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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9권 - 11화 (383/513)

《383》2부 19권 - 11화

통화를 마친 이병렬은 테이블을 짚고서 몸을 일으켰다.

정수리 바로 뒤편에 거즈를 커다랗게 붙였는데 그 옆에 있는 김진용과 이종환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형님?”

“야쿠자 놈들이 작업 들어온단다! 우리는 몰라도 응급실은 막을 사람이 없어!”

말끝에서 이병렬은 이미 병실을 뛰쳐나가고 있었다.

“봉진아! 얼른 내려가서 병원에 아무도 못 들어오게 입구 막아! 족발이고 뭐고, 어떤 핑계를 대든 환자 아니면 모두 붙잡아! 환자도 직접 따라붙고.”

“예? 형님?”

병실 앞 복도에서 덩치 두 명과 있던 조봉진이 당황해서 반문하는 순간이었다.

길게 설명할 시간이 아깝다는 투로 환자복 차림의 이병렬이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렸다. 뒤따라 나온 김진용과 이종환이 바쁘게 달리는 것을 본 조봉진은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든 얼굴로 뛰었다.

“이, 씨발!”

엘리베이터 호출 버튼을 누른 이병렬이 상단에 찍힌 숫자를 확인하고는 욕을 뱉었다.

“형님!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이병렬의 다급한 모습, 이종환과 김진용의 갑갑한 얼굴을 확인한 조봉진이 덩치 두 명과 함께 냅다 계단으로 뛰었다.

상처만 아니라면 계단이 빠르겠지만, 지금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리고 이런 순간이야말로 감정보다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했다.

“빨리 좀 와라!”

혼잣말을 뱉은 이병렬이 스마트폰에서 번호를 찾은 직후였다.

때앵.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얼른 타! 얼른!”

김진용이 반쯤 탄 순간에 이병렬은 통화버튼을 눌렀고, 그 옆에 있던 이종환이 ‘닫힘’ 버튼을 눌렀다.

- 조성호입니다, 형님.

“야! 정신 차리고 똑바로 들어! 야쿠자 새끼들이 칼잡이를 보냈다니까 혹시 응급실로 족발 들고 오는 사람 있으면 무조건 막아!”

- 예? 형님?

“지금 주차장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응급실에서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다! 충일이랑 치곤이 지켜! 알았어?”

- 예, 형님.

그나마 조성호는 한 번에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이를 악문 듯한 답이 들렸다.

그리고 그 뒤에 벨 소리가 울리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어둑한 로비를 향해 튀어 나가는 이병렬, 그 뒤를 따르는 이종환과 김진용이 현관으로 방향을 틀어 주차장으로 나선 순간이었다.

어떻게 내려왔는지 모르지만, 조봉진과 덩치 둘이 숨을 헐떡이면서 병원 주차장 입구에 있었다.

“아직 배달 안 왔답니다, 형님! 들어온 사람도 없었고요, 형님!”

무릎을 짚고서 거친 숨을 내뱉던 조봉진이 상체를 들고서 가쁘게 뱉어낸 보고였다.

아직 주차장에 있던 광주와 대림동, 필리핀 조직원들 삼십여 명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저 조봉진의 행동, 뒤늦게 뛰어나온 이병렬과 이종환, 김진용을 보고서 급하게 차에서 내렸는데, 그 바람에 깊은 밤 방지병원 주차장이 삽시간에 어수선한 긴장에 휩싸였다.

“광주 식구들은 얼른 응급실로 들어가! 조성호가 괜찮은지 알아보고 아무 일 없으면 로비에서 응급실로 향하는 입구 막아!”

“예, 형님!”

이병렬이 급하게 지시하자 열 명 남짓한 광주 덩치들이 우르르, 응급실로 뛰어들었다.

“족발 시킨 거 아직 안 왔냐?”

“안 왔습니다, 형님.”

대림동 덩치 하나가 답을 내놓았을 때였다.

응급실로 향했던 덩치 중 한 명이 달리다시피 이병렬 앞으로 뛰어왔다.

“응급실에는 아무 일 없었답니다. 성호 형님이 두 명씩 침대 앞을 지키라고 해서 그렇게 했고, 나머지는 로비에서 응급실로 통하는 입구 막았습니다, 형님.”

현관 유리를 통해 고개를 돌린 이병렬의 눈에 로비 구석에 서서 입구를 막는 광주 덩치들이 보였다.

“아후, 씨발. 개새끼들 때문에 족발 하나도 마음 놓고 못 먹겠네.”

반쯤 안심했다.

현관에서 고개를 돌린 이병렬은 환한 간판 아래의 응급실 입구와 조봉진이 서 있는 병원 정문을 돌아보았다.

“봉진아! 입구 좀 지키고 있어!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이 앞으로 와!”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대림동과 필리핀 조직원들이 이병렬 앞으로 모였다.

“부산 이교창 형님이 퀵서비스로 위장한 놈들에게 당했는데, 그놈들이 병원을 노릴 확률이 높단다. 우리가 긴장하고 있는 걸 보면 그대로 돌아갔다가 언제고 빈틈을 노릴 거니까 이렇게 하자.”

덩치들을 돌아본 이병렬이 다시 말을 이었다.

“대림동 식구들은 반으로 나눠서 한쪽은 차에 타고, 나머지는 저기 응급실 건물 옆으로 벽 있지? 거기 틈에 숨어. 필리핀 조직원들, 너희가 할 일이 중요해.”

왼편에 몰려 있는 필리핀 조직원들을 향해 이병렬이 고개를 돌렸다.

“우리말 가장 잘하는 사람이 누구냐?”

“아르윈 형님이 한국말 능숙한 사람만 골라서 거의 비슷합니다, 형님.”

이병렬이 뻘쭘할 정도로 억양, 발음, 모두 완벽한 우리말 답이었다.

짧은 순간에 “역시 아르윈이네.”하는 감탄을 뱉은 이병렬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잘됐다. 그럼 나머지는 모두 몸을 숨기고, 두 명만 나가서 입구를 지켜. 배달 온 사람이 있으면 얼빵한 우리말로 족발만 두고 가라고 막아. 알았지?”

“배달원인지 칼잡이인지 알아내란 말씀이십니까, 형님?”

“그렇지!”

속을 들여다본 듯한 질문에 이병렬이 만족한 눈빛으로 답을 내놓았다.

“서둘러! 차에 숨은 거 들키지 않게 자세 낮추고!”

“예, 형님.”

묵직하게 답한 덩치들이 급하게 주차장에 세워둔 차와 응급실 건물 옆에 있는 작은 골목 같은 공간으로 움직였다.

“봉진아! 너도 이제 빠져!”

필리핀 조직원 두 명이 입구로 나서자 이병렬이 손짓과 함께 지시를 내렸다.

“그나저나 우리는 어디에 있지?”

“입구에서 안 보이니까, 형님. 저기 벤치에 앉아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형님?”

병원에 오래 있었던 김진용이 구석에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입구에 서 있는 필리핀 조직원들에게 족발만 주고 간다면 배달원이 절대 볼 수 없는 공간이었다.

고개를 짧게 끄덕인 이병렬이 벤치로 움직였다.

“너도 앉아.”

“아닙니다, 형님.”

“지랄. 진용이야 불편해서 그렇다고 쳐도 너까지 그러고 있으면 내가 사악한 놈이 되잖아. 얼른 앉아.”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이병렬이 거듭 권하고서야 이종환이 곁에 앉았다.

김진용과 조봉진, 대림동 덩치들은 벤치 뒤에서 입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족발이 원래 이렇게 늦게 오냐?”

“야식 배달이 가장 붐빌 시간입니다, 형님.”

“그렇기도 하겠네. 그건 그렇고, 칼잡이가 온다고 해도 우리가 배달시킨 걸 알 방법이 없잖아?”

“말씀해 주셔서 이렇게 준비하는 거지, 다른 병실이나 당직 의사가 주문한 배달이라고 하면 그대로 들여보냈을 겁니다. 봉지 열어보라고 했는데 진짜 김밥이나 족발 들어있으면 다른 말을 하기 어렵잖습니까, 형님?”

“그러네.”

이병렬은 이종환의 의견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아무 일 없었고, 그 덕분에 한 차례 숨을 돌렸다.

여유가 생긴 이병렬은 머리에 붙인 거즈로 손을 올리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달리느라 상처가 울린 것도 있고, 피가 거꾸로 치솟는다는 말처럼 심장의 박동에 따라 머리가 욱신거리는 탓이었다.

“황원남, 이 개새끼….”

머리를 만지던 이병렬이 뜬금없는 욕을 뱉어낸 직후였다.

스쿠터 엔진 소리가 분명하게 들렸다.

왔나?

이병렬이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종환은 몸을 세웠으며, 김진용과 조봉진, 대림동 덩치들은 아예 상체를 돌리다시피 해서 필리핀 조직원들을 살폈다.

“못 가요.”

헬멧에 자그마한 몸집을 한 배달원이 입구에 도착하자 필리핀 조직원 둘이 팔을 벌리고 막았다.

“배달왔는데 왜 막아?”

“우리 주고 가요. 우리가 가져가요.”

영락없이 우리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외국인으로 보일 어색한 억양과 발음이었다.

‘저놈들 굉장하지 않냐?’

이병렬이 슬쩍 돌아본 시선에 이종환이 고개를 짧게 숙였다.

“배달이라니까. 이렇게 줬다가 없어지면 누가 책임져?”

“우리가 가져가요. 우리 주고 가요.”

“아니, 근데, 이 씨!”

대화를 듣고 있던 이병렬이 옅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배달원치고는 거친 반응도 그렇지만, 말끝에 달린 욕설에 확실하게 깡패들이 사용하는 억양이 달려있어서였다.

“욕 나빠요.”

“이것들이 진짜! 비켜!”

“아니면 전화해요.”

“누구한테 전화하라는 거야? 그리고 내가 왜 너희 때문에 전화까지 해야 돼?”

“주문한 사람. 전화.”

기대 이상으로 잘해나가는 상황이었다.

필리핀 조직원들이 시간을 버는 사이, 이병렬과 이종환, 김진용, 조봉진, 덩치 둘은 담벼락에 붙어서 입구로 움직였다.

배달원이 주차장 안을 기웃거린 모양이었다.

“안에 아무도 없어요.”

뒤를 돌아본 필리핀 조직원이 순박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다시 앞을 돌아보았다.

“야!”

느닷없이 배달원의 고함이 주차장에 울렸다.

필리핀 조직원들과 한바탕하려고 그러나?

양팔을 사선으로 벌린 이병렬이 담벼락에 등을 붙인 채로 멈춰 서서 이종환을 돌아보았다.

“이리 와 봐!”

그 뒤에 다시 배달원의 고함이 터졌다.

저 새끼가 지금 연장을 꺼내면 어쩌지?

이병렬의 의문과 달리 두 명의 필리핀 조직원들은 태연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병렬의 의문은 바로 풀렸다.

두 대의 새로운 스쿠터 엔진음이 달려와 병원 앞에서 멈췄기 때문이었다.

“내가 배달 갈 테니까 얘들 좀 치워.”

“예.”

지시와 답을 들으며 이병렬은 입구에 선 놈들이 칼잡이라고 확신했다.

‘시작한다.’

이병렬은 먼저 주차장에 서 있는 차와 응급실 옆 골목에 몸을 숨긴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그런 뒤에 이종환과 김진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준비됐지?’

‘예, 형님.’

이병렬의 눈빛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숨을 짧게 내쉰 이병렬이 인상을 찌푸리며 훅, 앞으로 뛰었다.

이종환, 김진용, 조봉진, 대림동 덩치 두 명이 튀어 나갔고, 골목에서 다섯 명의 대림동 덩치들이 달려 나왔으며, 급하게 자동차의 문을 연 덩치들까지 가세했다.

“뭐…?”

놀라서 상체를 빼는 배달원의 멱살을 이병렬이 움켜쥐었다.

“팔 잡아!”

이병렬이 고함을 지르는 사이, 이종환과 김진용이 다른 두 놈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가장 빠른 건 필리핀 조직원들이었다.

잽싸게 달려들어서 이병렬이 멱살을 쥐고 있는 배달원의 양팔을 붙들었고, 팔꿈치를 꺾어서 뒤로 비틀었다.

“아! 아아! 왜 이래요?”

“그건 보면 알겠지.”

조봉진과 대림동 덩치들이 이종환이 붙든 배달원의 팔을 꺾는 사이, 골목에서 뛰어온 덩치들이 김진용이 붙든 배달원의 팔을 비틀었다.

“아아아! 왜 이러냐고요!”

비명이 어둠을 뚫고 주차장을 울리고 있었다.

“거기 스쿠터에 있는 봉지 열어봐. 뒤에 가방도 뒤지고.”

이병렬이 오른손을 길게 늘여가며 멱살을 쥔 배달원을 벤치 앞으로 끌고 갔다.

“배달하는 게 죄예요?”

어지간한 배달원은 이 정도 숫자의 깡패들이 달려들면 반항도 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배달원은 이병렬을 향해 당찬 눈빛과 항의를 쏟아내고 있었다.

“만약 정말 배달 온 거면, 배달시킨 사람한테 함께 가서 내가 직접 늦은 거 사과하고, 너한테는 한 달 수입과 위로금을 줄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김밥하고 떡볶이입니다, 형님. 그 외에…, 젓가락, 단무지가 전부입니다, 형님.”

봉지를 뒤진 대림동 덩치들의 보고였다.

옆에서 각각 배달원의 멱살을 쥐고 있던 이종환과 김진용이 어떻게 할까 하는 얼굴로 이병렬을 돌아본 직후였다.

“이 새끼, 몸 뒤져봐. 허리하고 발목 분명하게 살펴.”

이병렬이 지시했고, 그와 동시에 배달원이 마른 침을 삼켰다.

“다리에 사시미 차고 왔습니다, 형님.”

대림동 덩치의 보고가 있었고,

“이 새끼도 발목에 사시미 찼고, 형님. 이 새끼는 허리에도 있습니다.”

구부렸던 몸을 일으킨 광주 덩치가 빼낸 회칼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리 와, 이 새끼야.”

이병렬은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배달원의 멱살을 당긴 뒤에 그의 눈을 또렷이 들여다보았다.

“내가 신강남파 이병렬이다. 일본놈 뒤 닦아주는 네가 한칼 먹이려고 했던 이병렬. 한마디만 하면 없었던 일로 하고 돌려보내 주마.”

“형님?”

옆에서 듣고 있던 이종환이 놀라서 반문할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을 이병렬이 내놓았다.

“함태준이 시켰어?”

배달원이 눈알을 돌려 옆에 잡힌 동료들을 보는 순간이었다.

이병렬은 당기고 있던 멱살을 밀어냈다.

“이 새끼들, 차에 실어.”

“예, 형님.”

우르르 달려든 덩치들이 팔을 비틀고, 입을 틀어막은 채 승합차로 셋을 끌고 갔다.

“읍! 으읍!”

“늦었어, 이 새끼야. 네가 함태준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은 거, 눈알 굴린 거로 이미 상황 끝났어!”

승합차로 셋을 태운 덩치들이 안에서 두들기는지 차가 들썩였다가 잠시 후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또다시 스쿠터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번에도 칼잡이인가?

이병렬이 병원 입구로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

“뭡니까? 왜 내 병원에서 내가 응급실을 드나드는데 자꾸 막아서고 이래요?”

응급실에서 화가 잔뜩 난 유헌우가 나왔다.

“족발 드리려고 그런 겁니다.”

“족발? 족발이 오는데 왜 이병렬 씨가 나와 있어요? 어라? 거기 김진용 씨죠? 아니 그런데 이 사람들이 진짜! 강성태 씨 어디 있어요? 내가 정말 현금 환자만 아니면….”

“갑갑해서 잠깐 나왔어요. 들어갑니다. 들어간다니까요.”

이번에는 진짜 배달원이었다.

덩치들이 다가가서 가져온 족발 봉지를 받아들고 있었다.

“이병렬 씨는 나하고 이야기 좀 하고 올라가요.”

“아, 진짜. 올라간다니까 그래요. 올라갑니다. 보세요. 지금 가고 있습니다.”

족발을 양손에 받아 든 덩치들이 얌전히 병실로 향하는 이병렬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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