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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0권 - 20화 (413/513)

《413》2부 20권 - 20화

차웅진이라는 고개를 넘고 난 강성태에게 남은 과제는 마카오 회의를 무사히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다시 찾은 호텔 룸에서 바르지오 만시니는 엄청난 양의 영상을 차례대로 모니터에 올려주었다.

“아카시 조직을 부순 일로 삼합회에 비상이 걸린 눈치다. 여기 이 사람 보이지? 유리 마고첸프라고 러시아 특수부대 교관 출신인데 일곱 명과 함께 홍콩으로 들어왔어.”

말을 마친 바르지오는 마우스를 조작해서 다른 영상을 올려놓았다. 섭충명인 듯한 남자가 호텔 복도를 걷는 장면이었는데 눈매와 볼이 예전과 확연하게 달라 보일 만큼 흉측하게 바뀌어 있었다.

“섭충명?”

“맞아. 궁지에 몰리더니 인상까지 바뀌었어. 그의 동선, 문자, 통화를 분석해 보면 마카오 회의에서 그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미스터 강이 나서지 않아도 삼합회에서 제거하지 싶다.”

그거야 뭐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으니까.

강성태는 입술을 내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홍콩에서 나를 뺏긴 건 말할 것 없고, 시내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일 때문에 미스터 강에 대한 원한이 엄청나더군. 한마디로 죽을 위기에 몰려있고, 그만큼 독이 잔뜩 올라 있지.”

“호텔 예약 상황은?”

“마카오에서 곤잘레스 회장이 머물 만한 모든 호텔의 객실을 삼합회가 예약했다.”

“어디로 가든 그곳에서 끝장을 보겠다?”

강성태의 질문에 바르지오가 당연하지 않냐는 투로 시선을 던졌다.

“존 보스만에게 자료 넘겼지?”

“하루에 두 번, 오전과 오후.”

알려줄 내용을 모두 전했다고 여겼는지 바르지오는 강성태를 향해 의자를 돌려 앉았다.

“경호 파트 지휘는 언제부터 할 생각이지?”

“동선부터 좀 더 확인하고 하자. 자료를 최대한 많이 모아둬. 계획과 점검, 훈련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길지만, 실제 작전은 짧게 끝난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누가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또 얼마나 정확하게 분석하느냐에 따라 죽고 죽이는 싸움의 승패가 갈린다.

“나 역시 삼합회에 갚을 빚이 있으니까 그 점은 맡겨 둬.”

다부진 바르지오의 대꾸를 들은 강성태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 뒤에 방을 나섰다.

숨 막힐 정도로 급한 일은 없었지만, 반대로 촘촘하게 늘어선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터라 생각보다 여유가 많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강성태는 로비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은선곤과의 저녁 약속을 위해서였다.

**

승용차로 한 시간을 달린 소신영은 양주 외곽의 빌라에 도착했다.

앞에는 밭, 뒤에는 작은 산들이라 뜬금없이 서 있는 빌라였는데, 무인 모텔처럼 주차장에 들어간 다음 안쪽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는 구조였다.

기사가 열어주는 문으로 내린 소신영은 주차장 안쪽에서 서 있던 직원의 인사를 받았다.

“두 분은?”

“도착하셨습니다.”

소신영을 위해 직원이 얼른 통로 문을 열었다.

이전에는 주택을 개조한 요정들이 강남에 몇 곳 있었다.

식사와 함께 유흥을 즐기고, 밖으로 유출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즐겨 찾았는데 빌어먹을 광수대 과장이라는 인간이 집요하게 단속하는 바람에 지금은 양주까지 움직여야 했다.

계단을 올라간 그가 현관에 들어선 다음이었다.

“어서 오세요, 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익숙한 마담이 20대 후반의 눈이 번쩍 뜨이는 미녀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누구?”

“제가 데리고 있는 아이입니다. 몇 달 됐는데 인사드릴 기회가 없었습니다.”

봐라. 그동안 얼마나 바쁘고 힘겹게 살았으면 이런 아이가 있는 줄도 몰랐을까.

고개를 주억거린 소신영은 뭐라 대꾸하지 않고 안쪽 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기는, 강성태에게 얻어맞아 시커멓게 멍든 뺨을 하고 요정을 찾기도 어려웠을뿐더러, 괜히 이런 곳에 왔다가 그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모시겠습니다.”

인상을 찌푸려 강성태의 생각을 떨쳐낸 소신영은 마담의 안내를 받으며 방으로 향했다.

“늦었습니다.”

“우리도 막 도착해 있던 참이오. 어서 앉으십시오.”

고강준과 이우섭이 몸을 일으켜 소신영을 맞았고, 뒤따라 들어온 마담이 재킷을 받아주었다.

“의논할 게 있으니까 저녁은 잠시 뒤에 하지.”

“네, 회장님.”

상에 놓였던 잔에 차를 따라준 마담이 공손하게 고개 숙이고는 방을 나섰다.

모처럼 셋이서 오붓하게 모였다.

혹시 강성태가 지켜볼지도 모르니까.

소신영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서 혹시라도 CCTV 카메라가 있는지를 먼저 살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원.

방안을 꼼꼼하게 살핀 뒤에야 소신영은 시선을 내렸다.

“어떻습니까? 이번 사건은?”

“이대로 마무리되는 거 같습니다. 가장 염려했던 일본 정부가 조용하게 덮자는 기조여서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다는 판단입니다.”

고강준의 답을 들은 소신영이 이우섭을 돌아보았다.

그는 대답 대신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여 정치권도 같은 판단이라는 뜻을 전했다.

“이번 사건과 성 착취 사이트를 적발한 공로로 강선영이라는 검사가 대통령 표창, 총장 표창을 받게 될 거 같습니다.”

“흐음.”

고강준의 부가 설명을 들은 소신영은 못마땅한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정말 다른 선택이 없는 거 같소. 어설프게 건드렸다가 우리까지 드러나느니 멕시코 건설로 출국할 때까지 그 인간을 지켜주는 게 최선이라고 봅니다.”

“허어, 그것참.”

소신영의 의견에 이우섭이 기다란 탄식을 내놓았다.

“그 말도 안 되는 재단의 운영은 어떻게 됩니까? 아니, 요즘 세상에 독립유공자를 위한 재단이라니. 이미 나라에서 매월 충분히 보상하고 있는데 굳이 일본을 자극하는 그런 재단을 만들어야 하는 겁니까?”

“그것도 말만 우리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거지, 은선곤이라는 강명그룹 서자 출신이 감독을 맡는 바람에 한 푼도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혹여나 돈이라도 빼돌릴 수 있을까 눈빛을 빛내던 이우섭이 맥빠진 얼굴로 입술을 뒤틀었다.

“저녁이나 드십시다.”

“에효. 이런 날은 그저 시원하게 회포를 풀어줘야 하는 건데.”

마약을 사용하는 질펀한 술자리를 말했던 이우섭이 제풀에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금방이라도 불쑥 문이 열리며 강성태가 들이닥쳐서 “뺨 대.” 할 것만 같은 생각에서였다.

“흐음.”

고강준과 소신영은 말없이 한숨만 내쉬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하나둘 얽히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강성태를 지켜야 하는 꼴이 되었고, 그가 존재하는 한 과거처럼 질펀한 음주 가무는 꿈에서조차 바라기 어려운 일이었다.

**

호텔 근처에 있는 깔끔한 고깃집이었다.

“레스토랑이 더 좋은 거 아냐?”

“미국에서 살 때 짜장면, 갈비, 설렁탕이 엄청 그리웠습니다.”

“그런 식당은 미국에도 있잖아?”

“카피는 오리지널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식당을 둘러본 은선곤이 반짝이는 눈매를 하고 웃었다.

기다란 복도 양쪽 좌우에 방을 만들어놓고, 테이블 주변을 아래로 파놓은 구조였다. 예상보다 벽이 두꺼워서 나직하게 하는 말이 넘어가지 않을 정도였다.

“우선 자료를 잠깐 보십시오.”

옆에 내려놓았던 가방에서 세 개의 파일을 꺼낸 은선곤이 강성태가 보기 편하게 돌려놓았다.

“보시는 왼편이 신강남파가 운영하는 업장의 관리 실태입니다. 가운데는 카지노인데 규모가 워낙 커서 따로 분류했습니다.”

꼼꼼하게 보란 뜻은 아닌 거 같아서 강성태는 은선곤이 가리킨 파일을 빠르게 살폈다.

“이렇게 봐서는 모르겠는데? 이걸 내가 다 살펴봐야 하나?”

“그 파일들에 있는 내용은 컴퓨터에 저장해 놓아서 언제고 접속만 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보고드리기 편하게 출력해 온 겁니다.”

“마지막 이건?”

강성태는 세 번째 서류를 들춰보았다.

“지금 운영하는 업장의 운영 개선 방안입니다.”

“보고서는 나중에 천천히 보기로 하고 혹시 당장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있나?”

“판공비 부분이 아무래도 걸립니다.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현금 매출이 확실히 수상합니다.”

은선곤의 말이 끝날 때쯤 음식이 들어와 대화가 잠시 끊겼다. 거기에 고급 식당답게 나이가 있어 보이는 여직원이 고기를 직접 구워주어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막말로 배불리 먹는 자리가 아니어서 잠시 은선곤의 미국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적당하게 식사를 마쳤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벨을 눌러주세요.”

여직원이 방을 나간 다음이었다.

“그룹 감사실과 회계팀, 기획실에서 세 곳의 클럽을 차례대로 방문했었습니다.”

은선곤은 이 순간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아까 중단했던 대화를 바로 꺼내 들었다.

“세 곳의 클럽을 세 팀이 돌았으니 총 아홉 번의 현금 매출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장부에 기재된 건 두 번밖에 없었습니다.”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지만, 다친 사람이나 혹은 이쪽 표현으로 은퇴한 사람들을 위해 현금이 필요할 때가 있거든. 혹시 그게 아닐까?”

“그렇게 사용했다면 완벽한 탈세, 배임, 횡령입니다.”

“충분히 짐작한 거 같은데 해결 방법은?”

“우선 현금이 얼마나 들어오고 어떻게 나갔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먼저고, 다음은 합법적인 선에서 정상적으로 지원하는 게 나중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이라면 멕시코에 건설하는 신도시를 말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회장님.”

마치 쿠크리를 들었을 때의 강성태처럼 은선곤은 다부진 태도였다.

“그 일을 전부 태완이 형님과 병렬이가 알아서 했거든. 내가 갑자기 현금 흐름에 대해서 따지고 들면 아무래도 불편해질 수 있어. 그러니까 며칠만 내게 시간을 줘.”

“알겠습니다, 회장님.”

“엔터테인먼트나 지방의 다른 업장들은?”

“회계랄 것도 없이 엉망입니다.”

강성태의 질문에 은선곤이 자르듯 답을 내놓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은선곤의 표현대로 탈세, 배임, 횡령만큼은 속히 바로 잡는 게 좋았다.

“그건 그렇고 부탁이 하나 있는데.”

강성태의 요청에 은선곤이 궁금한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

밤 9시쯤 된 시간이었다.

정장 차림의 강성태는 은선곤과 함께 이모 장숙경의 집으로 향했다.

“무슨 일인데 이 시간에 와?”

문을 열어준 장숙경은 은선곤을 보고는 누구냐는 듯 시선을 먼저 던졌다.

“안녕하세요, 이모부?”

“그래. 오랜만이다. 민정이 차 사는 거 도와줬다며?”

정말 오랜만에 보는 이모부 김진규와 인사를 나누었고,

“왔어?”

“오빠?”

마침 집에 있는 김민재와 김민정과도 눈짓을 던지는 거로 인사를 나눴다.

“이분은 강명그룹 그룹 비서실의 은선곤 실장님이세요.”

“안녕하십니까, 은선곤입니다.”

“아, 예. 우선 앉으세요.”

은선곤이 건네주는 명함을 받은 김진규가 좁은 거실의 낡은 소파를 가리키며 자리를 권했다.

“커피 괜찮으세요?”

“감사합니다.”

“엄마는 앉아 계세요. 제가 준비할게요.”

은선곤의 세련된 외모와 태도에 눌린 것처럼 김민정이 전에 없이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커피를 준비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작고 익숙한 주방에서 커피를 준비하는 김민정까지 소파에 귀를 쫑긋 세운 상황이었고, 장숙경, 김민재도 궁금한 눈으로 강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모부.”

강성태는 품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게 뭐냐?’

테이블로 시선을 내렸던 김진규, 장숙경, 김민재가 의아한 얼굴로 다시 강성태를 찾았다.

“제가 외국에 있을 때 모았던 돈하고, 얼마 전에 멕시코에 다녀와서 받은 수당입니다.”

“그걸 왜?”

김진규의 질문이 떨어질 때, 김민정이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옛날 찻잔에 커피를 담아와 강성태와 은선곤 앞에 놓아주었다.

“저는 이모부하고 이모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생각하며 컸습니다. 저기 민재나 민정이도 친동생이라고 여겼고요.”

‘내가 왜 동생이야? 형이지.’

불만스럽게 눈을 떴으나 김민재는 대놓고 말을 하지는 못했다.

“이모부나 이모도 그렇게 여겨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잠시 말을 끊은 강성태는 장숙경을 돌아보았다.

“이모. 민정이 차 사던 날 멕시코에서 아는 분이 있어서 만나러 간다고 했었잖아요. 그분하고 여기 강명그룹이 커다란 사업을 진행하는데 저도 당분간 함께할 거 같아요.”

이모네 식구들이 거의 비슷하게 은선곤을 돌아본 뒤에 당황한 표정으로 강성태에게 시선을 가져왔다.

“민재, 민정이와 똑같이 한 식구로 키워주신 거, 그리고 길을 잃은 제게 통장 건네주셔서 멕시코의 사업가분과 인맥을 쌓을 수 있었던 거, 모두 이모부와 이모, 여기 민재와 민정이 덕분입니다.”

울컥, 뭔가 올라온 모양이었다.

그 단단하던 장숙경과 그에 못지않은 김민정의 눈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목동 아파트 계약서예요. 제가 산 뒤에 드리고 싶었는데 등기를 하려면 서류가 필요해서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거 받아주시고, 집 옮기세요.”

왜 그랬을까?

강성태가 내용을 말하기 무섭게 김진규는 오른쪽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아.”

그가 내쉬는 숨소리로 봐서 올라온 감정을 억지로 누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져서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잠시 감정을 누른 김진규가 “후-.”하는 숨을 뱉으며 고개를 가져왔다.

“됐다. 너를 키우면서 한 번도 대가 바란 적 없었고….”

말을 하던 이모부 김진규가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이렇게 알아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더 바라는 거 없다. 그냥 함께 살아서 좋았어. 그러니까…. 이건 넣어둬.”

입술을 굳게 했지만, 강성태를 키우며 느꼈던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온 것처럼 김진규는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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