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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권 - 5화 (337/513)

《337》17권 - 5화

3층으로 향하는 계단 중간의 모서리에 등을 기댄 강성태는 연달아 주먹을 뻗었다.

쩌어억! 쩌억! 쩌억!

강성태의 주먹에 맞아 흐물거리는 부산 덩치의 멱살을 붙든 고룡동이 아래로 거칠게 뿌렸고, 달려오던 광주 식구들이 놈들의 머리를 쇠파이프로 내리쳤다.

쩌억! 쩌어억!

강성태의 바로 뒤에서 고룡동이 미친놈처럼 날뛰고, 그다음으로 조성호가 유충일의 복수라는 독기를 품고 따랐다.

강성태를 따라 길을 여는 광주 식구들, 중간을 책임진 이종환과 대림동 식구들, 그리고 가장 뒤를 맡은 이병렬과 키란까지.

강성태가 밀리면 저 많은 숫자가 궁지에 몰리게 되고, 결국은 쇠파이프와 칼에 쓰러질 일만 남는다.

쩌어억! 쩌억!

악착같이 주먹을 날리고, 틈틈이 계단 위에 있는 부산 덩치들의 무릎을 가르며 강성태는 마지막에 돌아보았던 김정훈의 영정을 떠올렸다.

보고 있었으면 싶었다.

한을 품었다면 이 장면으로 조금이나 풀었으면 하고 바랐다.

쩌억! 쩌어억! 퍼윽!

두 번의 주먹을 날린 강성태의 어깨에 부산 덩치의 쇠파이프가 떨어졌다.

“뭐 허냐! 형님을 지켜야!”

고룡동의 고함에 광주 식구 한 명이 독한 얼굴로 앞으로 뛰었다.

저걸 그냥 두면 진짜 죽는다.

“이리 나와!”

앞으로 나서는 광주 식구를 당긴 강성태는 계단을 위를 향해 쿠크리를 그었고, 이어 주먹을 연달아 날렸다.

“이 개자식들아!”

주먹을 날리는 강성태의 좌우에서 고룡동과 광주 식구들이 부산 덩치들의 허리나 상의를 붙잡아 아래로 뿌렸다.

회칼에 맞아 손등이 갈라졌고, 때로는 팔뚝을 뚫릴 때도 있었는데 광주 식구들은 밀리는 법이 없었다.

“창식아! 뒤로 나와야!”

결국, 팔뚝을 찍혀 힘을 못 쓰는 광주 덩치 한 명을 고룡동이 뒤로 보내자 또 다른 광주 덩치가 앞으로 나서서 부산 덩치들을 잡아당겼다.

그들의 손에 잡히면 아래로 끌려가고, 이어서 광주와 대림동 식구들의 쇠파이프에 피범벅이 돼서 쓰러지는 일만 남는다.

질린 기색의 부산 덩치들이 주춤대는 사이,

쩌어억! 쩌억!

악착같이 밀고 올라가는 광주 덩치들의 앞에서 강성태는 마침내 3층의 문으로 이어지는 계단의 끝에 올랐다.

“3층이다!”

3층 입구에 도착한 순간 고룡동이 고함을 커다랗게 질렀고,

“와아!”

아래에서 밀고 올라오는 신강남파 식구들이 일제히 함성을 터트렸다.

콰등! 콰드등!

계단으로 나오기 위해 안쪽에서 몸으로 들이받는 3층의 통로 문을 대림동 식구들이 등으로 밀며 버텼다.

부산 덩치들은 위로 밀려 올라가서 3층과 4층 계단 사이에 있었다.

상식적으로 위에 있는 사람이 유리한데, 광주 식구들이 워낙 다부지게 달려드는 데다, 손아귀에 붙잡히는 순간, 피범벅으로 변해 쓰러지는 상황이라 더는 밀고 내려오지 못했다.

“병렬아!”

“됐어! 올라가!”

강성태가 외친 소리에 계단 아래에서 이병렬의 대꾸가 있었다.

3층과 4층 중간에 선 부산 덩치들이 질렸다는 얼굴로 강성태와 피투성이가 된 고룡동, 신강남파 식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놈들을 향해 강성태는 먼저 픽 웃었다.

뭐야? 왜 웃어?

부산 덩치들의 눈에 의아한 기색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강성태는 곧장 놈들을 향해 달렸다.

**

바다 근처라 그런지, 파란 하늘에는 오늘따라 유난히 탐스러운 뭉게구름이 떠 있었고, 쏟아지는 햇살은 물가로 향하라는 듯 강렬했다.

퍼서석!

HK맨션 계단 3층의 유리가 깨지면서 햇살을 받은 조각들이 보석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와아!”

그 직후에 거친 수컷들의 함성이 맨션에서 터져 나왔다.

박노익은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기 위해 입술에 힘을 꾹 주고 HK맨션을 바라보았다.

젊은 보스였다.

오랜만에 보는 진짜 보스여서 단박에 마음을 주었고, 검찰에 끌려가 구속됐을 때도 배신하지 않겠다며 버텼다.

그 믿음에 답해주듯 젊은 보스는 백 명도 되지 않는 숫자를 데리고 맨션에 뛰어들더니 벌써 3층까지 올라간 모양이었다.

상대나 쉬운가.

부산의 주인이라는 조강치와 서창호, 장세조에 맞서서 올라가는 길이었다.

“죽여!”

“야, 이 씨벌 자식아!”

거친 고함이 터져 나오는 맨션을 보며 박노익은 올라온 감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냉정하게 가라앉힌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맨션 입구를 지키는 신강남파 식구들과 주변을 빙 둘러싼 부산 덩치들 모두 조금 전에 3층 계단 유리가 깨진 것을 보았고, 이어 쏟아진 함성을 들었다.

그 직후에 신강남파 식구들의 표정이 더욱 독하게 바뀌었고, 부산 덩치들은 그야말로 코가 쑥 빠진 얼굴로 맨션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지켜보기만 하는 건 박노익이 굳이 부산에 내려온 밥값도 못하는 꼴이었다.

박노익은 먼저 왼편 저 멀리에 있는 덩치를 확인했고, 다음으로 정영권을 향해 지그시 고개를 돌렸다.

“너만 따라와.”

“예? 형님?”

대가 부족한 정영권의 반문하는 순간이었다.

퍼서석! 퍼석!

이번에는 4층 계단 유리가 박살 나며 조각들이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다.

“와아-아!”

그 직후에 좀 더 강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미칠 일이다.

그 짧은 사이에 4층까지 올라갔다는 건.

“내키지 않으면 여기 그냥 있어.”

“아닙니다, 형님. 모시겠습니다, 형님.”

고개 숙이는 정영권을 잠시 바라본 박노익은 태연한 얼굴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알고 지내던 경상도 조직들의 대가리 이교창이었다.

박노익이 다가가자 주변 놈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경계했는데 정작 이교창은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상황이 워낙 지랄 맞아서 이교창이 인사 안 하는 걸 탓하기는 어려웠다.

“깡치 형님이 반칙했다는 건 알지?”

이교창은 대꾸가 없었다.

“민병련은 말이다. 광주 황상열과 손잡고 우리 신강남파 뒤를 노렸던 놈이다. 그놈을 숨겨준 거로 모자라 태완이 형님 작업하는 바람에 정훈이가 갔어. 그 장례식에 와서 고춧가루 뿌리려다가 우리 보스에게 쌍욕 먹고 내려온 거고.”

뭐라 대꾸할 명분이 없는지, 이교창은 입맛을 다시는 거로 착잡한 심정을 표시했다.

“족보를 따져도 너는 내 쪽이지, 깡치 형님 쪽이 아니잖아.”

“형님이 서울에 계신 동안 경상도는 부산 깡치 형님을 모셨습니다.”

처음으로 나온 대꾸였다.

박노익은 이해한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 하지만 이 싸움에 끼어든 건 여기까지만 하자.”

“형님? 이쪽 사정 아시잖습니까?”

이교창이 다시 갑갑한 속마음을 털어놓는 순간이었다.

퍼서석!

이번에는 5층 계단의 유리가 요란하게 깨졌다.

“와아!”

그리고 요란한 함성이 맨션에서 터져 나왔다.

맨션을 돌아보았던 이교창이 난처한 표정으로 박노익에게 시선을 주었다.

“봤겠지만, 깡치 형님은 부러진다. 여기에서 돌아가면 내가 보스에게 말해서 경상도가 당하는 일이 없게 하마.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부산에서 널 깨려고 들면 도와주고.”

“후우.”

“섭섭이랑 망치, 두꺼비, 놀부, 상조는 아예 안 왔다. 지금이니까 이런 말도 하지, 우리 보스가 깡치 형님 잡고 나면 다음은 여기 남아 있는 경상도 조직을 하나씩 깨는 일만 남는다.”

“형님?”

“서운해하지 말고, 그러니까 이만 돌아가. 그래야 나도 우리 보스에게 말할 명분이 있지.”

마음을 정하기 어려운지 이교창이 또다시 입맛을 다셨다.

“광주가 하룻밤 사이에 어떻게 됐는지 안다면 동생들 생각도 해야지? 그게 조직을 이끄는 보스가 해야 할 첫 번째 고민 아니냐?”

입을 뒤틀며 맨션을 보았던 이교창이 박노익의 말을 되새기는 듯 뒤에 있는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6층 유리가 깨지면 이 이야기는 없던 거로 한다. 다음번에는 섭섭이, 망치, 두꺼비, 놀부, 상조랑 너를 찾아가게 될 텐데 너나 나나 선 자리가 틀려서 그런 거니까 그렇게 이해하자.”

고민하는 이교창을 향해 박노익이 매서운 눈으로 마지막 경고를 전했다.

맨션을 매섭게 노려보던 이교창이 마침내 시선을 가져왔다.

“형님만 믿겠습니다.”

“그건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마.”

박노익의 단단한 답을 들은 다음이었다.

이교창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우리는 여기에서 돌아간다. 타고 왔던 대로 움직여.”

“형님?”

“이 씨발 새끼가 어디에서 눈알을 치켜떠?”

“죄송합니다, 형님.”

놀라서 물었던 덩치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경상도는 이 싸움에서 빠진다. 나중에라도 나를 감당할 자신 있는 놈들은 알아서 버텨.”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형님.”

“그럼 얼른 애들 빼.”

“예, 형님.”

지시를 마친 이교창이 마음을 비운 표정으로 박노익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물러가겠습니다, 형님.”

“우리 보스에게 인사할 자리 만들어서 부를 테니까 그때 보자.”

“그런데, 형님. 깡치 형님을 상대로 정말 그 정도로 자신하십니까, 형님?”

덩치가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퍼석! 퍼서석!

6층 계단의 창문이 요란하게 깨지며 파편이 아래로 우수수 떨어졌다.

맨션을 돌아보았던 덩치가 질렸다는 투로 고개를 돌렸다.

“물러가겠습니다, 형님.”

박노익을 향해 고개를 숙인 이교창이 몸을 돌리자 좌우를 지키고 있던 그의 직속 덩치들이 일제히 앞쪽의 승용차로 움직였다.

“너는 덕진이한테 가서 교창이네 식구들 나가는 거 그냥 지켜보라고 전해.”

“예, 형님.”

내내 눈치를 살폈던 정영권이 마치 자기 힘으로 경상도 조직을 몰아냈다는 양,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조덕진에게 걸어갔다.

강렬한 햇살 아래에서 박노익은 고개를 들어 조금 전에 깨진 6층 계단 유리를 보았고, 이어 7층을 올려다보았다.

“우리 보스를 향한 하늘의 뜻이겠지.”

어쩌면 운명이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부산의 주인으로 잘 있었을 조강치가 공연한 욕심을 부렸다가 강성태와 마주쳤다. 그리고 조강치의 욕심은 싫든, 좋든, 강성태가 전국을 장악하는 마지막 싸움의 명분이 되었다.

“전국 통일이라니?”

꿈에서도 이런 조직이 현실에 탄생하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 없었다.

기가 막힌 심정이 된 박노익이 헛웃음을 흘려내는 사이, 이교창과 경상도 덩치들이 올라탄 승용차와 승합차가 줄줄이 맨션 앞 도로를 빠져나갔다.

**

고함, 비명, 벽과 문을 때리는 쇠파이프 소리가 7층까지 고스란히 올라올 때였다.

“저 개새끼.”

장세조가 던진 욕에 시선을 돌렸던 조강치는 경상도 이교창이 조직원들을 데리고 떠나는 모습을 그제야 보았다.

“이리와! 이 씨벌 자식아!”

그 직후에 계단 쪽에서 터진 요란한 고함이 거실로 뛰어들었다.

기가 찰 일이었다.

층마다 백 명을 깔아뒀으니 6층까지 올라오려면 6백 명을 감당해야 했다. 그런데 강성태는 한 층, 한 층, 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잠그는 방법을 사용해 곧장 6층까지 올라왔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3층과 4층의 덩치들이 동시에 달려들면 최소 2백 명이었다. 거기에 2층에도 백 명을 깔았으니 위아래에서 몰아대면 강성태를 눌러 죽일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그러니 저토록 쉽게 통로 문을 빼앗길 줄은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조금만 더 밀어부러야!”

아직 7층으로 통하는 문을 통과하지 못한 게 분한 모양으로 아까 들렸던 고함이 다시 달려든 뒤였다.

쩌어억! 쩌억!

뭔가 특별한 소리가 7층을 파고들었다.

“준비해야지?”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좌우를 돌아보며 조강치가 재촉하자 먼저 고개 숙인 서창호가 회칼을 꺼내 들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조강치는 기가 막힌 느낌의 웃음을 토해내며 7층 특실의 거실과 복도를 돌아보았다.

7층 문이 뚫리면 조강치가 고르고 골라 데리고 다니는 독종 50명이 전부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슬며시 빠져나가려고 눈치를 살폈는데, 강성태라는 어린놈은 그 짧은 순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예상하지 못한 방법과 속도로 7층 입구에 도착했다.

콰드등! 콰등!

거친 문소리가 들린 뒤였다.

“7층이다!”

버럭 지르는 고함과 함께 복도에 있던 조강치의 숙소 덩치들이 주춤대며 거실로 들어왔다.

그 직후였다.

쩌어억! 쩌억! 쩌어억!

어쩐지 볼이 화끈해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고, 열린 문을 통해 뻣뻣하게 뒤로 넘어가는 덩치 세 놈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이 저럴 수도 있나?

털썩. 철퍼덕. 털썩.

거짓말처럼 세 놈이 복도에 널브러졌다.

“후-.”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기 위해 조강치가 나직하게 숨을 내쉬는 순간이었다.

열린 문으로 나타난 강성태가 조강치를 강렬하게 노려보았다.

눈가와 볼, 턱에 피가 맺혔는데도 인물이 빛나는 조직의 두목이라니?

저런 얼굴로 뭐 할 짓이 없어 깡패 두목을 하는 건지.

‘징그러운 새끼.’

하기는 생긴 게 어떻든 지금은 강성태를 죽이지 못하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마음을 굳힌 조강치가 독하게 이를 깨물 때였다.

앞발로 개를 꾹 누른 호랑이처럼 강성태가 옅게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이병렬과 키란, 이종환, 고룡동, 조성호 등이 줄줄이 강성태의 뒤에 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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