조직원들이 쟁반에 음료와 물을 올리고 움직이고 있었는데 강성태를 향해 시선만 줄 뿐, 인사는 하지 않았다.

왼손에 든 프라이팬을 요란하게 흔드는 조리사를 지나친 강성태는 더 안쪽의 자재 창고로 들어갔다.

아련한 조명 아래에서 실루엣처럼 앉아 있던 로페즈 니에토와 대원 두 명이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혹시 마음이 바뀌었다면 조용하게 나가서 멕시코로 돌아가.”

“미스터 강 같으면 카르텔의 손에 목이 잘리는 게 좋겠소? 아니면 이곳에서 명예로운 군인으로 죽는 게 좋겠소?”

죽음을 앞둔 사람만이 내놓을 수 있는 악에 받친 대꾸였다.

그 정도야 뭐 이해해 주지.

강성태는 어깨를 들썩이고는 몸을 돌렸다.

“정말 테러가 있는 거요?”

주방으로 향하는 강성태의 어깨를 손으로 붙잡는 듯이 로페즈 니에토의 질문이 달려들었다.

안됐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걸음을 멈춘 강성태는 고개만 돌렸다.

“그런 질문을 할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테러가 있기를 기도해. 오늘 만찬이 조용하게 마무리되면 당신만으로 끝나지 않고 가족 모두 불에 타 죽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왜 그렇게 냉정하고, 또 왜 그렇게까지 잔인한 거요?”

또다시 악에 받친 질문이 강렬한 눈빛과 함께 강성태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지키는 동안, 절대 앞에서 얼쩡거리지 마. 그게 누구든, 어떤 조직이든, 지옥에 함께 굴러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나는 경호대상을 지켜낼 거니까. 뭘 보고 잔인하다고 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어.”

강성태의 눈을 본 로페즈 니에토가 무언가 말하려던 걸 꿀꺽 삼켰다.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쉰 강성태는 고개를 앞으로 돌리고 주방을 빠져나왔다.

두 가지는 확인했다.

이어서 강성태가 시선을 돌리자 이번에는 아르윈이 빠르게 다가왔다.

“히트맨들을 모두 배치했습니다.”

“키란은?”

“말씀하신 대로 조명 설치물 위에 있습니다.”

대답 끝에서 아르윈이 시선으로 위를 가리켰다.

만찬장과 앞쪽의 단상을 위해 설치한 조명을 매단 천장의 에이치빔 위에 키란이 있었다.

이로써 네 가지 확인이 끝났다.

보고를 마친 아르윈이 주방으로 움직이자 이번에는 존 보스만이 다가왔다.

그는 오늘의 계획을 모두 알았고, 강성태와 곤잘레스 이두안이 왜 이런 무식한 방법을 택했는지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총격이 있을지 모를 상황을 앞둔 경호원이란 현실이 그의 눈에 독기와 긴장을 있는 대로 욱여넣은 느낌이었다.

“경호상태 확인했습니다.”

강성태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렇게 대비했는데 멕시코 정부와 중국 정부의 협상에 의해 섭충명이 고개를 조아렸다면 만찬은 평화롭게 막을 내린다.

섭충명이 얌전하게 말을 듣는다고?

그는 훈련받은 군인이 아니라 잔인한 성품과 기질 덕분에 삼합회의 부산주가 된 인물이었다.

아사키 회장의 머리통을 날려버린 현장에서 멀쩡하게 살아나왔고, 이전에 홍콩에서의 실수가 있어서 그는 오늘 테러를 저질러도 죽고, 가만히 숨죽이고 있어도 어차피 조직의 징계로 목숨을 잃을 처지였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사람은 원한을 품은 상대와 함께 죽는 쪽을 택한다.

거기에 약까지 올려놓았으니 피리 소리는커녕, 바구니를 손으로 눌러도 머리를 쳐드는 코브라처럼 독이 바싹 오른 상태였다.

온다, 섭충명은.

남은 문제는 하나, 그가 과연 어떤 식으로 테러를 감행할까 하는 점이었다.

그가 입구를 통해 권총을 난사하며 달려든다고만 생각한다면 강성태는 완벽하게 자격 미달이었다.

막말로 강성태도 저격용 소총부터 권총, 칼을 구하는 마당인데 섭충명에게는 자기 집 앞마당과 같은 마카오였다. 그러니 그는 더한 것도 구할 수 있다고 봐야 했다.

위험한 점은 또 있었다.

어쩌면 지금 만찬이 열리는 시티 오브 드림 마카오의 중국인 직원 중 누가 섭충명의 지시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막말로 강성태가 사용했던 독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어느 나라를 가든, 주방 지휘만큼은 곤잘레스 회장이 데려온 요리사에게 맡기는 이유도 바로 앞에 설명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준비는 끝났다.

와라, 섭충명.

네가 거칠게 날뛸수록 멕시코 신도시 건설에서 삼합회와 동남아시아 폭력조직, 가페를 밀쳐낼 수 있다.

존 보스만을 확인한 강성태는 셔츠 깃에 걸어두었던 이어셋을 귀에 걸었다.

과거 멕시코에서 경호원으로 활약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

섭충명은 숨을 크게 마신 뒤에 시계를 보았다.

만찬을 10분 앞둔 시간이었다.

그는 커다란 테이블 주변에 서 있는 그의 새끼 열 명을 불타는 듯 뜨거운 눈으로 보았고, 이어서 앞에 두었던 사발을 움켜쥐었다.

“비록 이 잔이 우리가 나누는 마지막 술이 되겠지만, 이 안에 담은 의리와 정신만큼은 삼합회의 이름과 함께 오래도록 남을 거다.”

거창한 각오를 뱉어낸 섭충명이 시선을 쭉 흘린 뒤에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독한 술이었다.

양도 많았다.

벌컥벌컥, 붓다시피 술을 넘긴 그가 팔뚝으로 입가를 닦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그를 지켜보던 열 명의 새끼들도 모두 거침없이 술을 넘기고는 악에 받친 표정으로 역시나 잔을 내려놓았다.

작전은 단순했다.

저쪽이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가정하고, 네 명은 입구로 뛰어들어 앞을 뚫는다. 그들이 권총을 난사하며 시간을 버는 사이, 섭충명과 나머지 인원은 호텔의 다른 통로를 이용해 만찬장으로 뛰어든다.

섭충명은 각오를 다지는 듯 오른손을 들어 가슴을 퍽퍽 소리가 나도록 두들겼다. 그와 다른 세 명은 만찬장의 절반을 단숨에 날려버릴 정도의 다이너마이트를 몸에 감고 있었다.

두고 보자, 강성태.

무슨 수를 쓰든 만찬장에 뛰어들어 곤잘레스 이두안을 끌어안으면 끝난다.

그를 빼내기 위해 강성태가 막아선다고 해도 억울할 일 없고, 오히려 감사할 판이었다. 당황하는 강성태의 눈을 보며 최후를 맞이할 테니 말이다.

더구나 다이너마이트를 몸에 감은 새끼들이 셋이나 더 있다. 섭충명이 강성태를 끌어안고 최후를 맞이하는 사이, 그들 중 한 명이 곤잘레스 이두안과 자폭할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혹여라도 일이 꼬였다고 쳐도, 곤잘레스 이두안이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면, 절반은 성공한 일이었다. 그 핑계로 공사를 중국 정부와 보리스 파리오가 가져올 수만 있다면 섭충명은 더 바라는 것 없다.

그가 마신 술만큼이나 독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시체만큼은 삼합회의 손에 넘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깔려 있었다.

“저게 섭충명이라네.”

뇌, 눈알, 볼의 근육부터 내장, 성기까지 모두 드러내놓고 사람들 앞에서 손가락질을 받느니 차라리 뜻을 이루고 깔끔하게 사라지는 게 지금으로선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다.

막말로 아무리 섭충명이 곤잘레스 이두안과 자폭해 공사를 중국 정부에 넘긴다고 해도, 삼합회 두목이자 산주는 자신의 지시를 어기고, 테러를 감행했다는 이유로 섭충명의 거죽을 벗길 사람이었다.

“통로는?”

“확보해 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기를 확인해.”

그가 말을 할 때마다 코앞으로 다가온 죽음처럼 술의 열기와 독한 냄새가 숨결을 타고 넘어와 여운을 남겼다.

“다들 고맙다. 다음 생에는 좀 더 좋은 곳에서 보자.”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비장한 대화를 나눈 섭충명이 볼을 씰룩였다. 그리고는 몸을 틀어 걸음을 옮겼다.

**

만찬장에 속속 멕시코 신도시 건설 사업의 파트너들이 도착했다.

원래대로라면 이번 만찬은 멕시코 신도시 건설 공사의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쇼가 되어야 했다. 한마디로 축제여야 할 만찬이 보리스 파리오와 중국 정부의 탐욕에 의해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순간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미 곤잘레스 회장을 방문했던 파트너들이 그나마 조금씩 일찍 도착했고, 중국 정부의 유혹에 흔들린 이들은 그보다 뒤에 만찬장으로 들어섰다.

아무리 중국 정부와 보리스 파리오가 유혹한다고 해도 오늘 만찬의 주최자가 곤잘레스 이두안으로 정해진 것처럼 특별한 일이 없다면 공사는 예정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도착한 이들이 정해진 자리에 앉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와인이나 샴페인을 즐기느라 만찬장 안에 웅성대는 소란이 피어났다.

잠시 뒤였다.

마침내 보리스 파리오가 만찬장 입구로 들어섰다.

기름을 발라 넘긴 머리, 반질거리는 얼굴, 나비넥타이, 고급스러운 셔츠, 검은 정장의 그가 만찬장에 들어서자 먼저 도착해 있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입구로 달려갔다.

강성태는 곤잘레스 이두안이 등장할 입구 앞에서 양손을 앞으로 잡은 채 보리스 파리오를 눈에 담았다.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이번 사업을 놓치면 그의 수준에서 빈털터리가 되어 다시는 이런 자리에 등장하지 못한다는 절박함이 번지르르한 그의 얼굴 아래에 진하게 깔려 있었다.

곤잘레스 이두안에 비해 부족하지 않았던 보리스 파리오, 무엇이 저 사람을 저토록 절박하게 만들었을까?

여기까지.

그건 보리스 파리오의 인생에 관한 문제이고, 지금은 만찬장과 곤잘레스 이두안의 안전에 신경 써야 할 때였다.

강성태는 셔츠 깃에 걸어둔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주방부터 상황 보고해.”

- 주방 이상 없습니다.

“주차장?”

- 주차장 이상 없습니다.

“입구와 통로?”

- 양쪽 모두 침입자나 수상한 사람 없습니다.

이를 굳게 다문 강성태는 시선을 돌려 만찬장 안을 둘러보았다.

환풍구가 의심스러워 나사가 단단하게 조여 있는지까지 확인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조명 시설 위쪽에 키란을 올려두었다.

입구에서부터 주차장, 주방 뒤쪽 통로에 필리핀 히트맨들을 배치해서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무식한 침입에도 대비했다.

어디냐, 섭충명?

강성태가 감당하는 긴장을 외면하는 것처럼 진행을 맡은 남녀 한 쌍이 깔끔한 정장과 드레스 차림으로 만찬장 중앙 앞쪽에 놓인 작은 단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강성태는 천천히 시선을 흘렸다.

바로 옆, 곤잘레스 회장이 등장할 입구에 이병렬과 유섭우가 서 있었고, 필리핀 조직원들이 호텔 직원 복장으로 와인 잔과 물을 서빙하고 있었으며, 신강남파 식구들이 벽을 타듯이 서서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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