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17권 - 10화
제4장. 어디에서 보는 게 좋아?
방지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모두 네 명의 남자가 내렸다.
필리핀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부산까지 왕복 운전을 담당했던 아르윈, 이전에 당한 부상을 안고도 장세조를 상대했던 이병렬, 무수히 달려드는 회칼을 감당하며 7층까지 길을 열고, 서창호를 이겨낸 키란, 마지막으로 그 모든 싸움을 지휘했던 강성태였다.
강렬한 눈빛들을 하고 있었지만, 네 사람 모두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장 움직일 일은 없어. 있다고 해도 진용이 부르면 되니까 잠시 눈을 붙여.”
“차에 있겠습니다, 형님.”
아르윈이 강성태를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마음 불편하게 쉬느니 몸이 힘들어도 강성태의 곁을 지키고 싶다는 청이었다.
이해한다. 아르윈의 저 심정을.
답을 대신해 고개를 끄덕여준 강성태는 응급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염라대왕이 벌이는 재판장에 들어서는 심정이었다. 그 대상이 강성태가 아니라 최치곤과 유충일이었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어머?”
낯익은 스태프가 응급실에 들어서는 강성태를 놀란 얼굴로 맞았다.
“최치곤 환자는요?”
강성태의 눈빛이 워낙 강렬해서였을까, 아니면 이병렬과 키란을 포함해 피가 배어 나온 모습 때문일까.
“저쪽이요.”
주춤했던 스태프가 커튼으로 가려놓은 안쪽 공간을 가리켰다.
영안실이 아니라 응급실 안쪽이었다. 그것도 침대가 두 개나 들어갈 자리를 차지한 상태였다.
“후-.”
죽지 않았다.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했지만, 최치곤과 유충일이 다시 일어설 기회를 붙들고 버티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어? 성태 씨?”
안쪽을 바라보는 강성태를 향해 유헌우가 다가왔다.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얼른 치료하게 이쪽으로 와요.”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는 투로 유헌우가 주변 환자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언제나처럼 특유의 태연함과 유쾌함을 지녔는데 그의 눈 아래로 길게 내려온 다크 써클만은 감추지 못한 얼굴이었다.
“치곤이랑 유충일 먼저 보겠습니다.”
강성태가 뜻을 밝힌 직후였다.
“나랑 키란이 먼저 치료받을 테니까 치곤이 보고 천천히 와.”
“그러지 말고, 같이 봐.”
“살아있는 거 알면 됐지. 키란의 치료도 급하고.”
강성태를 다독인 이병렬이 유헌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리 두 사람 먼저 치료하시죠?”
“그럽시다. 이쪽으로 오세요.”
강성태를 돌아보았던 이병렬이 키란과 함께 유헌우를 따라 걸었다.
가뜩이나 시선을 끄는 강성태가 피가 배어 나온 모습으로 서 있어서 응급실에 있던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힐끔거렸다.
강성태는 무겁게 커튼으로 가려진 장소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중앙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던 안다미가 강성태를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얼굴을 덮은 피곤함이 먼저 보였고, 이어 눈에 담겼던 걱정을 분명하게 알아보았다.
안다미를 잠시 보았던 강성태는 시선을 돌려 최치곤과 유충일을 차례로 살폈다.
복잡한 기계, 코와 입을 덮은 호흡기, 팔에 연결된 혈액과 여러 가지 링거들, 일정한 그림을 그려내며 두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모니터까지.
그 모든 것을 돌아본 강성태는 다시 안다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 사람에게만큼은 솔직해야 한다.
“제가 당했던 교통사고.”
뜬금 없을 이야기에 눈가를 좁히기는 했지만, 안다미는 말을 끊거나 질문을 건네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아버지께서 밀수에 관해 공익 제보를 하셨었는데 그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놀란 안다미가 왼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이런 사실을 털어놓는 강성태가 안쓰러웠던 모양이었다. 강성태를 바라보는 안다미의 눈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일본 조직과 손을 잡고 사채 자금과 마약을 밀수했던 모양인데 내가 틀어막는 바람에 서울을 노렸던 모양입니다. 트럭을 이용해 조태완이라는 분을 살해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김정훈이라는 수행원이 사망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도?
최치곤과 유충일을 돌아보았던 안다미가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그래서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치곤이와 유충일이 이렇게 됐고요.”
시선을 내려 피가 배어 나온 강성태의 상체를 살핀 안다미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성태 씨는 괜찮은 거예요?”
“예.”
“그럼 됐어요. 이제 그런 이야기는 그만해요.”
천 년을 기다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난 것처럼 안다미가 다가왔다.
안다미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그런 뒤에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녀를 가까이 느끼고 싶어서, 강성태는 안다미를 부드럽게 안았고, 심장에 담으려는 사람처럼 양팔로 깊게 당겼다.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약품 냄새가 그 어떤 향수보다 더 진하게 강성태를 위로해 주었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예요.”
강성태의 등을 어루만지며 안다미가 건네준 말이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정말이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안다미가 다독여주는 순간,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올랐고, 이어 외로웠던 학교생활, 힘들었던 용병 시절이 낡은 영화 필름처럼 주르륵 흘렀다.
“걱정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답은 없었다. 대신 안다미는 강성태의 등을 반복해서 때렸다.
우는 모양이었다. 그 강한 안다미가.
최치곤과 유충일을 지켜보며 얼마나 속이 시커멓게 탔으면 이럴까.
안다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준 강성태는 볼을 감싸고 그녀의 고개를 세웠다.
우는 눈이 아름다운 사람은 처음 봤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 대신, 이렇게 걱정시켜서 미안하다는 사과 대신, 강성태는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리고는 병원이라서, 최치곤과 유충일이 생사의 경계에서 악착스럽게 버티는 곳이라서, 그녀의 입술이 아니라 이마에 고개를 기울였다.
“각오해요. 나중에 다 받아낼 거예요.”
돌아왔다. 안다미가. 그 짧은 순간에.
강성태는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것처럼 안다미가 시선을 들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는 건, 눈과 눈을 마주한 그 짧은 시간으로 충분했다.
짧게 숨을 토해낸 안다미가 몸을 세우고는 최치곤과 유충일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직 뭐라 말하기 어려운 상태예요. 의식을 찾는다고 해도 사나흘 이상은 지켜봐야 해요. 두 사람 모두 이미 쇼크가 한 번씩 있었기 때문에 이후에 또 쇼크가 오면….”
말끝에서 강성태를 돌아본 안다미가 뒷말을 삼켰다.
“치곤이와 유충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해도 됩니까?”
“두 사람이 충격받을 내용이 아니면 괜찮아요.”
안다미의 허락을 받은 강성태는 먼저 유충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침대에 팔을 걸치며 상체를 기울였다.
“유충일. 동생들은 직접 챙겨. 그게 내가 아는 유충일이다. 그리고 조성호가 미쳐 날뛰니까 일어날 거면 서둘러.”
시커멓게 변해 축구공처럼 퉁퉁 부은 유충일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던 강성태는 최치곤의 침대로 걸음을 옮겼다.
“치곤아. 이러고 있는데 아버지 오시면 내가 뭐라고 하냐? 그리고 괜히 시간 끌다가 은주 씨 마음 바뀌면 너 평생 후회한다.”
최치곤을 들여다보던 강성태가 몸을 세운 뒤였다.
“은주 이야기는 뭐예요?”
“부산 다녀와서 저녁 먹기로 했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궁금한 얼굴로 나온 안다미의 질문에 강성태는 짧게 답을 주었다.
최치곤을 돌아보았던 안다미가 시선을 다시 가져왔다.
“이제 치곤 씨랑 유충일 환자는 내게 맡기고 치료받아요. 내가 했으면 좋겠는데 두 사람 지켜야 하니까 원장님께 가세요.”
질끈 묶은 머리, 허름한 수술복에 어울리는 의사의 눈빛과 말투였다.
거부할 수 없는 권유에 강성태는 유헌우를 찾아 움직였다.
병원 스태프들과 함께 이병렬과 키란의 치료 중이어서 잠시 기다릴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존 보스만입니다, 미스터 강. 통화 괜찮습니까?
“길지만 않으면 괜찮아. 화이트 테일은?”
- 그 일로 전화 드렸습니다. 바르지오 만시니가 예약했던 비행편에 탑승하지 않았고, 현재 행방을 알기 어렵습니다.
이럴 거 같았다.
한국으로 오라 할 때부터 염려했던 상황이었고, 이후 문자에 대한 답이 없는 거로 봐서 어느 정도는 각오했던 일이었다.
- 곤잘레스 회장님께 보고했습니다. 또, 그의 동료들에게 행방을 찾아달라고 당부했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아직 어떤 협상도 없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정보를 그가 가진 게 있나? 특히, 마카오 회담에 관해서?”
- 그보다는 협상에 이용하려고 납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이번 마카오 회담에서는 미스터 강이 곤잘레스 회장의 경호팀장으로 움직여 주셨으면 하는 요청을 드립니다.
“그것 역시 회장님과 의논한 내용인가?”
- 천안에 다녀오실 때 기본적인 사항은 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경호 책임자를 맡아달라는 존 보스만의 음성이 오히려 편안하게 들렸다.
“일단 그렇게 알기로 하자. 시간 되는 대로 방문할 테니 그때 인원과 일정, 동선을 확인할 수 있게 자료를 부탁해. 화이트 테일에 관한 소식이 있으면 바로 연락 주고.”
통화를 마친 강성태를 병원 스태프조차 새삼스럽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능숙한 영국식 영어로 통화한 탓이지 싶었다.
시선이 난처한 강성태가 입맛을 다시는 순간이었다.
강성태를 구해주는 듯 응급실 안으로 김진용이 들어왔다.
여기에서 김진용이 상체를 깊숙하게 숙이면?
생각만으로도 낯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어서 강성태는 빠르게 고개를 젓고는 시선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응급실 안을 살핀 김진용이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병렬이는 치료 중이니까 조금 뒤에 봐.”
“예, 형님.”
김진용이 나직하게 답을 한 뒤에,
“성태 씨?”
순서를 기다렸다는 것처럼 유헌우가 강성태를 찾았다.
“치료받고 나오십시오, 형님.”
알았다는 시선을 던진 강성태는 몸을 일으켰다.
병원이라는 곳이 참 이상해서 도착할 때까지 견딜 만했던 몸뚱이가 이곳저곳에서 고통을 뿜어내며 힘겨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
경상도 대가리 이교창은 이마가 굉장히 넓었고, 소가 핥아놓은 것처럼 구불구불한 머리칼이 두드러져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는 박노익과 같이 머리, 목, 상체, 허리가 굵었는데 심지어 손가락과 손등까지 다른 사람들보다 워낙 굵직해서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낼 때 오타가 잦은 편이었다.
인원을 빼냈던 이교창은 박노익의 호출을 받고는 곧장 HK맨션으로 돌아왔다.
“이제 어떻게 하십니까, 형님?”
“나야 오늘 늦게라도 올라가야지.”
“부산을 이대로 두고 가시면 분명 애들 사이에서 말 나옵니다, 형님.”
걱정을 늘어놓는 이교창을 박노익은 의미가 분명한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부산 애들 단도리하고, 조강치가 가지고 있던 업장 인수하는 거까지 네가 맡아.”
“예? 형님?”
“서울에 있었지만, 동생들 정말 필요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 너였다. 아까도 그래서 나섰던 거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나한테 연장 들이대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낯간지럽게 들릴 말이었는데 정리 중인 HK맨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박노익의 표정이나 그 말을 듣고 있는 이교창의 눈매에는 그런 감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약하고 고리대금은 못 본다는 우리 보스 성격으로 봐서 반드시 일본 놈들과도 부딪힌다. 필요하면 내가 활동비 따로 내려줄 테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부산 단단히 움켜쥐어.”
“죄송하지만, 형님. 조직에서, 특히 이 부산 바닥에서는 그게 가장 큰돈이 됩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막아버리면 뭘 먹고 삽니까, 형님? 따지는 게 아니고, 형님.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조심하는 이교창을 향해 박노익이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나도 그게 궁금했지. 그런데 강북 장태섭이 진행하던 개발사업, 멕시코 공사, 그 외에 클럽과 카지노를 운영하는 걸 보면서 배운 게 많다. 우리 보스는 그걸 빛의 세상과 그림자로 나누더라만.”
“빛의 세상이라고 하셨습니까, 형님?”
퉁방울만 한 눈을 돌린 박노익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같은 그림자는 빛의 세상에서 뿜어내는 욕망을 치우며 살아가면 된다고 하더라. 그 욕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오늘 깡치 형님처럼 되는 거고. 생각해보면 우리 보스가 먼저 나선 적은 없는데, 이상하게 죽고 싶은 놈들처럼 달려들어서 이런 결과를 얻었지.”
알 것도 같고, 그렇다고 이해 가는 것도 아니고, 이교창의 표정이 복잡했다.
“업장 운영하면서 얻은 수익으로 동생들 배불리 먹일 수 있더라고. 대신 예전처럼 대가리가 노름이나 마약에 빠져 허우적거리면 우리 보스와 면담을 하게 되지.”
경고처럼 말을 날린 박노익이 이교창을 돌아보았다.
“부산 정리하고 함께 갈래? 아니면 경상도에서 지금처럼 지낼래?”
“부산을 맡게 되면 저도 신강남파 그늘에 들어가는 겁니까, 형님?”
“내가 이래도 신강남파 고문 넘버 투다. 당연하게 너도 신강남파에 들어와야지.”
다부진 박노익의 눈을 본 이교창이 반걸음 물러서서 재킷을 만졌다. 그리고는 의미가 분명한 태도로 상체를 깊게 숙였다.
“부산 깔끔하게 정리해.”
“신경 안 쓰시게 하겠습니다, 형님.”
박노익이 건넨 당부를 이교창이 단단하게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