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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권 - 20화 (332/513)

《332》16권 - 20화

새벽 3시 40분이었다.

테이블에 올려놓은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침묵을 배경으로 요란하게 울었다.

“여보세요?”

기다리던 전화여서 강성태는 평소보다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 황민섭입니다, 형님. 민병련 달아서 서울로 가고 있습니다, 형님!

굳이 스피커 통화를 하지 않아도 함께 있던 이병렬과 김진용이 고스란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황민섭은 급한 음성이었다.

“다친 사람은?”

- 광주 충일이 형님과 치곤이 형님이 많이 위독하십니다, 형님!

답을 하던 황민섭의 음성에 울음이 묻어 있어서 상황이 얼마나 위급한지 좀 더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이병렬과 김진용 앞에서 강성태는 무서우리만치 냉정한 표정이었다.

“어디쯤이냐?”

- 지금 막 고속도로에 들어섰습니다, 형님.

“휴게소로 식구들 보낼 테니까 연락할 때까지 계속 달리고 있어.”

- 예, 형님.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얌전히 테이블에 내려놓고 이병렬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독수리나 상어의 눈을 마주한 것처럼 강성태는 감정이 전혀 보이지 않는 차디찬 눈빛이었다.

이런 눈빛은 절대 못 말린다.

‘부산 끝났구나.’

강성태의 눈을 보며 이병렬은 참 오랜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민병련 데리고 부산에서 출발했단다. 강남 숙소 애들 우선 내려보내서 황민섭 지켜주고, 민병련 데려오라고 해주라.”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나직한 음성이 이토록 두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병렬과 김진용은 처음 알았다.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급하게 일어선 김진용이 밖으로 나간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

원장실 한쪽 구석에 골방처럼 만든 방이었다.

간이침대에서 잠들었던 유헌우는 요란하게 울리는 스마트폰 벨소리에 힘겹게 눈을 떴다.

팔을 뻗어 스마트폰을 집어 든 유헌우는 액정에 담긴 이름을 보고는 퍼뜩 상체를 세웠다.

새벽 4시가 다 된 시간이었고, 이 시간에 강성태가 전화했다면 숨 막힐 정도로 위급한 일일 가능성이 높았다.

“여보세요?”

- 원장님. 새벽에 죄송합니다. 치곤이와 또 한 명이 위독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강성태는 분명하게 도와달라고 했다. 그런데도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냉정한 음성이었다.

“어디에요? 언제 올 수 있어요?”

- 부산에서 지금 출발했답니다. 원장님 말고 믿을 곳이 없습니다.

몸을 일으킨 유헌우는 잠을 털어내는 걸음걸이로 원장실로 나섰다.

“앰뷸런스로 내가 내려갈게요. 중간에서 만나면 됩니다. 자상인가요?”

- 회칼에 찔렸는데 횟수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알았어요. 응급수술할 장비랑 스태프랑 해서 두 대로 출발합니다. 위독한 환자가 두 명이라고 했죠? 준비할 게 많고,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그러니까 안 선생에게 전화 좀 넣어주세요.”

- 다미 씨에게는 제가 도움 청하겠습니다. 최대한 서둘러서 출발해주십시오.

“알았어요. 성태 씨? 성태 씨는 괜찮은 거죠?”

목소리로 강성태가 무사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유헌우는 무겁게 깔린 강성태의 음성 아래에 담긴 분노와 슬픔이 염려됐다.

-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유헌우는 액정을 내려다보았다가 급하게 원장실을 뛰쳐나갔다.

**

안다미 역시 침대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의 진동에 잠이 깼다.

응급실의 삶은 고되다. 그러나 그만큼 급하게 찾는 전화에 익숙해 있어서 새벽에 걸려오는 전화는 일상과 같았다.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당겼던 안다미는 액정에 올라온 강성태의 이름을 보고는 놀란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성태 씨? 무슨 일이에요?”

- 자고 있었을 텐데 미안합니다. 하지만, 지금 치곤이가 위독합니다.

“네?”

최치곤이라고 들었다.

강성태가 가장 의지하는 친구 최치곤, 그가 위독하고 했었다.

꿈인가 싶어서 안다미는 고개를 흔들고 스마트폰을 다시 확인했다. 차가운 강성태의 음성 속에 절박한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강성태가 이렇게 매달릴 정도로 최치곤이 위독하다고?

최치곤의 얼굴을 떠올린 안다미는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디에요, 성태 씨?”

- 부산에서 지금 출발했답니다. 방지병원 유 원장님께서 준비 마치는 대로 출발한다는데 위독한 사람이 두 명이라 다미 씨의 도움이 필요하답니다.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만나서 응급수술을 하시겠답니다.

강성태의 말을 듣는 동안, 침대에서 내려온 안다미는 곧바로 옷장으로 움직였다.

“급한 환자가 치곤 씨 말고 한 명 더 있다는 거죠?”

- 그렇습니다.

“아빠하고 함께 움직일게요. 우리 대학 병원에 응급수술이 가능한 대형 버스가 있는데 아빠가 말씀하시면 사용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지금 출발할게요. 어디로 가면 돼요?”

- 우선 고속도로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면 됩니다. 중간쯤 되는 휴게소를 알려드릴게요.

“알았어요. 성태 씨는요? 괜찮아요?”

- 치곤이만 보냈습니다.

이래서였구나. 강성태의 음성에 담긴 간절함과 분노는.

- 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어서 다미 씨에게는 가지 못합니다.

지금은 일단 참고서 감정을 가라앉히라고 말리고 싶었다. 그게 안 된다면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가라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최치곤이 위독하다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강성태가 애절한 음성으로 도움을 청할 정도로 말이다.

“아빠에게 부탁드려서 바로 출발할게요. 가는 길은 유 원장님과 의논할 테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성태 씨! 몸조심해요.”

- 고맙습니다.

안다미가 끝내 감추지 못한 염려를 강성태가 차분하게 받았다. 뭔가 겁이 덜컥 났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을 생각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틈이 없었다.

안다미는 방문을 열고 빠르게 움직였다.

미안하고, 한편으로 죄송하지만, 수술이 가능한 대형 버스와 응급실 출근을 못 하는 상황에 관해서도 부친 안호상의 도움이 절실했다.

**

두 번에 걸친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마지막으로 번호를 찾아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쯤 울린 다음이었다.

- 여보세요?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완벽한 대응이 있었다.

“미안한데 키란, 지옥에 갈 일이 생겼다.”

강성태의 말이 건너간 직후였다.

- 어디십니까?

멈칫한 뒤에 영국식 영어로 질문이 건너왔다.

“강남 장례식장이다. 문자로 장소를 보내줄 테니까 오는 길에 내가 살던 빌라에 가서 쿠크리를 가져다줘.”

-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차는?”

- 아르윈 형님이 옆에 있습니다. 바로 갑니다, 형님.

“고맙다. 문자로 위치 넣을게.”

전화를 마친 강성태는 문자를 보내고 난 뒤에 몸을 세웠다. 내내 자리를 지켰던 이병렬이 당연하다는 듯 함께 일으켰는데, 강성태는 다른 말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지금 같은 순간에 말려봐야 통하지 않을 게 분명해서였다.

강성태는 먼저 옆에 마련한 조태완과 박노익의 방으로 움직였다.

임시로 마련한 침대에서 상체를 세우고 있던 조태완이 눈가를 좁히며 시선을 주었고, 그 옆에 앉아 있던 박노익이 의아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민병련을 잡아서 서울로 출발했답니다.”

“뭐? 정말이야?”

“치곤이하고 유충일이 위독하답니다.”

반은 놀라고, 반은 기쁜 얼굴로 반문했던 조태완이 나직하게 한숨을 쏟아냈다. 강성태의 얼굴에 담긴 냉기를 뒤늦게 이해한 까닭이었다.

이건 못 말린다.

조태완의 눈과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보스가 쉽게 얻는 건 없었지. 여기 노익이가 그랬다면서? 깡패 뭐 있냐고? 부산이고 경상도고 붙으면 된다고. 보스 뜻대로 해.”

말을 마친 조태완이 박노익에게 고개를 돌렸다.

“동생도 부산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어?”

“그게 좋을 거 같습니다. 가서 뒷수습하고 올라오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사건 접수됐는지, 또 부산 건물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일 커지지 않게 단도리 하지.”

능숙하게 상황을 정리한 박노익이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깥에 문상 온 조직원들이 백 명이 넘어. 민병련 달아왔다는 소문이 퍼질 수 있게 한 마디만 해주고 가. 그리고 강치 형님 해결하고 나면 전화나 줘. 여기 정훈이한테 말해주게.”

당황스러운 상황에 걸맞은 조치와 조언을 조태완이 연달아 꺼내놓았다.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인사하는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조태완이 스마트폰을 집었다. 그가 말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려는 눈치였다.

조태완의 방을 나서는 강성태의 뒤로 이병렬과 박노익이 따랐고, 지시를 전한 김진용이 정영권과 함께 다가왔다.

강성태가 나선 길이었다.

입구를 지키던 이종환과 유섭우가 덩치들 수십 명과 움직이는 바람에 문상 왔던 전국의 덩치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몸을 일으켜 이쪽을 살폈다.

“부산에 숨어 있던 민병련을 광주 유충일과 최치곤이 데려오고 있다.”

시선을 마주쳤던 이종환과 유섭우가 긴장한 표정으로 강성태의 다음 말을 기다렸고, 문상 온 덩치들이 놀란 얼굴로 수군댔는데 조태완이 바라던 반응이었다.

“조강치가 민병련과 손잡고 그를 숨겨주었다는 걸 광주 유충일과 최치곤이 밝혀낸 거다. 태완이 형님 작업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그래놓고도 뻔뻔하게 문상 왔었다.”

뒤늦게 달려온 박배근과 조덕진이 옆에 있던 덩치에게 내용을 듣고는 눈매를 뒤틀었다.

“조강치에게서 민병련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광주 유충일과 최치곤이 위독할 정도로 다쳤다. 참는 건 여기까지다. 이제부터 부산 조강치를 잡는다.”

문상 온 덩치들이 웅성댔다.

대놓고 조강치를 잡는다고 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박배근.”

“예, 형님.”

강성태가 부르자 박배근이 앞으로 나와 상체를 기울였다.

“전주와 광주 쪽 식구들 전부 부산으로 출발해. 유충일이 위독할 정도로 당했는데 이 싸움에서 빠지는 광주 숙소가 있으면 이후로 우리 식구가 아니다.”

“바로 지시하고, 움직이겠습니다, 형님.”

고개 숙이며 내놓는 박배근의 답을 들은 강성태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정영권.”

“예, 형님.”

“강남 숙소에서 식구들 얼마나 뺄 수 있어?”

“클럽 하나에 40명씩 있고, 카지노에서 40명 해서 모두 200명입니다, 형님.”

“전부 부산으로 출발하라고 전해.”

“제가 형님 모시겠습니다, 형님.”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감사합니다, 형님.” 하며 상체를 깊숙하게 숙인 정영권이 바쁘게 밖으로 움직였다.

“이종환, 장례식장 지킬 인원 빼고 얼마나 움직일 수 있지?”

“안산까지 합하면 170명 정도 됩니다, 형님.”

“장례식장은 유섭우에게 맡기고, 인원 모아서 부산으로 출발해.”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형님.”

상체를 숙인 이종환이 움직인 뒤였다.

강성태는 뒤를 지켰던 김진용에게 고개를 돌렸다.

“김진용. 서운하겠지만, 태완이 형님과 당장 비는 서울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해. 네가 남아서 태완이 형님 모시고 정훈이 보내줘, 그리고 내가 올 때까지 서울 관리해.”

“예, 형님.”

전국에서 올라온 덩치들이 지켜보는 앞이었다.

아쉬움 가득한 눈빛을 했으나 김진용은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부산하고 손잡고 달려드는 조직이 있으면 굳이 상대하지 말고 태완이 형님만 지켜. 업장 한두 개 부서지는 거 신경 쓰지 말고 견디고만 있어. 내가 올라와서 병렬이랑 그쪽 조직 대가리 목을 반드시 갈라줄 테니까.”

“맡겨주십시오, 형님.”

지시를 마친 강성태가 고개를 돌려 박노익을 보았다.

“나는 조용하게 움직이는 거로 하자.”

경상도 조직과 친분이 깊은 박노익의 판단이었다.

그의 연륜과 이름값이면 위험할 일은 별로 없겠지만, 워낙 살벌한 상황이라 그냥 보내기는 어려웠다.

“대전 쪽 식구들이 대략 50명 정도 됩니다. 조덕진과 함께 움직이십시오, 형님.”

이러려고 조덕진에게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었나?

다들 임무를 받았지만, 아직 지시를 받지 못해 서 있는 조덕진을 돌아본 박노익이 대단하다는 투로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으로 가는 동생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게 도리겠지. 동생이 판단한 대로 따르마.”

“감사합니다, 형님.”

고개를 끄덕인 박노익이 강성태의 팔을 다독였다.

‘조심해. 그리고 무사히 돌아와.’

그의 염려와 당부가 다독이는 손길을 타고 진하게 강성태에게 전해졌다.

우우웅.

그리고 그 직후에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짧게 울었다.

[1층 주차장입니다, 형님.]

기다리던 문자였다.

“출발하겠습니다, 형님.”

박노익에게 인사한 강성태가 걸음을 옮기자 이병렬이 바로 뒤따랐다.

줄줄이 더 있는 검은 복장의 덩치들 사이를 걷는 길이었다.

냉정한 강성태, 비릿한 표정의 이병렬을 향해 김진용이 상체를 깊게 숙였다.

“다녀오십시오, 형님.”

그를 시작으로 장례식장 입구를 지키던 신강남파 덩치들이 서열에 따라 줄줄이 상체를 숙였다.

에스컬레이터 앞에 도착한 강성태는 앞을 지키던 유섭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잘 부탁한다.”

“다녀오십시오, 형님.”

유섭우에게 당부를 전한 강성태는 시선을 안으로 돌렸다. 출발하기 전에 김정훈이 있는 곳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싶어서였다.

그런 강성태의 시선을 오해한 모양이었다.

“다녀오십시오, 형님.”

문상 온 덩치들이 줄줄이 강성태를 향해 상체를 깊숙하게 숙였다.

“지금 인사한 조직은 우리 쪽에 선다고 봐야지. 정훈이 새끼가 보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같다.”

고개 숙이는 덩치들을 보며 이병렬이 나직하게 전해준 말이었다.

“저 정도면 서울은 염려하지 않아도 돼. 그냥 고개만 끄덕여 줘.”

고맙다는 느낌으로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가 걸음을 내딛자 곧바로 이병렬이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섰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강성태와 이병렬의 모습을 신강남파 식구들과 문상 온 덩치들이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아래로 사라진 직후였다.

“후유.”

문상 온 덩치들 쪽에서 긴 한숨이 나왔다.

“진짜 보스네.”

누군가의 혼잣말도 있었다.

장례식장을 짓눌렀던 긴장이 조금이나마 풀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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