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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8권 - 20화 (372/513)

《372》2부 18권 - 20화

유섭우의 이름을 확인한 강성태는 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유섭우입니다, 형님. 이광선을 찾았습니다. 인천, 부천 연합에서 생활 시작했던 놈인데 지금은 자동차 매매상사 근처에서 동생들 다섯 명과 작게 조직 꾸리며 살고 있습니다, 형님.

“그래?”

- 형님께서 신경 쓰실 것 없이 제가 가서 달아오겠습니다. 그것도 뭐하시면 전화로 불러도 됩니다, 형님. 이광선의 5년 선배를 제가 압니다.

“오늘은 부산에 가야지. 전에 그놈 본 적 있어?”

- 없습니다, 형님.

뭐, 그런 놈까지 알겠냐는 느낌의 대꾸였다.

한 마디로 유섭우가 나서기에도 어쭙잖은 인물이었다. 이광선은.

“강서구에 있는 중고차 매매상들도 그런 식으로 일하나?”

- 수원 하고 우리는 아닙니다, 형님. 강서구에서 그런 짓 하면 바로 매매상들이 이름 올려놓고 따돌립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강서구에서 그런 일 생기면 나하고 진짜 불편하게 얼굴 본다.”

- 절대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형님.

이광선을 직접 상대했다가는 이병렬이 길길이 날뛰는 꼴을 보게 될 테고, 부산에 내려가기 전에 잠시 들러야 할 곳이 있어서 시간도 부족했다.

“이광선 5년 선배라는 인간을 안다고 했지? 그놈과 통화하든, 이광선에게 직접 연락하든 해서 나한테 전화 좀 넣으라고 해.”

- 이광선과 직접 통화하십니까, 형님?

화들짝 놀란 유섭우의 반응을 들으며 강성태는 몸을 세웠다.

“짧게 끝내고 부산 가자. 그 정도가 적당해.”

- 그냥 제가 통화하거나 아니면 불러서 따끔하게 꾸짖겠습니다, 형님.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곤란한 일도 있고 하니까 전화하라고 해.”

- 죄송한데, 형님. 진용도 번호를 전해서 건너 통화하시면 어떻겠습니까, 형님?

유섭우가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것으로 봐서 강성태의 짐작보다 훨씬 더 조직의 체면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이광선과 직접 통화하는 게 말이다.

“그것까지는 알아서 해.”

- 바로 연락해 보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머그잔을 들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 안쪽 테이블에 놓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곱게 인사하는 여주인의 곁에서 서 있던 남자가 눈매를 삐딱하게 올리며 강성태를 노려보았다.

한두 번이면 참는다.

이곳에 안 오면 그만이고.

아무리 그렇더라도 실수나 민폐를 끼친 일도 없는 데다, 커피 한잔 마시고, 얌전히 머그잔을 돌려주고 가는 길에서 이런 시선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강성태는 여주인 곁에 선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당황한 여주인이 강성태와 옆에 선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그만두라며 남자의 팔을 당기거나 혹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 아닐까. 그런데도 여주인은 죄지은 사람처럼 눈치만 살폈다.

시선이 마주친 상태에서 침묵이 길어졌다.

“뭘 그렇게 사람을 노려봐? 커피 마신 게 그렇게 유세 떨 일이야?”

강성태는 기가 막힌 심정에서 옅게 웃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반응이 정말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약점을 잡혔나?

여주인을 돌아보았던 강성태가 남자에게 시선을 돌린 다음이었다.

강성태의 시선을 받았던 여주인이 곤경에 빠진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 하고, 그만큼 남자의 눈매와 인상이 사납게 변해 있었다.

예사롭지 않은 반응에 강성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가족이 저 남자의 일행에게 납치돼 있거나 전에 이은주가 가족의 빚을 대신 떠안았던 것처럼 당하는 건가?

일이 많았다.

오늘 밤에는 부산에도 가야 했고, 간단하게나마 김민재의 민원도 해결해야 했으며, 그 전에 들를 곳도 있었다.

혹시 모르니까 확인부터 다시 해보자.

강성태는 아예 의도를 담아 여주인에게 다시금 시선을 주었다. 시선이 머문 시간이 길어질수록 여주인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그리고 당장 주먹을 날려도 이상하지 않을 거친 반응이 남자에게서 나왔다.

뭔가 이상하다, 이 두 사람.

고작 시선을 주었다고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는 남자도 그렇지만,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숨 막혀 하는 여주인의 반응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나가!”

남자가 거칠게 말을 뱉어내는 순간이었다.

시커먼 덩치들이 커피숍 앞으로 몰려오더니 문을 열고 들어섰다.

진용도와 숙소 식구들이었다.

재킷의 앞섶을 만진 진용도가 가장 앞에서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전화 통화하신다고 하셨습니까, 형님?”

진용도와 뒤에 선 덩치들을 본 남자의 눈동자가 복잡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대림동, 광주 덩치들이라면 일반인 앞에서 절대 이런 식으로 고개 숙이지 않았을 텐데, 일이 공교롭게 풀리려고 그랬는지 하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진용도가 숙소 덩치들을 끌고 와 조폭 냄새를 풀풀 풍겨내고 있었다.

흔들리는 남자의 눈을 들여다보던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전화 연결됐어?”

“예, 형님. 기다리고 있습니다, 형님.”

“밖에서 받자.”

강성태는 몸을 돌려 커피숍 바깥을 향해 움직였다.

‘이 씨발놈은 뭐야?’

혹시나 강성태와 시비가 붙었었나 하는 눈빛으로 남자의 위아래를 훑은 진용도가 공손하게 뒤따랐고, 숙소 덩치들이 비슷한 느낌의 시선을 날리며 몸을 돌렸다.

비겁하게도 커피숍의 남자는 진용도와 숙소 덩치들의 허리춤으로 시선을 내리고 있었다.

밖으로 나선 강성태에게 진용도가 공손하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여보세요?”

- 안녕하십니까, 형님? 부천 이광선이 전화로 우선 인사 올립니다, 형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형님?

진용도가 병원 주차장에서 커피숍에 와 스마트폰을 건네줄 때까지 기다렸던 이광선의 다급한 대꾸가 바로 건너왔다.

“이광선?”

“예, 형님!”

“오늘 김민재라고 봤지? 어머니 모시고 간 손님.”

“섭우 형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형님. 몰라뵙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형님.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제가 지금 부천에서 가장 좋은 중고차를 준비해서 두 분께 찾아뵙고 사과 올리겠습니다, 형님.”

에효, 이 불쌍한 인간아.

비굴하게 매달리는 이광선의 음성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거기 가셨던 분이 내 어머니시다.”

“예? 형님?”

“병렬이나 섭우를 보낼까 했는데 모르고 실수한 거 같아서 기회를 한 번 준다.”

“감사합니다, 형님!”

스마트폰을 귀에서 잠시 뗐을 정도로 커다란 인사가 건너왔다.

“내가 민재 번호를 알려줄 테니까 연락해. 찾아가서 오늘 일 사과드리는데 내 이야기가 한마디도 안 나오게 해. 무슨 말인지 알았어? 생각해 보니까 잘못한 거다. 알아들었어?”

“예, 형님.”

“다시 말하지만, 사과하고 나오는 순간까지 내 이름이 나오지 않도록 주의해. 그런 일이 생기면 병렬이나 섭우가 아니라 나를 직접 보게 된다.”

“혀를 잘라서 삼키는 한이 있어도 형님을 입에 담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형님.”

“오늘 사과하고 나서 앞으로는 자동차 매매에 끼어들지 마라. 그리고 지금껏 피해 준 사람들 명단, 갈취한 내용, 쭉 적어서 가지고 있어.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연락할 테니까. 알았어?”

“예, 형님.”

마지막 답은 아예 울먹이는 수준이었다.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들어 김민재의 번호를 찾아 불러주고는 통화를 마쳤다.

두 팔을 내밀어 스마트폰을 돌려받은 진용도가 커다란 임무를 마쳤다는 얼굴로 몸을 세웠다.

“백화점에 잠시 갈까 하는데 차가 있어?”

“주차장에 있습니다, 형님.”

진용도의 눈짓을 받은 덩치 두 명이 빠르게 방지병원 주차장을 향해 달렸다.

원래 강성태라면 택시를 타고 혼자 가고 말지, 이렇게 덩치들을 끌고 다니지 않았다.

올림픽 도로에 합류할 때 보았던 남자 때문이었다.

그가 만약 야쿠자 조직원이라면 혼자 다니는 강성태를 노릴 수 있다는 계산에서 진용도에게 차를 요구했다.

달려든다고 해도 겁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여럿이 함께 다니면 근처에 올 수는 있어도 사건을 만들지는 않으리라는 계산이어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차원이었다.

그건 그렇고.

강성태는 커피숍 안을 돌아보았다.

“세 명만 추려서 커피숍 근처에 있으라고 해. 영업 마치면 여기 여주인 따라가서 집 살펴보고. 내가 내일 아침에 출근할 때 함께 움직여.”

“예? 형님?”

진용도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물었다가 강성태의 시선을 받고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여주인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나?

강성태가 입맛을 다실 때 방지병원에서 나온 승용차가 도로에 멈췄다.

**

김민재는 처음 보는 번호를 확인하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김민재 선생님 되십니까?

“그런데요?”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두 시간 전에 부천에서 인사 올렸던 이광선입니다, 선생님.

“네? 누구요?”

- 부천 중고차 매매상사에서 뵈었던 이광선입니다, 선생님.

상대방의 설명을 들은 김민재는 그제야 부천에서 보았던 이광선을 제대로 떠올렸다.

- 어디 계십니까, 선생님? 제가 바로 사과드리러 가겠습니다.

“오셔서 또 욕하시려고요?”

-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강성태가 어떻게 했는지 김민재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너무 분해서 강성태에게 전화하기는 했지만, 거의 죽게 생긴 음성으로 매달리는 이광선의 전화를 받고 있자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 선생님? 기회를 한 번만 주십시오.

‘전화하지 말걸.’

분하고, 억울했었다. 그러나 이광선의 비굴한 음성을 듣는 사이 김민재는 어쩌지 못하고 나오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백화점에 도착한 강성태는 조수석에 앉은 진용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입구에 세우고 진용도만 내리자. 다른 인원은 지하주차장에서 기다려.”

“알겠습니다, 형님.”

승용차가 멈추자 진용도가 빠르게 내려 뒷문을 열었다.

오후였다.

한가한 시간에 백화점을 방문했던 고객들과 그 앞을 지나던 사람들의 시선이 차에서 내리는 강성태에게 쏠렸다.

조폭이 확실해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었는데 연예인처럼 보이는 강성태가 내리고 있어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

강성태는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더욱이 이렇게 덩치가 챙겨주는 모습을 보이는 건 아예 부끄럽게 생각한다.

봐라, 차웅진.

신강남파와 강성태는 너나 야쿠자 따위에 겁먹지 않았다.

조태완 형님은 편안하게 저녁을 즐길 거고, 보스인 강성태는 백화점에서 쇼핑한다. 하지만, 부산을 그대로 두지도 않을 거니까 잘 판단해서 행동해.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강성태는 백화점 안으로 움직였다.

‘경호원인가 봐.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지?’

백화점의 현관문을 열어주는 진용도와 안으로 들어가는 강성태를 돌아본 사람들의 눈에 담긴 의문이었다.

강성태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3층으로 올라갔다.

숙녀복 매장을 지나쳐 안쪽에 있는 아동복 코너로 향했고, 그중에서도 신생아 용품을 파는 매장을 선택해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사명감에 불타는 얼굴로 입구에 선 진용도가 양손을 앞으로 잡고서 강성태를 지키는 상황이었다.

거친 얼굴, 독해 보이는 눈매, 코, 입술, 그런데도 강성태의 행동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집중하는 모습, 진용도의 태도에 눌린 것처럼 점원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다가왔다.

“제가 좋아하는 분이 늦둥이를 얻었습니다. 아이가 생긴 지 한 달 정도 되었지만, 두 분이 기뻐할 선물을 하고 싶습니다. 적당한 게 있을까요?”

“여아인지 남아인지 모를 때는 신발과 배냇저고리 정도가 선물로 가장 좋습니다. 이쪽으로 오셔서 한 번 보세요.”

강성태는 점원이 건네주는 앙증맞은 신발과 배냇저고리를 살폈다.

“이게 좋겠네요. 두 가지 모두 포장해 주시겠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고개를 든 강성태는 뭔가 뒤를 간질이는 느낌에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백화점까지?

올림픽 도로에서 시선이 마주쳤던 남자였다.

그가 강성태를 향해 서 있는 진용도의 등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따라다닌다는 의미였다.

조태완에게 붙었다는 경찰청 형사인지, 검찰에서 나온 수사관인지, 그도 아니면 야쿠자 조직원인지 알 길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강성태를 줄곧 따라다닌다는 점이었다.

눈과 눈이 마주친 상태였다.

“회장님. 외람된 질문입니다. 혹시 회장님의 능력으로 차웅진 회장을 조용하게 제거하는 게 가능하십니까?”

먼저 은선곤이 내놓았던 질문이 떠올랐고,

- 미안하다. 이런 일로 전화해서.

- 형님께서 신경 쓰실 것 없이 제가 가서 달아오겠습니다.

김민재, 유섭우와의 통화가 생각났으며,

“세 명만 추려서 커피숍 근처에 있으라고 해.”

커피숍 여주인에게 세 명을 붙여놓으라 했던 지시가 또렷하게 기억났다.

강성태에게 지지 않겠다는 투로 시선을 피하지 않았던 남자가 옆의 매장 쪽으로 사라졌다.

개새끼.

덕분에 좋은 방법을 하나 얻었다.

차웅진, 너도 한번 당해봐.

“저기, 손님.”

뭔가를 떠올린 강성태를 점원이 불렀다.

“다른 곳을 보느라 제대로 못 들었습니다. 뭐라고 하셨죠?”

“계산 부탁드리려고요.”

지갑을 꺼낸 강성태는 카드를 점원에게 건넸다. 그런 뒤에 돌아선 점원의 뒤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찾았고, 이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 아르윈입니다, 형님.

“키란이 지금 병원에 있지?”

- 예, 형님.

“내가 키란에게 부탁할 일이 있는데 아르윈이 좀 도와줬으면 싶어.”

- 말씀 주십시오, 형님.

아르윈의 답을 들은 강성태는 남자가 사라진 복도 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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