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2부 19권 - 20화
강성태의 분위기에 눌리지 않으려는 듯 소신영은 상체를 뒤틀었다.
“3백 명이라고 들었소. 보도국이 텅 비도록 내보내도 하루에 열 명 인터뷰하기에도 벅차오.”
“사람을 더 써. 아니면 내가 알아서 동원할 테니까 JBC 이름을 쓰게 해주던가.”
“깡패를 동원하겠다는 말이오?”
불쑥 질문을 던졌던 소신영이 당황한 눈으로 강성태의 오른손을 살폈다.
“큼. 강 회장을 깡패라고 했던 건 아니오.”
“JBC에서 인원을 보강하면 들어가는 비용은 내가 부담한다. 거기에 일주일 안에 인터뷰를 마치면 보너스로 완전히 세탁된 현금 5백억. 어때?”
눈이 동그래진 소신영의 고개가 옆으로 틀어졌다.
“내가 잘못 들은 모양이오. 지금 얼마라고 했소?”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말고 제대로 좀 들어. 완전히 세탁된 현금 5백억.”
마른침을 삼킨 소신영이 탱글탱글한 새우 미끼를 앞에 둔 붕어처럼 의심 반, 욕심 반의 눈빛으로 강성태를 살폈다.
“인터뷰에서 회원 가입을 인정하고 죄를 뉘우치는 사람이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요?”
“부인하는 인간은 철저하게 방송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인간들은 내게 영상을 보내주면 끝. 일주일 안에 인터뷰를 마치면 세탁된 현금 5백억.”
“인터뷰라는 게 그렇게 막무가내로만 이뤄지지는 않소. 그러지 말고 전체 회원 숫자에서 10퍼센트는 예외로 빼주시오. 막말로 상을 당한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밀 수는 없지 않소? 또, 출장 가거나 해서 찾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소.”
소신영의 요구에 강성태는 나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을 당했다고 해서 더러운 짓이 없어지지는 않아. 그런 건 예외로 삼지 않겠지만, 출장으로 자리를 비워서 찾기 어려운 건 인정한다. 좋아. 30명까지는 일주일에서 예외로 인정해주지.”
“완전히 세탁된 현금 5백억이오.”
“물론이지.”
“그걸 문서로 써줄 수 있소?”
“무슨 짓을 해도 지워지지 않도록 뺨에 새겨줄까?”
“크흠.”
움찔했던 소신영이 나직하게 헛기침을 뱉었다.
야비하게 빛나는 그의 눈에 욕심을 가득 담고서 말이다.
“클럽 수입이 엄청나다는 들었는데 강 회장이 현금 5백억을 동원할 정도인 줄은 몰랐소.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요? 인터뷰를 위해 5백억을 사용하려면 그만한 이익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오?”
강성태는 답을 하지 않았다.
이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데?
혹시 거짓말을 하는 건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강성태를 살피기는 했으나 소신영은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는 눈치였다.
“인터뷰 영상은 찍는 대로 매일 보내. 만약 이런저런 연락과 청탁을 이유로 어설프게 인터뷰에서 빼주는 일이 생긴다면 나랑 오래도록 불편하게 보게 될 거다. 그것만 명심해.”
말을 마친 강성태는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일어난 것에 당황한 듯 어정쩡하게 소파에서 일어서는 소신영을 두고 강성태는 곧장 문을 향해 걸었다.
문 앞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쿠크리를 뽑아 들었을 때의 독한 심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성태를 지켜보던 소신영이 움찔하며 놀라고 있었다.
“신강남파 강성태가 진심으로 달려든 일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장난치면 칼을 든 나랑 마주 서야 할 거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묻지 않소?”
마지막까지 이유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3백 명 모두 죽여버릴 것 같아서 그렇다. 답이 됐나?”
“혹시 피해자 중에 친척이 있소?”
침묵하는 강성태를 보며 소신영은 그제야 이해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야….”
그가 늘어놓는 말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강성태는 고개를 돌려 문을 나섰다.
회장 집무실 바깥은 비서실 직원이 앉아 있는 데스크였다.
직원 중 두 명이 움직여 엘리베이터까지 움직였고, 버튼을 눌러주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서 몸을 돌리는 강성태를 향해 비서실 직원이 고개를 숙였다.
깡패들과는 다른 느낌의 깍듯한 인사였다.
썩어빠진 소신영과 달리 자신에게 맡겨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인사를 꼿꼿하게 서서 받을 권리 따위 강성태에게 없다고 믿는다.
“고맙습니다.”
강성태는 그들을 향해 고개 숙였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에서 인사를 받은 직원들은 놀라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려 애쓰는 얼굴이었다.
당연해야 할 일이 저들에게는 이토록 당황할 상황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이었다.
**
차웅진은 비서를 불러 출국 준비를 지시했다.
“오래 있을 테니까 그에 맞춰 준비해. 내가 없더라도 후원회를 지원하는 일과 매번 챙겼던 분들에게 보내던 성의도 빠트리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고개를 끄덕여 비서를 내보낸 차웅진은 입술을 오므리고 서재의 창을 향해 섰다.
창밖은 정원이었다.
복잡한 심경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면 차웅진은 비단잉어가 헤엄치는 작은 연못 주변으로 대나무를 심어놓은 정원을 지금처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 참.”
차웅진은 진심으로 갑갑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심정이었다.
은혜를 잊은 민족은 발전하지 못한다.
아니, 망하게 돼 있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요, 진리였다.
지금이야 개나 소나 고등학교를 나오고, 어지간하면 대학을 보낸 덕분에 목소리들을 높이고 있지만, 중국이 인상 한 번 찌푸리면 납작 엎드려야 하고, 미국이 기침만 해도 독감을 앓아야 하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잘났다고 떠들어도 쌀알처럼 흩어지는 민족성과 맞아야 움직이는 노예근성으로는 일류로 발전하지 못한다.
그에 비해 일본은 이미 아시아를 벗어나 미국, 유럽과 대등한 위치를 차지했다.
민족? 독립? 반일?
배부르고 등 따시니까 하는 소리이지, 지금 한국을 지탱하는 법과 경제, 하다못해 경찰 조직도 모두 일본이 내려준 은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자동차, 반도체, 볼펜 한 자루까지 일본에서 기술을 얻지 않은 건 한국에 없다.
“강성태, 이놈을 제거해야 해.”
세상이 미쳐 날뛰니까 이제는 깡패조차 일본의 위대함에 맞먹으려고 대들고 있었다.
그깟 깡패놈, 차웅진의 전화 한 통이면 당장 구속해서 교도소에 처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아카시 회장은 강성태를 두고 지켜보라고 했을까?
아카시 회장의 이해하기 어려운 지시가 차웅진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진짜 이유인지도 모른다.
“흐음.”
풀리지 않는 갑갑함을 토해내듯 차웅진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
하루를 꼬박 차에서 함께 보내는 건 지루한 일이었다. 더구나 출입하는 사람조차 없는 저택을 지켜보기 위해 자리마저 비울 수 없어서 아르윈과 키란은 살아왔던 과거와 특별한 기억들을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신월동 나이트에서 나는 아버지를 마음에서 지웠다.”
아르윈이 얼마 되지 않았던 과거를 털어놓았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운전석 계기판 앞에 두었던 그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액정을 확인한 아르윈이 눈짓을 던지고는 빠르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르윈입니다.”
영어로 내놓은 대꾸여서 키란이 힐끔 시선을 주었다.
- 한국 사정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 멕시코 공사가 확보돼야 우리 노동자들을 내보낼 수 있다. 신강남파 보스가 원하는 일은 뭐든 최선을 다해 따르고,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고 연락해.
“감사합니다.”
평범한 통화였다. 그러나 가디언스파의 보스가 직접 걸어온 전화여서 아르윈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 마카오에서 태국의 싸만코차호타 조직과 하노이파 조직원들이 야쿠자로 보이는 인물들과 함께 식사했다고 했었다. 그들에 대해 한국의 보스가 알아봐 달라고 요청했었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 우리 아이들 두 명이 접근해서 야쿠자와 잠자리를 가졌다.
느닷없이 달려가는 가디언스파 보스의 이야기를 놓칠세라 아르윈은 신경을 바싹 곤두세웠다.
- 한국에서 마카오로 현금이 건너오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현금을 가져오는 자를 마카오에서 제거하고, 그 죄를 한국의 보스에게 뒤집어씌울 계획으로 보인다.
아르윈은 시선을 들어 저택을 바라보았다.
지금 들은 내용을 받아들이는 데 잠깐의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 듣고 있나?
“주의해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보스.”
- 태국의 싸만코차호타 조직과 하노이파 조직원들은 그와 별개로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과 한국의 보스를 노리는 눈치다. 삼합회는 뒤에 숨어서 이번 일을 지켜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의 보스와 곤잘레스 회장을 체포하거나 제거,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으로 보이고.
“지금 말씀해 주신 내용을 이곳의 보스께 전해도 되겠습니까?”
- 내가 할 일이 없어서 네게 보고하는 건 아니겠지?
“죄송합니다. 내용이 워낙 중요해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조심스럽게 답하는 아르윈을 키란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한국의 보스에게 지금 전한 내용을 알리고, 필요한 것들이 있는지 알아봐. 태국과 베트남, 일본 조직원들의 숫자와 묵는 장소까지 모두 알아냈다는 점도 전해. 일본과 베트남 조직원들은 아예 한몸처럼 움직이고 있는데 숫자도 적지 않다.
“그대로 전하고 말씀하신 대로 필요한 점이 없는지 확인하겠습니다.”
- 한국의 보스가 너를 신뢰하는 건 확실하겠지? 혹시 뒤에 가서 우리 노동자들을 제외하는 일이 생긴다면 너 하나로 뒷감당이 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묘한 느낌의 웃음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키란. 급한 연락이어서 형님께 전화 먼저 드리고 이야기하자.”
“편하게 하십시오.”
키란이 답할 때, 아르윈은 이미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 여보세요?
“아르윈입니다, 형님. 통화되십니까? 중요한 내용입니다.”
- 괜찮으니까 말해.
강성태와 연결된 전화에서 아르윈은 조금 전에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 멍청한 인간.
“예? 형님?”
- 차웅진을 말한 거다. 이왕 손을 잡았다면 멱살을 끌고 가든가, 그 나이 먹도록 꼭두각시 노릇을 하더니 마지막에는 제물로 바쳐지는 꼴이잖아. 그런데도 아직 놈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게 화가 나서 한 말이다.
“예, 형님.”
차갑게 넘어오는 강성태의 말에 대꾸할 말이 마땅치 않아서 아르윈은 적당하게 얼버무렸다.
- 고생했어. 조금만 더 지켜보고 있어.
“알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아르윈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멕시코 공사가 큰 만큼 여러 곳의 조직들이 달려들었고, 서로의 이득을 위해 복잡하게 얽히고 있었다.
과연 강성태는 차웅진을 어떻게 해결할까?
무거운 눈빛으로 아르윈은 차웅진의 저택을 바라보았다.
**
아르윈과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이를 지그시 깨물며 창밖을 보았다.
깡패라는 게 원래 돈이라는 욕망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하는 조직이니 일본 야쿠자의 계획을 욕할 마음은 없었다. 게다가 차웅진은 일본의 폭력 조직에 기대 밀수와 마약, 고리대금업, 도박을 통해 재력과 권력을 누렸으니 말년에 비참하게 죽는 것쯤 동정할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멍청한 인간.
야쿠자의 지시대로 춤추며 알량한 단물을 먹다가 마지막은 강성태를 잡는 미끼가 되기 위해 놈들의 칼에 죽는 꼴이라니.
강성태가 냉정하게 바깥을 노려볼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스마트폰이 울리며 이병렬의 이름이 올라왔다.
“여보세요?”
- 영등포 공장인데 통화되지?
“말해.”
- 우장기 이 새끼, 생각했던 거보다 더 악질이더라고. 스마트폰에 적힌 애들 숫자가 열 명이 넘어.
이병렬은 화가 난 것을 넘어 냉정해진 듯한 음성이었다.
- 그 새끼는 안산 공장으로 보냈고, 오상율은 손목 하나, 박중달은 발목 두 개로 대강 마무리했다.
“나중에 다른 소리 하지 않겠어?”
- 이번 일로 내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다음 날 파묻힐 걸 아는데 그럴 수는 없어. 뒤는 나에게 맡겨.
이병렬에게 맡겼던 일이고, 그가 판단해서 결정한 결과였다.
강성태가 여기에서 다른 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 이거 말이지. 운영팀이라는 놈들이 있어. 촬영한 놈, 실제로 여자애들과 관계한 놈, 치마 속을 찍은 놈, 비트코인을 현금화 한 놈, 역할도 다양해.
무슨 뜻인가 했던 강성태는 눈살을 찌푸렸다.
더러운 장면을 상상하자 바로 속이 뒤집혔기 때문이었다.
- 명단 확보했으니까 그건 만나서 의논하자.
“대강 끝났으면 태완이 형님댁으로 와. 지금 그리로 가고 있다.”
- 바로 출발하지.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아차 싶었다.
이병렬은 조태완의 집이 아니라 방지병원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기는, 각 지역의 책임자를 모두 불러놓고 이병렬더러 병원에 가라고 하는 건 또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지루했던 싸움의 끝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차웅진과 인천을 정리하는 것으로 밀수를 막고, 필리핀 가디언스파의 도움으로 마카오에서의 더러운 계획을 미리 알게 된 득도 있었다.
오늘 밤 끝낸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좀 쉬자.
창밖을 보며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