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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0권 - 4화 (397/513)

《397》2부 20권 - 4화

박배근은 오기완을 따라서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빼곡하게 로비에 병풍 치고 있던 인천 부천 덩치들이 오기완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나름 위압적인 모습을 보였다. 어지간한 덩치는 간이 오그라들 모습이었는데 조강치와의 처절한 싸움을 거쳐서 그런지 박배근은 본인이 생각해도 이상하리만치 덤덤했다.

로비를 가로지른 오기완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에 불편한 시선으로 고룡동을 돌아보았다.

“광주 금식이 형님은 요즘 뭐 하시냐?”

오기완은 강성태에 의해 밀려난 광주 최금식을 입에 담았다.

사실 유충일은 몰라도 고룡동은 최금식의 숙소 동생이 아니었다. 오기완 역시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러니 이 질문은 막말로 광주 잡아먹은 강성태에게 충성해서 행복하냐는 비아냥이었다.

때앵.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박배근은 고개를 돌려 버튼 앞에 서 있는 오기완을 돌아보았다.

“너 지금 뭐라고 했냐?”

“형님께 그런 게 아니고, 형님. 저기 광주 동생한테 물어본 겁니다, 형님.”

“이런 씨발 새끼가?”

말만 거칠게 뱉은 게 아니라 박배근은 따귀를 갈길 것처럼 오른손을 어깨까지 올렸다.

움찔, 양손을 들어 얼굴을 막았던 오기완이 주변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삐딱하니 틀었다.

“형님?”

오기완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직후에 로비에 있던 덩치들이 우르르 엘리베이터 앞으로 몰려와 박배근과 고룡동을 둘러쌌다.

누가 봐도 박배근을 위협하는 모습이었다. 그랬으면 하고 바라는 태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박배근은 들판에 꽂힌 잡목들이 바람에 날려온 것만큼이나 별거 아니란 표정이었다.

“야, 이 새끼야? 그래도 행사장에서 얼굴 익혔던 이쪽 동생들이 마음에 걸려서 피 보는 일 없자고 혼자 들어온 거야! 그런데 그걸 씹어?”

“그게 아니잖습니까, 형님?”

“이 덜떨어진 새끼가 정치를 배웠나? 왜 말을 바꾸고 지랄이야? 그런 게 아닌데 왜 은퇴한 광주 금식이를 입에 올려, 이 씨발 새끼야? 말 나온 김에 하나 묻자. 황원남이 뭐 하냐? 뭐 하는데 부천 동생들 앞에서 네가 설쳐?”

“형니-임?”

중고차 매장에서 이병렬에게 목을 밟힌 황원남을 박배근이 들먹이자 오기완과 둘러선 덩치들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말씀이 지나치시잖습니까?”

“이 새끼 봐라? 왜 칼질이라도 할래?”

혹시 명분을 잡기 위해 칼질당하려고 이러나 싶을 정도로 박배근은 막무가내였다.

“네가 하는 꼴 보니까 태준이 봐야 소용없겠다. 돌아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

박배근이 몸을 돌렸는데도 앞을 막은 인천 부천 덩치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고룡동. 앞에 치워.”

“예, 형님.”

호텔 로비에서 인천 부천 연합 덩치들에게 빙 둘러싸인 상황이었다. 박배근이 정말이지 무식한 지시를 던졌는데 고룡동은 또 숨 한 번 내쉬지 않고 바로 답을 내놓았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박배근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한 고룡동이 손을 뒤로 돌려서 허리춤에 꽂아두었던 회칼을 뽑았다.

“뭐야, 이 개새끼야?”

오기완이 비명처럼 고함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둘러싸고 있던 덩치들 역시 우르르 회칼을 뽑았다.

그 직후였다.

“와아-아!”

거친 함성이 밖에서 터져 나왔다.

이건 또 뭐……?

시선을 돌린 오기완은 심장이 바닥에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비켜! 이 씨발 새끼들아!”

로비에 비해 바깥은 어두웠다.

어둑한 주차장으로 해일처럼 쏟아져 들어온 신강남파 덩치들이 무섭게 쇠파이프와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다.

배트에 얻어맞은 부천 덩치들이 승용차에 부딪혔다가 아래로 늘어졌고, 빗나간 쇠파이프에 맞은 자동차의 보닛과 천장에서 불똥이 튀었으며, 이곳저곳에서 유리가 부서지고 있었다.

“비켜!”

승용차의 보닛을 밟고 뛰어오른 이병렬이 자동차의 지붕을 타고 로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길 열어! 병렬이 형님 지켜!”

그리고 김진용, 이종환, 유섭우가 악귀처럼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좌우에서 따르고 있었다.

부천에서의 끔찍했던 장면이 떠올라 오기완은 멍하니 그 장면을 보고만 있었다.

“형님!”

다급하게 부르는 인천 덩치의 음성에 오기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직후였다.

“이리 와!”

박배근이 두꺼운 손을 뻗쳐 오기완의 멱살을 움켜쥐고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움직였다.

“형님!”

인천 부천 연합 덩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는데,

“와! 들어와, 이 씨벌롬들아!”

회칼을 좌우로 번득이며 막아서는 고룡동 탓에 움찔거리기만 할 뿐 당장 어쩌지는 못했다. 그 사이 박배근이 버튼을 눌렀고, 이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고룡동!”

오른팔로 오기완의 목을 휘감은 박배근이 엘리베이터로 들어갔고, 뒷걸음질로 물러난 고룡동이 몸을 반쯤 넣었다.

터억.

닫히려는 엘리베이터 문의 오른쪽 끝을 고룡동이 발로 막았다.

박배근의 팔뚝에 목이 감긴 오기완이 숨을 쉬지 못해 붉어진 얼굴로 엘리베이터 안에서 꺽꺽대고 있었고, 그 앞을 고룡동이 회칼을 들고서 막아선 상황이었다.

달려들려면 고룡동을 먼저 쓰러트려야 하는데 좁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밀고 가는 인원은 정해져 있었다.

“비켜!”

퍼서석! 퍼석!

거기에 이미 주차장을 쓸고 들어온 신강남파 덩치들이 호텔 로비의 유리를 깨부수고 있었다.

저것들은 아예 뒤가 없나?

관광객들이 신고라도 하면 신강남파는 말할 것 없고, 인천 부천 연합까지 깡그리 교도소에서 처박히게 될 텐데?

부응! 퍼윽! 퍽! 퍼윽!

인천 부천 덩치들의 의문을 깨부수는 것처럼 이병렬과 신강남파 덩치들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곧장 다가왔다.

다행히 일을 더 키우고 싶지는 않았는지, 로비 구석으로 밀려난 인천 부천 덩치들을 끝까지 두들기지 않았다.

“형님!”

이병렬이 다급하게 부르자 고개 숙인 고룡동이 비켜섰고, 안에 있던 박배근이 팔뚝으로 오기완을 휘감은 채 밖으로 나왔다.

“커흑. 컥.”

비참하게 오기완은 박배근의 팔을 잡고 버둥거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온 박배근이 오기완을 바닥에 뿌렸다.

털썩.

로비 바닥에 쓰러졌던 오기완이 급하게 기어서 인천 부천 연합 덩치들 앞으로 움직였다.

“바깥에서 고룡동이가 연장 드는 걸 보고 들어왔습니다, 형님.”

“이 새끼들은 좋게 끝낼 마음이 없다. 어떻게 할래? 밀고 올라갈래, 아니면 나가서 기다릴까?”

이제야 겨우 몸을 세우는 오기완을 돌아보며 박배근이 던진 질문이었다.

상황이 어떻든 지금도 박배근은 이병렬의 위치를 인정해서 의견을 묻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이병렬은 뒤를 돌아보았다.

마음 같으면 밀고 올라가고 싶다. 그러나 지금 로비까지 밀고 들어온 것만 해도 강성태에게 어떤 부담으로 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차웅진까지 상대하는 강성태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는 게 아닐까?

이병렬의 고민을 박배근은 바로 알아보았다.

박배근뿐만 아니라 김진용과 이종환, 유섭우 역시 이병렬의 망설임을 한눈에 알아본 눈치였다.

로비를 돌아온 먹먹한 침묵이 이병렬에게 달려와 선택을 강요했다.

부산 이교창을 작업했고, 병원에 칼잡이까지 보냈던 함태준과 한 배를 탈 수는 없었다. 싫든 좋든, 인천 부천을 신강남파 울타리에 집어넣던가 아니면 완전히 박살 내고 새로운 조직을 꾸려야 했다.

어차피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면 강성태가 없을 때 이병렬이 감당하는 게 좋았다.

주변을 돌아본 이병렬은 독하게 마음먹었다.

“올라가시죠, 형님?”

“알았다.”

이병렬의 결정을 들은 박배근이 묵직하게 답을 내놓았다.

이제 남은 건 이병렬의 지시밖에 없었다.

굳이 소리 지를 것도 없이 의미가 분명한 눈길로 김진용만 돌아보면 된다. 그렇게 하면 김진용이 “가자!” 하고 고함을 지를 테고, 그대로 밀고 올라가면 되는 일이었다.

김진용과 이종환, 유섭우, 고룡동을 돌아보았던 이병렬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현관에서 엘리베이터까지 신강남파 덩치들이 길게 늘어섰고, 중앙이 갈라진 로비 양쪽 구석으로 인천 부천 연합 덩치들이 밀려나 있었다.

“부산 교창이 형님이 야쿠자 새끼들과 손잡은 칼잡이한테 당하셨다. 그리고 치곤이랑 광주 충일이가 입원한 병원에도 칼잡이가 왔었고. 그게 모두 여기 함태준이 작업했던 일이다.”

침묵이 맴도는 로비에서 쇠파이프와 배트를 든 신강남파 덩치들이 이병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거기에 좌우로 나뉘어 밀려난 인천 부천 연합 덩치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좋게 해결하려고 배근이 형님께서 혼자 들어오셨는데 그것마저 이 새끼들은 작업치려고 했었다.”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오기완이 좌우를 돌아본 뒤였다.

“보스는 이 싸움을 모른다. 그래서 전화로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밀고 올라간다.”

이병렬을 지켜보고 있던 박배근이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웃었다. 어쩐지 이병렬답지 않게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더니 역시나 강성태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그랬던 모양이었다.

그 마음을 김진용부터 이종환, 유섭우, 고룡동이 왜 모르겠나.

당장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핏줄이 도드라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앞에 선다. 종환아, 대림동 식구랑 길을 열고, 섭우가 중간, 광주 식구들이 고룡동하고 뒤를 맡아!”

“예, 형님.”

이병렬의 지시에 이름이 불린 순서대로 고개 숙이며 답한 뒤였다.

“그럼 서운하지. 이번에는 우리 동생들하고 내가 앞마이에서 올라가게 해 주라.”

“형님께서 여기 로비를 맡아주십시오.”

박배근이 토를 달았고, 이병렬이 나직하게 다른 당부를 전했다.

서운하지만, 이병렬의 뜻을 함부로 되받지 못한다는 듯 박배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껏 조직끼리 맞붙는 자리에서 이런 적은 없었다.

막말로 “조져!” 한 마디에 아수라장으로 맞붙는 게 전부였고, 혹시 이렇게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생겼더라도 으르렁대는 게 전부였지, 지금 이병렬처럼 앞뒤를 설명한 경우는 없다고 봐야 했다.

더 기가 막히는 건 욕이라도 하며 달려들어야 할 인천 부천 덩치들이 눈치만 살핀 채 제자리를 지킨다는 점이었다.

‘준비됐지?’

의미가 분명한 시선으로 김진용을 돌아본 이병렬이 독한 얼굴로 계단 입구를 돌아보았다.

“가자-아!”

이병렬의 시선을 알아차린 김진용이 고함을 지른 직후였다.

이종환과 유섭우가 덩치들을 이끌고 계단 입구로 움직였고, 뒤질세라 이병렬과 김진용이 달려갔으며, 그 뒤를 고룡동이 광주 덩치들과 따랐다.

박배근은 로비 중앙으로 움직였다.

“가만있어! 그럼 나도 더는 손대지 않는다! 여기에서 더 지랄할 거면 대신 모가지를 걸어!”

고함을 지르는 그의 주변을 대전과 전주, 안산의 덩치들이 둘러쌌고, 깨진 로비의 유리 바로 바깥에 잔뜩 몰려온 부산 덩치들이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기완! 죽기 싫으면 가만있어!”

뭔가 해 보려고 눈알을 굴리던 오기완이 박배근의 고함을 듣고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부천 중고차 매장에서 이병렬에게 한 번 부러진 데다, 조금 전에 엘리베이터 안에 끌려가 박배근에게 목이 부러질 뻔한 탓에 그는 독기를 부리지 못했다.

**

함태준은 반쯤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이런 씨발 새끼! 그걸 밀려! 제대로 붙어보기라도 했어야지!”

거실 창을 통해 바깥을 보았으나 정확하게 로비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다.

“형님! 이병렬이 밀고 올라옵니다!”

그런 상태에서 느닷없이 이병렬이 밀고 올라온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시쳇말로 눈이 뒤집혔다.

“부천 이 새끼들이 작업한 거냐? 저쪽하고 모사친 거야?”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형님. 다만, 로비는 조용합니다, 형님.”

“오기완, 이 씨발 새끼!”

바깥을 내다보았던 함태준이 이를 북북 갈았다.

계단으로 이병렬이 밀고 올라온다면 당연히 로비도 지금은 아수라장이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로비 바로 앞까지 밀고 들어온 신강남파 덩치들이 더 움직이지 않고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 달려가서 오기완이 모가지를 갈라버리고 싶은데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었다.

“계단은?”

“동생들이 막고 있습니다, 형님.”

이가 드러나도록 분통을 터트렸으나 함태준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계단으로 밀고 내려갈까?

아니면 열 명만 추려서 엘리베이터로 내려간 뒤에 문이 열리기 무섭게 뚫고 나가?

머리를 뺑뺑 돌려봤으나 당장 로비 바로 앞까지 밀고 들어와 있는 신강남파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다음으로 오기완과 부천 덩치들이 배신한 상태에서는 어림도 없는 계획이었다.

함태준이 인상을 찌푸릴 때였다.

“3층까지 올라왔습니다, 형님!”

복도에서 거친 고함이 들렸다.

벌써?

열어놓은 문을 돌아보았던 함태준은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가 거세게 내뱉었다.

지금 신강남파 이병렬에게 만세를 부른다고 해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함태준은 반드시 칼질을 당한다. 이교창을 작업한 거로 모자라 방지병원에 칼잡이까지 보냈는데 그걸 눈 감아 줄 조직은 없기 때문이었다.

“씨발.”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걸까?

남은 건 야쿠자와 차웅진밖에 없었다.

나중에 개 취급을 받을지언정 지금은 공권력의 힘을 동원해 달라고 매달리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급하게 스마트폰을 집어 든 함태준은 먼저 차웅진의 번호를 찾았다.

“5층 밀렸습니다, 형님!”

바깥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함태준은 버튼을 잘못 눌렀다.

“너도 가 봐! 5분만 막으면 돼!”

“예, 형님.”

고개 숙이며 나가는 덩치의 뒤에서 함태준은 간절한 심정만큼 통화버튼을 힘껏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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