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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1권 - 18화 (431/513)

《431》2부 21권 - 18화

제7장. 피로 흠뻑 물든 소식을 기다리며.

윈팰리스 마카오, 그랜드 하얏트 마카오, 시티 오브 드림즈는 마카오 시내를 대각으로 그어놓은 선 위에 순서대로 올려놓은 것처럼 자리했다.

윈팰리스 마카오 호텔에 도착한 강성태와 은선곤은 곧장 리셉션으로 움직여 예약한 객실을 배정받았다.

짐이라고 해야 보스턴백 정도여서 벨보이를 부를 것도 없었다. 그러나 당장 스위트룸 세 개를 닷새, 그리고 혹시 곤잘레스 이두안이 머물지 모를 특실까지 예약한 터라 매니저가 직접 객실까지 안내했다.

태연하게 매니저를 따라 걸었지만, 강성태는 빠르게 로비와 입구, 그리고 엘리베이터 주변을 살폈다.

‘멍청한 놈들.’

우리 감시 중이에요, 차라리 이마에 써 붙이고 있는 게 인간적이지 싶을 정도로 베트남, 태국, 일본, 중국의 조직원들이 곳곳에 몸을 숨긴 채 강성태와 은선곤을 지켜보고 있었다.

죽겠을 거다.

지금이라도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기면 강성태를 죽일 수 있는데 새벽부터 지켜보기만 하려니 말이다.

마카오는 삼합회의 세상이었다.

회의장에 들어서는 곤잘레스 이두안을 권총으로 난사하는 건 베트남과 태국 조직원들이 덮어쓰는 거로 충분히 감당할 일이고, 뒤처리 또한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장소였다.

핑계도 죽여준다.

공사에 노동자를 투입하고 싶은 조직의 테러라는 명분이 있었고, 다음으로 손가락질을 받기는 하겠지만, 곤잘레스 이두안을 제거한 대신 공사를 뺏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강성태에게 권총을 난사하면?

휴양 도시이자 동양 최대 카지노의 성지에서 폭력 조직의 총질로 사상자가 발생한다면, 곤잘레스 이두안이 회의 장소를 변경하자며 요구할 수 있었고, 마카오의 치안에 의문점이 남아 애꿎은 관광객만 쫓아내는 꼴이 된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매니저가 9층의 버튼을 눌렀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해, 곤잘레스 회장이 윈팰리스 마카오에 투숙하게 된다면, 비즈니스 센터와 연회장 사용을 최대한 배려하겠다는 등의 영업 멘트를 들으며 객실에 도착했다.

“후-.”

열어놓은 거실 창을 통해 마카오를 내려다보며 강성태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어떤 인간이 호텔을 설계하고 꾸몄는지 모르지만, 온통 오렌지색으로 도배된 로비, 엘리베이터, 복도를 거쳐, 역시나 같은 색으로 구성된 객실에 들어서자 심장이 빠르게 뛰는 느낌이었다.

방을 돌아본 강성태는 픽 웃으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오렌지색은 각성 효과가 있어서 밤에도 쉽게 잠이 들지 못한다. 잠들지 못한 관광객들이 찾을 건 술과 도박이 전부인 마카오에 어울리는 장식이었다.

그 외에도 마카오는 호텔마다 밤 8시에서 10시까지 집중적으로 이벤트와 공연, 분수 쇼를 준비하는데 그 또한 흥분 상태로 만들어서 쉽게 잠들지 못하게 하는 효과 때문이었다.

그건 관광객에게 해당하는 거고.

번호를 누른 강성태가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잠시 기다린 다음이었다.

- 도착했나, 미스터 강?

바르지오 만시니의 질문이 건너왔다.

“이제 막 호텔에 들어왔다. 부탁했던 내용은?”

- 바로 문자로 보내주지. 마카오가 한 시간 늦은 걸 계산하면 요란한 아침이 되겠군.

“끝나고 연락하자.”

통화를 마친 강성태가 스마트폰을 내릴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스마트폰과 함께 객실의 벨이 차분하게 울렸다.

은선곤을 향해 고개를 저은 강성태는 문에서 비켜서란 투로 고개를 저은 뒤에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 아르윈입니다, 형님. 제가 지금 벨을 눌렀습니다.

벨을 누른 사람을 확인한 강성태는 바로 문을 열어주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강성태를 향해 인사한 아르윈이 은선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의 뒤에서 하드 케이스를 두 개 들고 들어선 키란이 비슷하게 인사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준비는?”

“말씀하신 대로 모두 배치했습니다. 권총과 저격용 소총은 키란이 확인해서 가져왔습니다.”

아르윈이 답을 내놓은 직후였다.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강성태의 스마트폰으로 여러 개의 문자가 연달아 들어왔다.

“일단 앉자.”

한쪽에 있는 탁자로 움직인 강성태는 문자를 확인한 뒤에 아르윈의 번호로 전송해 주었다.

“거기 녹색으로 찍혀 있는 점들이 태국과 베트남 조직원들의 위치다. 문자를 받을 당시의 장소와 위치를 기록한 거니까 다른 움직임이 없다면 아침 식사 전에 해결했으면 싶다.”

“여기 보이는 점들은 호텔 같습니다.”

강성태와 아르윈이 사진을 확대해가며 위치를 확인할 때였다.

“회장님. 제 태블릿을 이용하면 좀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은선곤이 도움 되는 제안을 내놓았다.

그가 말한 번호로 문자를 보내자 곧바로 태블릿에 똑같은 사진이 올라왔다.

“형님. 이놈들이 있는 장소가 모두 호텔입니다. 숫자로 봐서 다섯 명씩 조를 짜서 오늘 들어온 신강남파 조직을 감시하는 모양입니다. 여기 윈팰리스에는 모두…, 열두 명입니다.”

점들을 확인한 아르윈이 사진을 보고 분석한 내용을 전해주었다.

“저쪽도, 우리도 어차피 정보를 얻어가며 싸우는 거니까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강성태는 바로 바르지오 만시니에게 전화를 넣었다.

- 헬로, 미스터 강? 현재 위치는 특별하게 다르지 않은데? 문제가 있나?

“그게 아니라 저쪽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전화했다. 그걸 20분만 막아줄 수 있을까?”

- 어느 선까지?

“오늘 도착한 우리 일행과 아르윈이 데려온 조직원까지.”

- 잠시만.

스마트폰을 든 강성태가 다시 보아서 반가운 키란을 향해 짧게 웃고 난 다음이었다.

- 시간을 정해줘.

바르지오 만시니의 경쾌한 답이 있었다.

“그러지 말고 내가 전화하는 순간부터 20분 정도 가능할까?”

- 문제없어. 자네가 내게 전화하고 30초 뒤부터 우리 쪽 GPS 수신을 삭제할 거야. 대신 20분씩 삭제하면 통신사에서 자동으로 사고 처리할 수 있어서 15분이 맥시멈이다, 미스터 강.

“15분. 그렇게 알고 부탁하자.”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아르윈을 향해 태블릿을 밀었다.

“들었지? 내가 전화하고 15분 동안 우리 동선을 저쪽에서 확인하지 못한다. 작전을 바꿔. 오늘 나와 함께 들어온 신강남파가 안내원과 함께 감시하는 놈들을 처리하고.”

“예, 형님.”

“대기하는 놈들은 필리핀에서 온 히트맨들이 해결하는 거로 하자. 가능하겠어?”

“문제없습니다. 아침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살벌한 질문과 대답 끝에서 나오기에는 너무도 태연한 질문을 아르윈이 마지막에 달았다.

“여기 키란, 은선곤과 함께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즐길까 하는데?”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되면 바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저기, 형님. 이 사진을 안내하는 조직원들에게 넘겨줘도 되겠습니까?”

“판단해서 필요하다고 여기면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형님. 대략 30분이면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답을 한 아르윈이 몸을 세웠다.

“아르윈. 지금 벌이는 싸움은 완벽한 경고이고, 저쪽을 다급하게 만들려는 의도다. 목숨 걸고 달려들 일이 아냐. 또, 하나.”

아르윈을 불러세운 강성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 일을 통해 마카오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멕시코에서 가디언스파의 힘을 키우려는 목적도 있다. 우리와 함께 하는 조직이란 이미지를 심을 생각이니까 이곳에서 무리해서 조직이 망가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최대한 주의하겠습니다, 형님.”

사명감 가득한 눈빛으로 고개 숙인 아르윈이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문 앞까지 아르윈을 배웅한 키란이 강성태에게 다가왔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물도 함부로 마시지 못하는데 어떻게 커피를 마셔?”

“아르윈 형님이 물부터 커피, 포트, 잔까지 준비해왔습니다.”

재미있다는 투로 웃은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은선곤? 커피 한잔 마시고 아침 먹으러 갈 테니까 그렇게 준비해.”

“예, 회장님.”

한쪽에서 옷걸이에 정장을 걸어놓은 은선곤이 빠르게 답을 내놓았다.

**

그랜드 하얏트에 투숙한 이병렬은 셔츠에 정장을 입은 채 거실 창 옆의 탁자에 앉았다.

“마카오, 좋네. 씨발.”

그다운 감상을 내놓으며 히죽 웃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확실하게 독기가 올라와 있었다.

평소의 강성태라면 말이지, 이런 일에 절대 이병렬을 혼자 움직이게 두지 않는다.

가장 앞에서 누구보다 거칠고 무섭게 적을 상대하면 했지, 네가 알아서 해, 라는 말로 일을 떠넘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강성태가 이번 일만큼은 조를 짜서 하나씩 일을 맡겼다.

그것도 상대방 조직원을 제거하는 일을.

틀림없이 어느 정도 선에서 안전을 담보해놓았을 거다.

이병렬이 냉정하게 앉아 있는 바람에 함께 있는 덩치들은 감히 앉지도 못하고 거실에 쭉 늘어서 있었다.

“멕시코를 대비한 훈련이겠지?”

“예? 형님?”

뒤에 있던 덩치가 무슨 말인가 해서 반문했을 때였다.

딩동댕동.

고급스러운 벨이 방을 울렸다.

“열지 마. 문 한쪽으로 비키고.”

고개를 돌린 이병렬이 짧게 지시하고는 천천히 몸을 세웠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놈이 있어야지, 원.

아쉬운 놈이 떠들겠지.

이병렬이 문을 노려본 직후였다.

“아르윈입니다, 형님.”

바깥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이병렬은 그제야 확인해 보라는 투로 눈짓을 던졌다.

문으로 다가간 덩치가 구부정하게 상체를 숙이고 렌즈로 바깥을 확인했다.

“아르윈 형님 맞습니다, 형님.”

이병렬이 고개를 끄덕이자 덩치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아르윈은 방지병원에서 낯이 익은 필리핀 조직원 두 명과 함께 들어왔다. 두 명 모두 보스턴백을 들었는데 내용물이 묵직한지 가방의 중간이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가방 하나에서는 권총과 칼, 다른 가방에서는 커피를 끓일 포트와 물, 커피, 종이컵, 마지막에는 일회용 젓가락과 함께 컵라면이 나왔다.

“이걸 잠깐 보십시오, 형님.”

그런 뒤에 아르윈은 사진을 보여주었고, 그걸 이병렬의 스마트폰으로 옮겨주었다.

“이 호텔에서 감시하는 베트남 조직원들의 위치입니다. 여기 제 동생들이 안내하면 이놈들을 제거하라는 성태 형님의 지시입니다.”

“다섯 놈이 전부야? 더 많다고 들었는데?”

“저쪽에서 우리 정보를 알아보고 있어서 계획을 바꾸셨습니다. 바깥 숙소에 있는 베트남과 태국 조직은 필리핀에서 넘어온 히트맨들이 해결할 겁니다, 형님.”

“뒤처리는?”

“여기 제 동생들이 호텔 종업원과 함께 해결합니다, 형님.”

이병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보스턴백에서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은 칼을 집어 들었다.

“참, 형님. 아침은 일 마치시고 호텔에서 준비한 조식을 드시면 됩니다.”

“좋네.”

메뉴가 좋다는 건지, 집어 든 칼이 마음에 든다는 건지는 몰라도 대꾸를 내놓은 이병렬의 표정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

왼쪽 발목에 칼, 오른쪽 발목에 권총, 허리에 권총, 그리고 등 쪽에 쿠크리를 건 강성태는, 비슷하게 무기를 매단 키란과 함께 몸을 세웠다.

“식사하러 가지?”

“예? 예, 회장님.”

최선을 다해 적응하려고 하지만, 사람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건가.

태연한 척 강성태를 따라나서는 은선곤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두 종류였다.

저렇게 긴장한 모습을 보이다가 어느 순간 적응해서 비록 손가락은 떨더라도 표정만큼은 태연하게 그려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내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해 이런 순간을 아예 견디지 못하는 사람.

당장 은선곤이 어떤 부류일지는 모르지만, 강성태는 그가 전자이길 바랐다.

문을 나설 차례였다.

인디언도 아닌데 문에 귀를 대고 숨을 죽이던 키란이 씨익 웃으며 상체를 세웠다.

저런 방법을 믿는다고?

달칵.

키란이 연 문을 통해 강성태가 나서자 공포의 집에서 부모를 따르는 아이처럼 은선곤이 급하게 따라붙었다.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를 향해 움직였으며, 버튼을 눌렀다.

강성태는 엘리베이터를, 키란은 이쪽으로 향하는 복도를 바라보는 자세였는데 은선곤은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얼굴이었다.

이 이상 완벽한 경계가 없다는 점을 말이다.

딩동댕.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강성태는 내리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처럼 옆으로 비켜섰다.

텅 빈 엘리베이터를 확인한 강성태가 먼저, 이어서 은선곤, 마지막으로 키란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만에 하나, 식당이 있는 2층에 도착하기 전에 중간에서 멈추면 키란의 움직임이 달라진다.

강성태가 숫자를 바라볼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아르윈입니다. 모두 준비 끝났습니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문이 열릴 때 먼저 내리려는 듯한 동작으로 은선곤의 앞을 슬며시 막았다.

딩동댕.

문이 열리며 정면 오른쪽으로 호텔에서 준비한 조식 뷔페의 입구가 보였다.

은선곤이 앞으로 다가가 객실 번호와 인원을 확인하는 동안, 강성태는 바르지오의 번호를 눌렀다.

- 예쓰, 미스터 강.

“지금부터 15분 부탁한다.”

- 갓 잇.

통화는 짧게 끝났다.

강성태는 다시 아르윈의 번호를 눌렀다.

- 아르윈입니다, 형님.

“1분 뒤에 시작해.”

- 끝나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형님.

답을 들은 강성태는 옅게 웃으며 은선곤 앞으로 움직였다.

“This way, Sir.”

스위트룸에 묵는 투숙객이라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식당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강성태 일행을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온통 오렌지색으로 도배된 뷔페식당을 돌아보며 강성태는 느긋한 자세로 안내받은 테이블에 앉았다.

피로 흠뻑 물든 소식을 기다리며 즐기는 아침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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