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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권 - 7화 (339/513)

《339》17권 - 7화

타고난 통뼈 장세조의 주먹에 맞은 이병렬의 눈가와 턱 아래가 날카롭게 찢어졌다. 그나마 상체를 흔들어서 이 정도였지, 제대로 얻어맞았다면 뒤로 주저앉았을 만큼 위력적인 주먹이었다.

“내가 넘버 투라고.”

어쩌면 신강남파 넘버 투라는 자부심이 이병렬을 조금 더 독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퍼버벅! 퍼벅! 퍼벅!

장세조의 갈비뼈를 연속으로 두들기던 이병렬은 번득 드러난 그의 턱을 향해 주먹을 올려쳤다.

콰직!

걸렸다.

“이 개새끼야!”

휘청하는 장세조를 거실 창으로 몰아세운 이병렬이 상체를 비틀 정도로 힘을 실어 그의 귀 아래를 다시 갈겼다.

퍼윽! 콰등! 

이병렬의 주먹에 맞은 장세조의 머리가 유리에 부딪히며 요란하게 튀어나왔다.

퍼윽! 콰드등! 퍼윽! 콰등!

두 번 더 그렇게 두들긴 직후였다.

창에서 튕겨 나온 장세조의 눈이 하얗게 뒤집혔다.

“이제 뒈져!”

콰작! 콰으응!

체중을 던지다시피 날린 이병렬의 주먹이 거실 창에 붙어 있던 장세조의 볼과 턱 사이를 섬뜩하게 갈겼다. 그리고 그 직후에 창의 반동에 튕겨 나온 장세조의 거대한 몸뚱이가 힘없이 바닥에 늘어졌다.

“이 개새끼. 넘버 투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냐.”

핏물을 툭 뱉어낸 이병렬이 쓰러진 장세조를 향해 마지막 말을 던질 때였다.

“끄윽-!”

이번에는 쿠크리에 오른쪽 가슴을 찔린 서창호의 처참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서창호의 회칼 손잡이를 왼손으로 잡은 키란이 상체를 바싹 들이밀어 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실력 부족해.”

억양은 나쁘지 않았지만, 어휘가 부족한 키란이 서창호를 향해 짧게 말을 던졌다.

“이 개새끼….”

“다음부터 나한테 욕하지 마라.”

강성태의 말을 외워 그대로 뱉어낸 키란이 독한 표정으로 쿠크리를 빼냈다.

휘리릭.

그런 뒤에 손안에서 쿠크리의 방향을 바꾸었고,

서걱! 서걱! 서걱! 서거-억!

서창호의 양쪽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앞쪽을 깊게 갈랐다.

적의 목을 자르지 않는 대신 다시는 칼을 들거나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 때 구르카 용병이 택하는 칼질이었다.

휘릭!

키란이 쿠크리를 돌려 거꾸로 든 직후에,

“끄윽.”

공포에 물든 눈을 한 서창호가 키란을 향해 무릎을 꿇는 자세로 무너졌다.

끝났다.

여러 곳 갈라진 왼쪽 팔을 내려다보았던 키란이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약속이나 한 듯 이병렬도 장세조에게서 시선을 들었다.

쩌어어억! 쩌어어어어억!

그 직후에 거실 전체가 울릴 만큼 섬뜩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털썩! 털써-억!

그리고 마지막 남았던 부산 덩치 둘이 조강치의 앞으로 길게 널브러졌다.

“허억. 헉.”

7층을 뚫고 올라왔고, 곧바로 50명을 가로지른 탓에 강성태는 거친 호흡을 감추지 못했다.

좌우에서 강성태를 지켜주느라 피를 뒤집어쓴 이종환과 고룡동 역시 억지로 버티는 것처럼 힘겨운 얼굴이었다.

“그만해! 이 미친 새끼야! 그만하라고!”

아직 피가 뿜어지는 팔뚝을 움켜쥔 조강치가 거실 창과 벽의 모서리에 기대서 발악처럼 고함을 질러댔다.

“내가 가진 거 다 줄게! 그래! 네가 부산 보스해! 내가 만들어준다고 했잖아!”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조강치가 창과 벽의 모서리에 등을 바싹 붙인 채 애원을 쏟아냈다.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어!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마.”

강성태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린 인간이었다.

거기에 김정훈을 죽였으며, 유충일과 최치곤을 죽음 앞까지 밀어 넣었던 인간이 애원하고 있었다.

최치곤을 만나며 큰 싸움에 말렸고, 친자식처럼 강성태를 키워주었던 이모와 이모부의 지원으로 네팔에 가서 용병이 되었다.

힘겨웠던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그 뒤로 김민정을 돕기 위해 발을 들이면서 신강남파 보스가 되었고, 천안 민병련과 얽혀 조강치가 튀어나왔다.

부모를 살해한 원수를 이렇게 만나는 게 우연일까, 아니면 정해졌던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조강치의 악행을 더는 지켜볼 수 없던 하늘이 강성태를 이 자리에 밀어 넣은 걸까.

“얼른 장세조와 서창호를 죽여. 그리고 네가 여기 주인이 돼.”

침묵하는 강성태를 보며 오해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헛된 희망에 정신이 나갔거나. 그 와중에 선심 쓰듯 장세조와 서창호를 죽이라며 강성태를 꼬드기는 꼴이 조강치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강성태는 그런 조강치를 보며 옅게 웃었다.

“그래. 내가, 이 조강치가 인사하마. 내가 너를 부산의 주인으로 모시면 경상도까지 단숨에 네 발 아래에 놓인다.”

“이건 우리 부모님 몫이다.”

뭐?

놀라고 당황한 조강치가 시선을 드는 순간이었다.

한 방에 기절하는 게 싫었다.

그렇게 편하게 보내줄 마음도 없었고.

강성태는 조강치의 볼을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콰직.

아무리 강한 놈이라고 해도 한 방에 기절할 만큼 있는 힘을 다한 주먹이었다.

주먹이 꽂히는 순간, 조강치의 이가 안으로 움푹 밀리는 감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끅!”

비명을 지르느라 벌어진 입에서 단박에 피와 부러진 이들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쓰러지려고? 벌써?

휘청하며 옆으로 쓰러지는 조강치의 멱살을 잡은 강성태는 그를 벽으로 밀어 세웠다.

‘그만해, 제발.’

CCTV도, 권총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조강치가 덜컥 겁이 올라온 눈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을, 내 가정을 무너트릴 때, 조태완과 김정훈을 트럭으로 밀라며 지시할 때, 너도 양보하지 않았잖아.

애원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강성태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이건 정훈이 몫.”

콰자-작!

다시 강하게 날린 강성태의 주먹이 코 옆으로 꽂힌 직후에 조강치의 코가 오른쪽으로 처박히듯 휘었다.

당장은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의 코와 입에서 후두둑, 쏟아진 피가 멱살을 잡은 강성태의 왼쪽 팔뚝을 적시고, 아래로 흘러내렸다.

“조강치. 너나 나나 피는 붉은색이고, 맞으면 아프고, 사람을 잃으면 고통스럽다.”

무슨 말인지도 모른 채 시선을 떨군 상태에서 조강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떡해서든 강성태의 성질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절박한 반응이었다.

“졸업만 할 수 있게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병실에서 무릎 꿇던 이모 장숙경의 모습이 피투성이인 조강치의 얼굴 위에서 떠올랐고, 거친 용병 생활에서 차라리 이렇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올려다보았던 소말리아의 하늘이 겹쳐졌다.

“이 새끼는 위아래가 없어!”

이세종의 뒷덜미를 당기던 김정훈의 눈매와 그 뒤에 강성태에게 얌전히 홍삼 달인 물을 놓으며 고개 숙이던 모습도 떠올랐다.

헤벌쭉 웃으며 카페에 들어서던 최치곤과 칼을 맞은 상태에서도 동생들을 당부했다던 유충일도 피범벅인 조강치의 얼굴 위에 그림처럼 선명하게 올라왔다.

“커윽. 끅.”

제발 그만하라고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강성태가 다시 옅게 웃자 힐끔 들었던 조강치의 눈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충일이와 치곤이 몫.”

콰자-악.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올려친 강성태의 주먹이 조강치의 턱에 꽂히는 순간, 그의 얼굴이 기형적으로 뒤틀렸다.

더는 견디지 못하고, 의식을 잃은 조강치의 고개가 멱살을 붙든 강성태의 팔 위로 축 늘어졌다.

아직 하나 남았다.

“이번은 너 때문에 피 흘린 신강남파 식구들 몫.”

강성태가 창틀에 박힌 쿠크리를 뽑아 들었다.

쿠크리를 집는 순간, 잔인한 충동이 훅 일었다.

천천히 난도질하고 싶었다.

손가락부터 머리끝까지, 죽지 않을 만큼만, 천천히, 오래.

그러나 그런 일로 쿠크리를 모욕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으로 아직 계단의 입구를 지키며 버티는 신강남파 식구들도 생각해야 했다.

‘이제는 꿈에서라도 더는 교통사고에 시달리지 마세요. 정훈아. 충일아. 치곤아. 조금이나마 마음 풀어.’

휘릭.

강성태는 손안에서 쿠크리를 돌려 거꾸로 잡았다.

날카로운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 모양으로 꿈틀했던 조강치의 눈이 힘겹게 위로 들렸다.

어지간한 덩치들도 한동안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힘을 실었는데 삶에 대한 조강치의 집착은 그 위력을 이길 만큼 강했던 모양이었다.

“아…돼. 사려조….”

부러진 턱과 이 탓에 입을 제대로 놀리지 못한 조강치가 어눌한 발음으로 강성태에게 매달렸다.

“가서 우리 부모님 뵙거든, 아들이 잘 성장했더라고 전해줘.”

“하즈마. 아…돼!”

“정훈이 보거든 더 맞기 전에 사과하고.”

“즈발….”

억지로 왼팔을 든 조강치가 멱살을 붙들고 있는 강성태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마지막 힘을 다해 강성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선택이었다.

용서가 가능한 죄를 지었다면 말이다.

그의 눈을 바라본 상태에서 강성태는 거꾸로 잡은 쿠크리를 길게 그었다.

휘어진 선이 조강치의 목을 깊게 파고들었고,

서거-억.

“크륵.”

공포에 질린 조강치의 이에서 짧은 비명이 터졌다. 그리고 그의 목에서 튄 피가 강성태의 턱과 가슴을 흠뻑 적셨다.

이병렬을 비롯한 신강남파 식구들이 무거운 얼굴로 조강치의 최후를 지켜보았고, 겨우 정신을 수습해 끙끙대던 부산 덩치들은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모든 사람들 앞에서 강성태는 고개를 떨군 채 잡혀 있는 조강치의 최후를 똑똑히, 모두 눈에 담았다.

이러려고, 고작 이렇게 죽을 거면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악하게 굴었었나.

감정이 복잡한 강성태의 곁으로 이병렬이 조용하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조강치의 멱살을 잡은 강성태의 왼팔을 조심스럽게 붙들었다.

시선을 돌린 강성태를 향해 이병렬이 다독이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끝났어, 보스. 모두 끝났어.”

말을 마친 이병렬이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투로 강성태의 왼팔을 좀 더 꼭 잡았다.

“보스.”

이병렬의 눈이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하기는 시간이 너무 지났으니까.

강성태가 손을 놓자, 조강치가 비참한 몰골로 창과 벽의 모서리 사이에 널브러졌다.

“가자.”

지켜보던 이병렬이 강성태를 안듯이 품고 출구로 향했다. 그리고는 이종환을 향해 의미를 알기 어려운 눈짓을 던졌다.

“종환아. 알지?”

뭔데?

“조직의 룰이 있겠구나 하고 이해해.”

고개를 돌리려는 강성태의 등을 안다시피 하며 이병렬이 문을 나섰다.

뭔가 있나?

다시금 고개를 돌린 문에서 고룡동과 신강남파 식구들이 줄줄이 나서고 있었다.

이종환이 걸려서 걸음을 멈출까 했었는데 지금 이병렬을 뿌리치는 건 그의 체면과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라 강성태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계단을 향해 걸을 때였다.

“배근이 형님! 끝났습니다! 뒷정리할 식구들 백 명만 위로 올려주십시오!”

조강치가 쓰러졌던 거실에서 이종환의 고함이 복도를 타고 요란하게 달려 나왔다.

그 직후였다.

“우와-아!”

건물 밖에서 터진 함성이 건물 벽에 한 꺼풀 깎인 듯 강성태와 7층을 파고들었다.

6층으로 내려간 강성태를 향해 문을 밀고 있던 대림동 식구들이 상체를 어렵게 숙였다.

“열어.”

“예? 형님?”

“열라고.”

강성태와 이병렬을 번갈아 보았던 덩치가 물러서고는 문고리를 돌렸다.

콰드등!

문이 갑자기 열려서 그런 모양이었다.

밀고 있던 놈들이 우르르 쏟아져 계단 통로에 줄줄이 넘어졌다.

“뭐야?”

놀란 놈들이 급하게 몸을 일으켰고, 상황을 모르는 놈들이 비장한 얼굴로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그리고는 강성태와 피가 흠뻑 묻은 쿠크리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모두 끝났다. 그래도 덤비고 싶은 놈이 있으면 올라와.”

대답하는 놈은 없었다.

“이 개새끼들이 그래도 버텨? 끝까지 해보자는 거냐? 그런 거 원해? 바깥에 우리 식구들 다 불러볼까?”

이병렬이 거칠게 으르렁거린 직후였다.

“따라와! 얼른!”

계단 아래쪽에서 터진 박배근의 지시가 단단한 느낌으로 올라왔다.

“칼 안 버려?”

이병렬이 고개를 비틀며 다시 으르렁거렸고,

땡강. 땡가-앙. 땡강.

회칼을 든 놈들부터 쇠파이프를 들고 있던 놈들까지, 손에 쥔 것들을 앞으로 던졌다.

강성태를 돌아본 이병렬이 부산 덩치들을 향해 눈짓을 던졌다.

그동안 보고 배운 게 있어서 이 정도는 알아듣는다.

“당분간 부산은 노익이 형님 말씀에 따라 움직여.”

짧게 지시한 강성태를 이병렬이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자.”

강성태가 먼저 걸었고, 그 뒤로 이병렬이 따랐으며, 함께 싸웠던 신강남파 식구들이 뒤에서 움직였다.

5층에 도착했을 때였다.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박배근을 시작으로 급하게 올라온 신강남파 식구들이 강성태를 향해 깊게 고개 숙였다.

정말 끝난 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준 강성태는 확인처럼 7층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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