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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1권 - 9화 (422/513)

《422》2부 21권 - 9화

술은 강성태가 만들어서 건넨 폭탄주 한 잔이 전부였다. 그 뒤로 양꼬치와 청경채 볶음, 대합탕, 소고기 완자, 가지 탕수육에 공깃밥을 주문해 글자 그대로 저녁을 먹었다.

뻗어내는 주먹의 위력, 다수와 붙어도 절대 밀리지 않는 실력의 강성태와 복싱으로 다져진 능력에 근성의 화신 이병렬, 신강남파의 보스와 넘버 투가 함께 있는 자리였다. 그래서인지 조봉진까지 달랑 세 명이었지만, 천안의 숙소를 찾아가는 일 따위 두렵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기는 했다.

그렇게 강한 강성태라고 해도 혼자 숙소를 찾는다면 불안했을 테고, 이병렬만 움직인다면 더욱 마음 졸일 일이었는데, 둘이 마주 앉자 천안의 덩치 전체가 달려든다고 해도 그다지 두려울 거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말이다.

잘 먹었다. 보스와 넘버 투 사이에 앉은 조봉진까지.

“커피 한잔 하고 움직이지?”

젓가락을 내려놓은 이병렬이 강성태를 향해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조봉진의 휴대폰이 울었다.

“진용이 형님입니다, 형님. 나가서 통화하고 오겠습니다, 형님.”

“그럴 게 뭐 있어? 얼른 받아봐.”

이병렬의 권유에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하고 고개 숙인 조봉진이 핸드폰의 버튼을 눌렀다.

“조봉진입니다, 형님.”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입을 가린 조봉진이 놀란 얼굴로 이병렬을 바라보았다.

“왜? 일 터졌다냐?”

“그게 아니고, 형님. 지금 터미널이랍니다, 형님.”

“터미널? 여기 왔다고?”

“예, 형님.”

조봉진의 답을 들은 이병렬이 손을 뻗어 핸드폰을 가져갔다.

“나다. 지금 어디야?”

잠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병렬이 바람 빠지는 사람처럼 웃었다.

“거기서 정문으로 나와보면 장난감처럼 보이는 조각상이 있어. 그래. 봉진이 보낼 테니까 거기 삼거리에 있는 횡단보도 건너서 똑바로 걸어.”

말을 마친 이병렬이 핸드폰을 조봉진에게 돌려주었다.

“들었지? 횡단보도로 가서 진용이 데려와.”

지시를 받은 조봉진이 고개를 숙이고는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고속버스를 타고 왔다네. 하여간 이놈이고 저놈이고 마음에 드는 놈이 한 새끼도 없어.”

“저녁은?”

“시간 보면 클럽 일 마치고 바로 버스 탄 거지. 그나마 전용 차선 탔으니까 이 시간에 도착했지, 차 끌고 왔으면 아직 절반도 못 왔을걸?”

처음 가게에 들어설 때와 달리 지금은 빈 테이블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님들이 가득했다.

벨을 눌러 직원을 부른 이병렬은 옥수수 면과 공깃밥, 그리고 양갈비를 추가로 주문했다.

“뭘 먹을지 물어보고 시키지?”

“진용이가 다른 거 먹겠다면 봉진이 먹이면 돼.”

아무렴, 이병렬이 주문해놓았다는 음식을 김진용이 거부할 리가 있겠나. 그런 이유로 건넨 강성태의 배려를 이병렬은 우악스럽기 그지없는 한마디로 해결했다.

“이것들이 왜 안 와?”

이병렬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에 김진용이 조봉진과 함께 가게로 들어섰다.

신월동 나이트, 방지병원, 그리고 거친 싸움에서 함께할 때는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천안의 양꼬치 가게에 들어서는 김진용은 커다란 덩치와 눈매, 움직임이 그냥 깡패였다. 그것도 수틀리면 언제고 주먹을 먼저 뻗을 것처럼 보이는 무식하고 거친 깡패였다.

“늦었습니다, 형님.”

연예인 느낌의 강성태와 과거에 운동 좀 했나 싶은 이병렬, 그사이에 함께한 어린 깡패 조봉진이라고 여겼던 주변 손님들이 상체를 깊숙하게 숙이는 김진용을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체급의 차이인지, 소위 말하는 숙소밥 경력의 차이인지는 몰라도 조봉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김진용이 주는 위압감은 분명하고 확실했다.

“적당히 하고 얼른 앉아.”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지금껏 운동 좀 했나 싶은 사람으로 보았던 이병렬이 사실은 김진용을 애 다루듯 하는 진짜 깡패였고, 강성태는 고갯짓으로 인사에 답하는 수준이라는 사실이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주변 손님들이 시선을 마주치며 놀란 감정을 주고받았다.

특히, 웃옷을 가슴까지 올려서 배를 드러냈다가 조봉진의 눈총을 받았던 옆 테이블의 남자는 조용하게 상의를 내린 뒤에 시선을 떨구고 있었다.

마침 주문한 옥수수 면이 나왔다.

싫고 좋고 없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김진용이 짬뽕 느낌의 옥수수 면을 먹었다. 말이 좋아서 먹는 거지, 강성태와 이병렬이 기다리는 상황이라 김진용은 숫제 부어 넣는 수준이었다.

양갈비도 마찬가지여서 겉만 대강 익은 걸 뚝뚝 뜯어 먹었다. 이후에 공깃밥까지 단숨에 비워내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은 김진용의 저녁 식사가 끝났다.

“뭐 때문에 온 거냐?”

거칠게 질문했지만, 실제로 이병렬은 김진용이 저녁을 먹는 동안 궁금했던 저 질문을 꾹 눌러서 가슴에 담아두었다.

혹시나 김진용이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할까 봐 말이다.

“형님께서 혼자 천안에 가신 거로 알아서 클럽 안내해주고 바로 버스 탔습니다, 형님.”

“왜? 나 혼자 오면 여기 숙소 애들한테 깨지기라도 할까 봐 그러냐?”

“봉진이가 눈치가 없어서 형님이 답답하실까 봐 왔습니다, 형님.”

“이 새끼는 엔터 대표가 되더니 말만 늘었어, 말만.”

이병렬의 거친 평가를 끝으로 식사를 마쳤고, 강성태가 계산한 뒤에 네 사람은 골목으로 나섰다.

“가만있자, 어디 가서 커피를 마시지?”

“지금 한창 붐빌 시간이다. 우리 넷이 커피 마시러 가봐야 다른 손님들 불편하기만 할 테니까 한 바퀴 돌아본 뒤에 개운하게 마시자.”

강성태가 이병렬을 다독이면서 곧장 숙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조봉진이 미리 알아놓은 숙소는 걸어서 가기에 적당한 거리였다. 더구나 배불리 먹은 뒤라 20분쯤 걷는 게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다.

신강남파에 속한 천안 숙소는 붐비는 골목에서 벗어나 언덕을 타고 올라가 있는 빌라촌이었다. 핸드폰을 확인한 조봉진이 빌라의 2층 창을 확인한 뒤에 고개를 가져왔다.

“여기 맞습니다, 형님.”

“가 보자?”

이병렬의 말에 조봉진과 김진용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강성태가 마지막에 들어서 2층으로 올라섰을 때, 이미 벨을 누른 조봉진이 안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 왼쪽과 오른쪽에 현관이 있는 전형적인 빌라의 구조였는데 문의 도색으로 봐서 꽤 오래된 건물로 보였다.

“누구요?”

거친 질문이 안에서 나왔고,

“서울에서 성태 큰형님과 병렬이 형님 모시고 왔으니까 문 열어.”

조봉진이 당차게 답했다.

“뭐라는 거야?”

굵직한 음성에 일부러 섞은 듯한 쇳소리가 울린 뒤에 현관문이 열렸다.

라운드 티, 발목에 고무밴드가 달린 운동복 바지, 슬리퍼를 신은 스물 초반의 덩치였다. 놈이 문을 열고는 바깥에 선 네 사람을 돌아보았다.

그나마 김진용을 확실히 아는 모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화들짝 놀란 덩치가 상체를 깊숙하게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안에서 몰려온 또 다른 덩치 네 놈이 비슷하게 상체를 숙이며 인사했다.

“비켜 봐.”

“예, 형님.”

당황하는 덩치들을 몰아넣은 이병렬이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24평쯤 되겠다.

벽에 붙여놓은 기다란 소파, TV, 배달인지, 가서 사 왔는지 모르는 떡볶이와 쫄면 그릇, 그리고 구석에 K자 형태의 운동기구가 전부인 거실에서 덩치 다섯이 세상 얌전하고 공손한 태도로 손을 앞으로 잡은 채 있었다.

거실을 둘러본 강성태는 안쪽에 있는 문을 향해 걸었다.

김진용이 빠르게 움직여 시선을 주는 곳의 문을 열어주었다.

방은 두 개였다.

안쪽에 1인용 침대가 하나씩 있는 거로 봐서 두 명만 침대에서 자고, 나머지 셋은 방바닥이나 거실에 이불을 깔고 자는 눈치였다.

그나마 빗자루질을 한 모양이었고, 남자들끼리만 지내다 보면 나는 특유의 냄새가 없는 게 다행이었다.

방을 둘러본 강성태는 거실 옆으로 붙은 주방으로 향했다.

강성태가 시선을 주자 조봉진이 냉장고를 열었다.

위쪽에 거의 다 먹은 김치통이 보였고, 아래는 소주와 스햄이 전부였다.

다음으로 냉동실을 열게 했던 강성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꺼내 봐.”

강성태의 지시에 조봉진이 투명한 비닐에 쌓인 덩어리를 꺼냈다.

“돼지고기 같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시선을 돌렸다.

“이거 뭐야?”

“예? 형님?”

놀란 숙소 덩치가 반문하기 무섭게 김진용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큰형님께서 물어보시잖아? 이…!”

“형님이 넣어주신 고기입니다, 형님. 일주일에 한 번씩 넣어주십니다, 형님.”

최근에 강성태와 이병렬, 김진용에 대한 소문이야 차고 넘칠 상황이었고, 역전파 신부동을 잡느라 병원에서 벌였던 싸움도 있어서 숙소 덩치는 완전히 얼어붙은 느낌이었다.

돼지고기라고 하는데 삼겹살도 아니고 카슷코 같은 대형 매장에서 통째로 파는 뒷다리 덩어리로 보였다.

몸을 돌린 강성태의 오른쪽에 이병렬이 섰고, 좌우를 김진용과 조봉진이 받쳤다.

“저녁은?”

강성태가 구석에 놓인 포장 용기에 시선을 주자 조금 전에 답을 했던 덩치가 마른침을 삼켰다.

“자꾸 대답 늦게 할래?”

“배달시켜 먹었습니다, 형님.”

김진용의 재촉에 서둘러 답을 내놓은 덩치가 시선을 떨궜다.

“점심은?”

강성태의 눈빛과 이병렬의 인상,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것처럼 희번덕거리는 김진용의 눈빛에 질린 것처럼 숙소 덩치가 입을 열었다.

“라면에 즉석밥 먹었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짐작했었다는 투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쇼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병렬처럼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말이다.

숙소 덩치들을 바라본 상태에서 강성태는 조봉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예, 형님.”

멈칫했던 조봉진이 재킷 안에서 회칼을 꺼내 강성태가 내민 손에 자루를 올려 주었다.

또 이야기하지만, 강성태와 이병렬, 김진용, 이렇게 세 사람은 역전파 덩치들 수십 명을 상대로 뚫고 올라가서 신부동의 발목을 끊었던 당사자들이었다.

“내가 매달 보내준 돈은 어쩌고 이런 돼지고기를 받아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저런 떡볶이와 쫄면으로 저녁을 먹어?”

회칼은 무섭다. 아니, 그보다 이미 천안을 넘어 전국에 떠도는 강성태와 이병렬, 김진용은 두렵다 못해 손발이 떨리는 지경이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내가 묻는 말에 답이나 해. 어떻게 했어? 노름이야? 아니면 옛날 역전파 하던 방식대로 상납한 거야?”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말로 한 것보다 정확한 답이었다.

조봉진에게 회칼을 건네준 강성태는 이병렬을 돌아보았다.

“야! 여기 관리하는 새끼가 누구야?”

“심현조 형님입니다, 형님.”

“그 새끼 지금 불러.”

이병렬이 거칠게 지시하자 고개를 숙였던 덩치가 운동복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김상렬입니다, 형님. 지금 숙소에 성태 큰형님과 병렬이 형님, 진용이 형님이 와 계십니다, 형님.”

상대방이 뭐라고 한 모양이었다.

곤란한 표정을 지었던 숙소 덩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오시랍니다, 형님. 예, 형님.”

통화를 마친 숙소 덩치가 “바로 오십답니다, 형님.”하고 답을 한 다음이었다.

“야! 너 이리 와.”

이병렬이 왼편 끝에 서 있는 덩치를 불렀다.

한눈에도 숙소 막내라는 사실을 알 정도의 외모와 행동이었다.

“프라이팬 있냐?”

“있습니다, 형님.”

그나마 그 정도는 있는 모양인지 자신 있게 움직인 덩치가 싱크대 아래에서 참 오래돼 보이는 프라이팬을 꺼냈다.

“가스 불 켜고 그거 올려.”

의아한 눈치였으나 숙소 막내는 숨조차 조심하며 이병렬의 지시에 따랐다.

“냉동실에 아까 그 고기, 그거 프라이팬에 올려.”

“예, 형님.”

숙소 막내가 사람 머리만 한 크기의 고깃덩어리를 꺼내 비닐을 억지로 벗겼다. 열심히는 하는데 냉동한 지 오래돼서 살에 박힌 부분은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됐어. 그냥 올려.”

지켜보던 이병렬의 지시에 덩치가 프라이팬에 고기를 올렸다. 원래는 듣기 좋아야 할 고기 익는 소리가 지금은 역겨운 느낌으로 좁은 거실에 울렸다.

고기 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연기와 냄새가 서서히 거실에 퍼졌다. 그나마 뒷다릿살이라 기름이 적게 튀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침묵 속에서 조봉진이 움직여 의자를 가져왔다.

20분쯤 지나서 바깥에 승용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웅성대는 소리가 들린 뒤에 빌라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놈이 주방과 거실의 분위기를 보고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상체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심현조입니다, 형님.”

심현조는 척 보기에는 전혀 깡패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체형에 그저 그런 인상이었다. 오히려 그보다는 뒤따라 들어온 세 명이 한가락 하게 생긴 느낌이었다.

술을 마셨는지 심현조는 눈과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개기름을 바른 것처럼 윤기가 흐르는 얼굴이 말이다.

“심현조? 너 나 알지?”

“예. 형님.”

“여기 숙소 애들에게 내려준 돈, 네가 거둬 갔어?”

질문을 받은 심현조가 질책하는 눈빛으로 숙소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이 개새끼가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야, 이 새끼야? 아무리 배운 거 없고 막살아서 깡패가 됐지만, 한창 먹을 때인 애들 돈 뺏어서 겨우 한다는 짓이 저런 고기 사다 주는 거냐?”

훅, 달려 나간 이병렬이 심현조의 얼굴에 연달아 주먹을 꽂아 넣었다.

신강남파 넘버 투 이병렬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움찔, 뒤에 섰던 세 명이 어쩔까 하는 얼굴로 망설였다.

이런 게 신강남파라고?

숙소 돈 빼먹는 맛에 들려 이병렬에게 맞설지 말지를 고민하는 놈들이?

강성태는 이병렬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쩌어어억! 쩌어억! 쩌어어어억!

반항 따위 의미 없었다. 피하지도 못했고.

강성태의 주먹을 얻어맞은 세 놈이 뻣뻣하게 뒤로 넘어가 바닥과 입구의 신발이 늘어진 곳에 처박혔다.

퍼벅! 퍼윽! 콱! 콰작!

주먹과 팔꿈치, 머리통을 붙잡은 상태에서 무릎으로, 이병렬은 아예 심현조를 으깨다시피 두들기고 있었다.

말리지 않았다.

말릴 마음도 없었고.

“커흑.”

5분도 안 돼서 코가 뭉개지고, 눈 끝과 입술이 터져 얼굴이 온통 피로 물든 심현조의 머리칼을 이병렬이 세차게 움켜쥐었다.

“야! 연장 줘!”

이병렬이 손을 내밀자 조봉진이 잽싸게 회칼의 손잡이를 내밀었다.

“너는 거기 프라이팬 이리 가져와.”

누구 지시인데 어기겠나? 그것도 심현조와 함께 온 세 놈이 단숨에 널브러지는 꼴을 본 직후인데?

숙소 막내가 뜨거운 기름과 연기, 탄내를 사정없이 뿜어내는 프라이팬을 이병렬 앞으로 가져갔다.

저거로 때리면 수습이 곤란하지 않나?

강성태의 염려와 달리 이병렬은 눈짓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숙소 막내가 프라이팬을 거실 바닥에 내려놓은 직후였다.

“지금부터 딱 10분 준다. 그 안에 이거 다 처먹으면 이대로 용서할 건데, 만약 손톱 끝만큼이라도 남기면….”

휙! 서걱.

이병렬은 말로 하는 경고 대신 회칼을 내려 심현조의 목덜미를 거침없이 그었다.

한 치의 주저함도 없는 칼질이었다. 그래놓고도 이병렬은 회칼의 날보다 더 번득이는 눈빛으로 심현조를 들여다보았다.

“처먹으라고 이 개새끼야.”

나직한 경고에 놀란 심현조가 급하게 고깃덩어리에 손을 뻗었다가 화들짝 뗐다. 그러나 그는 이병렬의 눈과 그의 손에 들린 회칼을 보고는 아직 얼음덩어리인 부분을 향해 입을 처박았다.

“이익. 익.”

심현조가 고기를 뜯어 먹기 위해 발버둥 치는 바로 앞에서 이병렬은 고개를 돌렸다.

“진용아. 전화해서 대림동, 신월동, 강서구 식구들 전부 천안으로 출발하라고 해. 이 새끼가 고기를 한 조각이라도 남기면 내가 오늘 천안에 깡패란 새끼들은 모조리 씨를 말려버릴 거니까.”

“욱! 우욱!”

“이 씨발 새끼가 아직 여유가 있네? 어디? 서울에서 식구들 내려오고도 네가 그렇게 여유롭게 처먹나 보자. 정 안되면 내가 배를 갈라서 아예 창자에 바로 넣어줄 거니까 계속 그렇게 해.”

이런 면에서 강성태는 정말이지 이병렬의 적수가 아니었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이병렬의 경고를 얻어맞은 심현조가 열흘 굶은 개보다 더 악착같이 고깃덩어리를 붙잡고 물어뜯었다.

돼지고기 기름이 그의 얼굴에서 번진 피와 뒤섞여 처절한 느낌으로 보였는데, 겁에 질린 심현조는 목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이겨가며 씹지도 못한 고깃덩어리를 다급하게 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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