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0권 - 18화 (411/513)

《411》2부 20권 - 18화

이병렬은 강성태를 차로 안내했다. 그런 뒤에 조용하게 뒷문을 열어 안쪽에 앉혔다.

안감에 피가 잔뜩 밴 이병렬의 재킷을 강성태가 내릴 때였다.

“이거로 먼저 닦아.”

조수석의 문을 연 이병렬이 기어 박스에 있던 물티슈를 내밀었다.

손만 문질렀는데도 하얗던 물티슈가 보기조차 역겨울 정도로 검붉게 물들었다.

“입구에 있던 일본 놈들, 이 씨발 새끼들이 전부 총을 들고 있더라고. 우리 애들도 당했지만, 저기 검사 양반이 동원한 기동대 다섯 명도 총에 맞았어. 아무래도 사건 크겠다.”

뒷문과 차의 지붕을 붙든 이병렬의 말이었다.

예상이 맞았다.

촬영장 입구에서 터졌던 총소리는 위협이 아니라 살상이 목적이었다.

미친 새끼들.

물티슈를 마구 뽑은 강성태는 먼저 쿠크리의 날과 손잡이를 닦았다.

“얼굴을 먼저 닦지?”

“동료라고 생각하니까.”

“하긴.”

아까의 장면을 떠올렸는지 이병렬이 더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쿠크리를 대강 닦은 강성태는 물티슈 여러 장을 뽑아 세수하듯 얼굴을 문질렀다.

그 직후였다.

키란과 김진용이 다가왔다.

“아르윈은?”

“등을 길게 베였는데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강성태는 의아한 눈으로 키란을 보았다.

바닥에 쓰러졌던 그가 일어서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내가 나올 때까지 못 일어나던데?”

“허리 바로 위쪽 근육을 다친 거 같습니다.”

염병.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자 안도의 한숨과 함께 욕이 저절로 나왔다.

“눈은 괜찮아?”

“형님이 멈추셨잖습니까?”

영어로 주고받은 대화였다.

물론 우리말로 했어도 이병렬과 김진용은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과 대답이었다.

강성태의 쿠크리를 키란이 휘감았을 때 말이다.

곧바로 강성태가 팔꿈치로 키란의 왼쪽 눈을 때렸었다.

‘형님이 멈추셨잖습니까?’라는 키란의 말은 그다음 동작을 의미했다.

눈을 때린 강성태가 쿠크리를 휘감았다면, 키란은 오른손 손목을 잃어버릴 상황이었다.

확실히 오랜 동료이자 구르카 용병답게 그는 뒤에 펼쳐질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강성태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손목을 잃었을 텐데도,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형님이라고 외쳐주었다.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강성태의 시선을 받은 키란이 계면쩍게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 대화와 시선이 지루했는지 이병렬이 김진용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쪽 분위기는 어때?”

“검사님이 보도국장님과 의논하는 거 같은데 내용은 듣지 못했습니다, 형님.”

“씨발. 잘 정리돼야 하는데.”

덩치들이 몰려있는 촬영장 안쪽을 돌아본 이병렬이 씹듯이 혼잣말을 뱉어냈다.

“가서 보스가 입을 옷 좀 가져와.”

이병렬의 지시를 받은 김진용이 주차장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옷을 갈아입고 나서 움직일 참이었다.

그런데 옷보다 먼저 강선영과 이세종이 승용차로 다가왔다. 두 사람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인 것처럼 이종환이 덩치들과 함께 뒤따르고 있었다.

대강 닦았다고 해도 머리칼과 얼굴 구석에 피가 잔뜩 굳어 있었고, 상반신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거기에 목숨을 내놓고 싸운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강성태가 쿠크리를 휘두른 모습을 강선영은 처음 보았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참혹한 현장을 확인하고 온 길이라 강선영과 이세종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억지로 내놓은 이세종의 질문에 강성태는 눈짓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런 뒤에 강선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깐 자리 좀 피해줘요.”

“키란은 우리 말을 못 알아듣고, 병렬이는 어차피 알아야 할 사람이라 괜찮아. 함께 들어.”

이병렬을 돌아보았던 강선영이 의아할 정도로 순순히 강성태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여기 이병렬 씨가 조언해준 대로 경찰 기동대랑 계장들은 입구에 대기시켰고,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서 경찰특공대를 요청했거든. 대략 20분이면 도착할 거야.”

그럼 그렇지.

당황한 상태에서 이병렬의 도움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말을 하면서 강선영은 몇 번이나 마른침을 삼켰다.

처음 경험하는 참혹한 현장이 준 충격을 누르지 못한 상태에서 피를 뒤집어쓴 강성태를 보자 자꾸만 구토가 올라오는 눈치였다.

“김명동 변호사의 시체를 확인했어.”

힘겹게 말을 한 강선영이 다시 마른침을 삼켰다.

일본도를 휘둘렀을 테니 그의 시신 역시 참혹한 모습일 테고, 그 장면을 떠올린 게 분명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데?”

강성태가 질문을 건네자 먼저 숨을 길게 내쉰 강선영이 입을 열었다.

“일단 이렇게 해. 차웅진이 재산을 넘기는 데 앙심을 품은 야쿠자 조직원들이 집단으로 살상을 벌인 거, 어때?”

“그렇게 정리할 수 있겠어?”

“말했잖아. 기동대와 검찰 수사관들을 입구에 두었다고. 당장 우리 말고는 본 사람 없어.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 JBC에서 특종으로 긴급 보도하고, 그 뒤에 내가 보고서 올리면 적당하게 처리될 거 같기도 해. 대신….”

덩치들이 삥 둘러선 촬영장 안쪽을 돌아보았던 강선영이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일본 폭력 조직원들이 대놓고 권총을 사용한 거로 최대한 무마할 건데, 저쪽도 너무 많이 죽었어. 다친 사람도 많고. 또 권총에 사망한 숫자도 셋이나 돼.”

아르윈의 권총에 죽은 놈들이 있어서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생각은 나쁘지 않은데 우리가 아무리 말을 맞춰도 야쿠자 놈들이 진술하고 나면 반드시 뒤에 문제가 생겨.”

강성태의 지적에 강선영은 뒤가 막막한 표정이었다.

다급한 상황이라 길게 생각할 게 없었다.

“이렇게 하자.”

강성태는 원래 계획했던 마지막을 꺼냈다.

강선영과 이세종, 이병렬이 궁금한 눈으로 강성태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차웅진은 지난날을 반성하는 의미로 전 재산을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에게 써달라며 내놓으려고 했었다. 원래는 JBC에 공식적으로 내놓을 생각이었는데 야쿠자들이 그 사실을 알고 차웅진을 위협하며 막았던 거고.”

강선영이 미간을 좁혀 가며 강성태의 말을 기억하려 애썼고, 이세종은 ‘차웅진을 영웅으로 만들자고?’ 하는 얼굴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다음이 뭔데?”

“야쿠자들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차웅진은 그놈들에게 밀리지 않을 사람을 찾았는데 그게 나였어.”

뭐야? 이 전개는?

독박 쓰려는 거냐?

말을 듣고 있던 이병렬이 날카롭게 눈매를 빛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원래는 내가 받아서 세금을 정리하고 JBC에 넘길 계획이었던 거지. 차웅진은 자기 이름이 나오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라도 지난 과거를 반성하려던 거고.”

“계속해 봐.”

“그런데 그 계획을 알아챈 야쿠자들이 내가 나타나자마자 차웅진과 납치해두었던 김명동 변호사를 살해해 버린 거지.”

오호라?

강선영의 눈에 감탄이 가득 올라왔다.

“실제로 두 사람을 살해한 건 야쿠자 놈들이라 거기까지는 진술이 엇갈릴 게 없잖아. 나는 달랑 셋이서 칠십이 넘는 숫자를 상대로 차웅지을 지키려 했었고, 그 뒤에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거로 넘겨보자.”

마지막 순간에 강선영이 눈가를 찌푸렸다.

정당방위치고는 너무 과하게 손을 썼다는 의미로 보였다.

“김명동 변호사 가방을 확인해 봐. 서류가 모두 작성돼 있을 테니까 세금을 내가 부담하고 JBC에 넘길게.”

강선영은 쉽게 답을 내놓지 못했다.

계획이 솔깃하기는 한데, 그만큼 부담스러운 눈치였다.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애쓴 후손에게 모두 사용해달라던 고인의 뜻을 존중하겠다. 그래서 JBC에 넘기겠다. 원래는 차웅진과 내가 인터뷰할 생각이어서 이세종 보도국장을 불렀는데 야쿠자에 의해 이런 참변이 일어난 거다.”

“그렇게 하면 여기 국장님이야 촬영장에 온 목적이 분명하게 설명되는데 그럼 나는? 뭐라고 해야 하지?”

“김명동 변호사와 통화했고, 만나기도 했었잖아. 야쿠자들이 살해 위협까지 하는 상황이라 현직 검사인 너한테 도움을 청했다고 해. 좋은 취지인 걸 알고 도움 주려고 나섰다가 사건 현장을 지휘하게 됐고.”

두통을 앓던 사람이 진통제를 먹은 것처럼 찌푸리고 있던 강선영의 얼굴이 슬며시 펴졌다.

“이세종.”

“예, 회장님.”

이건 어떻게 얽힌 관계야?

두 사람의 사연을 알지 못하는 강선영이 의아한 눈빛으로 강성태와 이세종을 번갈아 보았다.

“나머지는 고강준, 이우섭, 소신영과 의논해서 내가 해결할 테니까 최대한 감성적인 보도를 만들어. 일본 놈들이 우리 기업인과 변호사를 일본도로 살해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중간 역할을 하는 나까지 죽이려 했었고.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런 게 바로 제 전공입니다, 회장님.”

가뜩이나 공을 세우고 싶어 하던 이세종이었다.

강성태의 요청을 받은 그는 살점이 두둑한 족발을 받은 개처럼 열정을 보였다.

대강 의논은 끝났다.

다만, 후폭풍이 염려되는 데다, 현직 검사가 이런 식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게 부담스러운지 강선영은 떨치지 못한 부담을 머리에 이고 있는 눈치였다.

강선영이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바깥에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경찰특공대 같은데?”

시선을 돌렸던 이병렬이 말하기 무섭게 주차장 저쪽에서 경광등 불빛이 번쩍였다.

요란한 사이렌과 경광등 불빛이 강선영의 결정에 도움을 주었던 모양이었다.

“우선 그렇게 하자. 저기 있는 우리 쪽 폭력 조직원은 차웅진 회장과 강성태,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모였던 거야. 우리 쪽 조직원 중에서 헛소리하는 사람 나오지 않게 입단속 잘해.”

강성태를 향해 다부지게 뜻을 밝힌 강선영이 목에 건 검사 신분증을 벗어 손에 쥐고 주차장 쪽으로 움직였다.

“회장님. 경찰특공대가 진입하는 장면을 찍어두면 나중에 보도할 때 그림이 좋습니다. 특별한 말씀이 없으시면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세종이 바쁘게 촬영장 안쪽을 향해 뛰었다.

그동안 상체를 들어 주차장 쪽을 살폈던 이병렬이 뒷좌석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우리도 일단 여기서 나가는 게 어때? 괜히 있다가 보스 얼굴 보여서 좋을 것도 없고, 여기 있는 거보다 지검장과 방송국 회장하고 통화하는 게 좋지 않겠어?”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여 답을 한 직후였다.

옷을 들고 기다리던 김진용을 향해 이병렬이 고개를 들었다.

“진용아. 운전 좀 해. 키란, 너도 조수석에 타고. 얼른.”

경찰 기동대가 오기 전에 키란을 감추려는 것처럼 이병렬의 지시가 바빴다.

“종환아! 가서 눈에 띄지 않게 아르윈을 밖으로 데려와.”

“예, 형님.”

강선영을 따라왔던 이종환이 바쁘게 안쪽으로 움직이자 이병렬이 뒷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빠르게 돌아와 운전석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

이세종은 차라리 연기자를 했으면 지금보다 백 배쯤 더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차웅진 회장은 파친코와 슬롯머신을 제작 판매하며 지속적으로 일본 폭력 조직의 부당한 요구와 협박에 시달렸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런 협박 속에서도 어렵게 지내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하려던 그는 결국 일본 폭력 조직원의 칼날에 처참하게 살해되었습니다.”

영화 촬영소 안쪽의 세트를 돌아보았던 그는 분하고 안타까워서 눈물이 올라온 양, 삽시간에 붉어진 눈으로 카메라를 노려보았다.

멘트를 할 타이밍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이어 불을 씰룩이는 것으로 울분과 분노를 억누르는 모습을 만들었다.

“일본의 폭력 조직원은 차웅진 회장을 살해한 것은 물론, 기부 서류를 작성하던 변호사 역시 일본도를 이용해 무참하게 살해했습니다. 또, 그들은 대한민국의 공권력을 무시하고 출동한 경찰 기동대 대원을 향해 권총을 발사해 다섯 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화면이 바뀌어 경찰특공대 대원들이 뛰어드는 장면이 이어졌다.

“김명동 변호사의 요청을 받아 현장에 도착한 중앙지검 강선영 검사는 경찰에 특공대의 투입을 요청해 현장을 진압했으며, 일본의 폭력 조직원들을 모두 체포했습니다.”

다시 화면이 바뀌어 창밖에서 중환자실을 찍은 영상이 올라왔다. 화면 전체가 뿌옇게 처리돼서 얼굴을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차웅진 회장의 요청을 받아 도움을 주기 위해 나왔던 이 모 씨는 현재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고, 이 모 씨의 수행원 두 명 역시 중상을 입어 치료 중입니다.”

이세종은 대략 10분에 걸쳐 자극적인 장면과 멘트를 내보냈고, 이후에 메인 앵커가 등장했다.

차웅진의 성장, 성공의 배경, 그리고 그의 나이, 재산 규모가 먼저 자세하게 보도됐고, 이어 아카시 조직과 아카시 미키야토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이세종이 저거 무서운 인간이네.”

뉴스를 보던 이병렬이 새삼스럽다는 투로 감탄을 내놓았다. 그리고는 슬쩍 강성태의 눈치를 살폈다.

“왜 저기서 이 모 씨가 나와?”

“보스가 독박 쓰려는 걸 알았는데 넘버 투가 어떻게 가만있어? 이세종에게 언질 줬더니 바로 알아서 하겠다고 하던데?”

방지병원의 병실이었다.

가슴을 길게 베인 상처가 깊지 않아서 꿰매지 않아도 될 정도였는데, 일단 치료를 위해 들렀고, 링거 하나는 맞고 가라는 유헌우의 말에 따라 또 병실에 죽치는 참이었다.

“이제 병실 징그럽다, 진짜.”

강성태의 시선을 피해 화제를 돌리려는 이병렬의 말이 떨어진 다음이었다.

똑똑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유헌우가 들어왔다.

유 원장이 노크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강성태의 시선에 유헌우 원장의 뒤에서 들어오는 남자가 들어왔다.

눈에서 강렬한 기운이 쏟아지는 남자였다.

강성태는 그를 보며 고개를 슬며시 비틀었다.

훈련받은 몸짓, 사람을 죽여본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눈매, 버릇인 것처럼 끄덕이는 오른손 엄지, 들어선 남자 역시 강성태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슬며시 비틀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