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19권 - 6화 (378/513)

《378》2부 19권 - 6화

제3장. 들어가.

휴게소에 들어서기 전이었다.

천천히 속도를 늦추며 바깥 차선으로 빠지는 사이에 조태완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차웅진 회장 번호다.”

“이리 주십시오.”

액정에서 고개를 든 조태완을 향해 강성태는 손을 내밀었다.

눈과 눈이 잠깐 마주친 다음이었다.

조태완은 순순히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여보세요?”

- 강성태 씨 되십니까?

스마트폰에서 건너온 질문의 음성은 분명 젊은 남자였다.

“내가 예의를 갖추라고 했는데 말귀를 못 알아먹는 모양이지? 앞으로는 차웅진더러 직접 전화하던가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라 전해.”

마치 대출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았다는 양,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내려 종료버튼을 툭 눌렀다.

“도대체 어쩌려고 이래? 차웅진 회장은 조강치 형님과는 다르다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깡패한테 다른 게 생길 리 있습니까? 아니꼬우면 들이받으면 되는 거지요.”

아, 나 미치겠네.

조태완의 눈과 표정이 꼭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휴게소 간판과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아직 강성태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또 울었다.

“아까 그 번호입니다. 제가 받겠습니다.”

갑갑하고 안타까워하는 조태완의 앞에서 강성태는 주저하지 않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강성태 씨?

“너는 이름이 뭐냐?”

아까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짐작했던 일이어서 강성태는 바로 상대방의 이름을 물었다.

“차웅진이야 워낙 늙어서 눈도 침침할 테고, 손에 힘도 없을 테니 버튼을 누르기 어렵다고 치자. 전화를 대신 걸었다면 우선 네가 누구인지, 뭐 하는 사람인지를 먼저 밝히는 게 최소한의 예의다.”

아예 마음을 비웠는지 창밖을 향해 한숨을 내쉰 조태완이 흥미롭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 차웅진 회장님께 연결하겠습니다.

“직접 전화하든가, 네놈이 하는 일과 이름을 밝히든가. 둘 중 하나가 아니면 이제부터 전화하지 마라. 그리고 또 똑같이 전화하면 너와 차웅진이 후회하게 된다.”

강성태는 거침없이 스마트폰을 내려 종료버튼을 눌렀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보기에는 진짜 통쾌하다.”

“신강남파 보스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걸 왜 부천의 피라미 새끼는 그렇게 부드럽게 대했어?”

“오는 길에 배운 게 있으니까 다음에는 절대 이런 일 없을 겁니다.”

그 사이 휴게소에 들어선 승용차가 앞쪽으로 나가 자리를 찾고 있었다.

“괜히 앞에 세우려고 뒤에 들어온 차들 막지 말고 비어있는 곳으로 가.”

“예, 형님.”

강성태의 지시를 받은 덩치가 빠르게 핸들을 꺾었다.

“원래는 보스도 보름 정도 시간을 벌어달라고 했었잖아? 갑자기 차웅진 회장을 대하는 게 바뀌었는데 그건 또 왜 그런 거야?”

앞쪽 자리를 가득 메운 주차장 뒤편으로 움직이는 가운데 조태완이 질문을 내놓았다.

“우리끼리는 칼부림했다가도 화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삼합회나 야쿠자에 고개 숙이고 사는 놈들과 화해는 없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눈가를 좁힌 조태완을 향해 강성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일본 야쿠자 조직의 비호 아래에서 거들먹거리며 살아온 인간입니다. 그는 무덤에 들어가도 본인이 일본인이기를 바랄 겁니다.”

“그래서?”

강성태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조태완이 반문하는 순간에 다시 손안에 든 스마트폰이 울었다.

앞과 뒤에서 함께 움직였던 진용도의 덩치들과 필리핀 조직원들이 차에서 내려 강성태와 조태완이 탄 승용차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강성태는 아예 스마트폰을 손에 올린 채 스피커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액정만 내려다보았다.

답을 하지 않는 강성태, 통화 연결 시간만 무심하게 쌓이는 스마트폰, 느닷없이 피어난 긴장이 승용차 안을 가득 메웠다.

계속 까불어.

픽 웃은 강성태가 왼손 검지를 스마트폰으로 가져갈 때였다.

- 여보세요?

더는 어쩌지 못한 차웅진의 음성이 스마트폰에서 나왔다.

“차웅진?”

- 이놈! 너 따위가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른단 말이냐?

“내가 경고했지? 사람을 붙여두었다고. CCTV 껐다고 자신하는 모양인데 죽고 싶으면 얌전히 전화한 이유만 말하고 끊어.”

- 전화는 내가 먼저 한 게 아니라, 조태완이란 놈이 청했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지 바닥에 깔린 음성이 부들부들 떨리며 나오고 있었다.

그랬었나?

우리가 먼저 전화하라고 했었던가요?

마치 깡패가 일반인을 갈구듯 차웅진을 대하는 강성태의 뻔뻔한 태도에 조태완이 기막히고 어처구니없는 미소를 내놓았다.

“경고 하나만 하고 끊는다. 태완이 형님께 붙여놓은 형사들 돌려보내. 그리고 지금부터 얌전히 무릎 꿇고 앉아서 종이를 하나 꺼내.”

- 종이?

“거기에 할아버지 때부터 잘못한 일을 쭉 적어놔.”

- 허어!

기가 찬 반응이 건너온 직후였다.

욕설이나 고함이 터지기 직전에 강성태는 그야말로 무심하게 종료버튼을 꾹 눌렀다.

뭔가 숨을 크게 들이마신 순간에 코를 막아버린 것처럼 조태완의 심장과 폐가 터질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진짜 왜 이러는 거야?”

강성태는 조태완을 진지하게 돌아보았다.

“요즘은 기술이 정말 많이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차웅진 회장에게 뭔가 붙였어? 아니면 도청장치나 그런 걸 해놓은 거야?”

“컴퓨터로 유관순 열사의 얼굴을 복원한 게 있습니다.”

“유관순? 유관순 누나의 그 유관순?”

뭔가에 홀린 것처럼 조태완이 질문을 내놓았고, 조수석에 앉은 진용도는 아예 상체를 뒤로 돌린 채 강성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문으로 부어올랐던 얼굴에서 부기를 제거한 사진, 형을 받기 직전에 웃는 얼굴이 복원돼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습니다.”

깡패가 왜 유관순을 찾아?

질문조차 잊은 얼굴로 조태완이 강성태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마약은 사회를 좀먹습니다. 고리대금업은 어려운 사람들을 아예 지옥으로 떨어트리고요. 그 두 가지에 더해서 순박하게 웃어야 할 우리 딸들과 아들들이 말하지 못할 고통에 빠진 시대였습니다.”

“그걸 도대체 왜 우리 같은 깡패가 지금 말하고 있냐고?”

“형님께 아이가 생겼습니다. 그 아이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는 깡패지만 삼합회나 일본 야쿠자라면 가위바위보라도 지기 싫습니다. 우리끼리 치고받더라도 그런 놈들이 우리 아이들을 짓밟는 꼴은 죽어도 못 보겠습니다.”

강성태에게 따귀를 맞은 모양으로 조태완은 멍한 얼굴이었다.

“깡패 뭐 있냐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인간들에게 다부지게 붙지 못하면서 일반인들에게만 주먹 들이밀면 그게 양아치지 깡패입니까?”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어쩐지 서글퍼 보이는 얼굴로 웃은 조태완이 입을 열었다.

“보스는 진짜 우리나라에서 마약과 고리대금업이 사라질 때까지 막을 거구나. 정말 그렇게 될 때까지 두들기고 부술 거고?”

“적당히 끝낼 거였다면 부산에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뒤따라오는 승합차에 야쿠자 네 놈을 실어오지도 않았을 테고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뒤를 돌아보았던 조태완이 시선을 다시 가져왔다.

“교수, 정치인, 판사, 검사, 돈에 고개 숙이는 인간들은 많습니다. 변명할 겁니다.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고. 칼 앞에서 언제 죽을지 모를 깡패가 앞날 걱정할 거 있습니까?”

“그러니까, 보스. 왜 유독 우리만 그런 일들을 찾아서 해야 하냐는 거냐고? 어떻게 세상을 한꺼번에 바꿔? 천천히, 응? 가끔은 눈도 감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지? 안 그래?”

“형님. 제가 신강남파 보스 강성태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스가 된 이유가 딱 두 가지입니다.”

강성태를 어쩌지 못하겠다는 듯 조태완이 신음을 뱉었다.

“멕시코가 시작이자 훈련이 될 겁니다. 그 뒤에 중국, 일본으로 밀고 나갈 겁니다. 마약, 고리대금업이 아니어도 조직이 살길이 있다는 걸 분명하게 보일 겁니다.”

강성태의 눈을 들여다보던 조태완이 고개를 뒤로 뺀 뒤에 상체를 세웠다.

“신도시에 업장과 식당 운영, 영업을 가르쳐 달라는 말에 그런 뜻이 담겨 있었어?”

“그 방면에서 형님보다 능력 뛰어난 사람이 또 있습니까?”

“미치겠네.”

강성태의 열기에 중독된 것처럼 조태완이 헛웃음을 터트릴 때였다.

똑똑똑.

창을 두들긴 박노익이 조태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

부천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승용차의 뒷좌석에 있던 이병렬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재킷 안쪽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액정을 본 이병렬은 먼저 입술 끝을 올리며 옅게 웃었다.

“여보세요?”

- 황원남입니다, 형님.

공손한 맛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을 정도로 으르렁대는 음성이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이종환이 날카롭게 고개를 돌렸고, 조수석에 앉은 김진용이 슬며시 뒤를 돌아보았다.

“오래간만이다?”

- 지금 부천으로 오신다던데 맞습니까, 형님?

“어, 그래. 거기 어떤 개새끼가 우리 보스 가족을 건드렸는데 대가리를 쳐들었다는 소리가 있어서. 인천 부천 연합이 그런 개새끼를 그냥 두지는 않을 테고, 괜히 나서서 일 만들기 전에 조용하게 타이르려고 가는 길이지.”

- 신강남파는 말빨이 진짜 좋습니다, 형님.

“아무렴 보스 가족 건드린 개새끼하고, 그걸 싸고도는 씹새끼들만큼이야 하겠냐?”

이병렬의 대화를 듣고도 통화 내용을 짐작하지 못할 리는 없어서 이종환과 김진용의 눈빛이 독하게 변했다.

- 아, 나 원.

말문이 막혔는지 황원남은 욕을 뱉기 직전에나 보이는 반응을 던졌다. 지기는 싫은데 말빨로는 어떻게 못 해서 나온 반응이었다.

김진용이 들었다면 바로 쌍욕이 튀어 나갔을 반응이었는데 이병렬은 황원남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픽 웃었다.

- 그러지 말고 그냥 가십시오. 그럼 제 선에서 정리하겠습니다. 광선이도 숙소에서 빼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으르렁대는 황원남에게 이병렬은 편안한 음성으로 말을 건넸다.

“내가 지금 이광선, 그 개새끼가 있던 중고차 매장으로 가마. 가서 중고차 세워놓은 거 다 때려 부술 테니까 잘 숨어서 경찰에 신고해. 그럼 나는 보스 당한 거 갚은 거라 좋고, 너는 나 잡아넣어서 좋고. 어떠냐?”

- 우리가 관리하는 매장의 중고차를 부수게 그냥 둘 거 같아?

거친 황원남의 음성이 스마트폰을 통해 튀어 나와서 이종환과 김진용의 귀에도 똑바로 들렸다.

그 직후였다.

스마트폰을 귀에 댄 상태에서 이병렬이 시선을 들었다.

“진용아. 부천 중고차 건물로 방향 바꾸고 앞뒤 차에 그쪽으로 오라고 전해. 내리면서 거기 있는 차들 모두 부숴버리라고 하고.”

“예, 형님.”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이병렬이 내린 지시였다.

- 진짜 이럴 겁니까?

함께 듣고 있던 황원남의 거친 음성이 바로 넘어왔다.

“도착까지…, 15분 남았다. 거기로 오든가, 쫄리면 경찰에 신고하든가, 그건 꼴리는 대로 하고. 아! 한 가지는 꼭 챙겨와라.”

- 연장은 우리 애들도 다 챙겼어!

“이 새끼가 저녁을 먹다가 혀를 씹었나? 말이 왜 갑자기 반 토막이야? 연장 말고. 모가지. 네 모가지는 꼭 챙겨와. 내가 제대로 갈라줄라니까.”

- 아이, 진짜. 이 씨….

“위아래 없이 반말한 건 네가 먼저다. 앞으로 우리 식구들이 함태준한테 반말하는 거로 다른 소리 하지 마라.”

할 말을 마친 이병렬은 바로 종료버튼을 눌렀다. 그런 뒤에 스마트폰을 재킷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연장 주라.”

“예, 형님.”

김진용이 품에서 신문지에 싼 회칼을 꺼내 상체를 뒤로 돌렸다.

“몸도 안 좋으신데 제가 진용이 데리고 해결하겠습니다. 차에 계십시오, 형님.”

보다 못한 이종환이 나직하게 이병렬을 말렸다.

“보스가 그러더라. 동생들 앞세워서 일 책임지게 하는 건 윗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부산 HK 맨션에서 강치 형님에게 마지막 칼질하게 한 거 가지고도 한 소리 들었다.”

“원남이는 제 선에서 해결합니다, 형님.”

듬직하게 나서는 이종환을 보며 이병렬이 보기 좋은 미소를 그렸다.

“그러고 보면 보스를 제대로 따르는 식구들이 전부 처음에 형님을 잘못 만난 케이스지. 나는 혼자 프리 스테이션 영업했었고, 너는 대룡이 형님 아래에서 개고생했고, 섭우는 또 광준이 형님 끝까지 챙기다가 손가락 날아갈 뻔했었고.”

말을 하던 이병렬이 고개를 들어 김진용을 보았다.

이종환이 고개를 들어 김진용을 보고 난 뒤였다.

“저 새끼는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지.”

이병렬을 처음부터 따랐던 김진용에 대한 야박한 평가가 내려지면서 잠시 침묵과 긴장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멀다고 해도 영등포에서 부천이었다.

퇴근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데다 외곽이어서 도착 예정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형님?”

김진용이 빠르게 부르고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중고차 매장 입구가 훤하게 열려 있었다. 그리고 위협하듯 라이트를 켠 승용차가 입구 앞뒤 도로에 줄줄이 서 있었으며, 주변에 정장 차림의 덩치들이 셀 수 없이 나와 있었다.

누가 봐도 정말이지 위협적인 장면이었는데,

“들어가.”

이병렬이 나직하게 지시했고, 곧바로 김진용이 고개를 깊숙하게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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