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18권 - 4화 (356/513)

《356》2부 18권 - 4화

곤잘레스 이두안은 고개를 들어 책상 앞으로 다가온 비서를 보았다.

“출국 준비는 모두 마쳤습니다. 귀국에 필요한 홍콩 현지의 협조는 확인했지만, 한국의 공항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점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아! 내가 말했던 스테이크는?”

“준비해두었습니다.”

비서의 답이 떨어진 직후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책상에 놓인 그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액정을 확인한 곤잘레스 이두안은 먼저 손짓으로 비서를 내보냈다. 그런 뒤에 여유 있는 동작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 날세. 오랜만이군.

“내가 지금 바빠서 10퍼센트를 받고 물러날 건지, 아니면 자네의 고집대로 일을 처리할 건지만 알려줬으면 좋겠어.”

- 미스터 강 일행을 무사하게 데려가게 해주겠다. 대신 사업에 관한 내용은 마카오 회담을 통해 결정하자.

“바르지오 만시니와 관련해서 미스터 강이 고생한 부분은 아예 계산에 없는 모양인데 사업가치고는 너무 허술한 처리가 아닐까? 자네 생각은 어때?”

숨 가쁘게 오간 대화가 잠시 끊긴 틈을 이용해 곤잘레스 이두안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 자네만 괜찮다면 내 비행기로 한국에 데려다주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미스터 강에게 특별히 약속해놓은 게 있어서 그 제안은 거절이다.”

- 이봐, 곤잘레스. 내가 이렇게 전화하지 않았나? 삼합회가 바르지오를 납치한 건 절대 내 뜻이 아니었어.

“삼합회가 자네 말도 안 듣는다면 더더욱 마카오 회의가 불편하게 여겨져.”

- 자네가 참석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회의가 끝난다는 점도 생각해 줘야지. 미스터 강 일행을 무사히 돌려보내는 데도 꽤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어야 한다. 그러니 이번 일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나머지는 마카오 회의에서 정리하자.

곤잘레스 이두안은 답을 하지 않은 채 거실 정면에 걸린 지도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대로였다.

홍콩 공항은 어떻게 수습하겠지만, 마카오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 지분 구조가 그의 의도대로 변할 수 있었다.

삼합회를 앞세운 보리스 파리오, 강성태를 의지해 밀어붙이는 곤잘레스 이두안, 서로 팽팽하게 노리는 상황에서 결론은 마카오 회담을 통해 내릴 수밖에 없었다.

“미스터 강, 키란, 바르지오 만시니에게 각각 5백만 달러를 지불해. 그렇다면 이번 일은 나도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짓지.”

- 끄응.

“불편한 숨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 내가 최근 위가 안 좋아 그렇다.

“그거 안됐군. 내가 제시한 조건은?”

- 자네가 지정해주는 계좌를 통해 입금하지. 그리고 미스터 강 일행을 무사히 데려갈 수 있도록 출국 시간을 분명하게 알려줘.

“비서를 통해 알려주지. 마카오에서 보세.”

곤잘레스 이두안이 통화를 마치려는 순간이었다.

- 그런데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미스터 강에서 특별하게 약속한 게 뭔지 알 수 있을까?

궁금한 점을 견디지 못하는 보리스 파리오가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스테이크.”

- 내가 잘못 들은 거 같군. 지금 뭐라고 그랬나?

“식사를 샌드위치로 했다기에 내가 스테이크를 약속했다.”

- 허허.

기가 막힌 느낌의 웃음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

바르지오 만시니는 납치되었던 분풀이만큼의 능력을 보이겠다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여기 모터사이클 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도 설정해 두었으니까 참고하고 이걸 귀에 꽂아.”

방에 돌아온 그는 먼저 콩나물 모양의 블루투스 이어셋을 강성태와 키란에게 각각 건넸다.

“벨 소리가 울리면 왼쪽을 두 번 두들겨. 그럼 계속 나와 통화가 연결돼 있을 거다.”

말끝에서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을 또 다른 이어셋을 꺼내 보여주었다.

“이게 말했던 정장인데 혹시 몰라서 여기 청바지와 셔츠, 점퍼를 따로 준비했다.”

바르지오가 두 가지의 복장을 위로 들었다.

“급하게 몸을 숨겼다가 나타나는 거니까 지금은 청바지에 점퍼를 입는 게 좋겠다. 모터사이클에 정장을 넣어둘 곳이 있나?”

“마침 적당한 공간이 있다. 부족하면 만들어서라도 넣어주지.”

강성태의 지시를 무조건 받겠다는 투로 바르지오가 답을 내놓았다.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은?”

“CCTV라고 몇 개 되지도 않지만, 관련된 영상을 모두 뒤집어 놓아서 홍콩 행정부가 발칵 뒤집혔다. 오늘 내내 이럴 테니까 여기에서 나가는 건 문제 없다. 또 한 가지.”

고개를 문으로 돌렸던 바르지오가 시선을 가져오면서 입을 열었다.

“이곳으로 연결된 도로에 경찰들이 나가 있어서 바깥에서 오는 차량을 경계하고 있으니까 자네가 나가는 것까지도 염려할 부분은 없어. 나가고 난 뒤야 CCTV가 엉망이 돼서 걸릴 일도 없고.”

“의사들의 안전은?”

“홍콩에서 활동하는 어나니머스가 이미 기록을 변경해 놓아서 염려하지 않아도 돼.”

답을 내놓은 바르지오가 덜컥 올라온 염려를 가득 담은 눈으로 강성태를 바라보았다.

“옷을 갈아입을 테니까 벗은 옷을 처리해줘.”

“그건 염려하지 마.”

망설일 게 없어서 강성태는 키란과 함께 청바지와 셔츠, 점퍼로 갈아입었고, 벗은 옷을 바르지오에게 건넸다.

몸에 꼭 맞지는 않았지만, 보기 흉한 수준도 아니어서 섭충명의 뒤통수를 갈겨주러 가기에 적당했다.

무엇보다 치료를 마친 덕분에 새로 입은 옷에 피가 번져 나오지 않는 점도 좋았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목덜미에 올라온 거즈를 가릴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하기는,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도 아니고, 그런 사소한 일에 시간을 끌다가는 도와준 이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강성태가 쿠크리를 허리 뒤에 꽂았을 때였다.

우우웅.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짧게 울었다.

[유충일이 조금 전에 깨어났다. 내가 직접 챙길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무사히 돌아와.]

이병렬이 보낸 문자였다.

유헌우의 실력과 안다미의 노력이 결과를 얻어낸 모양이었다.

서울에 돌아가면 미안했다, 고생했다, 인사할 수 있겠다.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면 말이다.

어쩐지 운명이라는 놈이 정해놓은 길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악착같이 끌어당기는 느낌인데 당장은 다른 길을 택할 방법이 없었다.

**

이병렬은 원래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그래서 깡패가 되었고, 홀로 가게를 운영했겠지만,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악착같이 챙기는 장점은 있었다.

그런 이병렬이, 그것도 신강남파 넘버 투가 겨우 살아난 동생을 환자복 차림에 휠체어에 앉아서 만나?

유헌우가 그토록 당부했음에도 이병렬은 타이를 매지 않은 정장으로 갈아입은 뒤에 병실을 나섰다. 물론 김진용이 말리기는 했으나 끝까지 이병렬을 거스르지 못한 점도 한몫했다.

김진용과 함께 엘리베이터로 내려간 이병렬이 1층 로비에 도착했을 때였다.

혹시 몰라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광주 식구들과 이종환의 식구들, 그리고 필리핀 조직원들이 줄줄이 다가왔다.

이대로 두면 인사한답시고 로비에서 요란 떨게 분명해서 이병렬은 아예 주차장을 향해 움직였다.

“병원이다. 요란들 떨지 마.”

로비를 나서며 이병렬이 전한 날카로운 경고였다.

“나오셨습니까, 형님?”

이미 이전에 강성태가 한 말도 있어서 덩치들은 조심스럽게 고개만 숙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충일이 들여다보고 올라갈 테니까 힘들더라도 보스 오실 때까지 조금 더 고생하자.”

“고생이라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형님.”

다독이는 이병렬과 답하는 덩치들의 표정이 한결 가벼웠다.

간절하게 바라기는 했으나 정말 깨어날 거라고 기대하기 어려웠던 유충일의 반가운 소식 덕분이었다.

광주 식구들의 상처 가득한 얼굴에 생기가 가득 담겨 있었고, 고작 이틀이지만 함께 지내던 대림동 식구들과 필리핀 조직원들 역시 반가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조직을 꾸미면서 가장 무서운 게 내부 식구들끼리 벌이는 알력 다툼이었다.

조태완을 중심으로 하는 강남이 한 자리, 다음으로 이병렬이 이끄는 영등포, 구로, 강서가 또 한 축을 차지했다. 거기에 최근 안산, 안중, 대전, 전주, 광주, 부산이 새롭게 합세했으며, 아직 제대로 정비조차 못 한 천안도 있었다.

이럴 때 알력 싸움이 생기면 정말 답이 없었는데 부산에서의 처절한 사투가 있어서인지 아직 계파 갈등은 없었다.

보스인 강성태가 워낙 강해서 그런 면도 있었다.

막말로 천안, 광주, 부산, 굵직한 싸움마다 가장 앞에서 홀로 길을 뚫은 강성태가 있는데 누가 거기에 대고 반기를 들겠나.

쩌어어억.

강성태가 주먹을 날릴 때 터지는 특유의 소리는 이미 조직 사이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회칼을 들고 달려들던 덩치가 강성태의 주먹 한 방에 흐물거리며 쓰러지는 모습이나 회칼을 쥔 손목을 잡아챈 뒤에 몸을 안으로 넣어 메다꽂는 장면을 보고 나면 저절로 존경심이 피어날 정도였다.

아무리 깡패라도 눈이 뒤집힌 놈들이 회칼을 들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 반사적으로 몸이 굳을 때가 있다.

바로 그때, 강성태는 항상 앞에 있었다.

그의 든든한 어깨를 보고, 또 눈이 뒤집힌 놈들을 한 방에 한 놈씩 고꾸라트리는 걸 보고 나면 심장에서 뿜어진 뜨거운 피가 머릿속을 후끈하게 달구는 느낌이었다.

강성태를 떠올리며 하늘을 슬쩍 올려다보았던 이병렬이 다시 시선을 내렸다.

“점심은?”

“종환이 형님이 직접 챙겨주셨습니다, 형님.”

“충일이 들여다보고 안쪽으로 해서 올라갈 테니까 고생들 해.”

“예, 형님.”

주차장에서 덩치들을 다독인 이병렬은 김진용과 함께 응급실로 향했다.

이제는 익숙한 장소가 된 응급실을 가로질러 안쪽의 자리로 가자 침대에 붙어 있던 조성호가 깊게 인사하고는 물러났다.

이병렬은 곧바로 유충일에게 다가갔다.

시커멓게 변한 얼굴, 주사기로 물을 잔뜩 넣은 것처럼 퉁퉁 부은 눈과 코, 볼과 입술, 엄청나게 매달려 있는 링거의 색처럼 노랗게 변한 눈, 그런 유충일이 이병렬을 향해 힘겹게 시선을 들었다.

누에고치나 미라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붕대를 온몸에 두른 유충일이 입술을 움찔거렸다.

‘형님’이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말라붙은 유충일의 입술을 보며 짐작한 사실이었다.

“부산 접수한 건 들었지?”

“말씀드렸습니다, 형님.”

말을 못 하는 유충일을 대신해서 옆에서 지켜보던 조성호가 얼른 답을 내놓았다.

“잘 견뎠다. 혹시 힘든 순간이 또 오더라고 악착같이 버텨. 그래서 광주 동생들 네가 직접 챙겨. 알았어?”

“예, 형임….”

이번 대답은 그나마 소리가 들렸다.

“보스가 지금 힘든 곳에 가 있다. 네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했으니까 힘이 됐을 거다. 그러니까 괜히 실망시키지 않게 이대로 정신 붙들고 이겨내.”

단단해 보이기 위해 애쓰는 유충일의 눈을 들여다보며 이병렬은 묵직한 미소를 그려냈다.

“개새끼.”

뜬금없이 툭 나온 욕이었다.

이병렬의 눈빛과 표정, 얼굴에 담긴 미소를 봐서는 정신을 차린 유충일이 고맙고 대견해서 내놓은 게 분명했다.

상체를 세운 이병렬은 조성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당분간 충일이 곁에 있으면서 수발 좀 들어.”

“감사합니다, 형님.”

조성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준 이병렬은 커튼을 나서 옆에 있는 최치곤의 침대로 움직였다.

워낙 힘겨운 유충일을 먼저 들여다보아서인지 상대적으로 최치곤은 완연히 좋아진 사람처럼 보였다.

“오셨습니까, 형님.”

심지어 최치곤은 이병렬을 향해 제대로 된 인사까지 내놓았다.

“병원에서 연애질한다더니 얼굴이 좋아졌다?”

“예? 형님?”

“괜찮아, 이 새끼야. 나이 찬 남자, 여자가 만나는 게 죄냐? 대신 누군가를 택했으면 최소한 만나는 동안은 엉뚱한 짓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헛짓거리했다는 말이 들리면 여자분이 막아서도 내가 아예 잘라버릴 거니까. 알았어?”

“예, 형님.”

“씨발. 이렇게 생긴 놈도 여자를 만나는데 너랑 나는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이병렬이 툴툴대며 고개를 돌린 뒤였다.

“저는 아닙니다, 형님.”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는 듯 김진용이 능청맞은 대꾸를 내놓았다.

“뭐야? 너 좋다는 여자도 있었어?”

“많았습니다, 형님.”

“염병 떤다.”

그나마 최치곤과 유충일이 깨어난 덕분에 이런 농담도 주고받는다. 김진용을 보며 웃은 이병렬은 다시 시선을 최치곤에게 돌렸다.

“일은 졸라 많고, 믿을 만한 놈들은 죄 누워 있는 바람에 보스 혼자 애쓰고 있다.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

“예, 형님.”

답을 들은 이병렬은 더 볼 일 없다는 투로 몸을 돌렸다.

“살펴가십시오, 형님.”

뒤쪽에서 최치곤의 인사가 들렸을 때였다.

“어? 이병렬 씨? 걸어 다니지 마라니까 지금 여기에서 뭐 해요?”

강성태는 물론이고, 이병렬, 김진용, 그리고 인상 더러운 덩치들에게도 전혀 주눅 들지 않는 유헌우의 뻔뻔한 음성이 이병렬에게 달려들었다.

‘젠장.’

이병렬이 눈가를 찌푸렸으나 그런다고 유헌우는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동생들만 잠깐 보고 갑니다.”

“잠깐 보든, 길게 보든, 그건 알아서 하는데 왜 걸어 다니냐고요? 그러지 말고 얼른 휠체어에 앉읍시다.”

심지어 유헌우는 이병렬의 앞을 막다시피 팔을 벌렸다.

“응급실 앞에 휠체어 있으니까 가져오세요.”

그런 뒤에 김진용을 향해 지시까지 내렸다.

병원에서 누가 유헌우를 이길 수 있겠나.

어쩌지 못한 김진용이 빠르게 움직여 휠체어를 가져온 뒤에야 유헌우는 몸을 비켰다.

“일주일입니다. 일주일. 여기 스태프들이 이병렬 씨를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알았습니다.”

유헌우를 이기지 못한 이병렬이 쓰디쓴 얼굴로 휠체어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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