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2부 21권 - 10화
위쪽은 얼어붙었고, 아래는 새카맣게 탄 고깃덩어리를 피투성이 심현조가 굶주렸던 개처럼 뜯어먹는 사이, 강성태의 주먹에 맞아 쓰러졌던 덩치 셋이 꿈틀대며 상체를 일으켰다.
“이 씨발 새끼들이!”
콰윽! 콰작! 퍼으윽!
김진용은 아예 죽일 각오를 세운 사람처럼 겨우 상체를 세우는 덩치들의 턱을 걷어찼고, 머리를 짓밟았다.
그래놓고도 분이 안 풀린 모양이었다.
쓰러진 놈들 옆에 있던 작은 의자를 집어 든 김진용이 조금이나마 상태가 나은 놈의 머리통을 세차게 찍었다.
“이 개새끼들이 어디 보스에게 눈알을 부라려? 눈알을 하나씩 파줄까, 이 씨발 새끼들아?”
콰자작!
의자를 다시 집어 들었던 김진용이 다른 놈의 머리통을 세차게 찍자 거짓말처럼 한줄기 핏물이 쭈욱 뻗어서 거실을 적셨다.
사람이 참 신기해서 걷다가 넘어진 거로 죽기도 하는데 반대로 저렇게 머리를 의자로 찍어대도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다.
맞는 걸 알면 몸이 반응하는 건데 김진용은….
콰작! 콰자작!
저렇게 하면 아무리 몸이 반응해도 죽는데?
“후우-.”
분이 어느 정도 풀렸는지 김진용이 박살 나서 뼈대만 남은 의자를 한쪽으로 걷어찼을 때, 나중에 들어왔던 덩치 셋은 피범벅인 상태로 이미 의식이 없었다.
김진용의 살벌한 매질에 더욱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1분 남았다.”
“우욱! 욱! 우우욱!”
강성태가 놀랄 정도로 얼어 있는 고기를 모조리 삼켰던 심현조가 새카맣게 탄 고기를 들어서 입에 욱여넣고 있었다.
“우우욱! 욱!”
새카맣게 타서 딱딱한 고기를 입에 모두 넣었던 심현조가 목을 움켜쥐고 버둥거렸다.
붉어진 눈과 볼, 숨을 쉬지 못해 가슴을 움켜쥐는 손을 봐서 기도가 막혔거나 아니면 얼어붙은 고기와 돼지기름, 다시 뜨겁게 탄 고기를 무리하게 넣다가 쇼크가 온 모양이었다.
퍼윽! 퍽! 퍼윽!
이병렬은 버둥거리는 심현조의 가슴을 대차게 걷어찼다.
“커흐윽!”
겨우 입에 넣어두었던 탄 고기들이 심현조가 쏟아낸 기침에 사방으로 튀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얼른 처먹어!”
이미 심현조는 이성을 잃은 상황이었다.
이병렬이 독한 눈매로 내려다보자 실제로 기어 다니며 쏟아냈던 고기들을 다시 입에 욱여넣었다.
“여기 봐, 이 새끼들아.”
고개를 떨구고 있던 숙소 덩치 다섯 놈이 이병렬의 지시를 듣고는 공포에 절은 표정으로 시선을 들었다.
“아무리 깡패라고 해도 사람처럼은 살자. 이렇게 숙소 생활하다가 여기 이 새끼처럼 동생들 돈으로 밤마다 술 처마시고 폼나게 살 거라고 기대하는 놈이 있다면 오늘 밤에 조용하게 짐 싸서 집에 가라.”
차분하게 가라앉은 이병렬의 음성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는 돈 뺏기고도 입 다문 놈까지 함께 묻어버릴 거니까 지금 내가 한 말 대가리에 처박아서 절대 잊어버리지 마.”
이병렬이 시선을 돌리자, “예, 형님.” 하고 숙소 덩치 다섯 놈이 고개를 숙였다.
그 직후였다.
바깥에서 거칠게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울렸다.
이건 또 뭐야?
강성태와 이병렬, 김진용, 조봉진이 고개를 돌린 직후에 살짝 열어둔 철문이 열리면서 덩치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무슨 일로 이러십니까, 형님?”
앞에 들어선 놈은 소위 깍두기라고 부르는 짧은 머리 스타일에 급하게 입은 재킷, 금목걸이, 금팔찌, 그리고 목덜미와 손목 아래로 문신이 기어 나온 덩치였다.
하여간 깍두기는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병렬은 진짜 참.
어떻게 천안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대림동과 신월동, 강서구의 숙소 식구들을 불렀을까?
엉망이 된 거실 안을 돌아본 깍두기가 이병렬에게 시선을 돌렸다.
“인사 안 하냐?”
“예? 예. 천안 오상환입니다, 형님.”
경계하는 태도로 놈이 상체를 숙였다가 얼른 세웠다.
강성태는 천천히 오상환과 현관을 밀고 들어온 천안 덩치들을 둘러보았다.
물론 얼마 전에 병원에서 역전파가 박살 났었으니까 감정이 좋을 리 없겠다. 그러나 이미 고개를 숙였고, 그 대가로 다달이 돈까지 받아먹는 놈들이 보여서는 안 되는 눈빛과 태도였다.
“문제가 있으면 조용하게 부르시면 되지, 형님. 동생들 앞에서 이래놓으면 앞으로 어떻게 천안을 관리하겠습니까, 형님?”
오상환의 당찬 대꾸가 나온 직후였다.
퍼윽! 퍽! 퍼으윽!
이병렬이 훅 달려들어서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뒤에 있던 놈들이 앞으로 밀고 들어왔다.
뭐 이런 허접한 새끼들이?
쩌억! 쩌어어억! 쩌어억!
훅, 달려나간 강성태가 연달아 주먹을 뻗으면서 세 놈이 널브러졌고,
까아앙! 까앙! 까아앙!
바닥에 있던 프라이팬을 집어 든 김진용이 덩치들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찍었으며, 그 옆에서 조봉진이 얼굴을 맞아가면서도 연신 주먹을 날렸다.
쩌어어억! 쩌어억! 쩌어어억!
대략 열댓 명이 강성태의 주먹과 김진용의 프라이팬에 널브러지면서 더 달려드는 놈은 없었다.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주절주절 말이 졸라 많아? 어?”
콰작! 콰악! 콰자작!
강성태가 현관에 서 있는 놈들을 바라보는 뒤편에서 이병렬은 오상환의 얼굴을 무릎으로 짓이겼다.
“커흑! 형님? 형…?”
콰자작! 콰작!
다급하게 이병렬을 부르던 오상환이 이병렬의 무릎에 코를 찍힌 직후에 축 늘어졌다.
늘어진 오상환의 짧은 머리칼 대신 그의 재킷의 뒷덜미를 붙든 이병렬이 고개를 들었다.
“이 새끼들이 그래도 보스 앞에서 버텨? 오냐. 오늘 끝장 보자. 지금부터는 진짜다. 진용아. 연장 줘.”
이병렬은 회칼을 받기 무섭게 곧바로 오상환의 목덜미에 날을 바싹 가져갔다.
진심으로 보였다, 이병렬은.
게다가 목덜미가 갈라지고 얼굴이 온통 망가진 심현조가 처참한 몰골로 벽에 늘어져 있는 모습이 이병렬의 독기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처럼 눈에 들어왔다.
“잘못했습니다, 형님.”
상황이 끝으로 달려간다고 확신했는지 지금껏 서 있던 덩치들이 급하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피잇!
그런데도 이병렬은 오상환의 목덜미 아래를 빠르게 그었다.
핏물을 쭉 뿜어내는 놈을 툭 던진 이병렬이 꿇어앉은 덩치들 앞으로 나섰다.
“야!”
“예, 형님.”
이병렬이 회칼의 끝으로 머리통을 콕 찍으며 부르자 무릎을 꿇었던 덩치가 빠르게 답을 내놓았다.
“야, 이 양아치 새끼들아?”
이번에는 대답이 없었다.
“이 씨발 새끼들. 양아치라고 부르니까 대답 못 하겠어? 하는 짓은 개양아치인데 꼴에 건달이니 깡패 타이틀을 달고 싶어? 그것도 신강남파라고 설치면서?”
이병렬은 말끝마다 회칼로 꿇어앉은 놈들의 머리통을 돌아가며 콕콕 찔렀다.
마치 손으로 톡톡 뺨을 때리는 것처럼 꿇어앉은 놈들의 자존심을 있는 대로 건드리는 모습이었다.
“형님?”
이병렬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김진용이 의자를 가져와 강성태의 뒤에 놓아주었다.
어디 지켜본다. 이병렬을 믿고.
저렇게 팔랑팔랑 움직이지만, 이병렬은 늘 철저한 계산에 따라 행동했었고, 또 이런 기회를 통해 강성태에게 깡패들의 속성이나 조직의 생리를 가르쳐주었었다.
강성태가 바라보는 앞이었다.
꿇어앉은 놈의 턱에 회칼을 가져간 이병렬이 날을 위로 들었다.
이병렬의 성격으로 봐서 버티면 턱이 갈라진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든 덩치의 얼굴에 숨기지 못한 분노와 굴욕이 핏물처럼 진하게 올라와 있었다.
“야? 양아치? 열 명이 넘는 놈들이 회칼 한 번 안 뽑고 무릎 꿇었는데 이게 양아치 아니고 뭐야? 학교 다닐 때 일진이니 뭐니 했을 거 아냐? 힘없는 애들은 졸라리 괴롭히는데 강한 사람 만나면 그냥 꿇는 거냐? 어?”
더는 굴욕을 참지 못한 모양이었다.
“양아치 아닙니다, 형님.”
회칼이 턱에 걸려 고개를 들고 있던 덩치가 다부진 대꾸를 내놓았다.
“술 취한 새끼들이 취했다고 하디? 양아치야 당연히 양아치가 아니라고 하겠지. 그럼 너는 양아치도 아니고, 깡패도 아니고, 정체가 뭐야? 반달이야? 그건 돈이 존나리 많아야 하잖아? 집이 부자야? 아버지가 땅이 졸라리 많아?”
대놓고 빈정대는 이병렬을 덩치는 눈을 꾹 감은 채 외면했다.
“씨발. 천안에 심 봉사가 있었네? 아예 눈알을 파내줄 테니까 평생 그렇게 살아.”
빈정대던 이병렬의 음성이 나직하게 가라앉으며 삽시간에 그의 음성에 살기가 감돌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고개가 들린 덩치가 눈을 떴다.
이병렬은 상체를 기울여 놈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에라, 이 양아치 새끼야.”
자존심을 있는 대로 짓밟는 한 마디를 뱉어낸 이병렬이 놈의 턱에 걸었던 회칼을 빼내며 몸을 세웠다.
“건달? 깡패? 이럴 거면 방구석에서 잣이나 까먹어, 이 개새끼야! 숙소 동생들이 떡볶이로 저녁 때우면서도 손댈 생각조차 안 하는 고기 던져주고 술 처먹으러 가는 새끼들이 깡패? 그것도 보스가 내려준 동생들 돈 뺏어가는 놈들이?”
이병렬은 놈들의 뒤로 걸어가 반쯤 열려 있는 현관 앞에서 거실을 향해 섰다.
“보스가 내려준 돈도 뺏어가는 새끼들에게 어떻게 조직이 업장을 맡겨? 너희 돈으로 하는 업장이나 관리할 생각이면 조직 생활 접고 그냥 사장님을 해, 이 개양아치 새끼들아!”
말을 뱉어낸 이병렬이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보스. 천안 접자.”
솔직히 말하면 저 말뜻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했다. 다만, 꿇어앉아 있던 천안 덩치들이 움찔하는 게 보였고, 김진용의 표정이 좀 더 굳어지는 거로 봐서 꽤 충격적인 결정이라는 건 분명했다.
“원하는 대로 해. 뭐든 뒤는 내가 해결할 테니까.”
강성태의 눈을 바라보던 이병렬이 옅은 웃음을 눈가에 달았다가 바로 독기로 바꾸었다.
“진용아. 서울에서 애들 내려오면 천안 모조리 뒤집어. 숙소부터 시작해서 대가리까지 전부 생활 접게 하고, 거부하는 새끼들은 그냥 발목 끊어. 앞으로 천안 업장은 안산 식구들이 관리한다.”
“예, 형님.”
나직한 지시에 우직한 답이 떨어졌다.
김진용에게 회칼을 돌려준 이병렬은 주방으로 움직여 개수대 물을 틀고서 손을 닦았다.
의도한 건지, 우연인지는 모르겠는데 기존에 있던 천안 깡패들을 깨끗하게 털어내겠다는 그의 결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천안은?
아니면 경상도와 부산을 맡은 이교창, 충청도와 호남을 책임진 박배근 역시 지금 이 거실의 모습처럼 힘겹게 숙소를 다지고 있는 건가?
무릎을 꿇은 놈들이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이제 와서?
옅게 웃은 강성태는 고개를 돌려 죄인처럼 구석에 서 있는 다섯 놈을 돌아보았다.
저놈들은 돈을 뺏기고 떡볶이 먹은 죄밖에 없긴 한데, 기회를 준다면 과연 정영권의 길을 걸을까, 아니면 김석문처럼 정신을 번쩍 차리고 제대로 된 신강남파의 일원이 될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도 숙소에 있던 놈들이 감히 강성태에게 말을 하기는 어려울 일이었다.
“야! 커피 없냐?”
“믹스 커피 있습니다, 형님.”
“봉진아. 저 새끼한테 받아서 커피나 한잔 끓여.”
숙소 막내가 움직여 커피와 작은 주전자를 내놓았고, 이어 구석에서 2리터짜리 생수병을 가져왔다.
잠시 후, 더럽게 널브러진 심현조, 제대로 으깨진 오상환, 김진용에게 맞아 피범벅인 덩치들, 강성태에게 맞아 쓰러졌다가 깨어나 급하게 무릎을 꿇은 놈들 사이를 달달한 믹스 커피 향이 떠돌았다.
“커피 드십시오, 형님.”
아일랜드 식탁이라고 부르기는 뭔가 부족한 주방의 탁자를 마주 본 상태에서 강성태와 이병렬은 믹스 커피를 마셨다.
서울에서 식구들이 내려오면 지금껏 천안을 쥐고 있던 덩치들은 무조건 그나마 깡패라는 삶에서 쫓겨나 양아치가 되거나 직업을 구해야 한다.
어쩌면 이병렬은 천안을 본보기 삼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까불면 이렇게 죽는다.
이병렬의 뜻을 짐작한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천안에 신강남파가 직접 운영하는 업장이 있나?”
“전에 역전파가 운영하던 지분을 사들여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마이 하우스와 로얄 나이트클럽이 가장 큽니다, 형님.”
강성태의 질문에 김진용이 얼른 답을 내놓았다.
“그것들 지분 전부 사들이든가, 아니면 나머지 지분 지닌 사람에게 넘겨.”
이건 또 무슨 지시야?
이병렬과 김진용이 약간은 당황한, 그리고 궁금한 표정으로 강성태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서 돈 내려줄 테니까 여기 맡게 될 안산 식구들에게 클럽 새로 만들라고 해.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까 강남 정소국을 불러서 인테리어부터 제대로 꾸미고, 엔터 통해서 지금 인기 있는 연예인 전부 출연시켜.”
“예, 형님.”
김진용의 답을 들은 강성태는 이병렬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털어낸다고 해도 클럽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이 저놈들을 단숨에 외면하기 어려울 테니까 새로 출발할 거면 예전의 업장 다 버려.”
호오?
장난기를 보였던 이병렬이 ‘약 오르지, 개새끼들아?’ 하는 표정으로 천안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그 직후였다.
또다시 계단을 급하게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 뒤에 살벌한 표정의 이종환과 유섭우, 그리고 쇠파이프와 배트를 든 덩치들이 정말이지 거실이 좁도록 우르르 밀려들었다.
숙소에서 생활하던 덩치 다섯은 아예 구석으로 몰려가 애처롭게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늦었습니다, 형님.”
강성태와 이병렬을 향해 상체를 숙였던 이종환과 유섭우가 단박에 상황을 이해한 것처럼 무서운 얼굴로 꿇어앉은 천안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이 씨발 새끼들이….’
당장 대가리를 부수고 싶은 욕망을 억지로 삼키듯 이종환은 이를 악물며 강성태의 지시를 기다렸다.
“천안 정리해. 애들 전부 생활 접게 하고, 반항하면 모조리 발목 끊어. 할 수 있지?”
“끝내고 전화 드리겠습니다, 형님.”
강성태를 대신해 이병렬이 지시를 내렸고, 아주아주 만족한 표정과 음성으로 이종환이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