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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1권 - 13화 (426/513)

《426》2부 21권 - 13화

바르지오의 객실을 나선 강성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곤잘레스가 머무는 층으로 올라갔다.

현재 곤잘레스의 경호 상황을 가장 확실하게 짐작하는 첫 번째는 복도에 얼마나 많은 숫자의 경호원이 배치돼 있느냐였다.

엘리베이터 앞은 비었고, 문 앞에 두 명, 경계는 하고 있지만, 아직 위급한 단계는 아니라는 증명이었다.

“잠시 검색하겠습니다.”

탐지봉을 이용해 강성태를 검색한 경호원이 벨을 눌러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미스터 강.”

문을 열어 강성태를 맞아들인 존 보스만이 곤잘레스 회장의 집무실 방향을 바라보았다.

“회장님을 뵙는 건 뒤로 미루고, 의논할 게 몇 가지 있는데 시간 어때?”

“회의실에서 해도 괜찮습니까?”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존 보스만이 오른편 안쪽에 있는 공간으로 움직였다.

“커피를 드릴까요?”

“나중에.”

커피를 사양한 강성태는 회의실 안쪽에서 존 보스만과 마주 앉았다.

“이게 경호팀으로 오는 가페 대원들에 관한 자료인데 바르지오에게서 받았지?”

“확인했습니다.”

강성태가 내미는 서류를 확인한 존 보스만이 굵직한 음성으로 답을 내놓았다. 그런 뒤에 그는 어떻게 이들을 상대할 건지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멕시코 정부가 지원한 경호팀을 외곽으로 돌리거나, 차별한다면 먼저 가페를 무시한 꼴이 되고, 다음으로 멕시코 정부에 빌미를 주게 된다.”

가페를 무시했다는 소문이 돌면 멕시코 신도시 건설 내내 카르텔과 함께 불편한 상황을 초래할 테고, 멕시코 정부에게 빌미를 주면 공사 내내 엄청난 지적과 시정 명령, 중단을 감당해야 한다.

이미 존 보스만도 아는 사실이었다.

“불편하겠지만, 멕시코 정부가 보내준 경호팀과 존 보스만이 이끄는 팀을 섞어서 새로 두 팀을 만들어.”

“미스터 강?”

“아직 안 끝났어. 거기에 내가 보내는 열 명을 배치해. 그것도 가장 안쪽에.”

존 보스만은 강성태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게 분명했고, 심지어 무시하거나 의심한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유독 하얗게 보이는 그의 눈에 은은하게 분노가 올라와 있었다.

“나는 경호팀을 지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놓고 다툴 마음 따위 없어. 내가 선택한 방법이 불편하면 지금 말해. 얼마든지 물러나 줄 테니까.”

“미스터 강. 지금껏 회장님의 가장 안쪽 동선은 늘 내 책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안쪽 동선을 양보하는 첫 번째 경호 행사가 되겠지.”

“이유를 설명해주겠습니까?”

강성태는 잠시 존 보스만을 바라보았다.

좋은 표현으로 책임감이 강한 거고, 나쁘게 보자면 타성에 젖어 가장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었다.

“회장님과 나, 자네는 새롭게 합류하는 가페의 경호팀이 오히려 암살이나 테러를 동조하거나 저지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맞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경호원 존 보스만이 어디에 있어야 하지?”

단순한 질문이었다. 그런데도 존 보스만은 질책을 받은 사람처럼 머뭇거리며 답을 내놓지 못했다.

“더구나 내가 보내는 열 명은 영어를 할 줄 모른다. 이래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짧은 침묵이 흐른 뒤였다.

“죄송합니다, 미스터 강.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아무래도 신경이 날카로워졌었나 봅니다.”

“이해해. 하지만 나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경호원 존 보스만을 원해. 특히, 이번 경호 계획을 완벽하게 수행하려면 더욱 냉정한 판단이 필요해.”

존 보스만의 사과를 받아들인 강성태는 대략 5분에 걸쳐 계획을 설명했다.

“후-. 정말이지 예상을 뛰어넘는군요.”

강성태의 계획을 듣고 난 존 보스만이 이제야 만족한 표정으로 감탄을 내놓았다.

**

빽빽하게 짜인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사업가처럼 바쁜 날이었다. 곤잘레스 이두안을 잠시 만났던 강성태는 곧장 남양주로 움직였다.

점심을 지나 막 식곤증이 올라오는 시간이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키란을 비롯해 고룡동과 지난밤 애써주었던 이종환과 유섭우, 심지어 이병렬까지 함께 있었다.

“훈련은 어때?”

“형님께서 원하는 수준의 80퍼센트 정도입니다.”

친분이 생겼다고 해도 키란은 절대 이런 평가를 후하게 줄 인물이 아니었다.

강성태는 어느 정도 만족한 심정으로 앞에 서 있는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잠깐 모여서 의논할 일이 있는데 그럴 만한 곳이 있을까?”

“누구까지?”

“전부.”

강성태의 답을 들은 이병렬이 고룡동을 돌아보았다.

이틀을 꼬박 이곳에서 지냈으니 짐작 가는 곳을 내놓으라는 의미였다.

“특실이 있습니다, 형님.”

“여기 숫자가 다 들어가겠어?”

“그건 아무래도 어려울 거 같습니다, 형님.”

죄를 지은 투로 고개를 떨구던 고룡동이 뭔가 생각났는지 얼른 시선을 들었다.

“차라리 형님. 객실마다 있는 의자를 모아서 옥상으로 가시면 어떻습니까, 형님?”

“옥상? 거기는 넓어?”

“백 명도 들어갑니다, 형님.”

답을 들은 이병렬이 의견을 묻는 시선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모텔 건물이어서 다섯 명만 들어가도 좁은 객실이 전부였다. 이 숫자가 모두 모일 장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어서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옥상으로 가.”

강성태의 지시가 떨어지자 덩치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살면서 모텔 옥상에 올라와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쪽에 수건이나 침구류를 말리는 공간은 비가 올 때를 대비했는지 두꺼운 비닐로 가림막을 설치해 두었고, 구석에는 오래된 가구나 에어컨 실외기 등이 놓였는데 아무튼 공간은 꽤 넓었다.

대략 10분쯤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나서 이병렬을 포함한 덩치들이 모두 의자에 앉았다.

강성태는 앞으로 나가 자리에 앉은 덩치들을 마주 보았다.

“계획이 약간 바뀌었다. 내일 오전에 고룡동과 광주 식구들 열 명은 곤잘레스 회장님이 있는 호텔로 움직여.”

“호텔 말씀이십니까, 형님?”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세한 역할은 뒤에 설명하기로 하고, 먼저 몇 가지만 당부하자. 첫 번째, 경호 대상을 지키는 일 외에 절대 먼저 폭력을 사용하지 마. 그 외에는 우리가 잘하는 방식 알지? 무식하고 단순하게 지시받은 대로만 움직여. 이게 기본이다.”

강성태는 확인하듯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정말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는데 지금부터 돌아올 때까지 누구를 보든 절대 우리 식의 인사를 하지 마라. 내가 지시를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알았다고만 하면 돼. 대신 무슨 일이 있어도 곤잘레스 회장에게서 시선을 떼지 마.”

“예, 형님.”

기껏 설명했는데 시선이 마주친 고룡동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처음이니까 이해하지만, 지금처럼 고개도 숙이지 마. 현장에서는 그 인사 한 번에 누군가 죽을 수 있다.”

또다시 고개를 숙이려던 고룡동이 멈칫한 뒤에 볼을 씰룩였다.

이미 몸에 밴 행동인 데다,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강성태의 지시를 받는다는 게 어지간히 힘든 느낌이었다.

이어서 강성태는 나머지 스무 명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주었다.

“미치겠네.”

설명을 모두 듣고 난 이병렬의 감상이었다.

“처음은 우리와 삼합회의 싸움이었는데 좋든, 싫든, 지금은 삼합회와 야쿠자의 자존심이 걸렸다. 마카오에서 우리에게 당하면 동남아시아 시장에서조차 개망신을 당하는 꼴이거든.”

강성태는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높게 들었다.

“이상하게 싸움이 커져서 태국과 베트남 조직이 삼합회에 가세했고, 우리는 다 알다시피 아르윈이 속한 필리핀 조직이 함께 움직인다.”

강성태가 든 서류를 읽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바라보는 덩치들 모두 강성태가 엄청난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아차린 얼굴이었다.

지금껏 지시받은 대로 움직이다가 여차하면 붙는다는 형태의 싸움만 경험했던 덩치들이 사명감 올라온 눈빛으로 강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쪽도 베트남과 태국 조직원들을 이용해 우리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는 걸 명심해. 헛짓하면 옆에 있는 동료가 죽고, 방심하면 본인이 죽는다.”

처음부터 아예 죽고 죽이는 싸움이었어?

단단하게 올라왔던 사명감 위로 처음 경험해보는 싸움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피어나고 있었다.

“거기에 저쪽은 멕시코와 러시아의 특수부대원이 있는데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건 키란 밖에 없다.”

덩치들의 시선이 일제히 키란을 향했다가 다시 강성태에게 돌아왔다.

“이 고비를 넘기면, 다음은 아예 대놓고 총질하는 멕시코의 신도시 건설이다. 싫다는 사람은 누구든 그만둘 수 있다. 하지만, 고비를 넘길수록 우리는 더 넓은 세상의 밤을 지배한다. 그리고 여기 삼십 명이 그 가장 앞에 서 있을 거다.”

어쩌면 이렇게 단순할 수 있는지.

강성태의 말이 떨어질 때마다 마주 앉아 있는 덩치들의 감정이 글로 쓴 것만큼이나 선명하게 얼굴에 올라오고 있었다.

“깡패? 숙소 동생들의 돈을 뜯어다가 술 마시고, 일반인 상대로 협박, 폭력이나 행사하다가 교도소 들락거리는 건 깡패가 아니라 양아치지.”

강성태는 멕시코에서 들어오는 경호원에 대한 자료를 앞으로 들었다.

“여기 있는 놈들은 사람 죽이는 훈련만 십수 년씩 받았다. 적어도 이런 놈들에게서 밤을 지켜내는 조직, 그게 내가 생각하는 신강남파다. 밤과 어둠이야말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깡패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말을 마친 강성태는 강렬하게 빛나는 이병렬의 눈과 그가 지그시 움켜쥔 주먹을 보았다.

됐다. 이병렬의 피가 끓었을 정도라면.

숨을 내쉰 강성태는 다시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질문?”

“예, 형님.”

유섭우였다.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섭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마카오에서 정말 위급한 순간이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제 말은 형님. 호텔 같은 곳에서 붙게 됐는데 연장을 써야 할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쭙는 겁니다, 형님.”

“상대방이 나를 죽이려고 드는 데, 깡패 뭐 있어? 한칼 줘야지.”

“감사합니다, 형님.”

“인사하지 말랬지?”

“죄송합니다, 형님.”

지적을 받고도 바로 고개를 숙이던 유섭우가 멈칫하고는 어색하게 서 있었다.

“하여간 돌대가리 새끼.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알았냐?”

“예, 형님.”

이번에는 움찔하기만 했을 뿐, 유섭우는 구부러지는 상체를 억지로 버티는 사람처럼 버텨냈다.

“지랄? 앉아, 이 새끼야.”

다른 건 몰라도 이병렬의 욕과 유섭우의 멋쩍은 태도가 긴장을 풀어준 것만은 분명했다.

브리핑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허술한 시간을 마친 다음이었다.

덩치들이 모두 내려간 옥상에서 강성태는 이병렬과 함께 난간을 붙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남양주에 있는 모텔이었다.

조금만 나가면 높다란 아파트와 건물들이 보일 텐데 당장 모텔 주변은 높지 않은 산들이 겹겹이 놓여서 이따금 서늘한 바람을 불어주었다.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입구로 다가왔다가 주차장과 마당에 서 있는 덩치들을 보고 급하게 차를 돌리고 있었다.

“나는 조직이 이렇게까지 발전할 줄은 정말 몰랐다.”

하늘을 돌아다본 이병렬이 혼잣말처럼 감상을 내놓았다.

“조직에 있다 보면 스폰해주는 회장님 모시는 일이야 당연한데, 세계적인 갑부의 경호원에, 은선곤 같은 비서실 직원에, 멕시코의 신도시까지, 이건 차원이 너무 달라서 얼떨떨하다.”

“잘할 거잖아?”

강성태를 힐끔 봤던 이병렬이 픽 웃고는 다시 시선을 하늘로 가져갔다.

“아프리카까지 가려면 아무래도 영어 공부는 해야겠지?”

“하면 좋겠지.”

“에효.”

지금껏 들었던 그 어느 순간보다 이병렬의 한숨이 무겁게 들렸다.

“멕시코에 가기 전에 총 다루는 훈련도 필요해.”

“총을 어디에서 구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건데 최소 4주 정도는 힘들 거다.”

이병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잠시 뒤였다.

남양주의 하늘과 얕은 산들이 보내주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낼 때, 고룡동이 옥상에 올라왔다.

“준비 끝났습니다, 형님.”

강성태의 시선 앞에서 어색함을 감추지는 못했으나 고룡동은 고개 숙이지 않았다.

강성태가 걸음을 옮기자 그 뒤를 이병렬이 따랐다.

주차장에 서 있는 덩치들의 분위기는 비장했다.

임무를 맡아 출발하는 고룡동과 광주 덩치들은 사명감을 가득 안은 얼굴이었고, 남아 있는 덩치들은 전장에 나가는 동료를 배웅하는 듯 무거운 눈빛이었다.

말이 좋아 경호 업무지, 처음 해보는 일이었고, 더구나 특수부대 출신들과 뒤섞여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고룡동과 덩치들의 어깨에 매달린 눈치였다.

“가자.”

“예, 형님.”

역시나 고개를 숙이려던 고룡동이 멈칫하고는 승용차의 뒷문을 열어주었다.

몸에 완벽하게 밴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꿀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직이 경호에 나설 일이 앞으로 몇 번이나 되겠나.

다만, 경호 도중에는 인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다음으로 인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내는 일이 없도록 미리 전한 지시였다.

‘간다. 여기 좀 챙겨줘.’

이병렬을 슬쩍 돌아본 강성태가 뒷좌석에 앉은 다음이었다.

조수석에 고룡동이 앉았고, 이어서 광주 덩치들이 승용차 한 대와 승합차 두 대에 올랐다.

“다녀오십시오, 형님.”

덩치들이 줄줄이 인사하는 주차장을 빠져나온 승용차가 곧바로 국도에 합류했다.

마카오 회의에서 성과를 가져오기 위한 전쟁의 시작이었다.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린 강성태는 멕시코 정부가 보낸 경호팀들의 사진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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