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권 - 6화 (338/513)

《338》17권 - 6화

비록 강성태에게 목줄을 세게 깨물린 꼴이 되었지만, 조강치는 오래도록 부산의 주인으로 군림할 만큼의 강단과 독기, 수완을 갖춘 인물이었다.

서창호와 장세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수히 많았던 조강치의 행동대장들을 밟고 올라와 2인자 자리를 다툴 정도여서 두 사람을 함부로 평가했던 이들은 모두 칼밥이 됐거나 드럼통에 갇혀 바다에 빠지는 최후를 맞았다.

강성태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린 인간, 조강치의 뒤로 펼쳐진 7층의 거실의 창 너머는 뜬금없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겹겹이 포개진 뭉게구름이 신이 만든 조각처럼 거인의 얼굴 형상을 그려냈고, 진한 선팅을 거치며 탁해진 햇살이 악마가 주는 아우라인 양, 조강치의 어깨에서 부서졌다.

평화로운 바깥 풍경과 달리 조강치와 서창호, 장세조의 앞을 회칼과 짧은 쇠파이프를 든 50명이 지키고 있어서 HK맨션 7층은 팽팽한 긴장이 맴돌았다.

그 속에서 강성태와 조강치는 서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불똥이 튈 만큼 강렬하게 마주 보는 상태에서 창을 통해 달려온 햇살의 일부가 강성태와 신강남파를 선명하게 비춰주었다.

눈가, 볼, 목덜미, 뜯어진 재킷 어깨에 피가 엉긴 강성태의 뒤로 장세조를 노려보는 이병렬, 서창호를 흥미진진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키란, 그리고 50명의 결사대에 절대 밀리지 않는 눈매로 버티는 이종환, 고룡동, 조성호와 숙소 식구들이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달려드는 순간, 7층의 특실이 피로 물드는 건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강치를 상대로 주눅 들지 않는 강성태가 거슬린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런 순간에도 조강치의 눈에 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씨발 새끼가 어디에서 눈알에 힘을 줘?”

강성태를 향해 거친 욕을 토해낸 서창호가 위협처럼 회칼을 쥔 손목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그의 회칼에 담겼던 빛줄기가 번득번득 강성태에게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어디에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야, 이 새끼야. 너는 위아래도 몰라?”

이병렬이 서창호의 말꼬리를 붙잡아 바닥에 패대기치며 나섰다.

“신강남파는 위아래가 잡혀 있어서 꼬봉이 이렇게 나서?”

“모자란 새끼야. 나는 신강남파 넘버 투 아냐?”

“나도 넘버 투야, 이 새끼야!”

“너는 장세조 아래잖아! 그래서 내가 오늘 장세조를 맡기로 한 거고.”

“아니, 그런데 이 씨발 새끼가!”

더럽게 유치한 대화였다. 그런데 그 유치한 대화의 끝에서 서창호의 표정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정말 넘버 투라는 자리가 이렇게까지 집착할 가치가 있을까?

강성태의 의문과 상관없이 앞으로 나서려는 서창호를 조강치가 손을 들어 막았다. 그리고는 벼르는 눈빛으로 이병렬을 돌아보았다.

“실례했습니다, 형님. 중요한 행사장에 온 건데 너무 나섰습니다.”

“행사장? 무슨 행사?”

고개 숙이는 이병렬의 태도와 음성이 워낙 공손했다.

그 바람에 조강치가 말려들었고, 심지어 강성태마저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나 하는 얼굴로 이병렬을 돌아보았다.

“조강치 형님의 장례식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형님.”

“이런 이…! 이 개자식이!”

“아직 멀쩡하십니다, 형님? 길이 멀다던데 서두르셔야겠습니다, 형님.”

빈정대는 이병렬을 보며 조강치가 이를 바득바득 갈 때였다.

콰등! 콰드등!

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공연히 시간을 끌다가 계단 문이 열리면 상황만 악해질 뿐, 좋을 게 없다.

강성태는 먼저 이병렬을 돌아보았다.

‘시작한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성태는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려 키란을 들여다보며 뜻을 전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정말 조강치를 정리할 시간이었다.

강성태가 다부진 표정으로 조강치를 돌아본 직후였다.

“여기까지 온 건 인정하마. 하지만 여기까지다. 더 까불면 너도 죽어.”

이해하지 못할 말을 뱉어낸 조강치가 오른손 검지를 들어 7층 특실의 거실 천장을 가리켰다.

시선을 뺏는 건가?

강성태가 빠르게 천장을 훑는 순간이었다.

“씨발.”

CCTV 카메라 캡을 확인한 이병렬이 단박에 욕을 뱉었다.

더럽게 걸렸다는 의미도 담겼지만, 천하의 조강치가 마지막에 내놓기에는 너무나 치졸한 방법이란 의미가 더 강렬했다.

CCTV?

저 인간이 바르지오 만시니나 어나니머스의 실력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육체와 정신은 말할 것 없고, 가족과 친척,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까지, 누군가가 지닌 모든 걸 파멸에 몰아넣는 대가로 조강치는 이런 건물을 소유했고, 거들먹거리며 살았다.

자신을 고발했던 사람들을 온갖 방법으로 죽여가면서 말이다. 그래놓고 위기를 빠져나가겠다며 법과 공권력을 들먹이는 그의 눈매와 입가가 더할 수 없이 추악해 보였다.

“여기에서 더 설치면 너는 말할 것 없고, 네 뒤에 서 있는 놈들 모두 평생 교도소에서 썩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 정도에서 멈춰. 그리고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게 있다.”

임차인을 꾸짖는 건물주처럼 말을 뱉어낸 조강치가 손을 허리 뒤로 돌렸다.

놀랐다. 조금은.

조강치가 내민 오른손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권총이 들려 있었다.

“너랑 나는 사는 세상이나 스케일이 달라. 일하는 방식도 다르고. 여기에서 당하느니 네 머리를 쏴버린 뒤에 교도소 가면 그만이다. 연줄은 조태완만 가지고 있는 게 아냐.”

권총을 앞으로 뻗은 조강치는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오늘 신세 진 건 다음에 분명하게 갚아줄 테니 그만 까불고 얌전히 돌아가.”

입술을 뒤트는 조강치를 보며 강성태는 먼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조강치. 23년 전에 밀수를 신고했던 공익신고자를 트럭으로 살해한 일을 기억하냐?”

“23년 전? 차라리 그 시절에 데리고 잤던 여자를 떠올리라면 모를까, 어떻게 공익신고자 따위를 일일이 기억할 수가 있나?”

그 긴 세월을 부모와 평범한 삶을 송두리째 뺏긴 채 악몽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조강치에게는 기억에조차 남지 않은 사건이었나 보다.

악몽에 시달리는 강성태와 함께 살았던 이모 식구들은 실제로 편했을까?

심지어 사고 친 강성태를 위해 이모 장숙경은 무릎을 꿇었고, 이모부는 또 졸업 선물이라며 통장을 내밀었었다.

그 과정을 통해 돌고 돌아 이렇게 마주칠 때까지 조강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까.

뭐라든 상관없다.

원래 저런 놈이었으니까.

그리고 뭐라 하든 오늘 끝낼 생각이니까.

생각을 정리한 강성태는 강렬한 눈빛 속에 조강치를 담았다.

“조강치, 네가 23년 전에 트럭으로 살해했던 공익신고자가 내 부모님이셨다.”

눈매를 뒤틀었던 조강치가 비열한 웃음을 입 끝에 달았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지금 네 모습이 조금은 이해되는구나. 네 부모나 너나 어지간히 잘난 척하는 타입인 것도 알겠고.”

강성태를 긁어대겠다는 것처럼 조강치가 이죽거렸다.

“그것만이 아니라 태완이 형님, 김정훈의 목숨, 유충일과 최치곤을 상하게 한 대가를 받아가겠다.”

야비하게 웃은 조강치가 그러지 말라는 투로 권총을 들썩이며 위협했다.

“그만 돌아가라고 했다.”

까불지 마라.

여기에서 더 나서면 정말 방아쇠를 당긴다.

조강치의 눈매와 표정은 단호했다.

권총을 쏴보지 않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노리는 대로 정확하게 맞힐 것 같은 착각, 다음으로 얼마든지 빠르게 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반응 속도가 엄청나게 느리다.

정말 그러냐고 되물을 만큼.

조강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성태는 총구가 부담스러워 피하는 것처럼 이병렬에게 시선을 주었다.

‘어떤 결정이든 따를 테니까 편하게 해. 내가 먼저 나갈까?’

늘 고맙다. 이병렬은. 총구 앞으로 달려가겠다고 할 만큼 한편이 되어주는 지금 같은 모습도.

“병렬아. 준비해.”

“지금?”

권총은?

설마 죽을 생각은 아니지?

이병렬이 놀란 표정으로 반문하는 순간이었다.

조강치를 향해 고개를 돌린 강성태는 오른손을 올려치듯 뿌렸다.

훅훅훅훅훅.

프로펠러가 도는 듯한 특이한 소리가 거실을 메웠고, 강성태의 손을 떠난 쿠크리가 창가로 들어온 햇살을 모두 빨아들인 듯 번득이며 날았다.

이병렬, 서창호, 장세조, 이종환, 그 외에 지켜보는 이들의 반응은 모두 같았다.

50명의 부산 덩치들 사이를 스치며 번득이는 쿠크리를 다들 ‘어?’ 하는 느낌으로 멍하니 바라보았다. 심지어 권총을 든 조강치까지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 직후에,

서걱. 카앙!

권총을 내민 조강치의 팔뚝을 날카롭게 통과한 쿠크리가 창틀에 거칠게 박혔다.

이게…?

팔목 위가 삭둑 잘린 조강치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강성태를 보았다.

그럴 여유가 있어?

“병렬아!”

이병렬을 부르는 것과 동시에 강성태는 곧바로 조강치를 향해 달려들었다.

움찔하면서도 몸을 움직인 부산 덩치들이 강성태의 앞을 막았다.

쩌억! 쩌억! 쩌어억!

길을 막은 부산 덩치 셋을 강성태가 해치울 때, 조강치는 잘린 팔뚝을 붙잡으며 몸을 비틀었고, 서창호와 장세조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키란! 창호를 맡아!”

키란에게 지시한 이병렬이 장세조를 향해 뛰어들었다.

“종환아!”

“염려 마십시오, 형님!”

그러면서 그가 지른 고함에 이종환이 빠르게 답을 내놓았다.

“막아! 저 새끼부터 막으라고!”

서창호가 회칼을 들어 키란을 가리키자 부산 덩치들이 그쪽으로 우르르 쏠렸다.

쉑! 피잇! 피이잇! 핏! 핏!

부산 덩치들의 팔뚝과 겨드랑이, 목덜미를 가르며 키란이 서창호를 향해 움직였고,

“고룡동! 보스를 도와!”

“예, 형님!”

고룡동에게 지시한 이종환이 대림동 식구들을 빠르게 나눴다.

“너는 병렬이 형님, 그쪽은 키란을 지켜!”

그가 지시를 내리기 무섭게 부산과 신강남파의 덩치들이 휘두르는 연장 소리가 그 위를 덮쳤다.

부응! 퍼윽! 퍽! 퍼윽!

창으로 몰린 부산 덩치 한 명이 몸을 구부린 채 버티다가 쏟아지는 대림동 식구들의 쇠파이프를 얻어맞고는 고꾸라졌고,

“이 씨벌 자식들아!”

퍼윽! 퍽! 퍼윽!

다시 한 놈을 끌어낸 고룡동이 광주 덩치들과 함께 섬뜩한 매질을 퍼부었다.

강성태가 길을 열면서 좌우로 밀려 나온 놈들을 고룡동이 하나씩 끌어내 두들기면서 마침내 중앙이 갈라졌다.

“장세조! 이 개새끼야!”

그사이에 장세조와 마주친 이병렬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신강남파 입장에서 부산에 갚을 게 있기는 했지만, 이병렬은 장세조와 개인적인 원한 따위 없었다.

그런데도 이병렬은 악착스럽게 장세조에게 달려들었다.

또한, 키란에게 서창호를 맡기기까지 했다.

“넘버 투끼리 누가 강한지 가려야지!”

왜 이렇게까지 달려들어야만 하는지 이해시키는 것처럼 말을 던진 이병렬이 바로 주먹을 날렸다.

퍼윽! 콱! 퍼버벅!

한 방이 있는 장세조와 타고난 몸놀림에 권투를 배운 이병렬이 거실 창 앞에서 맞붙었고, 바로 옆에서는 키란이 서창호를 막아섰다.

주변에서 한 칼 먹일 기회를 노리는 부산 덩치들을 이종환의 식구들이 막아주고 있어서 이병렬과 키란은 눈앞에 있는 장세조와 서창호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병렬은 더할 수 없이 만족한 눈빛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조강치는 팔뚝을 잘려 구석에 몰렸고, 부산 덩치들을 지휘해야 할 장세조와 서창호는 입도 열기 어려웠다.

이제 남은 건 강성태가 얼마나 빠르게 부산 덩치들을 뚫고 조강치를 잡느냐 하는 싸움이었다.

이병렬은 그때까지만 버텨도 할 일을 다 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지고 싶은 마음은 손톱 끝만큼도 없어서 이병렬은 빠르게 상체를 움직였고, 어깨로 장세조를 들이받으며 주먹을 연달아 내질렀다.

“손발을 끊어줄 테니까 네팔에서 구걸이나 해!”

서창호가 악을 쓰며 회칼을 휘둘렀다.

어느 정도의 재능에 그보다 월등히 높은 잔인함이 더해져서 서창호의 회칼은 날카로웠다. 그러나 처음 상대해보는 쿠크리의 움직임에 우선 당황했고, 본능적인 감각으로 달려드는 키란을 상대하기에는 벅찬 수준이었다.

카가각. 피잇! 카각. 핏!

두 번이나 쿠크리와 회칼이 부딪친 직후에 서창호의 오른쪽 팔뚝이 깊게 갈라졌고, 키란은 어깨가 벌어졌다.

“이런 더러운 새끼가!”

핏! 핏핏! 핏!

모욕적인 말을 내뱉는 서창호의 오른쪽 팔을 키란이 또다시 연달아 갈랐다.

“와아아악!”

분통이 터진 서창호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 때였다.

쩌억! 쩌어억! 쩌어억!

강성태는 덩치들 뒤에 숨은 조강치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갔다.

“총을…. 총을 집어.”

그가 신음 같은 지시를 내렸으나 지금은 누구도 허리를 숙여 권총을 집을 여유 따위 없었다.

“이 씨발 놈들아!”

퍼윽! 퍽! 퍽!

광룡과의 싸움에서 아무것도 못 했던 게 걸린다던 이종환이 목숨을 내놓다시피 강성태의 옆을 지켰고, 고룡동과 광주 식구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칼을 휘둘렀다.

“성호야! 뒤로 나오라니까!”

조성호를 말린 고룡동이 광주 덩치들과 함께 미친 사람처럼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특히, 고룡동은 앞에 있는 부산 덩치를 악착같이 당겨서 뒤로 던졌다.

부응! 퍼윽! 퍽! 퍼윽! 퍼윽!

그 바람에 난도질을 한 것처럼 고룡동의 왼팔이 셀 수 없이 벌어졌는데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큰 형님을 지켜!”

조강치를 둘러싸며 저항했지만, 확실히 부산 덩치들이 밀렸다.

먼저 조강치를 둘러싸며 지켜야 하는 바람에 신강남파 식구들을 제대로 공격하기 어려웠고,

쩌억! 쩌어어억! 쩌어억!

강성태가 정말이지 독하게 부산 덩치들을 쓰러트렸으며,

“이아아!”

지휘를 맡아야 할 장세조와 서창호가 이병렬과 키란에게 붙들려서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못한 탓이었다.

일직선으로 밀고 들어가는 강성태 바로 앞에 조강치가 있었다.

쩌어억! 쩌어어억! 쩌어어억!

강성태의 주먹에 얻어맞은 부산 덩치들이 조강치의 발 앞으로 널브러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이 미친놈아! 이러면 교도소에 들어가 죽어서야 나온다고!”

오른손 팔목 위를 움켜쥔 조강치가 발악처럼 고함을 지르는 순간이었다.

“이 개새끼야!”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악에 받친 이병렬의 욕이 터져 나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