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0권 - 3화 (396/513)

《396》2부 20권 - 3화

제2장. 누가 손가락질했어요?

강성태는 키란과 함께 거실을 나섰다.

거실을 나서는 문 앞에 피투성이가 된 야쿠자가 가로로 길게 쓰러져 있었는데 마당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잔디밭에 널브러진 놈, 건물 외벽에 기댄 채 옆으로 쓰러진 놈, 대문을 향한 계단 아래로 상체가 떨어져 허리 아랫부분만 보이는 놈까지, 전쟁터 한복판을 걷는 느낌이었다.

이놈들을 혼자 해결했다고?

강성태가 돌아보자 시선의 뜻을 알아챈 키란이 멋쩍게 웃었다.

“형님 말씀대로 독하게 상대했는데 마당에 있던 놈들은 그냥 체격만 좋은 수준이었습니다.”

하기는, 쿠크리를 들고 있었다면 강성태 역시 왼팔과 옆구리, 뒤통수를 다치는 일 따위 없었다. 그런 면에서 구르카 용병들에게 쿠크리는 단순한 칼이 아니라 정말이지 든든한 동료와 같았다.

계단을 내려가 대문 앞으로 나선 강성태는 멀찍이 서 있는 아르윈의 승용차를 향해 손을 들었다. 그사이 문 앞에서 기다리던 덩치 두 명이 빠르게 다가왔다.

“저 차로 방지병원에 갈 테니까 뒤에 따라와.”

지시를 마친 순간에 아르윈의 승용차가 강성태의 앞에 멈췄다.

덩치가 열어준 뒷좌석에 강성태가 올랐고, 키란이 조수석에 몸을 실었다.

“괜찮으십니까?”

“늘 있는 일이잖아. 우선 방지병원으로 가줘.”

상체를 돌려 강성태를 살폈던 아르윈이 바로 승용차를 움직였다.

명색이 가디언스파 한국 책임자인데도 어제부터 꼬박 좁은 차 안에서 기다렸다가 병원을 향해 차를 몰고 있었다. 거기에 강성태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것도 아닌데 하루가 멀다고 몸이 갈라져 병원을 찾고 있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어둑한 골목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강성태의 물음에 답하듯 화려한 서울의 불빛이 차창을 뚫고 들어왔다.

식당과 커피전문점마다 가득한 사람들이 오늘의 삶을 나누거나 혹은 위로해가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무리 원해도 당장 강성태는 차창 밖으로 이어진 식당과 커피숍에 들어갈 수 없었다. 가슴과 손에 시커멓게 굳은 피와 그만큼 진하게 풍기는 피 냄새 때문이었다.

지겹다. 싸움은.

이렇게 맡아야 하는 피 냄새도.

문신처럼 새겨지는 흉터와 핏물을 뒤집어쓰는 숫자가 많아질수록 장숙경과 안다미에게 돌아가는 길이 흐릿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려울 거 없다.

눈 한 번 감으면 그만이었다.

마약? 피를 빨아대는 불법 사채?

강성태 주변에 얼씬도 못 하게 막을 자신 있었다.

그렇다고 강성태가 차웅진처럼 야쿠자에게 고개 숙일 것도 아니고, 또 소신영이나 고강준 모양으로 휘두를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 할 일은 눈을 질끈 감는 게 전부였다.

마카오 회의를 끝으로 이병렬에게 모든 걸 넘겨준다면, 다시 커피알리고에서 반가운 손님과 인사하며 지낼 테고, 퇴근한 안다미와 미래를 꿈꾸며, 가끔 안호상, 장숙경과 행복한 저녁을 나눌 수 있을 텐데.

키란 역시 오늘 밤과 같이 피 냄새 진한 현장에서 벗어나 지금껏 받은 돈으로 네팔에서 늙은 모친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겠다.

마음이 흔들려서일까?

따뜻하게 잡아주던 안다미의 손길이 그리웠고, 차창 밖으로 그녀의 웃는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안다미의 품에 안겨서 웃던 이남순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아른거렸다.

염병할.

흔들리는 마음을 꾸짖는 것처럼 이남순에 이어 방지병원 앞 커피숍의 여주인 얼굴도 생각났다.

정신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이유와 억울하게 약에 당한 탓에 끔찍하게 고통받아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환경이 나쁘지 않았는데도 부당한 권력에 눌려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던 안다미의 친구도 있었다.

그들의 고통과 신음을 외면하기 위해 눈을 감고 행복할 수 있을까.

실제로 연이은 부상 탓인지 통증이 심해졌고, 그만큼 피로가 심하게 몰려들었다. 그리고 방지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강성태는 답을 얻지 못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아르윈이 급하게 운전석에서 내렸다.

“덮을 걸 가져와!”

그가 지시하기 무섭게 주차장에 있던 덩치 한 명 이 모포를 두 장 들고 달려왔다.

피투성이인 강성태와 키란을 대림동, 광주, 필리핀 조직원들이 감싸다시피 하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여기 좀 봐주세요!”

아르윈이 급하게 부른 소리에 응급실 스태프들이 달려왔다. 모두 강성태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중에 안다미가 있었다.

놀란 눈치였다.

스치듯 당황했던 안다미가 강성태에게 곧바로 다가왔다.

“걸을 수 있어요?”

“예.”

“키란 씨는 저쪽으로 가세요.”

스태프들이 능숙한 태도로 키란을 커튼 안으로 데려갔고, 안다미 역시 두 명의 스태프들과 함께 강성태를 그 옆의 공간으로 이끌었다.

“그쪽으로 누우세요. 혈압부터 체크해 주세요. 소독 준비해 주시고요.”

“잠깐만 앉아있어도 됩니까?”

라텍스 장갑을 끼던 안다미가 강성태를 향해 몸을 돌렸다.

강성태의 눈을 들여다보았던 안다미가 시선을 돌렸다.

“잠깐 자리 좀 비워주시겠어요?”

상처를 치료해야 한다고 나무랄 줄 알았던 안다미가 스태프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며 요구했다.

혈압을 재려던 간호사와 옷을 가위로 자르던 간호사가 커튼 바깥으로 나간 다음이었다.

바퀴 달린 동그란 의자를 가져온 안다미가 강성태를 들여다보듯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이에요?”

알아본 모양이었다. 강성태가 품었던 의문과 심경의 변화를.

“누가 성태 씨 무시했어요? 왜요? 대학 못 나왔다고 뭐라고 해요? 아니면 부모님 직업 물어봤어요?”

진지하게 묻고 있어서 오히려 웃음이 나오는 질문이었다.

“누가 그래요? 말해요. 학벌 가지고 뭐라는 사람 있으면 아빠랑 내가 갈게요. 부모로 무시하는 사람 있으면 이모님 모시고 가서 등짝을 때려주지 뭐. 누가 그랬어요?”

답을 하지 못하는 강성태를 물끄러미 보던 안다미가 조금 전에 꼈던 라텍스 장갑의 끝을 잡고서 빠르게 벗겨냈다. 그런 뒤에 다리에 걸쳐 놓았던 강성태의 손을 감싸 쥐었다.

“여기에 여자 환자 보냈죠? 약물에 중독됐는지 확인하라던 여자 환자요.”

강성태는 안다미의 눈만 보았다.

“성태 씨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사망했을 거예요. 그만큼 위독한 상태였어요.”

오른손을 든 안다미가 강성태의 눈가에 묻은 굳은 피를 엄지로 문질러 닦아주었다.

“깡패라고 누가 손가락질했어요?”

“이런 모습이 지겹지 않습니까?”

강성태의 질문을 받은 안다미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태 씨가 판단해서 결정해요. 커피숍 매니저 나는 좋다니까요. 그것도 싫으면 일단 쉬어요. 많이 벌지는 못해도 내 수입으로 우리 둘이 밥은 안 굶어요.”

볼을 닦아주는 안다미의 엄지를 느끼며 강성태는 기가 막힌 웃음을 토해냈다.

“지금까지 잘해왔어요. 최선을 다했고요. 성태 씨가 이런 모습으로 싸워준 덕분에 내 친구 조소아가 살았고, 남순이랑 거기 남자아이도 다시 웃음을 찾았고, 또 오늘 보내준 여자분도 목숨을 구했잖아요. 나도 물론 성태 씨가 구해줘서 이렇게 있는 거고요.”

강성태의 눈을 들여다보았던 안다미가 상체를 세웠다.

“이제 치료할게요.”

안다미가 부르자 간호사 두 명이 바로 들어왔다.

“유 원장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괜스레 투정을 부렸나 싶은 생각에 강성태는 지나가는 질문을 던졌다.

“성태 씨가 보내준 여자 환자분이요. 수술이 조금 전에 끝나서 두 분 모두 식사하러 가셨어요.”

“두 분이라면?”

“아빠도 급하게 합류하셨어요. 나도 그래서 여기 있는 거고요.”

“그 정도로 위독했습니까?”

손안에 가득 찰 정도로 두꺼운 주사기를 든 안다미가 강성태의 뒤로 움직였다.

“성태 씨가 보내지 않았거나, 반나절만 늦었어도 손쓸 겨를이 없었을 거예요.”

답을 전해준 안다미가 강성태의 머리 뒤편의 상처를 살폈다.

“나쁜 새끼들.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어떤 경우에도 강성태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를 담뿍 담은 안다미의 원망이 뒤에서 들렸다.

“참! 이병렬 씨는 어디 갔어요? 유 원장님이 잔뜩 벼르시던데요?”

이어진 안다미의 질문이 들려온 순간이었다.

잠시 밀어두었던 현실이 불쑥 강성태에게 달려들었다.

마약과 고리대금업만큼은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는 강성태의 의지를 지키기 위해 기존의 모든 조직과 맞붙은 사람들도 있었다.

뭘 하고 있는 거냐?

한숨이 나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미 씨. 가봐야 할 곳이 있어서 그런데 치료를 미뤄도 됩니까?”

“성태 씨 덕분에 내가 자상 치료 기술은 대한민국 열 손가락 안쪽 수준이거든요. 빨리 끝낼게요. 차라리 치료하고 가요.”

강성태의 변화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무슨 일인지 묻지 않은 채 안다미가 엉뚱한 답을 내놓았다.

‘나는 당신을 믿어요.’

강성태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

함태준은 부천의 숙소까지 탈탈 털어서 숫자를 불렀다.

당연하게 오기완과 부천 덩치들이 연안부두로 달려와 호텔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 중고차 매장에서 이병렬과 신강남파 덩치들을 상대했던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중급 호텔의 로비와 주차장에 잔뜩 덩치들을 깔아두었는데 당장 부천 덩치들은 어딘가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함태준이 박배근을 들여보내라고 하면서 호텔 안팎이 팽팽한 긴장에 휩싸였다.

로비 앞에 있던 인천의 덩치가 궁금한 얼굴로 호텔 바깥을 둘러싼 신강남파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정말 그렇게 드세디?”

“저 새끼들 아예 모가지 내놓고 달려듭니다, 형님.”

부천의 덩치가 진저리를 치며 내놓은 답이었다.

얼마나 징그럽게 달려들었으면 나름 거칠다고 소문난 부천 덩치가 이런 반응을 보일까?

질문을 던졌던 인천 덩치가 다시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실전을 많이 거쳐서 그런가?

위세를 떨치기 위해 병풍처럼 세워둔 인천 부천 덩치들에 비해 바깥을 둘러싼 신강남파 덩치들은 확실히 분위기부터 달랐다.

‘겁나지? 적당히 해.’

인천 부천 연합의 덩치들이 그런 느낌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주차장과 로비는 우리가 뚫는다.’

안쪽을 들여다보는 신강남파 덩치들은 사투를 앞둔 전사들처럼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었다.

‘언제 명령이 내려오는 거야?’

심지어 이렇게 시간 끄느니 얼른 들어가서 밀고 올라가고 싶은 욕망을 보이는 놈들도 있었다.

갑갑한 심정으로 바깥을 지켜보던 인천 덩치가 나직하게 숨을 뱉어낼 때였다.

여섯 명이 호텔 주차장 입구로 들어섰다.

“뭐야, 씨발?”

로비에 있던 오기완이 신경질적으로 재킷을 털어내며 밖으로 나왔다.

분명 한 명만 들어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대뜸 여섯 명이 안으로 들어섰고, 그걸 막았어야 할 부천 덩치들이 어쩌지 못하는 얼굴로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참지 못한 오기완이 좌우를 돌아보았다.

“야! 따라와!”

“예, 형님.”

오기완이 빠르게 주차장을 가로지르고, 그 뒤를 덩치들이 따르면서 삽시간에 살벌한 기운이 주변에 넓게 퍼졌다.

이제 붙는 건가? 여기에서 시작인가?

인천 부천 연합 덩치들이 벌렁이는 가슴을 누르며 마음의 준비를 할 때였다.

“이건 아니잖습니까, 형님?”

거칠게 달려간 것과 달리 오기완은 판정에 불만을 품은 선수가 심판에게 대드는 느낌 정도의 항의를 내놓았다.

“배근이 형님만 모시기로 했습니다, 형님.”

이병렬이 고개를 비틀었고, 김진용이 눈알을 부라리는 데다, 이종환과 유섭우에 처음 보는 인상 더러운 놈이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노려보자 오기완은 정말이지 변명처럼 들리는 항의를 다시 내놓았다.

“야, 이 새끼야. 태준이 형님 만나는 거야 배근이 형님 혼자 들어가시더라도 그 앞까지는 모셔야 할 거 아냐? 이 숫자로 뭐가 그렇게 무서워서 앞을 막아?”

“그게 아니라, 형님. 처음 말씀이 배근이 형님만 오시겠다고 해서 이미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형님.”

이병렬의 질책에 오기완이 다시 변명처럼 대꾸를 내놓았다.

“됐다. 내가 가서 만나고 올 테니까 동생은 여기에서 돌아가.”

지켜보던 박배근이 고개를 돌려 이병렬을 말렸다.

“모자란 새끼들. 달랑 나하고 여기 종환이, 섭우, 진용이, 룡동이만 들어간다는 건데, 그렇게 못마땅하면 차라리 안에서 연장질을 해 버려. 이 숫자를 가지고 뭐가 무서워?”

“병렬아.”

“죄송합니다, 형님.”

신강남파 안에서 차지하는 넘버 투의 위상을 생각해서 박배근이 나직하게 불렀고, 이병렬은 또 어쩌지 못한다는 투로 고개를 숙였다.

주차장 안쪽이어서 인천 부천 연합 덩치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이었고,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신강남파 덩치들이 눈에 불을 켠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알았다. 우리는 다시 나가 있겠는데 여기 고룡동이가 모시는 것까지는 다른 말 하지 마라. 아니면, 씨발. 그냥 밀고 가서 얼굴 볼라니까.”

부천 중고차 매장에서 이병렬의 독기는 징그러울 정도로 충분히 경험했던 오기완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인상 더러운 놈이 하나 있더니 광주 고룡동이었다.

부산 조강치를 칠 때 광주 조성호와 함께 강성태의 옆을 지키며 끝까지 지켰다던 독종이었다.

염병할, 왜 저런 놈은 모조리 신강남파에만 있는 건지.

“그럼 배근이 형님과 저기 광주 동생만 들어가는 거로 하시죠, 형님?”

더는 버티기 어려워서 오기완은 이병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네가 형님 모셔.”

“감사합니다, 형님.”

이병렬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당부와 답을 주고받은 뒤였다.

“갔다 오마.”

“다녀오십시오, 형님.”

박배근이 걸음을 옮겼고, 이병렬을 시작으로 이종환, 유섭우, 김진용이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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