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19권 - 8화 (380/513)

《380》2부 19권 - 8화

칼에 맞았다. 황원남은.

쓰러진 그의 몸뚱이 아래에 바가지로 퍼서 부어놓은 것처럼 피가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어딜 나와, 이 개새끼들아!”

나서려고 움찔대는 인천 부천 연합 덩치들을 향해 이종환이 고함을 버럭 지른 다음이었다.

황원남의 머리칼을 붙잡아 앉힌 이병렬이 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나한테 욕한 건 이거로 퉁친다. 그런데 우리 보스 씹은 건 네 모가지로 안 돼. 그러니까 이광선, 그 개새끼 데려와. 아니면 여기 자동차 모두 부수고, 네 모가지 따고, 그래도 안 되면 부천을 홀랑 뒤집어서라도 잡아낸다.”

“끄응.”

지켜보는 인천 부천 덩치들이 있어서인지 황원남은 입술만 굳게 다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 깡패가 그 정도 깡다구는 있어야지. 그럼 깡다구 부린 대가도 받아야지?”

여기 올 때부터 황원남을 죽이려고 했었구나!

황원남의 목에 회칼을 붙이는 이병렬의 태도는 정말 그렇게 보였다.

“야, 이 개새끼들아! 이광선이 어디 있어!”

눈가와 볼, 턱까지 피를 뒤집어쓴 김진용이 상처받은 짐승이 울부짖는 것처럼 고함을 버럭 질렀다.

지금은 3층인 것처럼 좀 더 멀리에서 자동차 부서지는 소리도 달려오고 있었다.

“이광선이 어디 있냐고!”

김진용의 고함은 다급했다.

이렇게 많은 덩치들이 보는 앞에서 이병렬이 목을 가르는 것만은 막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이 확실하게 느껴졌고, 그만큼 황원남의 목이 갈라질 거란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다.

“차에…. 차에 있습니다.”

답은 이병렬의 눈을 본 황원남의 입에서 나왔다.

“광선이 데려가고 자동차 부수는 거 그만두십쇼.”

“데려오는 거 보고.”

황원남의 눈을 들여다보던 이병렬이 고개를 들었다.

“원남이가 말한 거니까 차에 있다는 이광선 데려와!”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었다.

이를 악문 놈, 눈가에 독기를 올린 놈은 많았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덩치는 없었다.

몸을 세운 이병렬은 움켜쥐고 있던 황원남의 머리를 인천 부천 연합 덩치들을 향해 돌렸다.

“광선이…, 데려와.”

항복이라는 말보다 더 수치스러운 지시가 황원남의 입에서 나왔다. 그래서인지 지켜보던 인천 부천 연합의 덩치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아직 움직이는 놈은 없었다.

“차 부수는 거라도 멈추시라고.”

“그게 급하면 광선이를 빨리 데려와, 이 개새끼야.”

이미 기가 부러진 황원남이 머리칼이 잡힌 채로 인천 부천 덩치들을 향해 눈매를 찌푸렸다.

“광선이 빨리 안 데려와, 이 새끼야!”

그가 확실하게 다시 지시하자 지켜보던 가장 앞에 덩치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갯짓을 했다.

두 놈이 급하게 뒤로 달려간 다음이었다.

모여 선 덩치들의 처절한 모습과 상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침묵이 중고차 매장을 뒤덮어서 꾸준히, 열심히 중고차 부수는 소리와 바깥을 달리는 차량 소리가 안으로 달려들었다.

분하고, 기막히고, 치가 떨리는, 복잡한 표정으로 거친 숨을 내쉬던 황원남이 머리칼이 잡힌 상태에서도 고개를 돌렸다.

“왜 이렇게까지 합니까?”

“뭘?”

“진짜 목적이 나였습니까?”

뭐라는 거야, 이 새끼는?

피에 젖은 눈으로 이병렬이 황원남을 내려다보았고, 그리고 그만큼 처절한 모습인 이종환과 김진용이 그를 돌아보았다.

“내가 신강남파 넘버 투 이병렬이다. 피라미 새끼가 날뛴 일에 우리 보스는 그냥 넘어갈 수 있지. 하지만 나는 달라. 내가 있는 한 우리 보스 씹어대고 그냥 넘어가는 놈은 없어. 내가 안 되면 여기 종환이가 그 일을 맡을 거고.”

피범벅인 이종환이 황원남을 향해 히죽 웃었다.

“종환이가 없으면 진용이가 할 테고.”

김진용의 커다란 덩치, 잔인해 보이는 눈매, 그 위를 덮은 피를 보고 난 황원남이 시선을 떨군 다음이었다.

“섭우, 영권이, 진용이, 그래도 안 되면 여기 있는 숙소 동생들이 차례로 나온다. 그러니까 염라대왕은 건드려도 우리 보스는 건드리지 마라. 이건 그 교훈이다.”

“씨발. 방향이 완전히 다르네.”

황원남이 기가 찬 탄식을 뱉어낸 다음이었다.

뒤편에서 목을 축 늘어트린 이광선이 덩치 둘에게 등을 떠밀린 것처럼 앞으로 나섰다.

“네가 이광선이야?”

“잘못했습니다, 형님.”

아까는 황원남이 치욕스러운 지시를 하더니 이번에는 수많은 인천 부천 연합 덩치들 앞에서 이광선이 넙죽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꿇어앉은 이광선에게서 고개를 든 이병렬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 새끼 알아볼 사람 있냐?”

“제가 압니다, 형님.”

이병렬이 물었고, 뒤편에서 덩치 한 명이 뛰어나와 꿇어앉은 이광선을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씨발 놈아. 그러게 우리 보스께서 관용을 베푸셨을 때 납작 엎드렸으면 얼마나 좋아? 이게 이 씨발 새끼야, 사람이 할 짓이냐?”

얼굴을 확인한 신강남파 덩치가 이를 악문 채 으르렁거렸다.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건방지게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싸운 걸 탓하는 게 아니라 이병렬과 이종환, 김진용이 다친 걸 원망하는 모습이어서 이병렬부터 김진용까지 묵직하게 지켜보며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광선 맞습니다, 형님. 지방 행사에서 인사한 뒤에 몇 차례 술 마셨고, 형님. 중고차 두 대를 산 적이 있었습니다, 형님.”

몸을 세운 덩치가 답을 내놓은 다음이었다.

“끌고 가.”

“예, 형님.”

고개를 깊숙하게 숙인 신강남파 덩치가 꿇어앉은 이광선의 재킷 뒷덜미를 잡고는 개처럼 질질 끌고 뒤쪽으로 움직였다.

똑같은 조직이고, 똑같이 숙소 생활했던 깡패들이었다. 그런데도 이 순간, 인천 부천 연합과 신강남파의 수준이 여실히 드러났다.

한쪽은 개처럼 끌고 가고, 맞섰던 조직의 덩치는 개처럼 끌려가는 모습이 그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종환아. 위에 연락해서 동생들 그만 내려오라고 해.”

고개를 숙인 이종환이 뒤편에 눈짓을 던지자 두 명이 급하게 달렸다.

콰직! 퍼서석! 퍼석!

참 부지런하기도 하지.

지쳐서 잠시 쉴 만도 한데, 자동차 부서지는 소리는 끊이는 법이 없었다.

잠시 후였다.

콰드등!

부수는 일을 끝내는 기념으로 남은 힘을 모두 쏟아내 차를 박살 낸 듯한 요란한 굉음이 위에서 터졌다. 그리고 그만큼 진한 침묵이 중고자동차 매매 건물 안을 휘감았다.

“됐지? 너희는 잠깐 나가 있어.”

“원남이 형님 모시겠습니다, 형님.”

“이렇게 끝났으니까 담배라도 하나 피우고 헤어져야지. 잠깐만 둘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너희는 이만 나가 있으라고.”

이종환과 김진용이 의아할 정도로 이번에는 이병렬이 반칙을 하고 나섰다.

“형님? 광선이까지 드렸는데 원남이 형님을 계속 붙잡으시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형님.”

실제로 인천 부천 연합의 덩치도 그 점을 짚고 나섰다.

깡패지만 비겁한 짓을 누구보다 싫어하던 이병렬이었다.

정정당당하게 붙어서 지면 고개 숙이기로 유명했고, 강성태와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했다.

그 이병렬이 인천 부천 연합 덩치가 지적하고 나설 정도로 반칙을 하고 있었다. 그런 이병렬에게는 또 어떤 상황에서도 고개 숙이고 따르는 김진용이 있었다.

“씨발 새끼가 어젯밤 저녁으로 제삿밥을 미리 처먹었나? 어디에다 대고 눈알을 부라려?”

피범벅인 김진용이 쇠파이프를 든 모습으로 나섰다.

“우리 형님께서 담배 하나 피우시면서 하실 말씀이 있다시잖아. 나가 있으라면 고개 숙이고 그냥 가 있어, 이 개새끼야!”

도대체 왜 신강남파는 밀리는 법이 없을까.

“어라,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끝까지 버텨? 너 이리 와봐. 이리오라고, 이 씨발놈아!”

눈치를 알아챈 이종환까지 나서자 또다시 신강남파 덩치들이 독기를 풀풀 풍겨내며 우르르 앞으로 움직였다.

당장 황원남이 비참하게 이병렬 앞에 주저앉은 상태고, 이광선마저 뺏긴 상황이라 인천 부천 연합은 기가 완전히 부러졌다.

“그럼 병렬이 형님 말씀 믿고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형님.”

원망스럽게 황원남을 보았던 덩치가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나가라는 지시도 없었다.

그저 눈빛으로 입구를 가리키는 게 전부였는데 인천 부천 연합 덩치들이 부끄럽고 망신스러운 얼굴로 몸을 돌렸다.

어차피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바깥으로 나간 인천 부천 덩치들이 빤히 보이는 곳에서 이병렬과 이종환, 김진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후, 씨발.”

욕을 뱉어낸 이병렬은 황원남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담배 좀 주라.”

이병렬이 나직하게 말하자, 이종환이 바로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그냥 이리 줘.”

피 묻은 손을 내민 이병렬이 검붉게 물든 이종환의 손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가져갔다.

“자.”

이병렬은 반쯤 피가 말라붙은 손으로 담배를 꺼내 먼저 하나를 입에 물었고, 이어서 황원남의 입에도 물려주었다.

찰칵. 찰칵.

그런 뒤에 라이터를 켜서 역시 먼저 불을 붙이고, 이어서 황원남의 담배 앞에 내밀었다.

“후-.”

연기를 뱉은 이병렬이 담배와 라이터를 이종환에게 돌려주었다.

“너도 생활하는 놈인데 동생들 앞에서 더 망신당하는 꼴 보이지 말고, 우리 솔직하게 하나만 말하고 얼른 갈 길 가자.”

“뭐를 말입니까?”

“후-. 그러니까 그 씨발 뭐냐, 광선이 같은 피라미 새끼를 지키려고 왜 너까지 나왔냐? 그것도 저렇게 많은 숫자를 끌고 왔다면 다른 뜻이 있는 거잖냐? 그게 뭐냐?”

담뱃재를 털기 위해 팔을 들던 황원남이 인상을 찌푸리며 상체를 비틀었다. 겨드랑이를 찔린 탓이었는데 그 바람에 아무튼 길게 달렸던 담뱃재는 떨어졌다.

“그만하십쇼, 형님. 이 정도만 해도 생활 접을 만큼 당한 거 아닙니까, 형님?”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고 했었지? 그거 말하는 거냐?”

“예?”

뭔가 켕기는 얼굴의 황원남을 보며 이병렬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난리를 쳤는데 경찰이 여태 안 오는 것도 그렇고, 뭔가 있기는 있는 거구나. 이렇게 하자. 지금 말하면 내 이름을 걸고 비밀 지켜주마. 거기에 광선이도 돌려준다.”

담배 연기에 눈살을 찌푸렸던 황원남의 눈알이 꿈틀하며 움직였다.

“부순 자동차까지 물어주십쇼.”

황원남의 조건을 들은 이병렬이 거의 다 탄 담배를 들여다보며 재미있다는 투로 픽 웃었다.

“이 담배로 눈 아래에 담배빵 하나 만들어줄까 했는데 그냥 참는다. 이대로 갈 길 가자. 대신 너는 앞으로 행사장이든, 길거리든, 우리 신강남파 식구들 있는 자리에 나오지 마라. 꼬마애들한테까지 너 보는 대로 작업하라고 지시할 거니까. 알았냐?”

차갑게 말을 뱉은 이병렬이 몸을 세웠다.

“형님?”

“씨발놈아. 늦었어. 그리고 네가 아는 일이면 이삼일 뒤에 반드시 내 귀에도 들어오고. 우리 바닥이 그런 거 아냐?”

“형님. 광선이만 돌려주십쇼.”

몸을 반쯤 돌렸던 이병렬이 고개만 돌렸다.

“뭐야?”

“태준이 형님께서 일본 야쿠자와 작업하시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조만간 소문날 일이라 형님 말씀대로 이삼일 지나면 소문 파다하게 퍼지긴 할 겁니다, 형님.”

이제야 뭔가 알겠다는 듯 이병렬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광선 데려와.”

이병렬의 지시를 이종환이 덩치들에게 전했다.

곧바로 이광선이 덩치들에게 붙잡힌 꼴로 이병렬 앞에 나왔다.

“너는 씨발새끼야. 묻어 버리려고 했는데 여기 원남이가 죽어도 너는 못 놓고 간다고 해서 한 번 기회를 주는 거야. 알았냐?”

“감사합니다, 형님.”

고개를 깊숙하게 숙이는 이광선의 앞에서 이병렬이 고개를 돌렸다.

쨍강.

그 직후에 차가운 바닥에 회칼이 툭 떨어졌다.

“손가락 하나 내놔. 신강남파 보스에게 건방 떤 거, 그거로 잊어준다.”

“예? 형님?”

놀라는 이광선을 향해 이병렬이 정말이지 잔인한 웃음을 토해냈다.

끌려가면 진짜 파묻히는 일만 남는다. 그러니 이광선이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빨리 끝내. 그래야 원남이 치료하지.”

이를 악문 이광선이 바닥에 꿇어앉아 회칼을 집었다. 그래놓고 이광선은 몇 번이나 움찔거리며 손가락을 자르지 못했다.

“에이.”

콰악!

보다 못한 이종환이 회칼의 등을 발로 세게 밟았고,

“끄윽! 끄악!”

겁에 질린 신음과 함께 잘린 손가락이 펄떡였다.

“돌아간다.”

이병렬을 시작으로 신강남파 덩치들이 몸을 돌리자, 바깥에서 지켜보던 인천 부천 연합 덩치 열댓 명이 우르르 들어와 황원남을 부축했다.

**

휴게소에 잠시 멈췄던 강성태 일행은 곧바로 다시 출발했다.

나눌 이야기가 있었다.

전해줄 사연도 제법 있었고.

그 바람에 박노익이 조수석에 앉았고, 자리를 뺏긴 진용도가 이번에는 운전석에 앉았다.

가는 길에서 강성태는 차웅진과의 통화와 호텔에서 두들겨 붙잡은 야쿠자 넷을 뒤쪽의 승합차에 두었다는 내용을 박노익에게 전해주었다.

“동생은 정말이구나.”

“나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보스 복이 터진 모양인데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박노익의 감탄을 조태완이 받은 다음이었다.

우우웅.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짧게 울었다.

[차웅진이 아주 흥미로운 통화를 해서 그 내용을 보내. 일본어라 번역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바르지오가 보낸 문자의 내용을 확인하려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이번에는 이병렬의 이름을 액정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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