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1권 - 4화 (417/513)

《417》2부 21권 - 4화

번득이는 날을 향해 몸을 던지는 거, 절대 쉽게 할 수 있는 일 아니다. 그런데도 조태완을 잡아챈 김석문은 몸을 던지는 정영권의 회칼에 달려들었다.

콰악. 주르르륵.

김석문이 회칼의 날을 잡는 순간, 스펀지를 짠 것처럼 핏물이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흘러나왔다.

“너 이 새끼…?”

“성태 큰형님 욕하지 마십시오, 형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김석문은 독이 오른 모습이었다.

정영권이 진짜 대가 센 인간이었으면 분명 회칼을 잡아당겼다. 그런 뒤에 또다시 찌르면 손가락이 잘린 김석문은 막을 방법조차 없었다.

“이거 안 놔? 놔! 이 새끼야!”

그런데도 대가 부러진 정영권이 던진 협박은 이 정도 수준이었다.

꼬마 생활로 시작해서 산전수전 모두 겪었던 조태완은 이런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퍼윽! 퍽! 퍼으윽!

그는 대뜸 주먹을 날려 정영권의 눈과 울대, 그리고 명치를 갈겼고, 곧바로 팔을 뻗어 몸을 구부리는 그의 머리통을 두 손으로 잡았다.

휘익. 콰작!

마지막으로 조태완은 오른쪽 무릎으로 정영권의 턱을 올려붙였다.

털써-억.

얼굴이 엉망이 된 정영권이 바닥에 널브러지자 조태완은 아직 날을 들고 있는 김석문을 돌아보았다.

“그거 이리 내놔.”

“예? 예, 형님.”

피가 흥건한 왼손을 억지로 편 김석문은 그 와중에도 날을 붙들어 손잡이를 조태완에게 내밀었다.

회칼의 손잡이는 깨끗했다. 그러나 번득이는 날에는 김석문의 피가 이리저리 엉겨 있어서 조금 전의 상황이 살벌하고 위태로웠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회칼을 내려다보던 조태완은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잘 지내냐?’

김정훈도 이랬었다.

함께 지낸 세월이 쌓여가면서 눈빛을 보내지 않아도 조태완의 뜻을 모두 알아채 가려운 곳이 없도록 움직였었다.

그토록 허무하게 갈 줄 알았다면, 말이라도 한번 따뜻하게 해주는 건데.

“거기 수건 하나 가져와.”

안쪽에 있던 덩치 한 명이 급하게 수건을 가져온 다음이었다.

“이리 줘.”

조태완은 손을 내밀어 수건을 받았고, 이어서 김석문의 왼손을 당겼다.

“제가 하겠습니다, 형님.”

“날을 잡으면 빠르게 먼저 쳐야지. 영권이가 머뭇댔으니까 망정이지 칼을 잡아뺐으면 손가락 다 날아갔어, 인마.”

“죄송합니다, 형님.”

고개를 조아리는 김석문을 보며 조태완은 쓰게 웃었다.

강성태는 두 놈에게 똑같이 기회를 주었다.

그 뒤에 정영권은 현찰을 삥땅 쳤다가 저 꼴이 됐고, 강성태의 배려를 마음에 담은 김석문은 조태완의 마음을 아리게 하고 있었다.

수건을 꼼꼼하게 감아준 조태완은 아직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정영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한 번 썩어버린 놈들은 정말 돌이킬 방법이 없는 건가?

아니지.

이놈이고 저놈이고 삐딱하게 살아서 깡패가 됐겠지만, 김석문처럼 아직 썩은 물에 물들지 않은 놈은 얼마든지 바른길로 끌어줄 수 있지 않을까?

“너는 얼른 병원에 다녀오고, 나머지는 저 새끼 타이로 묶어서 병렬이 오면 넘겨.”

조태완의 지시가 떨어지자 그때까지 긴장한 얼굴로 있던 덩치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빨리 병원 다녀와.”

“병렬이 형님 오시면 가겠습니다, 형님.”

김석문을 보며 조태완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이 모자랐던 놈에게 김정훈이 씌운 건 아닌가 싶어서였다.

“이 새끼가 수건 좀 감아주니까 뵈는 게 없나, 어디에서 말대꾸를 해? 얼른 안 가?”

“죄송합니다, 형님.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기회를 주었던 강성태를 향한 원초적인 충성심, 손가락을 잃더라도 조태완을 지키겠다는 각오, 상체를 깊게 숙이는 김석문의 모습이 신기할 정도로 김정훈을 닮아 있었다. 그런데 상체를 숙였던 김석문이 아예 바닥으로 몸을 숙여 스마트폰을 집었다.

“여보세요? 예? 예, 형님.”

그러고 보니 통화를 하려다가 정영권이 설치는 바람에 스마트폰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조태완은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넘겨받았다.

“여보세요? 병렬이냐? 그래. 자세한 건 와서 듣기로 하자. 그래.”

이병렬과 통화한 조태완은 스마트폰을 김석문에게 돌려주었다.

“얼른 병원으로 가.”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이제야 김석문은 병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존 보스만과 짧은 인사를 나눈 강성태는 곧장 곤잘레스 회장의 집무실로 향했다.

마카오 회의가 다가오면서 곤잘레스가 사용하는 공간 바깥의 거실 분위기는 이전과 다르게 팽팽했다.

노크와 함께 문을 열었던 존 보스만이 시선으로 안쪽을 가리키고 몸을 비켰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게, 미스터 강.”

어지간해서는 속을 보이지 않는 곤잘레스 이두안이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지금 그가 평소와 다름없다고 여기겠지만, 강성태의 눈에는 날카롭게 올라온 긴장이 분명하게 보였다.

“커피 하겠나?”

“감사합니다.”

강성태는 직접 커피 테이블로 움직여 도자기 주전자에 담긴 커피를 따랐다.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다가 커피의 맛까지 지켜주는 도자기 주전자는 볼 때마다 탐난다.

“나도 한 잔 부탁하네.”

강성태는 또 다른 잔에 커피를 부어서 소파로 향했다.

둘이서 커피를 앞에 두고 소파에 마주 앉은 다음이었다.

“멕시코 정부가 경호팀을 파견했다고 연락해 왔네.”

커피잔을 잡은 곤잘레스 이두안이 뜻밖의 소식을 내놓았다.

“거절하면 멕시코 정부를 무시했다며 사업을 어렵게 하겠지. 중국과 보리스 파리오가 뒤에서 그런 계획을 세웠던 모양이네.”

답답한 속을 털어놓고 나자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이두안이 커피를 마셨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멕시코 정부가 공식적으로 보낸 경호원이라면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누지 않는다는 보장이 필요해.”

“그건 제가 만들겠습니다. 다만, 새로운 경호팀이 오게 되면 머리를 감싼 헬멧을 쓰신 것만큼 불편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만 이해해 주십시오.”

잔을 내려놓은 이두안이 다리를 꼬고는 등받이 위로 왼팔을 길게 걸쳤다.

어느 정도는 마음이 놓인다는 몸짓이었다. 실제로 그는 긴장을 반쯤 털어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일을 예상했었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강성태의 답을 들은 곤잘레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다시 긴장해야 하나?”

“경호 방법을 몇 가지 고민했었습니다. 그중 가장 무식한 방법을 동원하면 멕시코에서 보낸 경호팀을 뒤에 두고도 회장님은 안전할 겁니다.”

“설마 정말 헬멧을 쓰란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짓궂은 곤잘레스의 질문에 강성태가 능청맞게 답하며 둘이서 함께 웃었다.

“비용이 많이 듭니다.”

이어진 강성태의 말에 눈을 크게 뜬 곤잘레스가 과장된 몸짓으로 어깨를 들썩였다.

세계적인 거부인 곤잘레스 이두안에게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할 정도의 금액이 얼마인지 궁금하다는 느낌이었다.

“생명 수당을 모두 포함해서 한화로 200억 원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흘 회의로 계산하면 하루에 한화 70억 원이 아닌가?”

“동원하는 인원의 항공료, 체류비, 그 외 모든 비용을 포함한 금액입니다.”

입술을 내민 곤잘레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지급하면 되겠나?”

“우선 제가 사용하고, 한국으로 돌아오시면 그때 주십시오.”

“그래서야 내가 망신당하는 꼴이지. 먼저 계약금으로 70억 원을 보내지. 바깥에 있는 루드릭에게 지시할 테니 계좌 혹은 지불 방법을 알려주게.”

“그렇다면 50억 원은 해외로 송금해 주십시오.”

도대체 계획이 뭐야?

눈을 좁힌 곤잘레스 이두안을 향해 강성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과하게 움직인다는 건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지금 내가 자네를 가장 필요로 하는 이유 중 하나 아닌가?”

“회장님께서는 방법을 모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카오 회의 이틀 전에 제가 먼저 출국하겠습니다. 참고로 미스터 은과 함께 갑니다.”

이 정도 답이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곤잘레스 회장만큼은 알아들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잠시 강성태를 바라보던 그가 가볍게 웃는 얼굴로 내용을 밝히지 않은 계획을 받아들였다.

“자네가 실종된다거나 혹은 불행한 소식이 들리면 출국하지 말라는 뜻이겠지?”

“제 계획은 완벽하게 사업권을 확보해 회장님과 함께 돌아오는 겁니다.”

“부탁하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말이지 홀가분하다는 얼굴로 곤잘레스 이두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

안산으로 향하던 길이라 이병렬은 제법 늦게 조태완에게 도착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을 통해 상황을 생생하게 듣고 온 참이었다.

자리에 앉은 조태완은 먼저 정영권의 행동을 가능한 한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영권이야 워낙에 매사 끼가 있었고, 반대로 대가 약해서 이 정도로 끝났지만, 만약 비슷하게 돈을 삥땅 치는 업장이 있다면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말끝에서 조태완은 근심 섞인 음성으로 염려를 내놓았다.

“손부터 치료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형님?”

“우리 사는 모습이 이런 거지. 아까 소독하면서 유리 박힌 건 다 꺼냈으니까 괜찮을 거다. 봐서 정 불편하면 그때 병원에 가보마.”

조태완은 붕대로 감아놓은 손을 내려다보고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시선을 들었다.

“안산은 왜 갔어?”

“숙소마다 동생들 통장에 생활비를 입금해주잖습니까, 형님. 그거 내놓으라고 해서 혼자 처먹는 놈이 있을 거 같아서 천안까지 한 바퀴 돌아보려고 했는데, 그사이 영권이 새끼가 사고를 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잘했다. 그렇게 자꾸 관리해야 긴장도 하고 조심하지. 대신 그 일은 조금 미루고 보스를 먼저 만나 봐. 영권이 저놈 대신 클럽 관리할 놈 정하고, 비슷한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대비도 해.”

“혹시 생각해둔 동생이 있으십니까, 형님?”

이병렬의 질문을 받은 조태완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 건 이제 너하고 보스가 의논해서 정해야지. 지금도 봐라. 전에 내가 데리고 있던 놈이랍시고 영권이도 나를 상대로 모사치려고 했잖냐.”

“그럼 보스에게 연락해서 만나보고 처리하겠습니다. 그런데 형님?”

“영권이도 알아서 해. 그쪽 숙소에 임장진이라고 나름 똘똘한 놈이 있으니까 그놈 조심하고.”

눈빛만 보고도 속을 짐작한 것처럼 조태완은 뒤처리까지 모두 이병렬에게 맡겼다.

“나는 꼬마 때부터 보고 배운 게 돈질이었다. 위에 찔러주고, 아래에 베풀면 그만큼 돌아온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랬었다. 솔직하게 나도 보스가 느닷없이 장부를 확인하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그만큼 아래쪽에서 흔들릴 테니까 영권이 핑계로 네가 좀 더 단속해.”

“예, 형님.”

이병렬이 듬직하게 답한 뒤였다.

“보스는 우리랑 아예 그릇 자체가 달라. 돈 욕심 없고, 애들 병풍 세워서 허세 떠는 법도 없고, 그 젊은 나이에 업소 출연자들에게 눈길 한 번 안 주는 것도 그렇고. 그런 보스니까 이번 일도 다 이유가 있을 거다. 그렇게 믿고 가자.”

“감사합니다, 형님.”

이병렬의 인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차린 조태완이 그나마 다행이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바르지오에게 들렀던 강성태는 전화를 받기 무섭게 조태완을 향해 출발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상체를 깊게 숙이는 김진용과 덩치들 앞에서 조태완과 이병렬은 예상보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별거 아니라니까 이렇게 달려와?”

강성태가 고개를 돌리자 시선을 받은 김석문이 다시금 상체를 깊게 숙였다.

“그나마 저놈이 날을 붙잡고 버틴 덕분에 안 다쳤다. 안 그랬으면 또 병원에 가 있을 뻔했어.”

강성태는 시선을 내려 김석문의 왼손을 보았다.

“서른 바늘 정도 꿰맸는데 다행히 신경은 살아 있다네.”

강성태가 김석문을 질책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조태완의 설명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애썼다. 앞으로도 형님 잘 모셔.”

“열심히 하겠습니다, 형님.”

김석문을 다독인 강성태는 이병렬의 곁에 앉았다.

조태완은 먼저 아침에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회계를 제대로 정리하라는 지시가 이런 사고를 일으킬 줄은 몰랐습니다.”

“영권이 놈이 정직하게 클럽을 운영했다면 아무 일 없었을 건데, 삥당 친 게 걸리게 생기니까 순간적으로 눈이 뒤집힌 거지.”

말을 마친 조태완이 이병렬을 돌아보았다.

“마침 병렬이도 숙소에 내려준 돈을 뺏는 건 아닌가 해서 안산부터 천안까지 돌아보려던 참이었다는데 그런 모습이 영권이 숨통을 조인 게 아닌가 싶다.”

몸이 나을 때까지 쉬라고 했더니 조직을 다지기 위해 말없이 움직였던 건가?

강성태는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이병렬을 돌아보았다.

“예전에 숙소 관리하라고 현찰을 내려주면 혼자 다 처먹고 숙소에는 쌀하고 김치, 돼지비계만 잔뜩 넣어주던 놈들도 아직 그대로 있어. 그러니까 아직 그 버릇을 못 버린 놈들이 분명 있을 거야.”

너무 쉽게 생각했었나?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먼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한 뒤에 그걸 놓고 형님과 병렬이랑 의논할 생각이었습니다. 그저 조사만 하는 거라고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었나 봅니다.”

생각을 밝힌 강성태는 조태완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이어서 이병렬을 찾았다.

“미안하다.”

“보스가 고문하고 넘버 투에게 사과하는 조직이 어디 있어? 그냥 어떻게 할 생각인지만 말해. 무슨 일이든 보스 하자는 대로 다 따를 테니까.”

강성태가 건네는 진솔한 사과가 아무래도 조태완의 심장을 뜨겁게 만든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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