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18권 - 7화 (359/513)

《359》2부 18권 - 7화

불편한 눈빛들을 남긴 삼합회가 모두 물러나는 데 5분쯤 걸렸다. 물러가는 조직원들을 묵묵하게 지켜보던 강성태는 그제야 시선을 돌렸다.

“어떻게 된 겁니까?”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도로에서 일어난 소란 탓에 홍콩 행정부로 수없이 많은 신고가 접수되었고, 일이 보고되기 무섭게 보리스 파리오라는 분이 손을 쓴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뒤탈은 없겠습니까?”

강성태의 질문을 받은 서른 후반의 남자가 경찰사격훈련장이 있는 장소를 돌아보았다가 시선을 가져왔다.

“중국 정부와 삼합회가 원하는 대로 차라리 말썽을 일으킨 미스터 강을 잡아들이는 게 어떠냐고 대들었습니다. 그 바람에 욕은 먹었지만, 그만큼 의심도 피했을 겁니다.”

말을 마친 그가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가 바라는 홍콩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현실에서 미스터 강처럼 행동할지는 자신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당신 같은 리더가 나오길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말의 끝에서 그가 소망을 확인하는 시선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강성태입니다. 혹시 한국에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고 연락하십시오.”

“그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꼭 한번 다시 뵙고 싶으니까요. 언제고 홍콩이 다시 스스로 서게 된다면 방문해 주십시오.”

“이름을 모르는데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이름을 모르면 어떻습니까? 이 길이 당신과 나를 기억할 테고, 우리 두 사람이 이 순간을 잊지 않을 텐데요.”

멋지게 웃은 서른 후반의 남자가 기다리는 정복 경찰을 돌아보았다.

“출발하셔야 합니다. 공항까지 직접 모시라는 지시를 받았으니 가는 길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말끝에서 그가 모터사이클에 시선을 주었다.

그가 제공하는 승용차를 이용할 건지, 아니면 모터사이클을 이용할 건지를 묻는 느낌이었다.

“삼합회를 긁어주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그러실 거 같았습니다. 그럼 앞뒤에서 에스코트할 테니 모터사이클로 이동하십시오.”

그가 손을 들어 아래를 가리키자 정복 경찰들이 모두 경찰차에 올랐다.

“공항에서 따로 인사드리지 못합니다. 미스터 강의 행운과 발전을 기원합니다.”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그가 뒤편 차량으로 움직였다.

아쉽다. 저런 남자는.

강성태가 홍콩에서 살았다면 아마도 둘이서 목숨을 걸어가며 무언가 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에 걸리는 사람이었다.

아쉬움을 털어낸 강성태는 키란이 건네주는 헬멧을 눌러 쓴 뒤에 상체를 기울여 핸들을 잡았다.

우우우우웅.

가속 레버를 당기기 무섭게 기다림이 지루했다는 투정처럼 엔진이 거친 음을 토해냈다.

비상등을 켠 경찰차가 앞을 지났고, 세 번째에 탄 남자가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우우우웅!

기어를 넣고 기다리던 강성태는 가속 레버를 당겨 그가 탄 차를 뒤따랐다.

- 모두 들었다, 미스터 강! 우리는 거의 공항에 도착했어!

“공항에서 보자.”

이어셋을 통해 대화를 모두 듣고 있어서 바르지오와 은선곤에게 상황을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도 있었다.

**

홍콩 섬을 빠져나간 은선곤 일행은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특별한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강성태가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온다는 소식까지 들어서 나름 여유마저 생겼다.

염려했던 것과 달리 편하게 도착했다고 여겼다. 그러나 운전기사는 아니었던지, 공항 앞에 도착한 그는 긴장과 동시에 진이 쭉 빠진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

그는 곧바로 뒤에서 내린 은선곤과 바르지오 만시니에게 다가왔다.

트렁크에서 내릴 짐도 없어서 인사를 하려는 게 분명했다.

죽어라 따라붙는 삼합회 조직원들을 피해 자동차를 몰았고, 생전 처음 홍콩 경찰사격훈련장에 몸도 숨겼으며, 혹시 모를 위험을 감내하며 공항까지 운전했던 직원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강성태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좀 살자는 따끔한 꾸중을 듣지 못했다면, 은선곤은 운전하는 직원에게 이렇게까지 공손하지 않았다.

“모실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실장님.”

은선곤이 그룹의 로열패밀리라는 사실을 짐작하는 운전기사였다. 왼손으로 오른팔을 받치며 상체를 기울이는 직원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혹시 이번 일로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다른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내게 전화하세요. 내 연락처는 알고 계시죠?”

“예, 실장님.”

별것 아닌 당부를 전했을 뿐인데 운전기사가 감동한 얼굴로 은선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시선이 있으리라고 전에는 알지 못했다.

함께 일하는 이들이 바라는, 기대하는 점이 무엇인지도 전혀 몰랐었다.

은선곤 역시 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살았으면서도 말이다.

“이제는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기회 있으면 또 보죠.”

“살펴가십시오, 실장님.”

직전까지 보였던 긴장을 지운 운전기사의 표정에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마음 써주는 분이었구나.’ 하는 감동과 고마움이 올라와 있었다.

인사 한 번에 참 많은 걸 배웠다.

몸을 돌린 은선곤은 바르지오 만시니와 함께 공항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걷는 도중이었다.

은선곤은 입국장 로비에 서 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들을 보고는 바르지오 만시니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슨 규격이나 유행이 있는 것처럼 허름한 스타일의 양복, 소위 깍두기 머리라는 짧은 헤어 스타일이어서 한눈에 조직원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삼합회 조직원이 맞는 거 같소.’

시선을 마주한 바르지오가 고개를 끄덕여 은선곤의 물음에 답을 주었다.

혹시 몰라 공항에서 기다리던 조직원인 모양이었다.

왜 운전기사는 출국장이 아니라 입국장에 내려줬을까?

저들이 달려들면 은선곤과 바르지오는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강성태와 함께 다니는 동안은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조직원들과 맞서는 상황이 얼마나 두려운 건지 말이다.

저런 인간들이 줄줄이 달려드는 곳을 향해 강성태는 키란과 단둘이 달려갔었다. 부산 맨션 영상에서도 강성태는 가장 앞에서 회칼을 잡아채 가며 싸웠었다.

부러웠다, 그 용기가.

배우고 싶었다, 그 당당함을.

슬쩍 바라본 바르지오 만시니가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은선곤은 코를 매만지는 동작으로 떨리는 손끝을 감췄다. 그런 뒤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엘리베이터 호출버튼을 눌렀다.

이대로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저들이 권총이나 기관총을 갈기면 겨우 몸이나 움츠렸다가 죽는다.

엘리베이터를 앞에 두고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위아래에서 총을 난사하면 피할 곳도 없었다.

어떻게 하지?

은선곤은 공항을 돌아보는 척하며 위쪽으로 시선을 들었다.

3층의 엘리베이터 앞에도 확실히 조직원으로 보이는 무리가 서 있었다.

1층에서 기회를 못 잡으면 3층에서 기다렸다가 문이 열릴 때 방아쇠를 당기겠다는 건가?

“미스터 은?”

걱정이 태산 같은 은선곤을 바르지오 만시니가 불렀다. 위를 돌아보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던 모양이었다.

올라간다.

이런 위험에 주눅 든다면 멕시코에서는 아예 숨도 쉬기 어려울 테니까 당당하게 맞서련다.

닥쳐올 위험에 맞서는 심정으로 은선곤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타기를 기다렸던 바르지오 만시니가 곧장 3층 버튼을 눌렀다.

긴장한 상태에서 3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조금 떨어진 곳에 인상이 더럽게 생긴 조직원 열 명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은선곤과 바르지오 만시니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 바람에 조직원들과 눈이 마주쳤는데도 은선곤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시선 바로 아래의 볼을 노려보았다.

겉보기에는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고 있어서, 조직원이란 사실을 알아본 중국인 이용객들이 그들을 피해 멀찍이 돌아서 지나가고 있었다.

이놈들은 강성태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다. 그러니 함부로 죽이지는 않을 거고.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이거 전부 우리 보스한테 이를 거니까.

아무리 중국 정부의 비호를 받는 삼합회라 하더라도 홍콩 공항에서 총질은 어렵겠다. 대신 칼질을 해대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한 이야기였다.

칼을 맞을 때 맞더라도 당당할 거다.

강성태를 만나서 당한 걸 똑똑히 전할 거고, 인상을 모조리 기억했다가 고대로 알려줄 거다.

바르지오 만시니 역시 분위기를 느꼈는지 걸음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이 맴돌 때였다.

삼합회 조직원들의 뒤에서 방송용 카메라를 든 기자, 배터리 팩과 카메라 받침대를 어깨에 짊어진 보조 기자, 그리고 마이크를 든 기자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그리고 구원의 표식처럼 카메라에 찍힌 ‘JBC’라는 로고도 눈에 들어왔다.

“이세종 보도국장님!”

팽팽한 긴장을 깨며 은선곤이 이세종을 불렀다.

물론 얼굴을 알지는 못한다.

대신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은선곤이 부른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술과 밥을 잘 얻어먹게 생긴 남자가 조직원들을 뻔뻔하게 돌아보며 은선곤에게 다가왔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얻은 것도 있었다.

이세종 일행을 본 조직원들이 비웃음을 남기고 걸음을 돌렸다.

“하우.”

나직하게 숨을 뱉어낸 은선곤의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저를 찾으셨습니까?”

“강성태 회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은선곤이라고 합니다.”

“아! 은 실장님!”

다가왔던 이세종이 표정을 삽시간에 바꾸며 품에서 명함 지갑을 꺼냈다.

“JBC 보도국장 이세종입니다. 이렇게 뵙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앞으로 멕시코 건설 현장을 집중적으로 취재할 생각이고, 처음부터 함께 생활하며 성공 신화라는 가칭으로 건설과정을 모두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계획에 있습니다.”

옥장판을 파는 방판 사원이 아닌가 싶은 태도로 이세종이 명함을 건넸다.

인사는 거기까지였다.

은선곤이 소개하지 않는 것을 알아챈 이세종이 의도적으로 바르지오 만시니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시간도 아낄 겸 해서 먼저 인터뷰를 따면 어떨까 싶습니다.”

“곤잘레스 회장님을 먼저 인터뷰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회장님 인터뷰와 출국하시는 모습은 누끼로 따서 저희가 순서에 맞춰 편집하면 되니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쪽 벽이 배경으로 좋습니다. 자리를 옮기실까요?”

처세술로만 놓고 보면 이세종은 북극곰의 앞발에서 콜라도 뺏어낼 인물이었다. 능숙하게 은선곤을 설득한 이세종이 인터뷰 장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세종을 따라 걸음을 옮기던 은선곤은 그제야 깜빡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달았다.

바르지오 만시니는 강성태와 이어셋으로 계속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태연할 수 있었을까?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어디로 갔는지 바르지오 만시니는 보이지 않았다.

**

공항에 도착한 강성태는 모터사이클을 세우고 헬멧을 벗었다.

말한 대로였다.

마치 귀찮은 일을 겨우 마쳤다는 듯 서른 후반의 남자는 인사조차 전하지 않은 채 그대로 공항을 떠났다.

세상이 이렇게나 발전했는데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장벽이 얼마나 살벌한지 좋은 사람과 인사를 나눌 여유마저 막아서고 있었다.

누구는 억압하고, 또 다른 누구는 목숨을 걸고 싸운다.

어느 편이 옳은지는 후대에서 판단할 문제겠지만, 당장은 고통받는 사람이 없도록 애쓰고,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 아닐까.

생각을 털어낸 강성태는 기다리는 키란과 함께 공항 3층으로 들어섰다.

“바르지오? 어디에 있어?”

- 미스터 은과 방송국 직원은 레스토랑에 있고, 나는 오른쪽 게이트 앞에 있는 커피 판매점 앞에 있어.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그쪽으로 갈게. 모터사이클을 밖에 그냥 뒀는데 그래도 되겠어?”

- 놔둬. 돈값을 충분히 해줘서 아쉬운 것도 없어.

바르지오 만시니와 통화한 강성태는 화장실로 향해 옷을 갈아입었다. 쇼핑백에 점퍼와 셔츠, 청바지를 모두 넣어서 세면대 옆의 청소함에 두었다.

그나마 말끔하게 갈아입은 강성태가 키란과 함께 화장실에서 나섰을 때였다.

바르지오 만시니가 기다리고 있다가 일회용 컵을 들고 있는 양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강성태와 함께 한국으로 향할 거라는 안도감이 샤워 후 바른 로션처럼 그의 얼굴에 가득 올라와 있었다.

“커피?”

“좋지.”

강성태와 키란이 일회용 컵을 받아들자 바르지오는 공항에 도착해서 있었던 일을 쭉 설명했다.

“미스터 은 말이지. 손이 떨리기는 했지만, 제법 강단 있게 버티더라고.”

“삼합회 조직원들은?”

“방송국 직원이 다가온 이후로 사라져서 여태 보이지 않았어. 설마하니 섭충명이 물러났는데 공항에서 무슨 짓 하겠어?”

뻔뻔해진 바르지오 만시니를 보며 강성태는 픽 웃었다.

납치됐던 그를 구해냈고, 무사히 돌아간다.

홍콩에 왔던 목표를 이룬 데다, 크게 다친 사람이 없으니 그다지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걸음을 옮겨 출국장의 한편에서 커피를 마실 때였다.

“회장님!”

은선곤과 이세종이 다가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세종이 뻔뻔할 정도로 친근한 표정과 태도로 아는 척을 내놓았다.

“언제 왔어…요?”

“예? 아! 출국장에 올라와서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여기 은 실장님이 저를 발견하셨지 뭡니까? 그래서 먼저 인터뷰를 땄고, 그 외에 이야기를 듣기 위해 레스토랑에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기자들이 함께 있어서 강성태는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며 이세종을 대했다. 이번에도 강성태가 바르지오 만시니를 소개하지 않아서 이세종이 기자들을 향해 한걸음 물러났다.

뭐라 해도 소신영과 고강준의 약점을 잡아준 바르지오 만시니를 눈치 빠르고 신뢰하기 어려운 이세종에게 소개할 이유는 없었다.

이세종이 물러난 만큼 은선곤이 좀 더 가까이 왔다.

“조직원들과 맞섰었다며?”

“솔직히 두려웠습니다.”

예상보다 정직한 대답이어서 강성태가 픽 웃었다. 그리고 그 직후였다.

“형님?”

키란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뭔데?

고개를 돌린 강성태의 시선 속에 에스컬레이터에서 떠오르는 곤잘레스 이두안과 존 보스만의 모습이 들어왔다.

여유를 한껏 품은 곤잘레스 이두안의 미소를 마주한 순간, 강성태는 홍콩에서의 일이 모두 끝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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