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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9권 - 2화 (374/513)

《374》2부 19권 - 2화

강성태는 레스토랑 입구로 나와 안쪽을 바라보며 섰다.

- 너, 이놈. 네깟 놈이 감히….

스마트폰 너머의 차웅진은 조태완만큼이나 당황한 음성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것처럼 말마저 제대로 잇지 못했다.

“지금 형님께서 식사 중이시니까 나중에 통화해. 두 시간 정도 뒤에.”

- 흠흐흐흐.

기가 막힌 차웅진의 음성이 들린 뒤였다.

- 네깟 놈이 그렇게 나오면 그 식사 시간마저 없앨 수 있다. 내 말 한마디면 조태완은 당장 구치소로 들어간단 말이다!

완벽하게 자신하는 차웅진의 장담이 넘어왔다.

강성태는 쇼핑백을 든 손을 움직여 바지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 문자를 열었다.

“차웅진. 사람을 한 명 네게 붙였다. 무슨 짓을 하든 간에 내가 지시를 내리는 순간, 너는 죽어. 그 좋은 스웨터에 골프 바지를 입은 상태에서, 뒤에 서 있는 놈이 보는 앞에서. 알았어?”

놀란 모양이었다.

CCTV 화면 안에서 차웅진이 화들짝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하게 경고하는데 태완이 형님이 손끝 하나라도 다치면 너는 목을 잘라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하나 더.”

기가 막혀서 그런지 아니면 너무 황당해서 그런지 차웅진의 대꾸는 없었다.

“파칭코 기계 교체 건 말이지. 자꾸 내 신경을 긁어대면 그 사업 아예 분질러 주는 수가 있어. 그러니까 얌전히 고개 떨구고 있다가 두 시간 뒤에 전화해. 알았어?”

- 너, 이놈.

부들거리는 차웅진의 욕이 나온 뒤에 신음을 삼키는 모양으로 ‘끄응’ 하는 소리가 넘어왔다.

“사람 자꾸 귀찮게 하지 말고, 지금부터 꼭 두 시간 뒤에 전화해.”

- 전화는 조태완이 먼저….

분한 음성으로 내놓는 차웅진의 말이 이어지는 중간에 강성태는 스마트폰의 종료버튼을 눌렀다.

뒷일이야 어떻게 되든 간에 당장 속이 이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깡패가 점점 더 적성에 맞아가는 건가?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픽 웃으며 조태완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물론, 계획도 없이 이렇게 차웅진을 자극하지는 않았다.

은선곤, 인상 더러운 놈이 있는 커피숍, 강성태를 따라다니는 남자가 차례로 힌트를 주어서 번득하고 떠오른 분명한 계획이 있었다.

우선 조태완과 오세아를 다독일 필요가 있었다.

강성태는 바라보고 있던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 아직 서 있는 두 사람 앞으로 움직였다.

어쩌려고 이래?

조태완의 시선을 확인한 강성태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쇼핑백과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선물입니다, 형님.”

시선을 내려 종이로 된 쇼핑백을 보았던 조태완이 다시 고개를 들어 강성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제가 드린 부탁 때문에 차웅진에게 고개 숙여 주신 점 감사합니다. 두 시간 뒤에 다시 전화하기로 했으니까 이제부터 제게 맡기십시오. 지금은 선물을 받으시고요.”

“그 말 믿어도 돼?”

“두 시간 뒤에 전화할 겁니다.”

기가 막힌 표정으로 웃은 조태완이 쇼핑백을 받아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뒤에 손을 넣어 내용물을 꺼냈다.

세상에!

이런 물건이 있었다니?

오세아가 손으로 입을 가린 앞에서 조태완은 앙증맞은 신발을 들어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직후에 그는 울음을 억지로 삼킨 듯 힘겹게 보이는 웃음을 얼굴에 담았다.

잠시 후, 고개를 든 조태완의 눈이 실제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저녁 안 먹었지?”

그런 뒤에 그가 내놓은 질문을 들은 강성태가 재미있다는 얼굴로 웃음을 터트렸다.

**

벌써 여섯 통째였다.

부천 이광선의 전화를 끊은 김민재는 갑갑한 심정에 볼을 불룩하게 만들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강성태를 만난 것 같지는 않았다.

“성태가 뭐라고 했기에 이래요? 내가 말해놓을 테니까 이제 그만 하세요.”

“성태 님이 누구십니까? 저는 그런 분 모릅니다. 절대 모릅니다. 아는 분이 아닙니다.”

강성태의 이름을 들으면 경기를 일으키는 건 분명했는데 아무튼 만난 것 같지는 않았다.

눈치를 살피던 김민재는 슬며시 방으로 나섰다.

“너는 무슨 전화를 그렇게 툴툴대며 받아?”

“저기, 낮에 갔었던 중고차 매장 있잖아?”

냉장고에서 마늘 다져놓은 걸 꺼내던 장숙경이 뭔 소리야, 하는 얼굴로 김민재를 돌아보았다.

“나중에 왔었던 이광선이라는 사람인데 여기 와서 어머니랑 나한테 사과하고 싶다네?”

눈을 껌벅이던 장숙경은 냉장고를 닫고는 김민재를 향해 섰다.

“너 혹시 성태나 민정이한테 연락했었어?”

“어?”

“연락했었냐고?”

“아니야.”

능청맞게 고개마저 젖는 김민재를 장숙경이 빤히 들여다보았다.

“민정이에게는 그렇다고 쳐도 내가 왜 성태한테 연락해?”

“치곤이 통해서 힘써 달라고 했을까 봐 그렇지. 성태 성격에 내가 욕먹었다는 소리 들으면 가만있겠어? 진짜 전화한 거 아니지?”

“안 했다니까.”

“됐어, 그럼. 그런 놈들 사과받아서 좋을 게 뭐 있어?”

두 번이나 다짐받은 뒤에야 장숙경은 마늘 다져놓은 플라스틱병을 들고 싱크대로 몸을 돌렸다.

김민재는 장숙경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늙었네, 우리 어머니.”

“뭐?”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다만, 김민재의 눈만 들여다봐도 속을 빤히 읽어내던 장숙경이 지금은 능청맞은 대답에 수긍하며 몸을 돌린다는 사실이 가슴을 묘하게 흔들었다.

“저녁은 김치찌개야?”

“그래. 김치찌개. 우리 성태가 좋아하던 돼지고기 뚝뚝 썰어 넣은 거.”

냄비를 들여다보는 장숙경의 뒷모습 한구석이 허전해 보여서 김민재는 불쑥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

“이놈 새끼! 고춧가루 흘렸잖아! 왜 징그럽게 끌어안고 지랄이야?”

이게 아닌데?

늙어버린 게 아니라 잠시 감이 떨어졌던 건가?

“에이, 진짜!”

짜증을 있는 대로 쏟아낸 장숙경이 행주를 집어서 흐트러진 고춧가루를 닦았다.

**

통화를 마친 차웅진은 왼편 구석으로 고개를 들어 CCTV 카메라를 확인했다.

‘저걸 보았겠구나.’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테니 복장과 뒤에 서 있는 비서까지 모두 확인할 수 있었겠다.

저걸 끊으면 내부 경계가 풀어진다.

더구나 강성태란 놈이 사람까지 붙였다고 하지 않던가.

이를 잘근잘근 씹던 차웅진은 고집스러운 눈매로 고개를 돌렸다.

“당장 집 안에 있는 CCTV 카메라를 모두 꺼.”

“예?”

“저기! 저 카메라 모두 끄라고.”

“회장님. 그렇게 하면 바깥에서 대기하던 인원이 모두 실내로 들어오게 돼 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내가 노망이라도 든 거 같으냐? 그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우선 모두 꺼버리란 말이다.”

고개를 조아린 뒤에 급하게 움직인 비서를 보며 차웅진은 시선을 앞으로 가져왔다.

이놈 봐라?

파칭코에 대해서도 확실히 아는 눈치였다. 그렇다면 그와 관련한 돈이 어떻게 도는지도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 알고 있다고 보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강성태는.

하기는, 그러니까 느닷없이 튀어나와서 신강남파를 만들었을 테고,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을 등에 업고 설치겠지.

놈에 대한 조사를 좀 더 깊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이 정도라면 곤잘레스 이두안이 한국으로 오기 전부터 모종의 계획이 있었을 확률도 높았다.

아차차!

가장 급한 일을 깜박 잊고 있었다.

“CCTV 카메라 전원을 모두 차단했습니다.”

“오냐. 그럼 지금 당장 아카시 미키야토 회장께 전화를 넣어라. 내가 급한 일로 통화를 원한다고 말씀드려.”

“예, 회장님.”

또다시 지시를 내린 차웅진은 비서가 드는 스마트폰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두 시간 뒤라고 했다.

전화를 해야 하나? 아니면 무시해야 하는 건가?

이전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고민을 마주한 차웅진은 쉽게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

조태완이 붙들었고, 오세아가 진심 어린 표정과 태도로 권해서 강성태는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그런 뒤에 세 사람 모두 오세아가 선택한 가장 저렴한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어느 정도는 작정했던 일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을 생각까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사모님.”

주문을 마친 강성태는 오세아를 불렀다.

“태완이 형님 모시고, 두 가지를 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마약, 다음으로는 고리대금업, 우리나라에서 그 두 가지를 못 하게 막고 싶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조태완을 돌아보았던 오세아가 이유가 있겠지, 하는 표정으로 다시 강성태에게 시선을 주었다.

“앞으로 태완이 형님께서 바빠지실 겁니다. 제가 부탁할 일이 많아서요.”

강성태가 이렇게 나오는 의도를 파악하겠다는 듯 조태완마저 침묵하며 지켜보고만 있었다.

“마약은 사회와 인간성을 갉아먹고, 고리대금업은 힘겨운 사람의 숨통을 조입니다. 대한민국에 들어오는 고리대금업 자금을 태완이 형님과 제가 막았습니다. 그 바람에 조금 전에 보셨던 통화가 있었고요.”

강성태 씨가 이렇게 말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에요?

오세아의 눈이 조태완을 보았다가 답을 바라는 느낌으로 강성태에게 돌아왔다.

“앞으로 태완이 형님은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그러니까 혹시 오늘처럼 늦게 움직이게 되더라도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계획이 선 모양이지?”

“차웅진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허허. 그것참.”

오세아가 보는 앞이라서 그런지 조태완은 더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믿음직하다는 시선으로 강성태를 보았다.

“이건 또 언제 샀어?”

“여기 오기 전에 잠시 백화점에 들렀었습니다.”

“시간 참 여유롭다.”

“다른 일도 아니고, 그토록 바라시던 아이가 생겼다는데 어떻게 모른 척합니까? 앞으로 장난감이랑 유모차도 사셔야 할 텐데 사용하고 잘 보관해 주십시오.”

“그건 또 왜?”

“혹시 제 아이가 생기면 물려받으려고요.”

의도적으로 던지는 조태완의 질문을 강성태가 능청맞게 받으면서 테이블 주변의 긴장이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

아르윈은 판단이 날카로운 데다 눈치가 빨랐다.

“야쿠자인 거 같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알아서 판단해. 혹시라도 수상한 놈들이 보이면 행동하지 말고 일단 알려.”

조직원들을 지하주차장에서부터 로비까지 쭉 깔았고, 이어 레스토랑 주변을 키란과 함께 살폈다.

수색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로비에 비치된 소파에서 야쿠자 느낌을 너무도 선명하게 풍기는 남자 둘을 발견했고, 레스토랑 입구 맞은편의 커피숍에서 다시 두 명을 찾았다.

너무 당당하게 드러내고 앉아 있어서 오히려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아르윈은 먼저 조직원에게 전화를 넣었다.

“로비에서 넷을 찾은 거 같다. 주차장은 어때?”

- 세워진 차들을 모두 살폈는데 차 안에 있는 남자들은 없었습니다.

“확실해?”

- 예, 형님. 주차장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사십 대 남자와 여자를 보기는 했는데 확실히 야쿠자는 아니었습니다.

“됐어. 그럼 차 한 대는 호텔을 나가서 주차장 출구 쪽에 대기하고, 남은 인원은 흩어져서 각자 로비로 올라와.”

통화하는 아르윈의 곁에서 키란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호텔의 입구를 보고 있었다.

겉모습은 영락없이 VIP를 기다리는 필리핀 여행사 사장과 직원이었는데, 두 사람은 교대로 로비 소파와 커피숍에 있는 야쿠자들을 살폈다.

조직원과 통화를 마친 아르윈은 바로 강성태의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로비에서 야쿠자로 보이는 네 명을 발견했습니다. 지켜보고 있다가 형님을 따라 움직이는 게 확인되면 그때 달겠습니다.”

- 키란은?

“옆에 있습니다, 형님.”

- 말한 대로 해.

“감사합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아르윈이 느긋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온 조직원을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

아르윈과 통화하느라 잠시 대화가 끊겼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강성태를 향해 오세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데이트는 안 하세요?”

“어젯밤에 아버님까지 셋이서 횟집에 들렀다가 노래방까지 갔었습니다.”

“보스가?”

“예. 저, 노래 잘합니다.”

평소와 다르게 넉살 좋은 모습을 보이는 강성태의 의도를 알아챈 듯 조태완이 유쾌하게 웃었다.

“그분은 보스를 염려하지 않으세요? 불안해하신다거나 그런 거요.”

어쩌면 기다렸던 질문이었다.

이런 종류의 질문을 해주길 정말이지 바랐었다.

“제가 만나는 사람이 의사입니다. 제 상처, 지금도 병원에 있는 이병렬과 최치곤을 치료하면서 무척이나 걱정이 많습니다. 심지어 아버님도 외과 의사셔서 함께 수술해주실 때도 있었습니다.”

어쩜. 그분들은 얼마나 속이 타셨을까요?

오세아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약과 고리대금업을 막겠다는 제 말과 비록 조직에 몸담았지만, 일반인에게 절대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약속을 믿어주었습니다.”

“믿는 것과 불안한 건 다르잖아요?”

강성태는 먼저 밀동에서 있었던 일을 이남순의 이름조차 말하지 않았을 정도로 간략하게 풀어냈다.

“그때 형님도 계셨지만, 그 사람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피해자를 다독여주었고, 지금도 연락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아픈 이야기였다.

감정이 움직였는지 오세아가 안타까운 표정과 눈빛을 그려내며 강성태에게 집중했다.

“앞으로 저와 형님은 그런 일에만 조직의 힘을 사용할 겁니다. 비록 그 길에서 때론 다치고, 때론 힘겨울 수 있겠지만, 형님과 제가 눈 감으면 또다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고통에 신음하게 됩니다.”

오세아가 복잡한 표정으로 조태완을 돌아보았다.

“우리 오빠, 잘 부탁드려요.”

그런 뒤에 강성태를 향해 진심 어린 당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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