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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9권 - 4화 (376/513)

《376》2부 19권 - 4화

아직 통화가 끝나지 않았다.

뭐라고 해도 유섭우가 선배에게 대든 모양새였고.

- 유섭우. 방금 들었던 말이랑 광선이 실수한 거, 퉁칠라니까 죄송하다고 하고 끝내. 그럼 나도 이쯤에서 잊을 테니까.

“요즘 귀신 보십니까, 형님?”

- 뭐?

“헛소리를 너무 하셔서 말입니다, 형님.”

- 아나, 씨이-발.

“성태 형님하고 얽힌 일을 어떻게 제 마음대로 그만두겠습니까? 모처럼 통화해서 이런 말씀드리기는 죄송한데, 혹시 연장 들고 마주 서더라도 형님하고 개인적인 원한은 없습니다, 형님.”

유섭우가 독한 각오를 건넨 뒤였다.

- 너 이 새끼. 어디 두고 보자.

“예, 형님. 꼭 뵙겠습니다.”

으르렁대는 인사말을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유섭우는 입술에 힘을 꾹 준 상태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인천 부천 연합이 느닷없이 강성태의 일에 튀어나왔다. 심지어 강성태가 직접 통화하는 것조차 망신스러운 이광선의 일에 말이다.

잠시 고민하던 유섭우는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유섭우입니다, 형님.”

- 그래? 무슨 일이야?

느긋한 이병렬의 질문에 유섭우는 이광선의 일부터 조금 전 있었던 황원남의 통화까지를 기억하는 대로 모두 전했다.

- 황원남이 보스 일에 끼어들었다면 무조건 작업이지.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이병렬은 단숨에 결론을 내놓았다.

- 너도 부산에 가기로 했었지?

“예, 형님. 그렇지 않아도 숙소 동생들 전부 대기시켜 놓고,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님.”

- 이거 냄새가 이상해. 내가 보스에게 전화할 테니까 너는 대기하고 있어. 황원남이 이 핑계로 애들 끌고 넘어올 수 있다. 긴장 타. 보스랑 통화 마치면 내가 연락 주마.

“알겠습니다, 형님.”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

필리핀 조직원들은 검은 띠를 맨 유단자들이 시범을 보이듯 그야말로 손발이 척척 맞았다.

자루를 끌고 내려가기 무섭게 계단 입구로 승합차가 달려왔고, 뒷문을 열고는 짐을 쌓듯이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르윈. 키란.”

네 명을 승합차에 실은 뒤에 강성태는 아르윈과 키란을 불렀다.

“키란이 가진 스마트폰에 위치가 찍혀 있을 거다. 차웅진이라는 노인네인데 여기 야쿠자들을 내게 붙여놓은 인간이다. 근처에 있다가 내가 연락하면 적당하게 위협을 가했으면 싶다.”

어둑한 지하주차장에서 아르윈과 키란이 각오가 가득한 눈빛으로 강성태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현장 상황은 아르윈이 판단하고, 혹시라도 야쿠자가 달려들면 제거해도 괜찮아.”

“알겠습니다, 형님.”

“늘 고맙다.”

“감사합니다, 형님.”

고맙다는 강성태의 인사에 아르윈이 고개를 깊게 숙였고, 옆에 있던 키란은 쑥스럽다는 얼굴로 웃었다.

“우리는 부산으로 출발할 테니까 내일 보자. 야쿠자 실어놓은 승합차는 우리랑 함께 움직여도 되지?”

“물론입니다, 형님.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나는 태완이 형님과 정문에서 기다리는 차를 탈 테니까 여기 조직원들은 그 차를 따라오라고 해.”

마지막으로 지시를 건넨 강성태는 조태완과 함께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보스가 혼자 다닌다고 염려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아예 별동대를 꾸렸었구만. 저렇게 깔끔하게 일 처리하는 놈들을 본 적이 있나 싶다.”

계단을 오르던 조태완이 아래쪽을 돌아보고는 질린다는 얼굴로 감탄을 내놓았다.

“허, 참.”

계단을 오른 조태완이 로비로 나가는 문 앞에서도 감탄사를 뱉었다.

아르윈과 필리핀 조직원, 키란의 모습에 어지간히 놀란 눈치였다. 하기는 순박한 동남아 깡패라고 여겼을 텐데 망치와 쇠파이프, 자루를 들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으니 어느 정도의 충격은 있었겠다.

계단을 올라간 강성태가 먼저 로비로 나섰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지 주머니에 든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미스터 강?

“계단은 정리했다. 영상 처리하느라 고생했어.”

로비를 걸으며 강성태는 바르지오에게 먼저 고마움을 전했다.

- 그거야 별거 아니지. 그보다는 차웅진이 CCTV를 모두 꺼버렸어. 우리가 감시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모양인데 그에게 이 정도의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다. 미안하다, 미스터 강.

“그거? 내가 통화하면서 한 말 때문인 거 같다. 그래서 알아챈 모양인데?”

강성태는 차웅진과의 통화와 키란을 보냈다는 내용을 바르지오에게 들려주었다.

호텔 로비의 끝이었다.

현관문을 앞에 둔 강성태는 조태완에게 눈짓으로 양해를 구한 뒤에 통화를 이었다.

“키란을 보냈으니까 혹시 변동 사항이 있으면 먼저 그쪽에 알려줘.”

- 그 정도야 일도 아니지. 혹시 특별한 사항이 있으면 미스터 강에게도 바로 연락하겠다.

바르지오의 전화가 끊긴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순서를 기다렸다는 듯 또다시 스마트폰이 울었다.

“병렬이인데 아예 받고 나가겠습니다.”

“편하게 해.”

넉넉하게 받아주는 조태완을 앞에 두고 강성태는 바로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어지간하면 꼭 통화해야 하는데 시간 좀 줘.

“말해.”

강성태의 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병렬은 유섭우, 이광선, 황원남의 일들을 차례로 말했다.

- 인천 부천 연합이 들고 일어났다고 봐야 해. 왜 이런지는 천천히 알아볼 텐데 당장 강서구와 신월동 숙소만큼은 부산에 가지 않더라도 이해해주라.

“그 정도야 얼마든지 판단해서 처리해. 혹시 강남 쪽 인원도 필요하면 그렇게 움직이고.”

- 보스가 부산에 간 틈에 움직인다고 해도 대림동까지 있으면 충분해. 종환이까지만 내가 데리고 있을게.

“괜찮겠어?”

- 나한테 맡겨. 혹시 모르니까 부산에서 조심하고.

“알았어.”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조태완에게 지금 나누었던 이병렬과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인천, 이 새끼들이 미친 것도 아닐 테고 갑자기 왜 대가리를 쳐들고 나서지?”

“병렬이가 알아본다고 했으니까 일단 부산으로 출발할까 합니다. 나머지는 가면서 통화로 처리하고요.”

“그러자.”

강성태는 조태완과 함께 호텔 로비를 나섰다.

앞에서 기다리던 진용도가 고개 숙인 뒤에 뒷문을 열어주었다.

“보스가 이쪽으로 타야지.”

“형님을 모시고 가는 길입니다. 제가 이곳에 앉으면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 불편합니다.”

이상하리만치 형식과 보여주는 모양새에 집착하는 조직의 생리상 강성태가 조수석 뒷자리에 타는 게 맞았다. 그러나 조태완의 자부심을 조금이나마 채워주고 싶어 강성태는 트렁크 쪽으로 돌아가 운전석 뒷자리로 움직였다.

실제로 자리에 대한 욕심 따위 손톱 끝만큼도 없었다.

진용도가 조수석에, 조태완이 그의 뒷좌석에 앉은 다음이었다.

“부산으로 가.”

강성태가 지시하자 승용차가 출발했다.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강성태는 박노익, 정영권, 정소국, 박배근에게 차례로 전화를 넣어 부산으로 출발하라고 알렸다.

“인천 애들은 자존심이 강해. 독종들도 많고. 어설픈 일로 달려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확실히 뭔가 믿는 구석이 있을 거다.”

“참고하겠습니다.”

답을 하는 강성태를 조태완이 듬직한 시선으로 보았다.

호텔에서 야쿠자 넷을 처리하는 과정과 함께 부산으로 향한다는 현실이 그의 자신감을 어느 정도는 일깨워 준 느낌이었다.

“깡패가 죄짓지 않고도 살 수 있을까?”

창밖을 보던 조태완이 지나가는 말처럼 질문을 던지며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퇴근 시간 직후라 길이 제법 막혀서 앞뒤로 차가 가득했다.

“조직에 속하고도 죄짓지 않기는 어렵겠죠. 당장 호텔에서 현행법을 어겼습니다.”

그런가?

강성태의 답을 들은 조태완이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죄를 지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장 제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데 마음대로 하라며 뒷짐 지고 당할 마음이 없으니까요.”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조태완이 묵묵한 시선으로 강성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리는 사람들이 뱉어낸 욕망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거기까지입니다. 욕망을 더 품도록 자극하거나 함정을 파지 않으면 됩니다.”

“아까 호텔에서 현행법을 어겼다면서?”

“일반인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작업하는 놈들이나 우리 몫을 빼앗기 위해 달려드는 조직을 상대하는 건 죄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지금껏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말인데?”

“제가 형님과 병렬이에게서 듣고 정신이 번쩍 든 말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정말이지 궁금한 얼굴로 조태완이 반문했고, 조수석에 앉은 진용도도 귀를 쫑긋 세우고 다음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깡패 뭐 있습니까? 덤비면 다 두들겨야죠.”

“흐하하하!”

멈칫했던 조태완이 통쾌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일반인을 상대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어야 하지만, 달려드는 조직이나 상대를 두고 당할 마음도 없습니다. 이렇게 멕시코까지 나갈 겁니다. 그때까지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웃음을 어느 정도 가라앉힌 조태완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이가 생기니까 과거에 지었던 죗값이 두려워지네. 내가 당하면 마음 편할 텐데 그게 세아나 아이에게 갈까 봐. 그런 면에서 동팔이에게 당했던 연장질이 지금은 오히려 위로가 될 정도니까.”

운전하는 덩치와 진용도가 듣는 자리인데도 조태완은 솔직한 속마음을 꺼내놓았다.

“지금처럼만 끌어줘. 그게 어떤 길이든 보스가 가리키면 무조건 달려가마.”

“감사합니다.”

강성태의 답을 들은 조태완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빌딩 숲을 건너 달려온 노을이 조태완의 얼굴과 어깨를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

병실의 테이블에 앉은 이병렬은 몇 곳에 연달아 전화를 넣었다.

“이 새끼들 봐라?”

한 명도 이병렬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공교롭다고 설명하기에는 의도가 너무도 분명한 반응이었다.

한숨을 내쉰 이병렬은 병원의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이 내려앉아서 건너편 빌딩에 촘촘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고, 간간이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인천이 왜 갑자기 지랄인지 알아야 대책을 세우든가 하지.”

잠시 고민하던 이병렬이 독하게 눈빛을 빛냈다. 그런 뒤에 스마트폰을 다시 들어 번호를 눌렀다.

- 유섭우입니다, 형님.

“아까 이광선이가 우리 보스를 건드렸다고 했었지?”

- 예, 형님. 보스의 이모님과 김민재 씨를 두 시간 가두고 욕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과하는 거로 끝내라고 보스께서 특별히 관용을 베풀었는데 중간에 원남이 형님이 튀어나온 겁니다, 형님.

“네가 반칙이라고 분명하게 말했고?”

- 예, 형님. 제가 빈정댄 건 있는데 그렇더라도 보스께 실수한 놈을 감싸는 모습치고는 확실히 과했습니다.

유섭우의 답을 들으며 이병렬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신월동과 대림동 식구들 데리고 가서 광선이 달아올 테니까 너는 애들 연장 채워서 대기하고 있어.”

- 예? 형님?

“광선이 새끼가 사과 안 해서 저쪽은 할 말이 없어. 보스 일에 끼어든 게 원남이니까 명분도 우리한테 있고. 일단 달아온 뒤에 반응을 보면 가장 확실하지.”

- 광선이가 다른 곳에 숨지 않았겠습니까, 형님?

“그랬을 수도 있겠는데 원남이, 그 개새끼가 설치는 거 보면 우리 보란 듯이 부천에 있을 거 같다. 일단 가보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월동 나이트랑 나머지는 네가 확실하게 챙겨.”

- 알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이병렬은 무거운 표정으로 서 있는 김진용에게 시선을 주었다.

“들었지? 신월동 숙소에 연락해.”

“형님?”

이광선을 붙잡으러 가는 일을 강성태에게 말하지 않았다.

닷새만 더 병실에 있으라는 당부도 있었고.

참았으면 하는 김진용을 이병렬은 말 한마디 없이 바라만 보았다.

숨을 두 번쯤 쉬고 났을 때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고개 숙였던 김진용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제야 시선을 돌린 이병렬 역시 스마트폰을 들어서 번호를 눌렀다.

- 이종환입니다, 형님.

“보스가 형제처럼 여기는 이모 아들 김민재라고 알지?”

- 알고 있습니다, 형님.

뜬금없이 날아간 질문에 김민재를 떠올리느라 틈이 필요했는지, 반 박자 느리게 답이 건너왔다.

“부천 이광선이라는 새끼가 이모와 김민재를 두 시간씩 붙잡아두고 욕을 했었단다.”

- 예? 형님? 그 씨발 새끼가 왜 뒈질 짓을 했답니까, 형님?

“그게 문제가 아니라 보스가 직접 전화 통화해서 사과하랬는데 지금까지 버텼고, 그걸 섭우가 뭐라 하니까 황원남이 나서서 틀었단다.”

- 황원남이면 인천 부천 연합 원남이 형님 말씀하십니까, 형님?

“그래. 그래서 일단 광선이 새끼 내가 달아오려고 하거든. 냄새가 이상하니까 대림동 지킬 최소 인원 남기고 숙소 동생들 전부 데리고 움직여. 말 나가지 않게 동생들한테는 광선이 새끼 이름 말하지 말고.”

- 어디로 가면 됩니까, 형님?

“준비 끝나면 신월동으로 움직여. 말 나가지 않게 하고, 연장 전부 채워.”

- 염려 마십시오, 형님.

통화를 마친 이병렬이 스마트폰을 내렸을 때였다.

“신월동 숙소 동생들 모두 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형님.”

김진용이 단단한 음성으로 보고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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