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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1권 - 19화 (432/513)

《432》2부 21권 - 19화

통화를 마친 아르윈은 다부진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지금부터 우리가 움직이는 동선을 저쪽은 파악하지 못합니다, 형님.”

“그래? 그럼 시작해.”

이병렬의 답이자, 대꾸요, 지시는 짧았다.

고개를 숙인 아르윈이 앞섰고, 필리핀 조직원 두 명이 뒤따랐으며, 이병렬과 덩치 다섯 명이 마지막으로 방을 나섰다.

아르윈은 주저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이리로 가면 내리는 순간 저놈들이 볼 거 아냐?”

“지하로 내려갈 겁니다, 형님.”

이병렬의 질문에 답을 하는 것과 동시에 아르윈은 ‘B1’ 버튼을 눌렀다.

“지하 1층은 뭔데?”

“상가와 식당가가 있습니다.”

질문은 여기까지였다.

나머지는 닥쳐서 궁금한 게 생기면 해결한다.

‘준비해.’

이병렬은 독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때앵.

지하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르윈은 재빠르게 바로 옆에 있는 계단으로 들어섰다.

물어볼 이유 없었다.

일단 따르기로 했었고.

필리핀 조직원 둘의 뒤를 따라 이병렬과 덩치들이 계단에 들어간 직후였다.

“이쪽에도 베트남 출신 호텔 직원들이 있습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지켜보고 있었을 테니까, 아마 계단으로 내려올 겁니다.”

그런가?

아니면 어떻게 하려고?

이병렬이 의심 담은 눈빛으로 위를 보았을 때였다.

끼이익.

계단 위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급한 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아르윈이 이병렬을 돌아보았다.

‘준비하십시오!’

‘알았다.’

이병렬과 덩치들이 품에서 강철로 만든 칼을 뽑아낸 직후였다.

계단을 급히 달려온 베트남 조직원들이 180도를 돌아서 이병렬과 덩치들이 기다리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휘익.

이병렬이 앞섰고, 덩치들이 뒤따랐다.

“어?”

놀란 소리를 냈던 베트남 조직원들이 귀신을 본 것처럼 멍했다가 퍼뜩 품에 손을 넣는 순간이었다.

훌쩍, 계단을 뛰어오른 이병렬이 가장 앞선 놈의 가슴에 칼을 쑤셔 넣으며 왼손으로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끄윽. 끅.”

죽음을 직면한 인간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억세기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이병렬의 손바닥을 물어뜯기 위해 베트남 조직원은 광견병 걸린 개처럼 입을 이리저리 뒤틀었고, 양손으로 이병렬의 목을 움켜쥐기 위해 버둥거렸다.

“이, 개새끼야! 그러게 왜 우리 보스를 건드려?”

콰득. 콰드득.

날만 옆으로 비틀어도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 힘이 빠진다. 그런데도 이병렬은 가슴에 꽂아 넣은 칼을 아래로 힘껏 눌러 내렸다.

“끄으윽. 끄윽. 끄으아아아.”

고통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던 베트남 조직원이 경련을 일으키며 축 늘어졌다.

“뭐 해, 이 새끼야?”

소리를 지르지 않았지만, 이병렬은 완벽하게 제압하지 못한 옆의 덩치를 도와 악착같이 버티는 다른 베트남 조직원의 옆구리에 제대로 칼을 쑤셔 넣었다.

푸욱. 푹.

심장을 옆에서 찔린 베트남 조직원이 신강남파 덩치의 얼굴을 밀어대던 손을 떨구고는 벽을 타고 길게 늘어졌다.

1분도 되지 않아서 상황이 끝났다.

“아르윈. 이것들 어떻게 하지?”

이병렬이 질문을 던졌는데 아르윈은 대답 대신 아래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지하 1층의 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청소부 복장의 필리핀 직원들이었다. 또, 아르윈과 함께 따라왔던 조직원 둘은 허리춤에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꺼내 능숙하게 베트남 조직원들의 시체를 담았다.

“형님?”

게다가 아르윈은 청소부들이 들고 온 점퍼 여섯 벌을 이병렬과 덩치들에게 건넸다.

‘뭐가 이렇게 쉬워?’

피가 흠뻑 튄 재킷을 벗은 이병렬이 점퍼로 갈아입었을 때, 청소기로 피를 빨아들인 필리핀 직원들이 독한 약품 냄새를 풍기는 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었다.

**

필리핀 히트맨들은 렌트카와 오토바이를 타고 중급 호텔 앞에 도착했다. 호텔이라고 해도 싼 가격에 오래 머물기 좋은 곳으로, 꼭 한국의 모텔 수준이었다.

대화 따위 없었다.

승용차와 오토바이에서 내린 히트맨들은 시선을 마주한 뒤에 당당하게 소음기 달린 권총을 꺼냈다.

앞에 선 조직원이 고개로 안을 가리킨 다음이었다.

콰앙.

문을 차다시피 밀고 들어간 히트맨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한 팀은 식당, 나머지 팀은 계단을 타고 위로 달렸다.

철컥.

로비에 남은 히트맨 한 명이 권총을 겨누자 카운터에 있던 중국인 매니저와 직원이 얼른 양손을 위로 들고 눈치만 살폈다.

“헤이? CCTV?”

권총을 이마 바로 앞으로 들이댄 히트맨의 요구를 알아챈 매니저가 손을 카운터 밑으로 내리는 순간이었다.

철컥.

필리핀 조직원이 권총의 총구를 이마에 대고 밀자, 움찔한 매니저가 놀라 뒤로 밀려났다.

그 직후였다.

타응. 타앙. 타으응.

식당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이어서 위층에서도 연달아 소음기에 억눌린 권총 소리가 계단을 타고 아래로 달려왔다.

콰아앙!

문을 발로 차서 여는 소리, 단발적인 비명, 탁자나 의자 따위의 집기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총소리와 함께 1분쯤 울린 다음이었다.

소란보다 더 두렵게 느껴지는 침묵이 흐르고, 그 직후에 위로 올라갔던 히트맨들과 식당에 뛰어들었던 히트맨들이 입구로 나왔다.

훌쩍, 카운터를 지키던 히트맨이 안으로 들어가 CCTV 녹화기를 손으로 잡고 힘껏 잡아챘다.

“Let’s go!”

들어선 지 대략 1분 30초 만에 중급 호텔은 피와 총알 자국, 화약 냄새, 베트남 조직원들의 시체가 가득한 현장으로 바뀌었다.

**

태국 조직의 마카오 지역 우두머리는 근육질 상체에 붉고 파란 색이 가득한 문신을 새긴 무에타이 고수였다.

태국 여성들을 이용한 성매매와 고리로 노름자금을 빌려주던 그는 평소 습관대로 타이 마사지 가게의 별실에 누워 조직원들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은 몰라도 밤에는 뭔가 일이 있을 거라 짐작했다. 게다가 강성태 일행에게 감시마저 붙여두었으니 당장 긴장할 염려는 없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그가 팔뚝에 새겨놓은 코끼리 문신을 손으로 비빈 후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타응! 타응! 타응!

무언가에 억눌린 총소리가 닫힌 문을 뚫고 그의 방으로 달려들었다.

“젠장!”

오늘따라 권총을 재킷에 두었다.

툭 불거진 광대뼈에 분노를 담은 그가 벽에 걸어둔 재킷을 잡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오토바이 헬멧을 눌러쓴 히트맨 셋이 불쑥 뛰어들었다.

타응! 타응! 타응! 타응!

세 명은 권총의 탄창이 빌 때까지 방아쇠를 멈추지 않았다. 그 바람에 재킷을 부여잡은 채 옷걸이와 함께 바닥에 널브러진 태국 싸만코차호타이파의 마카오 지역 우두머리는 그야말로 머리에서 허벅지까지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채 피를 뿜어냈다.

**

유섭우는 사실 조금 오래 기다렸다.

이러다가 지하로 안 내려오면 어떻게 하나 싶을 정도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지하 주차장을 먼저 살폈던 태국 조직원들은 오히려 아래쪽에서 위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위를 노려보며 기다리던 참이었다.

아래쪽에서 올라오던 놈들이 놀란 눈으로 유섭우 일행과 손에 든 칼을 번갈아 바라보았고, 급하게 아래로 튀었다.

“씨발.”

서너 칸의 계단을 한꺼번에 튀어 내려간 유섭우는 난간을 타고 뛰어넘는 동작으로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튀는 태국 조직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와락. 푹!

위에서 덮치는 순간, 머리를 잡은 놈의 목을 깊게 찔렀고,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함께 넘어진 또 다른 놈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다.

기습을 당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태국의 조직원이었다.

퍼윽!

한 놈이 유섭우의 머리를 세게 걷어찼는데,

와락! 푹! 푸욱! 푹푹!

뒤따라 달려온 신강남파 덩치들과 필리핀 조직원들이 휘두른 칼에 걷어찬 놈과 도주하던 놈들 모두 피범벅이 돼서 널브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모두 잡았다.

불행한 건 이놈 저놈, 여기저기, 계단을 따라 길게 널브러졌다는 점이었다.

“아후, 이 개새끼.”

턱을 어루만지는 유섭우의 손은 말할 것 없고, 상체가 온통 피투성이였다.

“뒤처리는?”

“바로 부르겠습니다.”

허리에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꺼낸 필리핀 조직원이 위를 향해 뭐라고 소리치자, 지하 1층 입구에서 청소직원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

뷔페는 만족스러웠다.

평일답게 손님도 적당했고, 음식은 수준 있었으며, 잔잔하게 깔리는 클래식 음악도 나쁘지 않았다.

단 한 가지, 빌어먹을 오렌지색으로 물든 벽과 바닥, 식탁보만 아니라면 정말이지 흠잡을 게 없는 아침 식사였다.

강성태와 키란이 여유롭게 아침을 즐기는 반면, 모닝빵을 반으로 잘라 그 안에 햄과 연어, 샐러드를 넣어서 간단한 햄버거를 만든 은선곤은 먹는 내내 긴장과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쯤 함께 비행기를 타고 왔던 신강남파 덩치들이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싸우고 있을 테고, 그건 또 누군가는 죽어 나간다는 의미였다.

연어와 훈제 햄으로 만든 햄버거가 목에 걸리는 사람처럼, 간단하게 만든 햄버거를 먹으면서 은선곤은 연신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30분쯤 지났을 때였다.

식사를 마친 강성태가 커피를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그리고, 그 직후에 테이블 한쪽에 올려둔 스마트폰이 울었다.

화들짝 놀라는 은선곤을 본 강성태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집었다.

“여보세요?”

- 작업 끝내고 뒤처리까지 확인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베트남 하노이파 우두머리가 스마트폰을 둔 곳에 없어서 해결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 목표했던 놈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형님.

“우리 쪽 부상은?”

- 유섭우가 얼굴을 발로 맞은 거 말고는 다친 사람은 없습니다.

“섭우가 많이 다쳤어?”

- 입술에서 피가 난 게 전부입니다.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고생들 했다고 전하고, 조직원들과 우리 식구들 모두 아침 식사하게 해.”

- 예, 형님.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마지막 아르윈의 답은 멈칫한 뒤에 나왔다.

그가 삼킨 질문이 이렇게 일을 벌였는데 식당에 가면 위험하지 않겠냐는 염려라는 것쯤 강성태도 충분히 짐작했다.

먼저 그런 의문을 지니고도 강성태에게 분명 계산이 있으리라 믿어준 게 고마웠고, 다음으로 무사하게 작업을 마쳤다는 점이 반가웠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강성태는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키란과 은선곤을 향해 영어로 말을 건넸다.

“깔끔하게 끝났단다. 섭우가 얼굴을 얻어맞은 게 전부인데 크게 다치지 않은 거라 걱정할 정도도 아니라고 하고.”

씨익 웃는 키란과 달리 은선곤은 위장약 광고의 모델처럼 가슴에 손을 얹고 긴 숨을 토해냈다.

“죄송합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멕시코에 가봤어?”

“여행으로 두 번 방문했었습니다.”

변명처럼 내놓은 은선곤의 답을 들은 강성태는 먼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관광객이면 끽해야 소매치기나 절도범을 본 게 전부일 텐데, 시에라마드레 산맥 근처로 가면 사람을 산 채로 태우는 것부터, 기관총으로 난사한 너덜너덜해진 시체, 목이나 팔다리를 자르고 배를 갈라놓은 시체들을 한 달에 한두 번은 보게 돼.”

“끼윽.”

딸꾹질을 억지로 참던 은선곤이 해괴한 소리를 내며 마른침을 삼켰다.

음식을 먹지 않았다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하필 생연어를 먹은 탓에 입에서 비린내가 돌고, 그게 그의 약한 비위를 더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지금껏 시에라마드레 산맥 주변에서는 마약 카르텔이 법이고, 검사고, 판사고, 집행관이었으니까. 그건 은선곤 너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만든 질서를 무시한다고 여기면 바로 공사 책임자인 너를 노리겠지.”

토하지 않는 게 용하다 싶을 정도로 은선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번 싸움에서 저쪽을 이렇게 잔인하게 처리하는 이유는 회의장에서 얼마든지 권총을 난사할 놈들이라서다. 동남아시아를 필리핀 가디언스파가 어느 정도 움켜쥐지 못한다면 멕시코 카르텔을 상대하는 한편으로 계속 이런 식의 싸움도 해야 하거든.”

강성태의 말에 말려든 것처럼 은선곤이 특유의 반짝이는 눈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멕시코에서 은선곤을 노린다는 정보를 얻게 되면 나는 또 지금과 비슷한, 어쩌면 더한 짓도 할 거다. 그래야 내 사람인 은선곤을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적응해. 그러는 게 좋아. 만약 마카오에서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겠다면….”

“적응하겠습니다, 회장님.”

강성태가 빤히 바라보는 앞에서 은선곤은 이전과 다른 느낌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지난번 홍콩에서의 충격이 얼떨결에 지나간 만큼, 이번에는 출발할 때부터 필요 이상으로 잔인한 장면을 상상했었나 봅니다. 제가 선택한 길입니다. 반드시 적응해서 더는 염려 끼치지 않겠습니다, 회장님.”

그래 주면 좋고.

강성태는 분명한 눈짓과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시간은 조금 주십시오.”

그리고, 이어진 은선곤의 솔직한 요청에 바람 빠지는 사람처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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