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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9권 - 17화 (389/513)

《389》2부 19권 - 17화

강성태의 당부대로 이병렬은 휠체어에 앉아 병실을 나섰다.

“봉진아. 네가 승합차로 움직여서 함께 와.”

복도로 나선 이병렬은 오상율과 박중달을 달랑 조봉진에게 맡겼다.

이병렬을 향한 충성심이라면 몰라도 조봉진의 능력은 평범한 수준이었다. 오상율과 박중달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뿌리치고 도주할 수 있었다.

혹시 노리는 게 있을까?

‘도망가면 더 좋지.’

돌아보는 강성태를 향해 이병렬이 입술 끝을 묘하게 움직였다.

뭐라고 해도 먼저 죄를 토해낸 놈들을 잔인하게 대하기 어려운 탓에 오상율과 박중달을 죽일 명분을 얻으려는 눈치였다.

솔직히 이대로 넘어갈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함정을 던지고 싶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조봉진이 다치는 일만큼은 막고 싶었다.

“조봉진. 복도에 있는 인원 데리고 함께 움직여. 빌라 앞에서 보자.”

지시를 건넨 강성태는 돌아보는 두 놈에게 차갑게 입을 열었다.

“얌전히 가서 기다려. 병렬이 말대로 도망가고 싶으면 그건 알아서 하고.”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눈치를 살핀 오상율이 눈 안쪽을 누르고 있던 수건을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조봉진 일행이 먼저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강성태는 이병렬, 김진용과 함께 잠시 복도에 놓인 기다란 의자 앞에 있었다.

“뭐 하러 애들을 더 붙여?”

“인천 거래가 이틀 뒤다. 시간이 많다면 여유 있게 처리하겠는데 지금은 이런저런 일이 너무 많아. 저 두 놈이 도주하면서 우장기까지 몸을 숨기면 피해자들이 그만큼 더 고통받아야 하고.”

그런가?

강성태의 설명을 들은 이병렬이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눈매를 뒤틀었다.

조봉진 일행이 내려간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움직였다.

“그건 그렇고, 차웅진하고 함태준은 어떻게 할 거야? 이렇게 지켜보는 건 보스 스타일이 아니잖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에 이병렬이 내놓은 질문이었다.

타이를 매지 않은 셔츠, 재킷, 정장 바지, 강인하게 생긴 이병렬은 머리에 붙인 거즈만 아니라면 전혀 환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차웅진과 함태준이 문제가 아냐. 이상하리만치 야쿠자는 흔적이 드러나지 않아. 그렇다고 삼합회처럼 우리나라에 따로 조직을 꾸리지도 않았고, 똬리를 튼 지역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답을 한 순간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서 강성태가 먼저 들어섰고, 이어 휠체어를 붙잡은 김진용이 들어왔다.

“아르윈과 키란을 차웅진 집 앞에 보내뒀다. 차웅진이 헛짓거리를 하면 들여보내서 목에 칼이라도 들이댈 생각이기도 하지만, 진짜는 야쿠자들이 방문해서 꼬리를 잡을지 모른다는 기대에 보내둔 거다.”

‘오호라?’

눈과 입을 둥그렇게 만든 이병렬이 감탄한 표정으로 강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보를 모으다 보면 놈들의 근거지를 잡을 수도 있을 텐데 거래는 이틀 뒤고, 마카오 회의는 열흘도 안 남았어. 거래가 끝나고 머리를 감추면 찾아내기도 그만큼 어렵겠지.”

“거래가 끝날 때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함태준과 인천은 조직 방식대로 정리할 생각인데 차웅진은 아직 고민 중이다. 그 인간이 깡패가 아니어서 우리 방식으로 응징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판단이 안 섰거든.”

“그래서 부모님 사건 덮은 변호사도 아직 그대로 둔 거구나?”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일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외래 진료를 위해 방문한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가 김진용의 험악한 인상과 덩치, 머리에 거즈를 붙인 이병렬을 보고는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현관을 나선 세 사람은 조심스럽게 고개 숙이는 덩치들 앞을 지나쳐 정문에 도착했다.

“아후. 됐지?”

그 직후에 이병렬이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켰다.

병원을 나설 때까지 휠체어를 이용한다는 약속을 지킨 데다가 이제는 걷게 됐다는 후련함, 거기에 유헌우와 마주치지 않았다는 점이 몹시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이쪽입니다, 형님.”

주차장 안쪽에 휠체어를 두고 온 김진용이 길을 안내했다.

넥타이에 셔츠, 단정한 차림의 사람들 틈을 헤치고 가는 길이었다.

점심나절의 거리는 평화로워 보였다.

길을 걷는 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할 수만은 없어서, 내색하지 않는 속에 대출금이라든가, 자녀, 부모, 혹은 부부 사이, 그도 아니면 직장 문제로 괴로울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강성태는 저들이 어떤 이유에서라도 마약은 글자라도 눈에 담지 않기를 바랐다.

아무리 힘들어도 고리대금업에 손 내밀지 않았으면 싶었다.

쉽게 얻는 건 반드시 독을 지니고 있어서 우장기 같은 독거미를 만나게 되고, 뒤늦게 도망치려 해봐야 오상율이나 박중달 같은 악랄한 함정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었다.

술과 도박, 더러운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깡패란 집단은 없어지지 않는다. 우습게도 강성태는 진심으로 깡패가 없는 세상을 바랐다.

학창시절에 삐뚤어진 삶을 살았더라도 철들어서는 그 당시를 부끄러워하며 정직하게 살 기회가 있는 세상이라면 되지 않을까?

멕시코의 신도시 건설은 강성태에게 그런 의미였다.

“이곳입니다, 형님.”

앞서 걷던 김진용이 강성태의 생각을 깨웠다.

병원에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를 정도로 멀지 않은 뒷골목이었고, 원룸 건물, 작은 식당들, 그리고 그 안쪽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듯한 주택가였다.

“오셨습니까, 형님?”

먼저 도착해 있던 조봉진, 하루 전부터 우장기를 따라다니던 덩치들이 강성태와 이병렬, 김진용을 보며 급하게 상체를 숙였다.

시간 끌 이유는 없었다.

“뭐 하고 있어? 얼른 올라가.”

“예, 형님.”

이병렬이 고개로 안을 가리키자 핏물이 밴 수건을 입가에 대고 있던 박중달이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돌아서 올라가 2층 안쪽에 있는 문이었다.

앞장섰던 박중달이 이병렬의 눈치를 살핀 뒤에 벨을 눌렀다.

좁은 계단에 덩치들이 잔뜩 서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빚을 추궁하기 위해 달려온 깡패들로 오해하기 좋았다.

[누구세요?]

“나다. 박중달. 문 좀 열어봐.”

[어떻게 왔어?]

문을 열지 않은 채 인터폰에서 나오는 우장기의 질문이 날카로웠다. 느닷없이 박중달이 벨을 누르자 의심이 든 모양이었다.

‘씨발 새끼가?’

이병렬이 입만 움직여 욕을 뱉어냈다.

문을 안 여는 우장기를 향한 건지, 시간을 끄는 박중달에게 한 건지는 알기 어려웠다. 이유가 어떻든 이병렬이 인상을 긁어댄 효과는 바로 나왔다.

“가게에 나와 달라며? 갔더니 문을 안 열어서 왔어. 얼른 열어봐.”

[혼자 왔어?]

“뭐라는 거야, 이 새끼야! 열기 싫으면 관둬, 대신 문제 생겨도 나 부르지 마라.”

있는 대로 머리를 굴린 박중달이 제법 수완을 발휘한 다음이었다.

철컥.

먼저 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깥이 디지털 도어 록인데 이런 소리가 먼저 난다고?

‘야! 준비해!’

이병렬이 덩치들에게 눈짓을 던지는 순간이었다.

강성태는 손으로 덩치들을 막고 옆으로 비켜섰다. 그런 뒤에 이병렬과 김진용에게도 몸을 감추라는 의미로 손을 좌우로 저었다.

띠루룩.

그 직후에 디지털 도어 록이 울었다.

교활한 새끼!

고리를 걸어놓아서 좁게 열린 문틈을 이용해 우장기가 바깥을 살폈다.

강성태는 박중달을 밀치고 열린 문틈으로 손을 넣어 문을 힘껏 붙들었다.

“야! 뜯어내!”

눈치 빠른 김진용이 와락 달려들어서 문을 함께 붙들었고, 덩치들 셋이 덤볐다.

콰드득.

다섯 명이 악착같이 잡아채자 안에 걸어두었던 걸쇠가 부러지다시피 하며 문이 열렸다.

“뭐야?”

“뭐긴 뭐야, 염라대왕이지! 이 개새끼야!”

구둣발로 밀고 들어간 이병렬이 작정했었던 것처럼 주먹을 휘둘렀다.

퍼벅! 퍼윽! 퍽! 퍼윽! 철퍼덕!

말릴 틈도 없이 연달아 이병렬의 주먹이 날았고, 얼굴을 감싼 우장기가 거실에 널브러졌다.

“봉진아! 이 새끼 데리고 들어가서 얌전히 만들어서 나와! 너희가 함께 들어가!”

“예, 형님.”

지시를 받은 조봉진과 덩치들이 과장된 동작으로 상체를 숙였다.

확실히 누군가를 겁줄 때는 팔을 앞으로 길게 늘어트린 채 좀 더 상체를 깊숙하게 숙이고 있었다.

“이리 와, 씨발 놈아.”

코와 입술이 터진 우장기가 도움을 청하는 눈빛 반, 배신감을 담은 눈빛 반으로 박중달을 보았다.

당장 얻을 게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는지 뒷덜미를 잡혀서 끌려가는 도중에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형님! 제가 운영하는 사이트 넘겨드리겠습니다!”

강성태가 보스라서 매달린다기보다는 커피숍에서 만만하게 상대했던 경험에다, 이병렬, 김진용을 비롯한 덩치들 틈에서 그나마 대화가 통할지 모른다고 기대하는 눈치였다.

“이 개새끼가 미쳤냐? 어디에 대고 작업을 쳐?”

홱, 달려든 조봉진이 끌려가는 우장기의 코를 무릎으로 세차게 찍었다.

콰작!

“커흑!”

비명을 끝으로 우장기는 덩치들과 함께 문 바로 옆의 방으로 끌려 들어갔다.

“커피숍 주인 있어야 하잖아? 찾아봐.”

“예, 형님.”

이병렬이 지시하자 남은 덩치들이 나머지 문 두 개를 급하게 열었다.

“형님!”

그리고 주방 바로 옆의 화장실 문을 열었던 덩치가 급하게 이병렬을 불렀다.

“이런 개새….”

카페 여주인은 속옷만 입은 차림으로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를 폭행할 때 사용했던 것처럼 하수구를 뚫을 때 사용하는 봉과 부러진 대걸레 자루가 함께 바닥에 있었는데 속옷만 입은 여주인의 상체와 엉덩이, 허벅지가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그런데도 여주인은 거짓말처럼 편안한 얼굴이었다.

“가릴 것 좀 가져와.”

강성태가 지시하자 덩치 한 명이 뛰어가더니 침대 위에 있었음 직한 얇은 이불을 가져왔다.

“밖에 승합차 가져왔지? 지금 태워서 바로 방지병원으로 데려가. 마약을 투여한 거 같다고 말하고.”

“알겠습니다, 형님.”

앞을 지키던 덩치 두 명이 강성태가 이불로 덮은 여주인을 안아서 들었다.

아래로 늘어진 머리칼과 힘없이 흔들리는 팔이 그녀의 현재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욕실을 나설 때였다.

이불에 쌓여 있는 여주인이 힘겹게 눈을 떴다.

강성태를 분명하게 보았다. 그러나 생기를 모두 뺏긴 물고기처럼 그녀의 눈에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마약에 중독돼서 얻어맞는 순간에 쾌락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약이란 게 그런 거고,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니까.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덩치 둘이 나가고 난 빌라에서 강성태는 안을 돌아보았다.

문 오른쪽에 방, 그 옆으로 주방, 화장실, 다시 방이 전부인 구조였다.

“이 개새끼야! 우리 형님께 눈알을 부라렸어? 세상 보기 싫으면 그냥 먹물을 빼달라고 해, 이 새끼야!”

퍼윽! 퍽! 퍼벅! 콰작!

우장기를 두들기는 소리가 방문을 뚫고 거실로 나오고 있었다.

“명단은 어디 있어?”

“저 방 컴퓨터에 있습니다, 형님.”

강성태의 질문을 받은 박중달이 하필 우장기가 두들겨 맞는 방을 가리켰다.

강성태가 갑갑한 얼굴로 방을 보았을 때였다.

“야!”

“예! 예!”

“형님께서 물어보시면 생각하거나 고민하지 말고 바로 대답해. 알았어?”

“예!”

“에라, 이 씨발놈아! 그새 눈알을 굴려?”

콰작! 철퍼덕! 퍼윽! 퍽!

다시 방안에서 우장기를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서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저 불편한 과정을 기다리느니 바르지오에게 컴퓨터를 들고 가는 게 더 편하지 않을까?

“뭐 하냐?”

그 뒤에 이병렬이 알기 어려운 질책을 쏟아냈고, 덩치 둘이 움직여 식탁 의자를 두 개 가져와 거실 중간에 놓았다.

소파에 앉는 것보다는 나았고, 무엇보다 몸이 힘들 이병렬을 위해서도 앉는 게 좋았다.

강성태와 이병렬이 앉은 뒤로 김진용이 섰고, 다시 그 옆으로 남은 덩치들이 늘어섰다.

“너는 저기 가서 꿇어앉아 있어.”

“감사합니다, 형님.”

분위기를 알아챈 박중달이 냉큼 가서 무릎을 꿇었고, 그 옆으로 움직인 오상율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고개를 떨궜다.

“씨발 새끼.”

독하디독한 눈매를 한 이병렬이 욕을 뱉어낸 뒤에 방문이 열렸다.

“이리 와, 이 개새끼야!”

조봉진이 우장기의 뒷덜미를 잡아서 강성태와 이병렬의 중간에 꿇렸다.

콧대가 비틀어졌을 정도로 심하게 부러진 코에서는 덩어리 피가 떨어지고, 눈가와 입술, 턱 아래를 제대로 맞아 살이 찢겨 있었다.

우장기를 내려다보았던 이병렬이 시선을 돌렸다.

‘알아서 해.’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인 직후였다.

이병렬이 우장기를 향해 상체를 구부렸다.

“안에 컴퓨터 있다며? 뒤지면 다 나온다. 그러니까 있는 대로 말해. 네가 영상 찍은 여자 중에 제일 어린애가 몇 살이야?”

“열…. 열두 살….”

콰자작!

상체를 세운 이병렬이 우장기의 코를 구둣발로 힘껏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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