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18권 - 6화 (358/513)

《358》2부 18권 - 6화

그아아아아앙!

모터사이클의 액셀러레이터 레버를 당기는 순간 엔진이 울부짖으며 상체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속도가 붙었다.

- 이제 산길을 빠져나왔다! 방금 연락이 있었는데 해저 터널과 페리 앞에 있던 조직원들까지 모두 불러들였다더라고!

이어셋을 통해 바르지오 만시니가 상황을 계속 전해주었다.

- 우리가 빠져나가는 데는 문제 없겠어! 이제는 공항으로 방향을 틀어!

삼합회 조직원 앞에 나선 지 고작 10분쯤이었다.

바르지오의 연락대로 조직원들을 모두 불러들였는지, 강성태의 뒤로 승용차들이 줄줄이 따라붙었고, 맞은편 도로에도 달려오는 검은색 승용차가 가득했다.

부으으응!

심지어 맞은편에서 중앙선을 넘어 달려드는 승용차도 있었다.

그아앙!

몸을 옆으로 눕힌 강성태가 모터사이클의 방향을 틀었을 때였다.

- 미스터 강! 맞은편에 우리가 지나가!

이어셋을 통해 바르시오 만시니의 음성이 들렸다.

- 뒤편에 숫자가 너무 많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따라붙는 승용차들을 확인한 바르지오의 놀란 음성이 들렸다.

비록 강성태를 노리고 모두 달려든다고 해도 20분은 시간을 벌어줘야 바르지오 만시니와 은선곤이 무사히 해저 터널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곧장 공항으로 달려!”

그아아앙!

지시를 던진 강성태는 내비게이션에 찍힌 도로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 미스터 강! 그 길로 계속 가면 다시 경찰사격훈련장이 나와! 산속에 난 길이라 양쪽에서 막으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어! 방향을 돌려!

간절한 바르지오의 당부가 건너온 직후였다.

부으으응!

또다시 불쑥 중앙선을 넘어온 승용차가 강성태를 향해 똑바로 달려들었다.

모터사이클을 눕히다시피 기울인 강성태는 왼편 무릎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버티며 방향을 틀었다.

끼이이익! 콰자작!

강성태를 노리며 역주행했던 승용차가 뒤따르던 삼합회 승용차를 요란하게 들이받았다.

아예 도로에서 죽이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

부으으응! 부응!

두 대의 승용차가 또다시 중앙선을 넘어 강성태를 노렸다.

그아아아아앙!

승용차를 스치듯 방향을 튼 강성태는 골목을 향해 뛰어들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좁은 길이었다.

콰등! 콰드등!

둥그런 쓰레기통이 모터사이클에 밀려 나뒹굴었고, 바닥에 널려있던 폐지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앙! 그아아앙!

골목을 뛰쳐나간 강성태는 앞바퀴를 들어 인도를 훌쩍 뛰어넘고는 도로로 뛰어들었다.

끼익! 끼이익! 빠아아앙!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 클랙슨이 요란하게 울린 뒤였다.

맞은편 도로에서 지나쳤던 승용차들이 중앙선을 무시한 채 방향을 틀면서 도로가 아수라장으로 바뀌었다.

뒤를 돌아본 강성태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가속 레버를 당겼다.

당장 강성태가 빠져나가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바르지오와 은선곤에게는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도로를 빠르게 달리며 주변을 살핀 강성태는 다시 경찰사격훈련장으로 향하는 도로에 올라섰다.

“키란! 15분만 버티면 바르지오와 은선곤이 홍콩 섬을 빠져나간다! 그때까지만 견뎌!”

- 저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대화는 바르지오 만시니가 모두 듣는다.

키란의 답이 들린 바로 뒤에,

부으으으응! 부으응!

삼합회 조직원들이 탄 승용차가 줄줄이 뒤로 따라붙었다.

마치 공항을 향하려다가 당황한 것처럼 강성태는 좀 더 속도를 높였다.

섭충명은 벌써 두 번이나 모터사이클을 탄 강성태를 직접 보았다.

“들이받으려고 하지 말고 탐 타이로 향하는 산길로 몰아! 그쪽에서 넘어오던 놈들에게 위쪽을 막으라고 하고! 산길에 가둬서 잡는다! 그러니까 몰기만 해!”

스마트폰을 든 섭충명은 뒤를 돌아보며 바쁘게 지시를 내렸다.

탐 타이로 향하는 산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강성태는 끝이다. 양쪽을 모두 막아두면 그곳에서 강성태의 입을 찢어도 누구 한 사람 다가오지 못할 만큼 한적한 도로이기도 했다.

“강성태, 이 새끼. 너는 반드시 죽는다.”

이미 홍콩을 벌컥 뒤집다시피 설쳐서 아무리 중국 정부가 덮어준다고 해도 후폭풍이 있을 일이었다. 더구나 곱게 보내주라던 강성태를 잡겠다며 일으킨 소란이었다. 그러니 섭충명은 강성태의 목이라도 들고 가야 뭐라고 떠들 명분이 생긴다.

쉽게 말해서 강성태가 죽어야 섭충명이 산다.

분노 아래에서 냉철하게 머리를 굴린 섭충명이 이를 세차게 악물었다.

삼합회는 확실히 강성태를 경찰사격훈련장 방향으로 몰아댈 계획인 모양이었다.

끼이이익! 끼이익!

빠져나갈 수 있는 도로마다 서너 대의 승용차와 승합차, 심지어 트럭들이 길을 가로막고서 강성태를 몰았다.

- 어떻게 됐어? 미스터 강? 지금 어떻게 됐냐고?

“공항에 도착하는 게 도와주는 거다. 홍콩 섬을 빠져나가는 대로 알려줘!”

산을 향하는 도로의 마지막 삼거리가 눈앞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부으으응! 부으응!

왼편 도로에서 튀어나온 승용차들이 대놓고 강성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아아앙! 그아아아앙!

더는 어쩌지 못한다는 투로 강성태는 경찰사격훈련장으로 연결되는 산길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 미스터 강! 우리 해저 터널에 들어섰어. 이제 공항으로 출발해!

“숫자가 너무 많아. 이대로 놈들을 달고 공항으로 향하면 나는 몰라도 승용차는 무조건 잡혀! 경찰사격훈련장 길에서 시간을 보내고 갈 테니까 그대로 달려!”

- 미쳤어? 그곳은 인적이 드물어서 총을 쏠 수도 있어! 왜 그렇게 무모해?

산속에 난 2차선 도로였다.

부으응! 그아아아앙! 그아앙!

앞쪽에서 연달아 달려드는 삼합회의 승용차를 피하느라 바르지오 만시니의 질문에 답할 틈이 없었다.

끼이이익!

그리고 강성태는 경찰사격훈련장으로 거슬러 가는 길의 초입에서 모터사이클을 세웠다.

앞쪽 2차선 도로를 다섯 대의 승용차가 꼼꼼하게 막아서서 모터사이클은 관두고 사람 한 명조차 쉽게 지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앙. 그아앙.

액셀러레이터 레버를 당겨 엔진음을 터트린 강성태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였다.

빽빽하게 도로를 차지하며 다가온 승용차 수십 대가 줄줄이 멈추면서 백여 명에 가까운 삼합회 조직원들이 내리고 있었다.

강성태는 중간에 있는 승용차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 나오는 삭발한 남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 왜 엔진음이 안 들려? 미스터 강?

바르지오의 음성을 들으며 강성태는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는 눌린 머리칼을 오른손으로 쓸었다.

호리호리한 몸에 성질 더럽게 생긴 인상, 삭발 머리의 남자가 열 걸음쯤 앞에 섰고, 그 뒤로 100명쯤 될 법한 조직원들이 줄줄이 늘어섰다.

“강성태?”

“섭충명?”

중국어 억양이 가득한 발음으로 부른 강성태였고, 한자를 우리말로 부른 섭충명이라는 이름이었다.

- 뭐야? 붙잡혔어? 지금 부른 게 이름이야?

정신이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어셋을 끊을 수는 없었다.

그사이, 뒤편에 섰던 조직원 한 명이 나와서 섭충명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흥.”

강성태를 향해 섭충명은 확실히 들릴 정도로 확연하게 같잖다는 웃음을 던졌다. 손아귀에 쥔 새의 목을 언제 분지를지 고민하는 악동의 웃음처럼 보였다.

- 미스터 은? 내용을 한 번 들어봐. 오른쪽 이어셋만 꽂아도 들려.

눈과 눈이 마주친 이후로 강성태와 섭충명, 누구도 시선을 피하지 않아서 팽팽한 긴장이 산속 2차선 도로에 가득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다만, 여기까지다. 홍콩에서 너를 도와준 놈들을 털어놓는다면 목숨만은 살려서 돌려보내 주마.”

중국어를 늘어놓던 섭충명이 강성태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그 직후에 그가 뱉어낸 중국말을 곁에 있던 조직원이 우리말로 지껄였다.

“아! 한 가지 더! 네가 관리하는 조직이 우리 삼합회의 지시를 받겠다는 약속을 네놈 피로 한 장 써. 그런 뒤에 내게 절을 해라.”

강성태를 향해 검지를 들었던 섭충명이 손가락을 아래로 내려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가리켰다.

“이제 알겠냐? 한국에서 아무리 설쳐도 대륙의 적수가 되지는 못해! 그 알량한 솜씨로 까불어봐야 이렇게 마주하면 절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경고를 토해낸 섭충명이 기대하는 표정으로 강성태의 답을 기다렸다.

삼합회 조직원이 우리말로 전한 협박을 이어셋 저 너머에서 은선곤이 영어로 바르지오 만시니에게 전하고 있었다.

혈서를 쓰고, 피가 터지도록 이마를 바닥에 찧어도 섭충명은 강성태를 살려두지 않는다. 지금 타고 있는 모터사이클을 걸 만큼 확신하는 일이었다.

그저 죽이기 전에 강성태의 비굴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 던지는 유혹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더는 반항할 마음이 없게 하려는 협박이었다.

섭충명이 두른 망토처럼 길게 늘어선 90여 명의 조직원, 2차선 도로 앞과 뒤를 완전히 틀어막은 승용차, 잔인한 인상, 섭충명이 던진 제안은 협박으로 친다면 나쁘지 않았다.

다만, 특수부대원, 레드 워터 용병, 멕시코에서 경호원을 하며 살았던 강성태에게 그 정도의 협박쯤은 일상이었다는 게 섭충명에게는 불행한 일이었다.

“세상이 정말 만만한가 본데 누가 죽는지 볼까?”

강성태의 대꾸를 들은 섭충명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렸다. 이미 강성태의 표정을 보며 듣기 좋은 대꾸가 아니라는 사실을 짐작한 눈치였다.

- 뭐라고 한 거야?

- 누가 죽는지 보겠냐고 물었습니다.

바르지오의 질문에 은선곤이 답을 내놓고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네 목만큼은 반드시 갈라줄 테니까.

강성태는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서 있는 섭충명을 독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아무리 몸이 날래도 이가 갈리는 훈련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칼을 맞더라도 급소를 피할 수 있도록 훈련하며, 거의 반사적으로 쿠크리나 대검을 뽑도록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얻는 결과여서 일반인은 절대 이해하기 어려운 차이였다.

열 걸음이었다.

뒤편에서 살벌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는 키란까지 있어서 권총을 꺼내더라도 섭충명의 목을 가르는 것만은 자신할 수 있었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이곳으로 끌고 왔다.

마카오에 오지 마라, 그곳에 나타나면 너는 반드시 죽어서 돌아간다, 그런 경고를 전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이렇게 마주치기 전까지 말이다.

막상 마주한 섭충명의 더러운 제안과 추악한 눈빛을 보자 강성태의 심장에서 독한 충동이 일어났다.

멍청한 놈.

게다가 아직도 강성태를 태운 모터사이클이 나직한 엔진음을 터트리며 심장을 자극하는 상황이었다.

가속 레버를 당겨 달려나가면 삼합회라는 이름, 백여 명의 숫자, 혹은 품에 간직한 권총만 믿고 나선 저 멍청한 부두목의 목은 분명하게 가른다.

이 일이 국제 분쟁으로 번질 위험을 곤잘레스 회장이 감당할 수 있을까?

빠져나갈 방법은?

키란의 안전은?

강성태가 빠르게 주변을 살피자, 뒤편에 있던 키란이 점퍼의 앞섶을 슬쩍 열었다.

쿠크리를 쉽게 뽑을 수 있게끔 준비하는 동작이었다.

이를 악물었던 섭충명이 징그러울 정도로 눈을 찌푸렸다.

“네놈의 입을 반드시 찢어주마!”

그가 고함을 버럭 지르자 기다렸던 것처럼 삼합회 놈들이 우르르 앞으로 움직였다.

“키란. 섭충명을 죽이고 간다.”

- 준비됐습니다.

강성태는 가속 레버를 잡으며 섭충명과 주변 놈들을 빠르게 눈에 담았다.

원래 계획은 이곳으로 유인한 다음, 도로를 벗어나 산을 타고 빠져나가거나, 놈들이 타고 온 승용차를 짓밟으며 넘어가는 방법, 둘 중 하나를 고민했었다.

이곳에서 죽인다. 이렇게 죽이고 간다!

계획을 변경한 강성태가 독하게 마음먹는 순간이었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위이이잉.

산의 위쪽에서 경찰 경광등 소리가 요란하게 달려들었다.

강성태는 물론이고 마주 섰던 섭충명과 앞으로 나서던 삼합회 조직원들이 제자리에 서서 시선을 들었다.

기다랗게 산을 휘감고 돌아가는 길의 안쪽에서 파랗고, 빨간색을 반짝이며 경찰차가 줄줄이 달려오고 있었다.

위쪽을 막아놓은 다섯 대의 승용차 뒤에 멈춰 선 경찰차에서 정복 경찰이 줄줄이 내렸다.

어설프게 대들지 말라는 듯, 차에서 내린 정복 경찰 절반 정도가 권총을 꺼내 들고 총구를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의아해하게 바라보는 강성태의 시선 앞에서 사복 차림의 남자가 중간 경찰차에서 내려 아래로 내려왔다.

지하주차장에서 보았던 서른 후반의 남자였다.

권총을 꺼내 든 정복 경찰이 그를 호위하듯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 직책이 제법 높은 모양이었다.

분위기에 눌린 위쪽의 삼합회 조직원들이 도로 옆으로 물러나서 서른 후반의 남자가 곧바로 강성태를 향해 다가왔다.

어쩌려고 이러는 겁니까?

강성태의 시선을 받은 그가 입을 열었다.

“미스터 강?”

마치 강성태를 처음 본다는 듯한 태도였다.

“내가 강성태입니다.”

“중국 정부와 보리스 파리오 회장, 미국 대사관, 영국 대사관의 협조 요청이 있었습니다. 공항까지 안내할 테니 함께 가시지요.”

강성태에게 내용을 설명한 그가 섭충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중국어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중국어 억양 가득한 ‘보리스 파리오’라는 이름이 들리는 것으로 봐서 강성태에게 했던 말을 중국어로 전하는 듯 보였다.

말을 들은 섭충명이 기가 막힌 표정과 눈빛으로 강성태를 보았을 때였다.

“마카오에 나타나지 마라. 그곳에 오면 너는 반드시 죽어서 돌아간다.”

강성태는 품고 있던 경고를 섭충명에게 던졌고,

“마카오에서 보자. 반드시.”

다부진 대꾸를 남긴 섭충명이 삭발한 머리를 긁어댄 후에 천천히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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