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2부 19권 - 21화
조태완은 카페처럼 꾸민 1층에서 강성태를 맞았다.
조태완에게 인사한 강성태는 먼저 도착해 있던 박노익을 향해 몸을 돌렸다.
“와 계셨습니까?”
“보스가 소집령을 내렸다는데 조바심이 나서 저녁까지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 앉자, 동생.”
박노익의 권유에 따라 테이블로 움직일 때였다.
문이 열리며 이병렬과 김진용이 들어왔다.
“늦었습니다, 형님.”
“시간을 정한 게 아닌데 뭐 그런 말을 해? 얼른 앉자.”
조태완을 지키던 덩치들이 벽으로 둘러섰고, 김진용과 문기주가 양손을 앞으로 잡고 입구를 지켰다.
확실히 최치곤이 꾸린 숙소 덩치들과는 다른 무게감이 있었다.
“준비한 것 좀 가져와.”
조태완이 고개를 돌리자 김석문이 홍삼 달인 물이 가득 담긴 유리잔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입을 함부로 놀렸던 탓에 강성태가 특별히 기억하는 덩치였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며 기회를 주었는데 당장은 잘하고 있는 듯 보였다.
“무슨 일이야?”
홍삼 달인 물을 권한 조태완이 궁금한 눈으로 강성태에게 질문을 건넸다.
“일이 좀 복잡합니다.”
강성태는 먼저 방지병원 앞에 있는 커피숍을 말했고, 이어 우장기와 오상율, 박중달이 어떤 짓을 했는지를 들려주었다.
“그 새끼들은?”
“우장기는 안산 공장에 보내놨고, 오상율은 손목 하나, 박중달은 발목 두 개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세 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운영팀이라는 놈들이 일곱 명이나 더 있습니다, 형님.”
조태완이 건넨 질문에 이병렬이 답과 부연 설명을 더 내놓았다.
“운영팀이라는 놈들은 봉진이가 애들 데리고 달러 갔습니다, 형님.”
“오상율이 강서구 이광준 또래 아니야?”
“예, 형님. 논현동 호텔에서 단란주점 운영하는 오상율 형님 맞습니다.”
오상율과 안면이 있었던 눈치였다. 답을 들은 조태완이 입맛을 다셨다.
“운영팀이란 놈들까지 손댄 걸 보면 끝장을 볼 생각인 거지?”
“소신영 회장을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회원에 가입한 3백 명을 모두 인터뷰하고 그 영상을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보스가 결정한 일이면 따라야지. 그거 때문에 지역 책임자들을 부르지는 않았을 테고, 진짜 이유는 뭐야?”
강성태의 의지를 확인한 조태완이 궁금한 얼굴로 질문을 내놓았다.
“차웅진과 함태준을 오늘 밤에 정리하려고 합니다.”
“오늘 밤에? 어떻게?”
강성태가 소집령을 내린 것으로 대강 예상은 했었으나 하룻밤이라는 기간이 세 사람에게 당황스러운 눈치였다.
“마카오 회의에서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을 살해하고 그 죄를 제게 씌우려던 게 삼합회의 원래 계획이었습니다. 거기에 야쿠자가 끼어들면서 살해 대상이 좀 더 쉬운 차웅진으로 바뀐 모양입니다.”
“하여간 야쿠자 새끼들은 사무라이 정신이 어쩌고, 지랄을 떨다가 칼질은 꼭 뒤에서 해. 그래놓고 닌자가 어쩌니 하면서 목에 힘을 주는 꼴이라니.”
조태완이 분통을 터트린 뒤였다.
“오늘 밤에 지역 책임자들을 부른 건 인천 함태준 때문입니다. 이교창을 노린 데다가 병원에 보냈던 칼잡이가 병렬이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함태준은 지금 있는 대로 긴장하고 있을 겁니다.”
“함태준은 지금 숙소 인원을 탈탈 털어서 호텔을 지키게 하고 그 안에 숨어있다. 여기저기 소문도 많이 나서 우리가 언제 그 새끼를 치는지 그것만 보고 있는 분위기고.”
강성태의 의견에 조태완이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오늘 밤에 올라오는 인원을 전부 함태준에게 보낼 생각입니다.”
“거기가 연안부두라 문제가 생길 소지가 커. 검찰이나 경찰에 협조를 구한다고 해도 우선 보는 눈이 너무 많고, 차웅진이 나서면 우리 뜻대로 협조를 받기도 어렵고.”
“분위기만 잡아주면 됩니다. 물건이 들어오는 게 이틀 뒤니까 그때까지 함태준을 묶어두고 다음으로 인천 쪽을 틀어막으면 됩니다. 그 정도로는 경찰이 나서기도 어려울 거고요.”
“흐음.”
턱을 매만지던 조태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함태준은 그렇게 한다 치고, 두 번째는 차웅진일 텐데 방법은?”
“전화해서 만나볼 생각입니다.”
“그 양반이 만나자고 한다고 문 열어주겠어?”
“열게 해야죠.”
옅게 웃은 강성태는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전에 받아놓은 번호를 찾아 문자를 보낸 강성태는 할 일을 마쳤다는 투로 고개를 들었다.
“뭘 보낸 거야?”
“차웅진이 불법적으로 환전한 내용입니다.”
어차피 연락을 기다리는 참이라 강성태는 차웅진의 거래에 관해 짧게 설명했다.
설명이 끝난 뒤였다.
“보스는 진짜 무섭다.”
고개를 저은 조태완이 놀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
서재에 있던 차웅진은 비서가 가져다준 스마트폰을 확인하고는 숨을 커다랗게 들이마셨다.
불법 환전한 금액, 후원회를 통한 후원 금액, 날짜, 시간, 명단까지 완벽하게 담겨 있어서 만약 방송에 나가게 된다면 아무리 차웅진이라고 해도 당장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1부, 2도, 3배라고 한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첫 번째로 부인하고, 두 번째로는 가능한 한 도주하고, 마지막으로 배경, 즉 힘을 써줄 사람을 찾으라는 조언이었다.
첫 번째로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뗀다고 해도 날짜와 금액이 워낙 정확해서 만난 사실이 하나라도 밝혀지면 돌이키기 어려운 곤경에 빠진다.
도주는 마카오로 가면 되는데 자칫 강성태가 바깥에서 노리고 있다면 오히려 죽는 길로 들어서는 꼴이 된다. 또, 경찰의 도움을 받는다고 쳐도 지금 문자에 담긴 증거가 공개되면 진짜 도주한 꼴이 돼서 부인조차 하기 어렵다.
마지막 수단인 배경도 그렇다.
환전한 이들이 차웅진의 배경이 돼 주어야 하는데 이런 사실이 일단 외부에 알려지면 공개적이든, 뒤에서든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는커녕 모두 모르쇠로 고개를 돌리기 좋았다.
천하에 몹쓸 놈.
야비하기로는 세상 첫 번째로 꼽힐 놈.
차웅진은 먼저 사진에서 보았던 강성태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런 자료를 가지고도 터트리지 않고 문자로 보낸 이유는 무언가 바라는 게 있을 일이었다.
녹취를 할지 모르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이 번호로 전화를 걸어. 녹취를 할지 모르니까 말을 조심하고, 바라는 게 있는지 알아봐. 다시 말한다만, 여기 문자에 있는 내용을 나는 모른다. 다만, 왜 이런 걸 보냈는지 묻는 의미로 전화한 거다.”
“예, 회장님.”
강성태의 사진을 떠올렸던 차웅진은 분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비서에게 내밀었다.
**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액정에 차웅진의 번호를 올리며 몸을 떨었다.
정말 차웅진이 전화했어?
조태완과 박노익, 이병렬이 감탄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앞에서 강성태는 스피커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보내셨기에 전화 드렸습니다. 의도가 있으신 듯한데 혹시 잘못 보내신 건 아닙니까?
젊은 남자의 음성이었다.
“그렇게 경고했는데 아직도 직접 전화를 안 하는 배짱 하나는 인정한다. 능력이 된다면 먼저 JBC 소신영 회장에게 알아봐. 내가 다른 일로 3백 명의 범죄자 인터뷰를 부탁했으니까.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 무슨 말씀이신지?
“이미 전에 나와 통화한 기록이 있는데 발뺌해서 뭐 하려고? 어차피 마카오에서 보게 될 거라 조금 일찍 만나볼까 했는데 이렇게 나온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마.”
말을 마친 강성태는 주저하지 않고 종료버튼을 눌렀다.
“아무리 기록이 있어도 차웅진에게 불법으로 환전했던 사람들은 나름 권력자들이야. 그들이 나서면 사건이 적당하게 무마될 수 있어. 현금을 찾아내지 못하면 증거도 없고. 막말로 그런 사실 없다고 우기면 증거가 없잖아?”
“이 정보는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에서 보관하던 내용입니다. 기가 막히게도 이 내용을 이메일로 처리한 게 아니라 팩스로 주고받았습니다.”
“팩스로? 이걸?”
박노익은 전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발신처는 차웅진의 집, 수신처는 아카시 조직의 미키야토 집이고요.”
“아무리 믿는 사이이고, 또 권력을 동원할 수 있다고 해도 이런 불법적인 거래 내용을 팩스로 주고받다니, 보스가 하는 말이라도 선뜻 믿기가 어려울 정도인데?”
“일본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게 엄청난 결례라고 들었습니다. 보고서에 도장을 찍을 때도 앞쪽으로 기울여 고개 숙이는 모양이어야 한다는데 증거를 이렇게 손에 넣지 못했다면 저도 믿지 않았을 겁니다.”
강성태가 답을 한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테이블에 올려둔 탓에 스마트폰의 진동이 유독 크게 울렸다.
번호를 확인한 강성태는 여유롭게 스피커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나를 찾았다고?
“내가 직접 전화하라고 했었지?”
-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밤에 잠깐 볼까 해서.”
강성태의 제안이 건너간 뒤에 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 혼자 오되, 몸수색을 하겠다.
“10시쯤 찾아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
시간을 정한 강성태는 바로 종료버튼을 눌렀다.
카페처럼 꾸며놓은 1층이었다.
신경 써서 꾸며놓은 터라 세련된 장식과 그에 어울리는 조명이 내부를 밝혔는데 그 아래에 있는 강성태는 누가 봐도 연예인이라고 착각할 정도의 외모였다.
“이렇게 차웅진도 만나기로 했습니다.”
“보스가 버튼을 누른 일이니까 우리야 뜻대로 움직여야지. 저녁 먹을 시간은 있지?”
“지방에서 올라와야 제대로 움직이니까 시간은 충분합니다.”
강성태의 답을 들은 조태완이 김석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오기완은 호텔의 복도를 걸어 함태준이 머무는 방으로 들어갔다.
연안부두가 보여서 전망은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오래된 중급 호텔이어서 소파나 카펫이 세월을 품고 있었고, 지우지 못한 퀴퀴한 냄새가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얗게 빛나는 조명을 품은 바닷가를 배경으로 앉은 함태준을 향해 오기완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이병렬이 와 있습니다, 형님. 그리고 전국에 있는 신강남파 지역 대가리들이 직접 오고 있답니다.”
“전국의 대가리라니?”
“우리 애들이 아는 또래들 통해서 연락해 봤는데, 감추지도 않습니다, 형님. 대전 배근이 형님, 광주, 안산, 천안, 심지어 부산에서도 출발했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뭔데 말을 못 해? 그냥 빨리 말해.”
“지시가 떨어지면 무슨 일이 있어도 형님을 잡으라고, 형님.”
“이 씨발 새끼들이 미쳤나? 여기 연안부두야! 외국인 관광객들도 있는데 다 죽자는 거야, 뭐야? 여기서 사고 치면 검찰이고 지랄이고 다 끝난다고!”
함태준이 벌컥 분통을 터트렸으나 오기완은 아랫입술만 깨물 뿐,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뭐야? 아직 남은 말이 있어?”
“우리 애들이 전화했을 때, 형님. 신명섭이 이름까지 대면서 형님이 칼잡이 보낸 거고, 그 일로 신강남파 강성태가 독하게 마음먹은 거니까 어지간하면 피하라고 했고, 형님.”
“또 뭔데?”
“부산 조강치 형님 때처럼 강성태가 직접 움직일 거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밀어붙일 거니까 어지간하면 적당히 버티다가 피하라고 했답니다, 형님.”
“이런 씨발 새끼들이?”
바깥을 돌아보았던 함태준이 이를 부드득 깨물 때였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함태준이 고개를 들자 안에 있던 덩치 둘이 바깥을 확인한 뒤에 문을 열었다.
“뭐야, 또?”
“박배근 형님이 도착했습니다. 대전, 전주 식구들하고, 광주에서도 독종이라고 소문 난 고룡동이 그쪽 식구들 100명과 함께 왔습니다, 형님.”
“하! 이 미친 새끼들이 진짜 다 같이 죽자는 거야, 뭐야?”
“저기, 형님. 배근이 형님께서 형님과 잠깐 이야기라도 하면 어떻겠냐고 물으십니다, 형님.”
선이 굵게 생긴 함태준이 딱밤을 맞은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말을 전한 덩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라는데?”
“그건 모르겠고, 형님. 혼자 들어오실 테니까 안에서 잠깐 이야기할 수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후우.”
소파에서 몸을 세운 함태준이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호텔 경계 안쪽의 주차장에 승용차가 가득했고, 그 사이사이에 인천 부천 연합 덩치들이 줄줄이 서 있었고, 다시 바깥을 완전히 둘러싸다시피 차들이 서 있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어서 멀리 보이는 장소에서는 연달아 승용차와 승합차가 도착했고, 덩치들이 내려 상체를 숙여 가며 인사하고 있었다.
“고룡동이 온 건 확인했냐?”
“예, 형님. 도착해서 병렬이 형님한테 인사하는 걸 직접 봤습니다, 형님.”
“씨-이발.”
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본 함태준이 욕을 길게 뱉었다.
깍두기 머리, 부리부리한 눈매, 통으로 빠진 목, 가슴, 허리, 반소매 아래로 내려온 팔뚝에 새긴 악귀의 문신 덕분에 정말 강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지켜보는 오기완과 덩치는 그가 어느 정도 꺾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았다.
하기는, 부산 조강치를 밀어붙여서 꺾은 신강남파 소문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 당시에 가장 독하게 날뛰었다는 이병렬, 고룡동, 박배근이 몰려왔으니 누군들 심장이 뻐근하지 않겠나.
더구나 어느 으슥한 야산에 파묻었는지, 아니면 갈아서 물고기 밥으로 뿌렸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신호남파 문도진과 부산 조강치처럼 신강남파에 맞선 대가리들은 모두 그 뒤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부천에서 이병렬을 깼어야지! 거기에서 꺾이니까 이런 꼴을 당하는 거 아냐!”
오기완을 향해 원망을 쏟아냈던 함태준이 다시 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기완이 네가 직접 가. 가서 배근이 형님만 올라온다고 하면 몸수색 싹 하고 이리 모셔 와.”
“예, 형님.”
“괜히 배근이 형님 들어올 때 저 새끼들이 밀고 올지 모르니까 현관이랑 로비 제대로 막고.”
고개 숙이는 오기완을 향해 함태준이 으르렁대는 음성으로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