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1권 - 11화 (424/513)

《424》2부 21권 - 11화

제4장. 생활 접겠습니다, 형님.

이종환과 유섭우가 신월동 식구까지 데리고 내려오면서 천안 덩치들의 표정이 절박하게 바뀌었다.

“이 개새끼!”

부응! 퍼윽! 퍽! 퍼으윽!

강성태를 향해 애처로운 시선을 들었던 천안 덩치가 꿇어앉은 상태에서 이종환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얻어맞았고, 마지막에는 발길질에 벌러덩 널브러졌다.

“어디 보스께 함부로 고개를 들고 지랄이야? 대가리 안 처박아? 야! 이제부터 눈알 굴리는 새끼 있으면 무조건 파 버려!”

이종환의 한 마디에 구석에 몰려있던 숙소 덩치 다섯까지 모조리 고개를 깊게 숙였다.

강성태는 옅게 웃으며 거실을 둘러보았다.

이런 놈들을 데리고 멕시코와 아프리카에 진출했다면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

의심할 여지 없이 수입을 빼돌리는 건 기본이고, 술에 취해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못된 짓이나 할 놈들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현실이었는데, 그만큼 이병렬의 판단이 옳았다.

천안을 비롯한 하부조직을 정비하지 않았다면 이대로 썩어갔을 테고, 나중에 더욱 큰 사고를 쳤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이, 이종환과 유섭우, 유충일, 고룡동처럼 제대로 따라주는 식구들이 있다면, 언제고 사고 칠 양아치들도 있는 게 신강남파의 현실이었다. 그러니 이병렬의 말대로 마카오로 출국하기 전에 대강이나마 정리하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

많이 배웠다, 이병렬. 오늘도.

굳게 마음먹은 강성태는 몸을 일으켰다.

“이종환.”

“예, 형님.”

“여기서 생활 접은 놈들, 한 놈이라도 받아주는 조직이 있다면 그쪽도 모조리 쓸어버릴 거니까 나중에라도 다른 말 나오지 않게 관리해.”

“오늘 정리한 뒤에 동생들에게 전화 돌리겠습니다, 형님. 행사장에서 만나는 다른 쪽 식구들에게 말 전하고, 혹시 이 새끼들이 다른 곳에서 생활하는지 확실히 알아보겠습니다.”

이런 꼼꼼함이?

장난기 묻은 이병렬의 눈매가 강성태를 자극했으나 이를 지그시 깨물어서 나오려는 웃음을 삼켰다.

“나는 병렬이, 진용이, 봉진이랑 근처에 있을 테니까 끝나면 연락해. 참, 우리가 타고 온 승용차 운전할 사람이 필요해.”

“알겠습니다, 형님.”

이병렬을 향해 눈짓을 던진 강성태는 꿇어앉은 놈들 곁을 지나 빌라의 현관을 나섰다.

거실에 들어가지 못해 계단에서 기다리던 덩치들이 강성태와 이병렬을 향해 줄줄이 인사했다. 심지어 주차장에는 더 많은 덩치들이 서 있어서 서열에 따라 물결치듯 고개를 숙였다.

“어디 가려고?”

“운전할 사람도 해결했는데 술이나 더 하자.”

강성태의 제안을 받은 이병렬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바쁜 거 아냐?”

“우리 넷이 술 마실 기회가 또 있겠어? 혹시 경찰이 움직이거나 다른 지역 놈들이 달려들 수도 있으니까 일단 지켜보는 게 좋지. 잠시만.”

말을 마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조태완의 번호를 눌렀다.

-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놀라 묻는 조태완에게 강성태는 천안에서의 일을 차분하게 설명했고, 처리를 부탁했다.

- 조금 전에 노익이가 전화했었는데 부산에서도 숙소 세 곳이 돈을 빼돌렸다가 깨졌다더라고. 정리 끝내고 한꺼번에 보스에게 보고한다니까 알고만 있어. 어차피 교창이하고 배근이 쪽 일 보던 참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혹시 필요하시면 고검장이나 부의장에게 연락하겠습니다.”

- 지난번에 차웅진이 우리 잡으려고 손 쓰던 거 있잖아? 그 일이 무사히 넘어가면서 협조받는 게 더 편해졌어. 그보다는 몸 상하는 일 없게 든든하게 먹고 주변 살펴.

조태완의 당부를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다친 놈들은 돈과 신강남파의 위력, 조태완의 수완으로 해결할 거라서 더는 마음 쓸 일도 없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걷다 보니까 저녁에 들렀던 양꼬치 가게가 있는 장소를 향하고 있었다.

“너는 이 새끼야.”

가는 길에서 조봉진을 돌아본 이병렬이 한심스럽다는 얼굴로 욕을 뱉었다. 다들 멀쩡한데 조봉진만 눈가와 입술이 부었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를 이거 어디에다 쓰지?”

그나마 이 정도인 게 다행이라는 의미가 분명했는데 하여간 이병렬은 그런 생각을 곱게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배부르니까 우리 횟집이나 가지?”

먹자골목에 들어선 이병렬이 제안했으나 당장 양꼬치 가게만 줄줄이 눈에 들어왔다.

한창 시간이라 그런지 좁은 골목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가게마다 손님도 가득했다.

골목을 따라 쭉 걷고 나서야 네 사람은 횟집을 발견했다.

좋은 자리는 손님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문 쪽 빈자리에 앉은 강성태는 광어, 우럭, 이어서 소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콸콸콸, 소주와 맥주로 맥주잔을 가득 채우는 강성태를 주변 손님들이 질렸다는 표정이나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첫 잔은 이렇게 하고, 아직 정리 끝난 게 아니니까 두 번째부터는 주량에 따라 마셔.”

나직하게 말을 건넨 강성태는 맥주잔을 각각 앞에 놓아주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김진용과 조봉진이 고개를 숙여 잔을 받은 다음이었다.

아직 회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다 함께 잔을 비웠다.

“크흐.”

인상을 찌푸린 이병렬이 빈 잔을 돌려 재미있다는 투로 내려다보았다.

“이게 들어갈 때 은근히 달아. 속도 적당하게 후끈하고. 이렇게 마시다 보면 한 방에 훅 가겠는데?”

강성태를 보며 히죽 웃었던 이병렬이 잔을 앞에 두고 직접 술을 따랐다.

“이 정도지?”

“그냥 적당히 부어.”

두 번째 잔부터는 편하게 마시라고 했으나 김진용과 조봉진은 폭탄주를 만드는 이병렬을 기대하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석 잔만 이렇게 같이 마시자. 그 뒤에 진용이랑 봉진이는 소주 마시라고 하고.”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이병렬의 말을 김진용이 붙들고 늘어졌고.

“너는?”

“저도 형님 따라 마시겠습니다.”

질문을 받은 조봉진이 예상보다 편안한 답을 내놓았다.

다른 장소는 몰라도 술자리에서만큼은 이 정도 여유를 지녔던 모양이었다.

이것들 깡패 같은데?

조심하는 모습으로 아주머니가 멍게, 해삼, 낙지 따위의 안주들을 내주는 사이에 소주 여섯 병과 맥주 네 병이 사라졌다.

“아후, 씨발!”

잔을 비운 이병렬이 그나마 다른 테이블에서 듣지 못할 정도로 조심하며 욕을 뱉었다.

후련하다, 통쾌하다, 그쯤 되는 감탄사가 분명했다.

“내가 할 말이 있는데.”

어쩐지 반쯤 취한 최치곤을 연상시키는 눈빛과 표정으로 이병렬이 입을 열었다.

“진용이는 저게 곰처럼 생겼어도 영악하거든. 그래서 저 새끼는 뭘 하든 제 앞가림은 해.”

말을 마친 이병렬은 조심스럽게 폭탄주를 만들고 있는 조봉진을 돌아보았다.

“저게 문제야. 저 새끼가. 똘똘하지도 못하고, 눈치도 없고. 주먹도 약해, 맷집도 적어. 저 눈하고 입술 좀 봐.”

지적받은 조봉진이 고개를 숙이며 강성태와 이병렬, 김진용의 앞에 잔을 놓아주었다.

“그래도 바탕이 나쁜 새끼는 아니니까 혹시 보스에게 실수하더라도 한 번은 예쁘게 봐주라.”

따귀를 때렸다더니 그게 가슴에 얹혀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금껏 그 어떤 개인적인 부탁이나 청을 하지 않았던 이병렬이 강성태에게 당부를 건네고 있었다.

강성태는 조봉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병렬의 속마음을 빤히 알고 있을 조봉진이 미안하고, 고맙고, 한편으로는 울컥한 모양으로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형님. 반성 많이 했습니다. 아침에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형님.”

“미친 새끼. 길바닥에서 따귀나 때리는 데 뭐가 좋다고 여기 앉아서 술을 처먹고 있어, 이 새끼야?”

“형니-임.”

“아이고, 이 씨발 놈이 애교를 다 부리네?”

이런 자리에서 다른 말 해봐야 뭐하겠나.

강성태는 앞에 있는 잔을 들었다.

“마셔.”

강성태를 바라보던 이병렬이 씨익 웃으며 잔을 들었고, 김진용과 조봉진이 뒤따랐다.

“아흐!”

그의 가슴에 매달렸던 염려를 털어낸 듯이 이병렬이 통쾌하게 술기운을 뱉어냈다.

‘걱정하지 마. 알아서 할 거니까.’

‘고맙다.’

잔을 내려놓은 강성태는 약속처럼 시선을 던졌고, 뜻을 알아챈 이병렬이 만족한 듯 웃었다.

**

이종환과 유섭우, 신월동 덩치들은 무서웠다.

숙소마다 찾아가 들이닥치는 순간, 천안 덩치들이 반항할 생각조차 못 할 정도로 그동안 싸움판을 돌며 쌓아둔 독기도 대단했다.

“꿇어, 이 개새끼들아!”

“형님! 제가 천안 정리해서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이런 씨발놈이!”

부응! 퍼으윽! 퍼윽! 퍼으윽! 퍽!

바지를 붙들고 매달리는 덩치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만도 한데 이종환은 그야말로 인정사정없었다.

천안은 끝났어!

그의 태도와 뒤따르는 대림동, 강서구, 신월동 덩치들의 태도는 명확하고 단호했다.

만약 강남 식구들을 불렀거나, 박배근이 왔더라면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해서 강성태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면 어떻겠냐고 물었겠다. 하지만, 하필 달려온 게 강성태의 친위부대 성격인 이종환과 유섭우였고, 두 사람의 머리에는 지시를 어기고 달려가 기회가 어쩌고 하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야! 연장 가져와!”

지금도 그렇다.

지시를 받는 덩치들이 쭈뼛하는 느낌이 있어야 비벼볼 텐데, 악귀들만 모아 온 것처럼 연장을 꺼내는 막내조차 주저함이 전혀 없었다.

“아닙니다, 형님. 생활 접겠습니다, 형님.”

발목을 지키고 싶은 천안 덩치가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답을 내놓자 이종환은 꿇어앉은 천안 덩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어설픈 조직에 몸담으면 그쪽까지 모조리 쓸어버릴 거니까 알아서 하고, 이름 팔다가 잡히면 그때는 발목 못 지켜. 알았어?”

“형니-임?”

여태 깡패짓만 하던 인간이 이제 뭘 하면서 살겠나.

시선이 마주친 기회에 애처롭게 매달렸는데 이종환은 그게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야! 연장 주라.”

“아닙니다, 형님. 생활 접겠습니다, 형님.”

손을 옆으로 내미는 이종환에게 천안 덩치가 고개를 연신 조아렸다.

“그래, 이 새끼야. 막일이라도 해 먹고살려면 발목을 지켜야지. 왜 자꾸 디뎌, 디디기를, 이 씨발 새끼야?”

몸을 세운 이종환이 새롭게 덮친 숙소를 돌아볼 때였다.

바깥이 소란스럽더니 세 명의 남자가 쭈뼛대는 얼굴로 들어왔다.

뭐야, 이것들은?

깡패는 아닌 게 분명한 마흔 중반, 쉰 중반의 남자 둘에 이십 대 남자 한 명이었다.

“여기 업장하시는 사장님 두 분인데, 형님. 형님께 꼭 드릴 말씀이 있으시다고 해서 일단 모셨습니다, 형님.”

쇠파이프와 배트를 든 대림동 덩치들, 살벌하고 처참한 숙소 모습을 본 남자는 완전히 주눅 든 눈치였다.

“뭐요?”

“저기, 마이 하우스와 로얄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사장들입니다. 신강남파 회장님께서 업장 지분 넘겨주라고 하셨다기에 어떡해서든 매달려라도 보려고 급하게 찾아뵀습니다.”

이 말이 벌써 천안에 돌았어?

대림동 덩치를 돌아본 이종환을 향해 쉰 중반의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커졌다고 해도 천안은 빤한 바닥입니다. 운영이 마음에 안 드셨다면 내일부터 직접 청소부터 새롭게 할 테니까 제발 클럽 만드시는 거 재고해주시고, 안 되면….”

삶을 아예 뺏긴 듯 잠시 틈을 주었던 남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희 지분을 그냥 인수해 주시면 어떨까 하고 말씀이라도 드려주십시오.”

“불편하네, 이거.”

“예, 선생님.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나이도 있고, 이 빤한 바닥에 신강남파 회장님께서 클럽 올리시면 저는 그냥 죽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매달립니다, 선생님.”

대림동에서 업장 사장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던 이종환이었다. 거기에 일반인들을 상대로 절대로 욕이나 인상 쓰지 말라던 강성태의 평소 모습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알았으니까 돌아가 계셔. 내가 기회 봐서 조심스럽게 여쭤볼 테니까.”

“그래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이거….”

반가운 얼굴로 상체를 숙였던 쉰 중반의 남자가 재킷 안쪽에서 봉투를 꺼내며 이종환에게 다가왔다.

“그냥 가십시오. 깡패로 살지만, 그런 돈 받으면 우리 성태 큰형님 뵐 낯이 없습니다. 돈 받고 어려운 사정 말씀드린 놈 되기도 싫고요.”

아예 여지를 뚝 자르는 이종환을 업장 사장이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돈 싫다는 깡패? 처음 봤다는 얼굴이었다.

안에 든 금액이 부족하다는 투로 밀쳐내는 깡패는 봤어도 봉투 자체를, 그것도 보스를 볼 낯이 없어서 안 된다는 이유를 드는 깡패는 진짜 처음이라는 얼굴.

청렴결백한 깡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깡패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어쩌겠나.

멍해 있던 업장 사장이 퍼뜩 정신을 차린 얼굴로 이종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럼 선생님만 믿고. 아! 여기 제 명함입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고칠 테고, 넘기라시면 따를 테니 그저 이대로 나이트 끌어안고 주저앉지만 않게끔 도와주십시오.”

고개를 연신 조아렸던 업장 사장이 꿇어앉은 덩치들의 시선을 피하듯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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