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18권 - 5화 (357/513)

《357》2부 18권 - 5화

제3장. 강성태, 이 새끼만 확실하게 잡는다.

강성태 일행을 보내주라는 연락을 받은 직후부터 섭충명은 눈알이 이글이글 타오른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독이 가득 올라있었다.

“탐 타이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나타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눈알을 파서 도로 옆 건물에 붙여놓는 한이 있더라도 놈들을 찾아내!”

분명 막아서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도 그는 조직원들을 이끌고 탐 타이에서 공항으로 가는 길목을 샅샅이 훑었다.

“내가 들은 건 공항에서 탑승하는 걸 막지 말라는 지시가 전부였다. 줏대 없는 미국 사업가의 농간에 꼬이기는 했지만, 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잡아내면 그도 할 말이 없어.”

하기는, 홍콩에서 바르지오 만시니를 뺏긴 꼴이라서 이대로는 당장 조직 내 위상이 제대로 부러지게 생겼다. 게다가 그가 밀려나면 심복으로 부리던 조직들마저 줄줄이 힘을 잃는다. 그런 이유로 강성태를 찾는 조직원들도 눈에 핏줄이 터질 정도로 악착같이 주변을 뒤졌다.

“강성태가 아니면 이곳에서 도운 놈들이라도 찾아내! 그놈들을 잡아가서 장기라도 뽑아내야 뭐라고 할 말이 있을 거 아니냐고!”

쑨원 기념관 앞에 세운 차의 지붕에 오른손을 걸친 섭충명이 스마트폰에 대고 고함을 버럭버럭 질러댔다.

그 직후였다.

“어디? 탐 타이 산길? 출발하면 어디로 통하는데? 뭐?”

상대방의 말을 들던 섭충명이 야비한 미소를 그렸다.

“그곳에서 흔적이 나왔다면 이 새끼들, 아직 못 빠져나갔다. 해저 터널, 페리,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거쳐야 하니까 정신 바짝 차려. 혹시 그 주변 시설에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천천히 잘 지켜봐. 그놈들이 머물었던 장소에 반드시 정부에 반기를 든 놈들도 있다.”

통화를 마친 섭충명은 흥분을 누르지 못해 승용차의 지붕을 커다랗게 내리쳤다.

“찢어서 죽여버릴 거다, 이 개자식! 그놈이 지니고 다니는 칼로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드러낸 다음, 팔다리를 하나씩 자르고 마지막으로 주둥이에 길게 처박아서 죽일 거라고!”

씩씩대던 섭충명이 갑갑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CCTV는?”

“아직 전부 막혀 있습니다.”

“이런 젠장! 밥 처먹고 그것만 들여다보는 새끼들이 도망 다니는 놈들에게 밀려서 영상 하나 지키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거야?”

“최선을 다하고 있답니다. 좀 더 다그치겠습니다.”

“밥벌레 새끼들.”

욕을 뱉어낸 섭충명이 삭발한 머리를 손바닥으로 길게 훑었다.

“탐 타이에서 피 묻은 놈들을 봤다는 택시기사가 나왔다. 그쪽에서 넘어오는 도로에는 경찰박물관과 사격훈련장밖에 없으니까 경찰 중에 반정부 활동을 하는 놈들이 있다는 의미다.”

눈알을 번들거리면서도 섭충명은 냉정한 추리를 내놓았다.

“아니면 이곳으로 넘어와서 치료를 받았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 근처에서 나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주변을 좀 더 샅샅이 뒤져. 특히 병원 주변을 살펴.”

“예!”

지시를 마친 섭충명은 탐 타이가 있는 방향을 보며 징그러운 미소를 그렸다. 그의 눈을 봐서 강성태의 입에 쿠크리를 길게 찔러 넣는 상상을 하는 게 틀림없었다.

**

바르지오 만시니가 가장 앞서 계단을 내려갔고, 그 뒤로 강성태와 키란이 움직였으며, 마지막으로 은선곤이 따랐다.

지하주차장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서자 시멘트 천장을 따라 이리저리 꺾인 통풍구와 배관함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이어 작은 승용차들과 순찰차가 눈에 들어왔다.

“이쪽.”

바르지오 만시니는 오른쪽으로 돌아 두 번째 기둥 뒤로 움직였다. 기둥과 벽에 가려진 곳에 그가 준비했다는 모터사이클이 있었다.

독일 BM사에서 제작한 K 1600 GT 모델로 뒤편에 달아놓은 트렁크까지 계산하면 대당 가격이 한화로 4천만 원을 훌쩍 넘기는 기종이었다.

“너무 무리한 거 아냐? 저 정도면 오히려 추적하기 쉬울 거 같은데?”

“정상 구매 가격의 다섯 배를 지불했어. 저걸 통째로 넘겨줘도 판매한 사람을 찾지 못하니까 안심해. 말했지? 지금 홍콩 행정부가 발칵 뒤집혔다고. 번호판은 오늘 중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로 나와.”

강성태의 질문에 답하는 바르지오는 그나마 자존심이 조금은 만회됐다는 표정이었다.

“양복은 트렁크에 넣어두었고, 내비게이션은 시동을 걸면 바로 작동해.”

바르지오가 추가로 설명을 내놓은 다음이었다.

지하주차장으로 연결된 문이 열리고, 정장 바지와 셔츠, 캐주얼한 재킷 차림의 남자가 빠르게 다가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림자가 잔뜩 드리운 그의 표정을 봐서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그는 바르지오 만시니의 앞으로 바싹 다가갔다.

“급하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괜찮으니까 이곳에서 말해도 됩니다. 대신 서로 인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바르지오 만시니의 권유를 받은 서른 후반의 남자가 먼저 강성태와 키란, 은선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짧은 망설임 끝에서 입을 열었다.

중국어 억양이 가득한 영어였다.

“삼합회로 보이는 조직원들이 탐 타이에서 이곳으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지나갔습니다. 아무래도 목격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보내주기로 했다는 말과는 달리 공항으로 가는 해저 터널과 페리 입구에 잔뜩 진을 치고 있습니다.”

곤잘레스 이두안은 분명 출국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었다. 그 말을 기억하는 바르지오가 당황한 얼굴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섭충명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모양인데?”

“출국을 뒤로 미루고 곤잘레스 회장에게 연락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이곳이 드러날 위험이 너무 커.”

말끝에서 강성태는 다가온 서른 후반의 남자를 보았다.

순박해 보이기는 하지만, 사격훈련장에서 근무한다면 홍콩 경찰일 확률이 높았다.

경찰이라는 신분으로 중국 정부의 방침에 반하는 행동을 했으니 발각된다면 저 선량한 남자의 인생이 무조건 처참하게 망가진다.

도와준 대가로 그가 내건 조건이 있는지도 모른다.

바라는 게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고.

하지만, 인생을 걸고 나서준 사람의 위기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함께 살자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거였나?

너무나 간절하지만, 나서라고 강요하지 못하는 눈빛, 서른 후반 남자의 시선과 표정을 확인한 은선곤이 질문처럼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바르지오. 이어셋 연결 시간이 얼마나 되지?”

“4시간은 확실한데 그 이상은 어려워.”

“그 정도면 충분하겠다.”

답을 들은 강성태는 홍콩 남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가 모터사이클로 나가고, 10분쯤 뒤에 승용차가 출발했으면 합니다. 시선을 가려줄 방법이 있습니까?”

“공항은 오셨던 길을 따라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됩니다. 들어오는 양쪽 입구를 막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머뭇거릴 여유가 없어서 강성태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들었던 대로 내가 출발하고 나서 10분쯤 뒤에 공항으로 움직여. 요란스럽게 하더라도 삼합회의 시선을 모조리 당겨놓을 테니까 어떤 모습을 보더라도 무시하고 그냥 달려.”

“미스터 강?”

“이어셋이 있으니까 돌발 상황이 생기면 그때 해결하자.”

지시를 마친 강성태가 헬멧을 집어 들 때였다.

“1분만 있다가 출발하세요.”

당부를 전한 홍콩 남자가 급하게 몸을 돌려 나왔던 문을 향해 달렸다.

이곳이 드러나지 않으리라는 희망, 삼합회를 상대로 나서주는 강성태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처참한 훗날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 혹시 모를 상황이 주는 불안감, 달려가는 한 사람의 뒷모습에 참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1분만 기다려달라고 했으니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강성태가 헬멧을 들어 머리에 눌러쓰자, 뒤편에서 키란이 비슷한 동작으로 헬멧을 뒤집어쓰고는 양손으로 꽉 잡아 눌렀다.

훌쩍, 뒤편으로 올라간 키란에 이어 강성태는 말을 타듯 다리를 넘겨 모터사이클에 몸을 실었다.

“이어셋 연결해.”

“잠시만.”

강성태의 지시에 바르지오가 주머니에서 꺼낸 스마트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띠루룩. 띠루룩.

신호음을 들은 강성태는 왼쪽 귀에 걸어둔 이어셋을 두 번 두들겼다.

- 들리지?

바로 앞에서 건넨 질문이라 육성과 함께 이어셋에서 나오는 통화음이 동시에 들렸다. 물론 통화음은 키란도 함께 들었다.

“공항에서 보자.”

- 고맙다, 미스터 강. 나를 구해준 것도 고맙지만, 이곳의 동료들을 위해 나서준 것도 진심으로 고맙다.

“조심하십시오. 공항에서 뵙겠습니다.”

두 사람의 인사를 받은 강성태는 헬멧의 가드를 내렸다. 그리고는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우우우우웅.

강렬하지만 절제된 엔진음이 지하주차장을 가득 메운 직후였다.

바르지오와 은선곤을 돌아본 강성태는 기어를 조작한 뒤에 가속 레버를 당겼다.

우우우우웅.

바닥에 박아놓은 레일을 따라 달리는 것처럼 일직선으로 달린 모터사이클이 삽시간에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아앙. 그아아아앙.

건물을 빠져나간 강성태는 모터사이클을 옆으로 기울여가며 방향을 틀었다.

자신들을 지켜주기 위해 나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격훈련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입구에 서 있던 정복 경찰이 강성태를 향해 절도 있는 경례를 보여주었다.

그아아아아앙!

답례처럼 엔진음을 커다랗게 울린 강성태는 산속으로 난 2차선 도로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시선과 체중으로 방향을 조절하는 탓에 강성태와 키란이 좌우로 번갈아 몸을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모터사이클은 정확하게 도로 중앙을 따라 달렸다.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심장에서 터지는 엔진음, 무섭게 달려와 바퀴 아래로 빨려드는 도로, 눈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스쳐 지나는 주변 풍경에도 강성태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지금껏 이렇게 살아왔다.

가는 길이 아무리 험난해도 도와준 이들을 외면한 적은 없었다.

삼합회? 부두목?

섭충명이라고 했지?

어디 한번 막아봐.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뚫고 키란과 함께 공항에 합류할 테니까.

그아아아아앙.

직선도로를 확보한 강성태가 레버를 당기자 엔진이 더 강렬한 울음을 터트렸다.

**

시간이 지날수록 섭충명의 눈빛이 날카로워졌고, 덩달아 조직원들은 거칠게 날뛰었다.

택시 회사에 뛰어 들어간 조직원들이 기사와 관리자들을 두들겼다는 연락이 있었는데 섭충명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잔인해 보이는 눈빛으로 ‘그래서?’ 하는 느낌의 시선만 던질 뿐이었다.

침묵이 의미하는 바가 긍정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섭충명 아래에서 오래 살기 어렵다.

“죽이지만 않았다면 뭐든 괜찮아.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놈들의 흔적을 찾는 데 집중해!”

내용을 전했던 조직원이 거친 지시를 내리는데도 섭충명은 승용차를 짚은 자세로 침묵을 지켰다.

통화를 마친 조직원이 섭충명의 곁에 서서 눈치를 살폈다.

정오를 지난 시간이었다.

산책하는 사람들, 약속을 정하고 만나는 이들로 제법 북적였어야 할 쑨원 공원 앞이 섭충명을 둘러싼 삼합회 조직원들로 인해 한산했다.

벌써 여러 사람이 홍콩 경찰에 신고했는데 순찰차 한 대가 왔다가 얌전히 돌아간 게 전부였다.

“분명 탐 타이 아니면 이 근방이다. 병원에 직접 들르지 못했을 테니까 의사를 불러서 치료했을 테고. 만약 여기가 아니면 경찰박물관이나 사격훈련장이다.”

승용차를 양팔로 짚어서 상체를 기울인 섭충명이 고개를 돌리며 씹듯이 말을 뱉어냈다.

“아무래도 경찰 놈들이 수상해. 특히 사격훈련장이. 평소에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데다 기본적인 치료 시설도 있을 테고.”

눈알을 하얗게 뒤집은 섭충명이 혀로 입술을 핥을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의 앞에 있던 조직원의 손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섭충명의 눈짓을 받은 그가 빠르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짧은 한마디를 건넸던 조직원이 바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서? 그래? 따라붙어!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치지 마!”

다급한 지시를 내린 조직원이 급하게 스마트폰을 내렸다.

“강성태가 나타났답니다!”

“어디인데? 어디서?”

“윙 라이 종합병원을 뒤지는데 앞쪽에서 나타났답니다!”

“그곳에서 치료했구나! 서둘러!”

섭충명이 차의 뒷좌석에 몸을 싣자 조직원들이 우르르 가까이 있는 승용차에 달려들었다. 그런 뒤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검은색 승용차들이 거칠게 쑨원 공원을 빠져나갔다.

끼이이익! 빠아앙! 빠앙!

삼합회 조직원의 승용차들이 들이받을 것처럼 도로에 뛰어들면서 타이어 끌리는 소리와 클랙슨이 주변에 연달아 터져 나왔다.

길이 막히지 않는 시간이었다.

원래도 20분이면 넉넉한 거리였는데 섭충명과 조직원들은 레이스를 펼치는 사람들처럼 차량 사이를 헤집으며 달렸다.

“병원을 뒤지는 틈에 나와서 앞을 막는 애들 둘을 밀치고 달아났답니다.”

“그쪽에 몇 명이나 있지?”

“서른 명 조금 넘습니다.”

좌우로 차선을 넘나드는 승용차의 뒷좌석에서 섭충명이 물었고, 조직원이 빠르게 답했다.

“혼자 나타났다는 거냐?”

“동남아시아 놈과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었답니다.”

“이 개새끼! 모터사이클을 타고 공항으로 달아날 생각이었구나. 다른 놈들은 포기하고, 강성태 이 새끼만 확실하게 잡는다. 터널과 페리 지키던 인원 전부 불러들여.”

“예.”

거칠게 좌우를 뚫는 승용차 안에서 조직원이 스마트폰의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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