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2부 19권 - 12화
박배근을 비롯해 부산, 광주 덩치들과 헤어진 강성태 일행이 서울을 향해 30분쯤 달린 뒤였다.
이병렬의 이름을 액정에 올린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조태완과 박노익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참이었다.
두 사람을 위해 강성태는 스피커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우리 병원 좀 바꾸자. 무슨 병원 원장이 신강남파 넘버 투를 동네 꼬마 대하듯 하냐고? 거기에 족발 욕심은 왜 그렇게 많아?
염려를 가득 안은 강성태의 심정을 전혀 모른다는 듯 이병렬의 엉뚱한 투정이 먼저 건너왔다.
통화에 집중했던 조태완과 박노익이 헛웃음을 삼키고 있었다.
“별일 없었어?”
- 아니. 함태준이 보낸 칼잡이 세 놈 잡아서 차에 태웠다.
“뭐?”
- 함태준이 보낸 칼잡이 셋을 잡았다고. 보스 말대로 김밥하고 순대 사서 스쿠터 타고 왔더라고.
“다친 사람은?”
- 기다리고 있다가 낚아채서 손가락 하나 다친 사람 없어. 혹시 몰라서 응급실에 광주 동생들까지 넣어뒀으니까 병원은 걱정하지 마.
목을 쭉 내밀었던 조태완과 박노익이 시선을 마주친 뒤에 약속이나 한 듯이 숨을 길게 쏟아냈다.
“함태준이 보낸 놈들이라고 실토했어?”
- 그 새끼들이 쉽게 답을 하나? 함태준이 보냈냐고 물었더니 눈알을 옆으로 굴리면서 멈칫하더라고. 그거로 끝난 거지. 이놈들이 함태준이 보낸 칼잡이가 아니면 내가 생활 접는다.
강성태의 시선 앞에서 조태완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병렬이 저 정도로 말한다면 믿어도 된다는 의미로 보였다.
“칼잡이들은 어떻게 했어?”
- 지금 승합차에 실어놨는데 우선 영등포나 안산 공장으로 보내놓으려고.
“그 전에 사진을 보내줄 수 있을까? 부산에서와 같은 놈들이라면 이교창을 작업한 것도 함태준인 게 확인되잖아?”
- 그러네.
강성태의 제안을 이병렬이 감탄조로 받았다.
- 그럼 내가 이 새끼들 쭉 앉혀 놓고 예쁘게 웃는 사진 뽑아 보낼 테니까 교창이 형님께 보여드려. 그건 그렇고, 진짜로 우리 영등포 안호상 원장님 병원으로 옮기자.
안호상 원장에게 하루가 멀다고 다쳐서 찾아가고, 밤에 들이닥친 칼잡이를 두들겨 잡는 꼴을 보이자고?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이병렬의 제안이었다.
“시설은 아무래도 방지병원이 낫지. 조만간 다른 병원 알아볼 테니까 며칠만 있어 봐.”
- 알았어. 그럼 사진 찍어서 보낼게.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부천에서 황원남이 해결하고 함태준이 보낸 칼잡이까지 낚아챘으니 병렬이 혼자서 인천 부천 연합의 코를 제대로 깨버린 거네. 함태준이 지금 죽을 맛이겠는데?”
내내 통화를 함께 들었던 조태완이 넉넉한 감탄을 내놓았고,
“교창이한테 확인해서 같은 놈들이라면 원남이에게 전화라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박노익이 눈빛을 빛내며 의견을 내놓았다.
“전화해서 뭐라고 하려고?”
“교창이 노린 것으로 모자라 병원에까지 칼잡이 보냈으니까 너도 당해 봐라, 뭐 이 정도가 좋지 않겠습니까?”
“얻을 게 없잖아?”
“그건 태준이가 만들어야지요. 칼잡이까지 낚았으니까 명분도 있겠다, 우리 신강남파가 인천으로 밀고 갈 테니 어디 갈 데까지 가보자, 이 정도로 들이밀면 뭔가 제안을 내놓지 않겠습니까?”
고개를 슬며시 기울였으나 조태완은 답을 내놓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으나 인천으로 밀고 들어갈 때, 차웅진이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고, 다음으로 사흘 뒤에 들어오기로 한 물건을 함태준이 포기하지 않으리라 짐작하는 눈치였다.
보스의 의견은 어떠냐는 듯 조태완이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칼잡이들이 붙들렸으니까 당장 함태준도 함부로 움직이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전화는 좀 더 고민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나도 그 생각이기는 한데 노익이 말도 일리가 있거든. 사흘 뒤에 물건이 들어오는 것까지 알고 있다고 태클 걸면, 차웅진 회장과 야쿠자까지 숨통이 막히는 거라서 칼자루를 우리가 쥘 수도 있지.”
“거기까지는 생각 못 해봤습니다. 아직 사흘이 남았으니까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강성태가 답을 내놓았을 때였다.
우우웅.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짧게 울렸다.
문자를 확인하자 곧바로 사진이 올라왔다.
강성태는 검지로 한 장씩 넘겨 가며 세 놈을 모두 확인했다.
시원하게 두들겨서 눈과 코, 입이 엉망이었는데 인상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내게 보내줘. 그럼 내가 교창이에게 보낼 테니까.”
“제가 직접 보내겠습니다. 번호를 주십시오.”
“내가 보낼게, 동생.”
강성태는 우직하게 요구하는 박노익을 고맙다는 시선으로 보았다.
“형님 뜻은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제가 받았습니다. 이런 것까지 수사할 상황이라면 이미 빠져나가기 어려운 위기에 빠졌다는 건데 괜히 중간에서 한 사람 더 걸릴 필요 없습니다.”
강성태의 대꾸를 들은 박노익이 더는 어쩌지 못하겠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런 뒤에 그는 이교창의 번호를 강성태에게 알려주었다.
강성태라는 내용과 함께 사진을 보내고 30초쯤 지난 다음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이교창의 이름을 떠올린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이번에도 강성태는 스피커폰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이교창입니다, 형님. 올라가시는 길은 편안하십니까, 형님?
첫 통화라고 예의를 갖추고 있는데 올라오는 독기를 억지로 누른 음성이었다.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해. 사진 확인했어?”
- 이 새끼들 어디에서 잡으셨습니까? 그날 포장마차 앞에서 봤던 놈들 확실합니다. 가운데 있는 놈이 제게 연장을 휘둘렀던 놈입니다.
조태완과 박노익을 돌아본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향해 입을 열었다.
“병렬이 노리려던 걸 잡았어. 언제 이런 일이 또 있을지 모르니까 당분간은 좀 더 조심해. 우리 쪽에서 함태준 밀고 들어갈지 모르니까 칼잡이 확인한 사실은 일단 비밀로 하고.”
- 절대 말 나가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살펴가십시오, 형님.
통화가 끝났다.
“지금쯤 함태준이 자궁이 답답하겠습니다, 형님.”
박노익이 갑갑하다는 표현을 저속하게 뱉어내자 조태완이 비릿하게 웃었다. 점잖을 때도 있지만, 이런 순간에 보면 확실히 박노익은 조직폭력배 출신이었다.
더는 중요한 이야기가 없어서 강성태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이렇게 또 하나의 위기를 넘겼다.
하마터면 이병렬이나 최치곤, 유충일을 잃을 뻔했다는 사실에 섬뜩했고, 한편으로는 이 바닥에 있는 한, 이런 위험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강성태의 어깨를 짓눌렀다.
신월동과 영등포에서 마약과 고리대금업을 없애고 싶다는 욕망이 시작이었다. 그 욕망이 강성태를 조직으로 끌어들였고, 어느새 전국에 이름을 떨치는 깡패 두목으로 만들었다.
강성태는 고속도로에서 시선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도로에 설치된 조명 탓인지 하늘은 그만큼 더 어두워 보였는데 반대로 별은 보이지 않았다.
저 어두운 하늘에 분명 있을 텐데도 말이다.
차웅진, 함태준, 야쿠자, 그리고 압구정동에 산다는 변호사, 마카오 회의, 멕시코 공사, 강성태는 해결해야 할 일들을 떠올렸고, 처리할 방법을 고민했다.
조태완과 박노익이 등받이에 몸을 기대면서 빠르게 달리는 승용차 안에 침묵이 맴돌았다.
**
해뜨기 직전의 가장 진한 어둠 속에서 승용차가 방지병원 앞에 도착했다.
앞에 달리던 승용차, 뒤에서 따라오던 승용차와 승합차에서 우르르 내린 덩치들이 차에서 내리는 강성태를 둥그렇게 감쌌다.
“고생하셨습니다.”
“보스도 이러지 말고 들어가라니까.”
“병렬이랑 아침만 먹고 들어가겠습니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차 안에 앉은 조태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조태완은 뒷좌석에 앉아 있었지만, 운전석의 진용도와 조수석에 있었던 박노익은 차에서 내려 문 앞에 있었다.
“힘드셨을 텐데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동생이 그런 말을 하면 게으르다는 질책이 돼. 대강 얼굴 보고 들어가서 좀 쉬어.”
박노익과 인사를 나눈 강성태는 운전석 앞에 있는 진용도에게 고개를 돌렸다.
“두 분 모두 집에 들어가시는 거 분명하게 확인한 뒤에 돌아와. 앞뒤에 차 함께 움직이고.”
“예, 형님.”
강성태의 지시가 끝나자 박노익이 조수석에 올랐고, 상체를 깊숙하게 숙인 진용도가 운전석에 앉았다.
“들어가십시오, 형님.”
문기주를 비롯한 덩치들이 강성태에게 상체를 숙였다.
“마지막까지 긴장 풀지 마.”
“실수 없도록 하겠습니다, 형님.”
다부지게 답한 문기주가 손을 젓자 덩치들이 타고 왔던 차에 모두 올라탔다.
승용차가 출발한 뒤에 강성태는 병원 문으로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형님?”
지난밤 칼잡이들 때문인지 새벽 직전에도 열 명이 넘는 덩치들이 주차장을 지키고 있다가 강성태를 향해 상체를 깊게 숙였다.
강성태는 몸을 일으킨 덩치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부천에서의 싸움, 호텔에서 붙잡은 야쿠자 넷, 병원에서 낚아챘다는 칼잡이 셋, 어제만 해도 피 냄새 짙은 싸움이 세 번이나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단숨에 불법적인 욕망을 버리지 않는 한, 깡패는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신강남파 덩치들을 언제까지 이렇게 끌고 갈 수도 없었다.
결국, 올라오는 내내 고민했던 방법을 택하는 게 가장 현명한 판단처럼 느껴졌다.
“필리핀 조직원들이 탄 승합차가 들어올 테니까 문제없게 받아줘. 병렬이는?”
“여기 원장님이 주사를 세 방 놓았는데, 형님. 그 뒤로 바로 주무신다고 들었습니다.”
병실을 올려다보았던 강성태는 투덕거렸을 이병렬과 유헌우를 떠올리며 픽 웃었다.
“응급실에 들렀다가 병실로 갈 테니까 돌아가면서라도 좀 쉬어.”
“감사합니다, 형님.”
인사를 받으며 강성태는 응급실로 향했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강성태는 이미 폭력 조직의 두목이었다.
왜 이런 길에 들어섰는지 이해해주는 안다미는 몰라도, 이모 장숙경이 보기에는 깡패들의 우두머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길게 끌면 불리한 싸움이었다.
그럴 마음도 없었고, 또 중요한 일들이 줄줄이 남아 있었다.
응급실로 들어가자 병원 스태프가 피곤함에 절은 얼굴을 하고도 반갑게 눈인사를 건넸다. 비슷한 표정으로 인사한 강성태는 커튼 앞을 지키고 있는 덩치들을 향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응급실에서는 인사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깊게 상체를 숙이는 대신, 커튼 앞에 있던 덩치들이 깍듯하게 고개만 숙여 인사했다.
강성태가 고개를 기울여 안을 들여다보자 유충일은 잠에 빠진 양, 눈을 감고 있었다.
“조성호는?”
“이 시간이 가장 한가해서 잠깐 씻고 옷을 갈아입으러 이 앞 모텔에 갑니다, 형님. 30분이면 돌아옵니다.”
자리를 비운 조성호를 두둔하는 듯한 답이 있었다.
그 정도 여유를 나무랄 강성태는 아니었다. 게다가 조성호는 아직 야쿠자나 함태준이 노릴 만큼 중요한 직책에 있지도 않았다.
응급실이었다.
나직하게 고생하라는 말을 전한 강성태는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최치곤의 커튼 안을 들여다보았다.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스마트폰을 배에 올린 최치곤이 커튼 입구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강성태와 최치곤 모두 비슷한 표정으로 웃었다.
“왜 안 자?”
“낮에 실컷 잤더니 잠이 안 와서 웹툰 보던 중이야. 부산에서 지금 왔어?”
고개를 끄덕여 답한 강성태는 최치곤의 침대 옆에 앉았다.
“성태야. 힘들면 잠깐 내려놔.”
“내가 힘들어 보이냐?”
“거울 좀 봐라. 이모가 보셨으면 바로 눈물 흘리셨을 거다.”
스마트폰을 배에 엎어둔 최치곤이 팔을 움직여 침대 위에 얹어둔 강성태의 손을 덮었다.
“미안하다.”
“뭐가 또? 아무리 그래도 먹을 건 안 돼.”
아직 붓기가 완전히 빠지지 않은 최치곤이 눈을 길게 늘이며 옅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최치곤이 벌써 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혼자 애쓰는 데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
“미친놈. 부산에서 충일이 살려온 거로 너는 평생 미안할 일 없어. 대신 다음부터는 이렇게 다치지 말자.”
답을 한 강성태는 최치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냐, 그 부담스러운 시선은?”
“우리 유스시에 둘이 갈 때 기억하냐?”
“당연히 기억하지! 그때 회칼 들고 들어갔는데 상황 다 끝나 있어서 얼마나 뻘쭘했는데 그걸 잊겠냐? 아흐, 그때 나를 쳐다보던 연수구 놈들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
반쯤 장난기를 섞어 답하던 최치곤이 혹시 하는 얼굴로 표정을 굳혔다.
“하지 마. 절대 안 돼.”
“뭘?”
“너, 함태준 치러 갈 생각하는 거 아냐? 혼자서?”
“미쳤냐? 한둘도 아니고, 내가 강남의 클럽에 혼자 뛰어들었다고 해도, 인천 부천 연합의 그 많은 숫자를 그렇게 상대할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다.”
태연한 대꾸에도 최치곤은 의심을 풀지 않은 눈빛으로 바라볼 뿐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은주 씨 있을 줄 알았는데 요즘은 안 와?”
“아까 일이 있었잖냐. 놀랄 거 같아서 내가 전화했어. 병원에 일이 있으니까 오늘은 오지 말라고.”
“아버지는?”
“전화하셨었는데 내가 둘러댔지, 뭐. 네 이름 파니까 바로 이해하시더라고.”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성태야. 진짜 하지 마. 인천 태준이 형님이 원래 생각이 짧고, 속이 좁아서 대가리 할 그릇은 아니라는 말도 있는데, 대신 그 아래로 독종들이 진짜 많아. 특히 크리스탈이나 옐로우 하우스 쪽 짠물들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독종들이다.”
확실히 최치곤은 강성태의 눈빛만 보고도 속을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강성태는 옅게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