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2부 19권 - 9화
인천 부천 연합과 붙겠다던 이병렬의 연락이었다.
강성태는 “병렬이입니다.” 하는 한마디 말과 함께 아예 스피커폰의 버튼을 눌렀다.
조태완은 말할 것 없고, 조수석의 박노익마저 상체를 돌려 강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세요?”
- 이광선이 말이야. 손가락 하나 자르는 거로 정리했다.
인천 부천 연합이 나선 뒤부터는 전적으로 이병렬에게 맡긴 일이었다. 듣는 순간,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가 그렇게 마무리했다면 그럴 만한 상황이었을 거다.
“다친 사람은? 너는?”
- 나랑 종환이, 진용이, 머리가 깨지긴 했는데 몇 바늘 꿰매면 괜찮을 거고, 숙소 동생 중에도 크게 다친 놈은 없으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 그보다는 말이지.
이병렬의 말이 늘어지는 사이에 조태완, 박노익이 강성태와 비슷한 표정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인천 부천 연합이 이광선 같은 피라미 새끼를 위해 움직인다는 게 이상했거든. 그래서 마지막에 황원남을 붙잡았다.
“머리를 다쳤다면서?”
이병렬과 나머지 두 사람의 상태가 염려된 강성태의 질문이 건너간 다음이었다.
- 황원남이 마지막에 묘한 말을 지껄이더라고. 사실 광선이 이 개새끼 묻어 버리려고 했었는데 그 새끼 돌려보내 주는 조건을 걸었더니 불었다.
뭔데 이렇게 뜸을 들이지?
- 인천 부천 연합 대가리 함태준 형님이 야쿠자와 손을 잡았단다. 조만간 소문이 퍼질 거라서 어차피 알게 될 내용이기는 한데, 그래도 보스가 참고하면 좋을 거 같다.
“치료는? 지금 어디야?”
- 병원으로 가는 길이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돼. 병원은 가는데 이게 어떻게 황원남 만나는 거보다 유 원장 보는 게 더 무섭다.
이병렬의 능청에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당장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으리란 짐작 덕분이었다.
“일단 병원으로 가. 종환이랑 진용이한테도 고생했다고 전해주고.”
- 조심해.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그 와중에 왜 인천 부천 연합이 이렇게까지 뛰어드는지 알아낸 거 봐. 확실히 병렬이는 달라.”
통화를 함께 들었던 조태완이 먼저 감탄을 내놓았고,
“병렬이가 직접 나섰으니까 어설프게 끝내지는 않았을 테고, 함태준이 이를 박박 갈고 있을 겁니다, 형님.”
박노익이 감탄의 뒤에 염려를 달았다.
“일본 야쿠자와 손을 잡았다는 걸 보면 부산이 망가지자 방향을 튼 거 같은데? 이거 참. 덕분에 인천하고는 어쩔 수 없이 한바탕하게 생겼네.”
“야쿠자랑 손을 잡고 우리를 노린다면 붙어야죠.”
안팎으로 일이 너무 많지 않냐는 조태완의 염려에 강성태는 단호하게 대꾸를 내놓았다.
지켜보던 박노익이 그럴 줄 알았다는 투로 상체를 앞으로 돌렸다.
각자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강성태는 빠르게 달리는 승용차의 뒷자리에서 바르지오 만시니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녹취록이었다.
심지어 통화가 진행되는 순서에 따라 차웅진과 아카시 미키야토의 이름을 적어놓고 뒤에 내용을 적어놓아서 어디 법정에 제출할 서류처럼 보였다.
강성태는 녹취록을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인천을 통해 돈과 약을 보낸다는 내용, 부산에서 강성태를 노린다는 계획, 그래도 안 되면 인천 함태준을 시켜서 작업하겠다는 언질이 눈에 들어왔다.
돈과 여자로 대일본 제국의 은혜를 잊지 않는 자들을 계속 길러내라는 지시를 볼 때는 실없는 웃음마저 나왔다.
‘뭔데 그렇게 유심히 봐?’
궁금한 모양인지 조태완이 고개를 돌렸는데 액정을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이걸 보여줘야 할까, 아니면 일단 덮어둘까.
잠시 액정을 들여다보던 강성태는 조태완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이걸 한번 보십시오.”
“뭔데?”
“당분간은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지 마시고, 두 분 형님만 알고 계셨으면 싶습니다.”
의아한 표정으로 강성태를 살폈던 조태완이 스마트폰을 받았다.
글자가 좀 작았던 모양이었다.
스마트폰을 움직여 거리를 맞췄던 조태완이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강성태를 보았다. 차웅진과 아카시 미키야토의 녹취록을 구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운 눈치였다.
“두 사람이 오후에 통화한 내용입니다. 믿고 보시면 됩니다.”
“보스가 그렇다면 믿어야지.”
눈으로 답한 조태완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뒤에 몇 차례 한숨을 내쉬어가며 내용을 모두 보았다.
고개를 든 그의 표정과 눈빛이 복잡했다.
대강 짐작하던 사실이나 현실이 이렇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처럼 보였다.
“형님.”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받아 박노익에게도 전했다.
그는 조태완보다 빠르게 읽었고, 받아들이는 모습도 조금은 나았다. 그러나 착잡한 표정만큼은 조태완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말이지.”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박노익이 입을 열었다.
“두 번인가? 차웅진 회장의 병풍을 선 적이 있었거든. 그때 나도 차웅진 회장처럼 한 번 살아봤으면 원이 없겠다 싶었었다.”
회고, 또는 참회처럼 들리는 음성이었다.
“우리 앞에서 세상을 모두 쥔 사람처럼 행동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뒤에서 이렇게 개처럼 굴고 있을 줄은 몰랐다. 만약 그 당시 나한테 이런 걸 모두 알려주고 차웅진 회장 역할을 대신하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질문의 끝에서 박노익은 조태완에게 시선을 돌렸다.
‘형님이라면 어떠셨을 거 같습니까?’
눈빛이 담은 질문은 분명했다.
“나도 너도 막말로 깡패 새끼였던 시절이지 않나? 형님들이 시키는 일은 뭐든 해서라도 움켜쥐고 싶었던 시절이었고. 돈만 준다면, 그리고 그 당시였다면 아마 유혹에 넘어갔을 거 같다.”
답을 내놓은 조태완이 먼저 눈치를 살피듯 강성태를 힐끔 보았다.
“내가 동남아시아의 거부들을 묶어서 싱가폴, 이어서 해외로 진출하려던 계획을 세웠었다. 돌이켜보면 지금 차웅진과 다를 바 없는 짓이었지. 그 인간들이 원하는 건 뭐든지 대줬으니까.”
대화가 무겁게 흐르자 질문을 던졌던 박노익이 미안한 모양이었다.
“형님은 그래도 차웅진 회장 정도는 아니셨잖습니까?”
“동남아시아 거부들을 위해 클럽에서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모두 했는데 다를 게 있나. 그나마 보스를 만나 먼저 얻어맞고 이렇게 기회를 얻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이 양반이 이렇게까지 반성을?
의아해하는 눈빛이었으나 박노익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이가 생겼다는 말을 전한다면 박노익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을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런 내용을 전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함태준이 지금 딱 우리나라 깡패 수준을 보여주는 거지. 주머니만 채울 수 있다면 일본놈 돈이든, 약이든 받아들이고 고개 숙이는 꼴이잖나. 하기는, 내가 그놈을 욕할 자격이 있나.”
혼잣말처럼 탄식을 뱉어낸 조태완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에 싸인 고속도로를 승용차가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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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태준은 선이 굵은 인상이었다.
나이가 있는 데도 깍두기 머리를 고집했고, 눈이 부리부리한 데다, 몸집, 목, 팔뚝이 두꺼워서 누구라도 깡패란 사실을 한눈에 알아볼 정도였다.
특히 앞은 지장보살, 뒤는 관세음보살을 새긴 뒤에 양쪽 팔뚝까지 이어지는 악귀의 문신으로 유명했다.
인천 바닷가의 창고 주차장에 앉아 있던 그는 황원남의 소식을 듣자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편의점 앞에나 있을 법한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였다.
담배를 길게 빨아들인 그는 의자에 상체를 기댔다.
“부천 이 개새끼들은 무슨 일을 그따위로 하지? 이병렬이 그 정도야?”
“최근에 신강남파가 떠들썩하긴 했습니다, 형님. 그쪽 애들이 또 신호남파를 시작으로 안산, 안중, 부산까지 연달아 도는 바람에 독기가 제법 올라 있고요, 형님.”
“후.”
몇 모금 피운 담배를 아래로 떨어트린 함태준이 발로 밟았다.
“아, 씨발. 차웅진 회장도 황송할 판에 아카시 구미의 미키야토 회장님이 직접 밀어준다는데 살면서 이만한 기회가 어디 있냐? 막말로 자고 일어났더니 침대가 금으로 바뀐 꼴 아냐? 이제 그분들께 뭐라고 하냐고, 이 씨발!”
함태준이 착잡하게 입맛을 다실 때였다.
“끄으아아.”
창고 안에서 처절한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인상을 찌푸리며 창고를 보았던 함태준이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이병렬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냐?”
“병렬이 형님은 방지병원이라는 곳에 있었습니다. 머리를 다쳤다니까 종환이, 진용이랑 해서 그 병원으로 갔을 겁니다, 형님.”
“종환이?”
“대림동 이종환이라고, 형님. 채대룡 형님 주저앉히고 강성태가 끌어올린 놈입니다, 형님.”
아직 마음에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는지 함태준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참. 방지병원에 강성태 친구라는 최…치…뭐라는 놈하고, 광주 유충일이도 있습니다, 형님.”
“충일이가? 그 새끼는 광주 놈이잖아?”
“예, 형님. 부산 일로 상한 이후에 방지병원에 있었습니다, 형님.”
“흐음.”
손을 들어 턱과 볼을 올려잡은 함태준이 잠시 눈알을 굴렸다.
“이거 씨발. 사흘 뒤에 돈하고 물건 넘어오는데 사고 치면 일 커질 테고. 이렇게 당하고 가만있으면 차웅진 회장이나 미키야토 회장님께 할 말이 없고.”
눈알을 굴리던 함태준이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애들 중에 병렬이 담그고 빵에 갈 만한 다른 놈이 있을까?”
질문을 받은 덩치가 잠시 멈칫한 뒤에 입을 열었다.
“신명섭이에게 한번 기회를 더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형님?”
“그 새끼는 지난번에도 밥상 엎었잖아?”
“그거 때문에 앞뒤가 꽉 막혀서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신다면 제대로 해낼 겁니다, 형님.”
“실패해서 기가 부러졌을 텐데 되겠어?”
“음식 배달원이나 퀵서비스처럼 하고 들어가 한칼 놓는 놈치고 명섭이 만큼 할 만한 놈이 없습니다, 형님. 지난번에는 재수가 없어서 헛방 났지만, 병실에 누워있는 놈이라면 실수할 일도 없습니다, 형님.”
턱을 감싼 손으로 볼을 문지르던 함태준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병렬이나 거기 강성태 친구 놈 있다고 했지?”
“예, 형님. 이름이 최치…, 뭔가 하는 놈인데 강성태랑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다는 놈입니다. 연수구 임병욱이 유스시에서 당했을 때도 함께 있었습니다, 형님.”
“아, 그 씨발 새끼?”
“예, 형님.”
함태준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신명섭이 보내. 애들도 붙여주고. 상황 봐서 병렬이든, 임병욱이 깬 그 씨발 새끼든, 담그면 변호사 수발부터 학교 나왔을 때 업장 하나 책임진다고 하자. 말 나가니까 다른 놈 시키거나 전화하지 말고 지금 가서 만나.”
“예, 형님.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지시를 받은 덩치가 상체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후우.”
차에 타는 덩치를 보며 함태준이 숨을 길게 내쉬었을 때였다.
창고 문이 열리며 피에 물든 셔츠 차림의 덩치 둘이 나왔다.
“뭐라냐?”
“끝까지 자기는 아니랍니다. 월미도 상가 연합에서 모함한 거라고, 형님을 한 번만 뵙게 해주면 다 해명하겠답니다, 형님.”
“씨발 새끼가 뒷구멍에서 깡패들 때문에 장사 못 해먹겠다고 다른 업주들 꼬드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개소리를 해? 적당히 두들겼지?”
“얼굴이 심하게 깨졌고, 형님. 팔이 부러졌습니다, 형님.”
“그럼 가슴에 바람구멍 내서 바다에 던져. 돌 매다는 거 잊지 말고.”
상체를 숙인 덩치 둘이 몸을 돌려 창고를 향해 몸을 돌린 뒤였다.
[어쩌다 한 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그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액정을 확인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통화버튼을 눌렀다.
“예, 회장님. 함태준입니다, 회장님.”
- 너는 뭐 하는 놈이야?
“죄송합니다, 회장님. 면목이 없습니다. 오늘 밤이나 내일 새벽에 그나마 기분 풀리실 소식을 드리기 위해 준비 중이니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회장님.”
마치 숙소 꼬마가 보스를 대하는 것처럼 함태준은 바싹 낮춘 자세였다.
- 나야 그런 변명에 넘어간다고 치자. 네가 원하는 건 모두 들어주라시던 회장님께는 뭐라 말씀드리라고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심지어 검찰이나 경찰이 너를 건드리지 않도록 손까지 써놨는데 그게 오히려 저쪽을 도운 꼴 아니냐.
“그러시면 회장님. 내일 오전까지 이병렬이나 강성태 친구 놈을 작업할 테니 나중에 그놈 형이나 좀 줄여주십시오.”
- 흠.
“절대 실수 없을 겁니다, 회장님.”
- 사흘 뒤에 준비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날 배 들어오는 쪽은 모두 비우기로 했습니다. 세관이든, 검찰이든, 경찰이든, 우리 아이들이 빵에 가는 한이 있어도 허락 없이는 못 들어옵니다.”
- 알았다. 내일 오전에 소식 기다리마.
통화를 마친 함태준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직후였다.
창고 문이 열리면서 덩치 넷이 양쪽 끝에 맷돌을 매단 자루를 질질 끌다시피 들고 나왔다.
자루가 끌린 자리마다 피가 길게 이어졌는데 덩치들이나 그걸 바라보는 함태준이나 일과를 빨리 마치고 싶은 직장인들처럼 귀찮은 표정이 전부였다.
“하나, 둘, 셋!”
억지로 던진 자루가 하얀 거품을 일으켰다가 창고의 어둑한 조명을 품은 바닷속으로 잠기고서야 덩치 넷이 몸을 돌렸다.
“다 끝냈습니다, 형님.”
“고생했다. 뒷정리 깔끔하게 하고 들어가.”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인사하는 덩치나 그걸 받는 함태준이나 죽은 자에 대한 연민이나 안타까움은 한 조각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