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17권 - 4화
때로는 태도가 본질이 된다.
맨션을 향해 걸어오는 강성태는 누가 보기에도 도망 따위 생각지도 않는 강렬한 모습이었다.
‘정말 천 명을 뚫고서라도 나를 노리겠다는 거냐?’
떠올리기는 했지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조강치가 강성태의 자리에 섰다면 어땠을까?
30년 전의 젊은 시절로 돌려보내 주고, 장세조와 서창호를 앞세웠다고 해도 4백 명 달랑 데리고 천 명이 지키는 맨션에는 절대로 뛰어들지 않는다.
맨션 바로 앞까지 도착한 강성태가 픽 웃으며 시선을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조강치는 본능이 주는 맹렬한 경고에 마른침을 삼켰다.
‘진심이구나!’
조강치의 심장이 뜨끔한 순간이었다.
위를 보며 픽 웃었던 강성태가 시선을 내리고는 좌우를 돌아보았다.
“뭐 하냐! 가자-아!”
이병렬이 독하게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물결처럼 신강남파 덩치들이 현관을 향해 달렸다.
“뭐야, 이 개새끼들아!”
“신강남파다! 이 씨발 새끼들아!”
부산 덩치들이 우르르 현관을 나서며 밀려오는 신강남파 덩치들을 들이받았다.
맨션 앞이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싸움은 기세가 절반이었다.
‘젠장.’
조강치가 보기에 맨션 입구를 지키던 부산 덩치들은 기세에서 밀렸다.
하기는 조강치를 비롯해 서창호와 장세조가 모두 7층에 있는 상황이었다. 독한 눈으로 달려드는 강성태와 이병렬에 맞설 만한 대가리가 없으니 기세가 꺾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햇빛은 왜 이리 화창한지.
머리카락이 피로 흠뻑 젖은 놈, 이마부터 볼이 피투성이인 놈, 목덜미와 얼굴을 얻어맞고 바닥에 널브러지는 놈들, 그 사이를 뚫고 신강남파 덩치들이 현관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아차차. 엉뚱한 싸움을 보다가 강성태를 놓쳤다.
이 새끼는 어디에 있지?
거실 창 아래를 확인하기 위해 조강치가 고개를 숙일 때였다.
“저 미친 새끼가 진짜 들어왔네?”
놀란 감정을 감추지 못한 장세조의 혼잣말이 들렸다.
들어왔다고? 벌써?
확인을 위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조강치의 시선 앞에서 서창호가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다. 개 폼 잡는다며 강성태를 우습게 여기던 서창호가 긴장했다는 의미였다.
이 두 놈 역시 본능이 주는 경고를 느꼈다는 표시여서, 조강치는 이를 지그시 깨물며 뒤를 돌아보았다.
빠져나갈 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쩌어억! 쩌억! 쩌어어억!
강성태는 가장 앞에 있었다.
입구를 열 테니 나올 때까지 지키라고 했었다.
박배근과 조덕진은 분명 그렇게 들었다.
깡패라는 게, 조직이라는 게 그렇다.
보스가 되면 가장 뒤에 서서 “뚫어!”라든가, “밀어!” 따위의 명령을 내리고 여유롭게 걸어오는 게 지금까지 모셨던 형님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강성태는 가장 앞에서 길을 뚫고 있었다.
심지어 입구를 맡겼던 박배근과 조덕진이 따르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였고, 글자 그대로 일직선으로 나갔다.
부응! 퍼서석!
강성태를 노렸던 쇠파이프가 ‘X’라는 표시가 선명한 현관 유리를 박살 내는 순간이었다.
쩌억! 쩌어어억! 쩌억!
바닥에 흩어지는 유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성태가 연달아 주먹을 날렸다.
“뭐 해! 보스를 모셔!”
지금 지른 박배근의 고함은 계산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젊은 보스가 외롭게 싸우는 걸 보고서 피가 바글바글 끓어 반사적으로 나온 고함이었다.
강성태가 가장 앞에서 길을 뚫는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에서 새카맣게 말라붙은 피를 뒤집어쓴 조성호가 동생들 다섯 명과 함께 유충일의 복수를 하겠다며 이를 악물고 달려들고 있었다.
퍼으윽! 쩌어억! 쩌억!
지금도 봐라.
등에 배트를 맞았는데도 강성태는 조성호에게 달려드는 덩치를 먼저 해결하고 있었다.
조성호가 누구인가. 유충일에게 제대로 배운 놈이고, 광주에서 진짜 건달이 될 놈이라며 칭찬받던 놈이었다.
그가 말라붙은 피를 닦지도 못한 채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있는 모습은 광주 덩치들뿐만 아니라 신강남파의 누가 보기에 피가 끓는 장면이었다.
쩌어억! 쩌억! 퍼으윽! 쩌억!
거기에 또다시 등을 맞았음에도 강성태는 조성호의 앞을 먼저 해결했다. 마치 유충일을 지켜주지 못한 아픔을 갚는 것처럼, 그리고 유충일이 그렇게 원했던 동생들을 꼭 좀 챙겨달라는 소망을 들어준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 씨벌럼들아! 우리 충일이가 어떤 놈인지 아냐!”
퍼윽! 퍽! 퍼으윽! 퍼윽!
광주 덩치들은 아예 눈이 뒤집힌 모습이었다.
퍼윽!
목덜미를 맞은 고룡동은 강성태를 흉내 내듯 때린 놈을 잡아먹을 것처럼 돌아보았다.
“이 씨벌 자식아!”
부응! 퍼윽! 퍼윽! 콰작!
그리고는 놈의 머리통에서 피가 솟구칠 때까지 잔인하게 내리쳤다.
부응! 퍼석! 퍼서석! 콰드등!
마지막 남았던 두 장의 유리가 모두 박살 났고, 덩치들에 밀린 창틀이 휘었으며, 로비 안쪽에 세웠던 조형물이 비참하게 널브러졌다.
“밀어! 이 씨발 새끼들! 밀어버려!”
피가 끓는 건 조덕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팔뚝 길이의 쇠파이프를 악착같이 휘둘러 가며 대전 식구들을 다그쳤는데 실제로 그가 가장 앞에 있었다.
“뭐 허냐! 저 씨벌놈들 대가리를 모두 깨부러야!”
광주 덩치들이 미친놈들처럼 밀어붙이면서 현관 맞은편에 있는 쪽문으로 부산 덩치들이 밀려 나갔고, 마침내 로비에 신강남파 덩치들이 더 많이 들어섰다.
“박배근!”
“죽는 한이 있어도 지키겠습니다! 올라가십시오, 형님!”
저 앞에서 강성태가 부른 음성에 박배근이 피를 토해내는 것처럼 답을 내놓았다.
그 직후였다.
주르륵.
언제 얻어맞았는지 박배근의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피가 코와 입술을 적셨다.
“형님?”
“놔둬!”
놀란 덩치가 다가올 때, 박배근은 팔뚝으로 눈가를 쓱 문질렀다.
“뒤 틀어막고, 저 새끼들 못 오게 앞쪽도 지켜!”
박배근의 지시에 따라 앞쪽으로 달려간 신강남파 덩치들이 입구를 막아섰다.
멀찍이 밀려난 부산 덩치들이 둥그렇게 이쪽을 바라보고 있어서 마치 저들이 맨션을 노리고, 신강남파가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이를 드러내며 좌우를 살핀 박배근이 계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죽여!”
“이 씨발!”
쩌어억! 쩌억! 쩌억!
계단 쪽에서 욕설과 함께 강성태가 주먹을 날린 뒤에 들리는 특유의 소리가 달려 나왔다.
콰직! 콰드등!
그리고 계단으로 통하는 문에서 부산 덩치들 한 무리가 로비로 밀려 나왔다.
“이런 씨벌놈들아!”
박배근이 지시할 틈도 없었다.
퍼으윽! 퍼윽! 퍼윽! 퍼으윽!
눈이 벌겋게 변한 광주 덩치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밀려 나온 부산 덩치들을 향해 쇠파이프와 배트를 휘둘렀다.
“끄악!”
“밀어버리라고!”
계단에서 들리는 고함이 조금은 멀어져 있었다.
“덕진아! 바깥으로 나가서 저 새끼들 못 오게 막아!”
“예, 형님! 야! 가자!”
박배근의 지시에 조덕진이 대전 식구들을 끌고 현관 앞으로 나섰다.
이 순간, 박배근은 조덕진과 진짜 한식구가 됐다는 현실을 실감했다.
쩌어억! 쩌억!
피가 흠뻑 젖은 얼굴을 한 박배근은 계단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미친 사람 같은 미소를 그려냈다.
젊은 보스를 따라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고, 이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강성태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으며, 저런 보스를 모시는 신강남파의 식구라는 사실이 뿌듯해서였다.
그 직후였다.
콰드등!
또다시 부산 덩치들이 계단에서 로비로 밀려 나왔고,
“씨벌놈들아!”
퍼윽! 퍽! 퍼으윽!
광주 덩치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와 배트를 맞고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부산 덩치들은 팔 하나 넣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하게 계단을 막고서 밀고 내려왔다.
“뭐 해! 밀어!”
“죽여! 죽여버리라고!”
발악하듯 버티는 부산 덩치들을 뚫고 올라가는 길이었다.
계단이었다.
밀려서 뒤로 넘어지는 순간, 따라오던 신강남파 식구들이 막히고, 그 위로 회칼이 무수하게 날아든다.
강성태는 쿠크리를 길게 그었다.
피이이잇!
내려오는 놈들의 무릎을 깊게 가른 강성태는 주춤대는 놈들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쩌어어억! 쩌어억! 쩌어어억!
강성태의 주먹에 얻어맞아 흐물대는 부산 덩치들의 머리를 뒤따르던 조성호와 식구들이 거칠게 쇠파이프로 거칠게 내리쳤다.
겨우 공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한 순간,
“막아! 이 새끼들아!”
물이 가득한 둑의 가장 아래쪽을 열어놓은 것처럼 계단으로 부산 덩치들이 줄줄이 내려오고 있었다.
회칼을 위로 든 덩치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빽빽하게 밀고 내려오는 모습은 공포 영화나 좀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섬뜩했다.
강성태가 염려됐던 모양이었다.
“형님! 뒤로 나오십시오!”
이종환의 고함이 터졌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막히면 종일 이렇게 서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악문 강성태는 곧장 계단을 향해 달려갔다.
휙! 카앙!
왼팔로 날아드는 회칼을 막은 강성태는 앞줄에 선 세 놈의 목 아래를 노리고 쿠크리를 날카롭게 그었다.
“크억!”
쩌어억! 쩌억! 쩌어억!
세 놈이 목을 움켜쥐는 사이에 가운데 있는 놈들을 향해 주먹을 연달아 휘둘렀다.
복도 한가운데를 뚫는 길이었다.
핏! 카앙! 핏!
급하게 왼팔을 휘둘러 막았지만, 수도 없이 날아든 회칼이 강성태의 팔뚝과 등을 갈랐다.
최치곤과 유충일도 이랬을 거다.
그 끝에서 유충일은 동생들을 살펴달라고 간절히 당부했고, 최치곤은 강성태를 좋아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익.’
강성태는 악착같이 덩치들의 한가운데를 뚫었다.
“형니-임!”
부산 덩치들 사이를 파고드는 강성태를 부르는 이종환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그만큼 현재 모습이 위험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안다. 아는데.
단단한 얼음을 깨기 위해서는 뾰족한 바늘이나 송곳으로 균열을 만드는 게 가장 빠른 것처럼 누군가 길을 열어야 했다.
계단을 빽빽하게 메우고 선 덩치들을 뚫기 위해서 이미 각오했던 일이었다.
‘조강치! 너는 반드시 죽는다!’
민병련을 잡기 위해 위로 달렸던 유충일과 최치곤을 떠올리며 강성태는 쿠크리를 거칠게 휘둘렀다.
쩌어억! 쩌어억!
2층으로 향하는 중간 모서리에 선 강성태는 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달려드는 부산 덩치들을 빠르게 쓰러트렸다.
“형님을 지켜!”
부응! 퍼윽! 퍽! 퍼윽!
조성호를 둘러싼 이종환과 숙소 덩치들이 짧은 쇠파이프를 휘둘러 길을 열었고,
“이리 와, 이 씨벌자식아!”
고룡동이 무너지는 부산 덩치들의 멱살을 잡아 아래로 뿌렸다.
콰작! 퍼윽! 퍽! 퍼윽!
뒤따라오던 광주 식구들이 악귀처럼 쇠파이프와 회칼을 휘둘러 조성호와 고룡동이 던져준 부산 덩치들을 쓰러트렸다.
주춤주춤, 부산 덩치들이 질렸다는 눈으로 강성태와 신강남파 식구들을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한순간이라도 멈추면 끝이다.
조금이라도 밀리면 출근길 전철에 갇힌 사람처럼 팔조차 움직이기 어렵고, 그다음은 셀 수 없이 많은 회칼을 맞고 덧없이 죽는 일밖에 없었다.
강성태는 아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병렬아!”
“됐어! 밀고 올라가!”
피를 뒤집어쓴 이병렬이 마치 강성태의 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고함을 질렀다.
피범벅인 이병렬과 쿠크리를 들고서 이를 악문 키란을 돌아본 강성태가 다시 2층을 향해 달렸다.
피이이잇!
먼저 위쪽에 있는 놈들의 무릎을 갈랐고.
쩌어어억! 쩌억! 쩌어억!
상체를 기울이는 놈들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우와-아!”
강성태가 2층 입구에 도착하자, 뒤따르던 신강남파 덩치들이 함성을 요란하게 질렀다.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들기는 했지만, 진짜 2층까지 도착할 줄은, 그것도 이렇게 빠르게 올라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종환아! 2층 입구 막아! 거기 있는 새끼들 못 나오게 틀어막아!”
확실히 이병렬이었다.
“키란! 2층 입구에서 나오는 놈부터 해결해!”
그는 왜 이병렬과 키란을 가장 뒤에 뒀는지를 확실하게 증명하는 지시를 연달아 쏟아냈다.
피잇! 쩌어어억!
2층을 확보한 뒤에도 강성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교통사고가 있고 나서 말이다.
이모와 이모부, 김민재와 김민정이 정말 가족처럼 대해줬었다. 어떨 때는 한방을 쓰는 김민재에게 진심으로 미안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어버이날, 생일, 명절에 느껴야 했던 그 허전함은 누구도 채워주지 못했었다.
잘해줘서 오히려 미안하고 고마운 이모네 식구의 그 마음을, 밤마다 달려들던 악몽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그 좌절을 어떻게 설명하겠나.
‘조강치! 너는 죽어! 반드시 죽을 거라고!’
억울한 교통사고, 강성태를 좋아라 한다는 최치곤,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동생들을 당부했다는 유충일.
쩌어어억! 쩌억! 쩌어어억!
부산에 마약은 없다!
일본놈들 돈으로 어려운 우리 이웃의 피를 빠는 짓도 여기까지다.
“성호야! 뒤로 나와부러!”
조성호가 지친 모양이었다.
고룡동의 고함이 들렸고,
부으응! 퍼윽! 퍼윽!
그가 휘두른 짧은 쇠파이프가 강성태의 왼편에서 부산 덩치의 머리를 거칠게 내리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