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권 - 15화 (327/513)

《327》16권 - 15화

산이라 그런지 둑이 터진 것처럼 어둠이 쏟아졌다.

별은 또 왜 이렇게 선명하고 밝은지, 팔이 뒤로 묶인 상태에서 머리와 어깨, 가슴에 흙과 잔돌들이 수북하게 쌓인 김종수가 마른침을 삼킬 때였다.

그런 김종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최치곤이 무릎을 짚고는 몸을 세웠다.

“씨발 새끼들, 묻어.”

뭐라고?

여태 민병련하고 연락하겠다며 흥정한 건 어디 가고?

김종수가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는 구덩이 위쪽에서 최치곤은 미련 한 점 남기지 않는 태도로 몸을 돌렸다.

“차에서 한숨 자고 있을 테니까 다 묻으면 깨워.”

“치곤아! 아니, 동생!”

“거, 씨발, 더럽게 시끄럽네. 적당히 묻다가 대가리 위로 들면 삽자루로 깨버려.”

“예, 형님.”

“깊게 묻어라. 깊게. 비 와서 흙 쓸리면 괜히 귀찮아지니까 마지막에 꼭꼭 밟고.”

“동생! 동새-앵!”

달려드는 하루살이를 피하듯 김종수의 간절한 외침을 피한 최치곤이 진짜 승합차로 불쑥 들어갔다.

“얼른 덮고 가자.”

“이봐, 동생들! 치곤이 좀 불러줘! 여기 아래에 전원주택 짓고 있어서 이런 식으로 처리하면 결국 들통난다니까!”

김종수가 현실을 들춰가며 삽자루 든 덩치들에게 매달렸다.

“하, 씨발. 치곤이 형님께서 저러신 이유가 있었네. 여보세요, 김 사장님? 여기 태완이 큰 형님께서 사 놓으신 땅이에요. 나중에 정훈이 형님이랑 이쪽에 별장 지으신다고. 누가 여길 뒤져?”

땅에 찍어놓은 삽자루를 지팡이처럼 짚고 대꾸를 건넨 덩치가 몸을 숙였다. 그리고는 왼손을 내려 삽 아랫부분을 다부지게 잡았다.

“엇차!”

수북하게 흙을 뜬 덩치가 김종수의 머리를 겨누듯 부어대자 지켜보던 주변 덩치들이 바쁘게 삽을 놀렸다.

김종수가 흙을 밟고 머리를 위로 들면 저 삽자루가 날아든다. 그렇다고 얌전히 있으면 흙에 파묻혀 죽는다. 당장 손발이 꽁꽁 묶여 널브러진 조성만이 반쯤 파묻힌 머리를 억지로 들고서 버둥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동생들! 내가 절대 욕 안 먹게 할 테니까 치곤이 한 번만 불러줘!”

승합차의 뒷자리에 앉은 최치곤은 김종수가 발악처럼 외치는 소리를 모두 들었다.

“개새끼.”

욕을 뱉어낸 최치곤은 밖에서 불빛이 보이지 않게 손으로 액정을 가리고서 스마트폰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세 번쯤 울린 뒤였다.

- 여보세요?

강성태의 음성이 나직하게 건너왔다.

“민병련하고 이광준, 둘이서 부산 호텔에 있다는 말까지는 뱉었어. 내일 오전에 5백억을 가져오는 계약이 있다면서 그 핑계로 천안으로 둘을 불러온다는데 대신 살려준다는 보장을 해달라고 하더라고.”

- 지금은?

“일단 가슴까지 묻어놓고 다시 말해보려고. 애들이 열심히 흙 붓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 치곤아.

강성태가 무겁게 부르는 소리를 들은 최치곤이 입술에 힘을 꾹 주었다.

“이왕 시작한 건데 믿고 맡겨주라. 나도 태완이 형님, 병렬이 형님, 그리고 우리 식구들 앞에서 용 한 번 돼보자. 숙소 애들도 그래. 신강남파 보스를 모신다고 하면서 지금껏 한 게 뭐 있냐? 이렇게 한 번씩 달려줘야 사명감이 생기지.”

최치곤이 전에 없이 다부진 대꾸를 내놓았는데, 당장 강성태는 대꾸가 없었다.

“성태야. 나 진짜 이거 잘해내고 싶어.”

최치곤이 다시 간절하게 바람을 전한 다음이었다.

- 광주 유충일 알지?

“충일이 형님이야 우리 바닥에서 유명하지. 어? 뭐야? 충일이 형님이 갑자기 왜 나와? 혹시 움직였어?”

- 다들 충일이가 장례식 앞쪽 지키는 줄 아는데 한 시간 전에 광주 식구들 데리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그러니까 번호 알게 되면 너도 부산으로 출발해. 그래서 민병련 데려와.

“성태야. 나 지금 더럽게 행복해.”

- 미친놈. 멀쩡하게 돌아와. 안 그러면 내가 진짜 미쳐서 날뛰는 거 보게 된다.

“알았어. 번호 아는 대로 전화할게.”

답을 한 최치곤이 독한 표정으로 덩치들이 열심히 흙을 부어 넣는 구덩이를 돌아보았다.

**

저녁을 먹기 위해 잠시 옮긴 자리였다.

몸이 힘든 조태완은 영안실 한쪽에 준비한 간이침대에 누웠고, 편하게 식사하라며 자리를 피한 박노익은 전국에서 올라온 덩치들을 돌아보며 한 명씩 손을 잡아주었다. 거기에 정영권은 클럽 일을 잠시 보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이병렬, 김진용만 있는 자리였다.

궁금해하는 이병렬에게 강성태는 지금껏 있었던 일을 나직하게 설명했다.

“그럼 배근이 형님이 굳이 입구를 지키는 게 그거 때문이냐? 충일이 빠져나간 거 감추려고?”

고개를 끄덕이는 강성태를 보며 이병렬이 상체를 세웠다.

“와, 씨발. 이런 배신이 없네. 그런 일은 날 시켰어야지.”

“내가 서 있는 자리에 신강남파 이병렬이 안 보여 봐라. 당장 조강치 아니라 다른 조직에서도 뭔가 있다고 의심할 거다.”

뭐라 대꾸하지 못한 이병렬이 한숨을 내쉴 때, 김진용은 아직 감탄을 다 삭이지 못한 얼굴이었다.

“그건 그렇고, 광주 손에 넣은 게 하루밖에 안 돼서 나도 충일이가 부산 갔을 거라는 생각은 진짜 못 했다.”

“유충일이 다른 마음은 안 먹을 거 같아서.”

“호구 소리 들으면서까지 최금식 모셨던 놈이잖냐. 다른 건 몰라도 중간에 마음 바꿀 놈은 아니지. 아, 씨발. 알면서도 내가 못 간 게 졸라리 억울하기는 하네.”

이병렬이 고개를 돌리자 테이블 앞에 앉은 같은 생각이라는 의미처럼 김진용이 묵직하게 상체를 숙였다.

그 직후였다.

“너는 미끼 해야지?”

강성태의 한 마디에 이병렬과 김진용의 시선이 단박에 달려왔다.

“민병련 달아오면 그 인간 네가 데리고 있어. 그리고 전국에 떠들어. 그러면 아마 조강치가 주방에서 일하는 놈들까지 모조리 끌고 너한테 갈 거다.”

“씨발!”

짜릿한 감동을 이병렬은 그렇게 토해냈다.

“다른 새끼는 몰라도 장세조, 그 개자식은 나 주라.”

이병렬이 그다운 요구를 내놓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깡패야. 지금 어디야? 나 좀 볼 수 있어?

어쩐지 급하게 들리는 강선영의 음성이 강성태를 찾았다.

“장례식장인데 나가기는 어려워. 무슨 일이야?”

- 내가 가면 어때?

“웬만하면 그러라고 하겠는데 전국 조직에서 모두 올라와 있는 자리라 오늘은 아닌 거 같다. 급한 거면 전화로 하고, 꼭 얼굴 봐야 하면 내일로 하자.”

누군데 이러지?

숟가락을 내려놓은 이병렬이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일인데, 마약 관련 공익제보였잖아. 그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를 만나고 왔거든.

강선영의 음성도 그렇지만, 사건 내용이 예사롭지 않아서 강성태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어질 말에 집중했다.

- 조강치라고 해서 알아봤더니 유명한 깡패더라고.

조강치?

이름을 듣는 순간, 강성태는 조강치의 사악했던 눈매와 함께 악몽에서 보던 처참한 교통사고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 조강치가 어선을 이용해 마약을 들여왔는데 선친께서 그걸 제보했었어. 선박 운항일지까지 정확하게 제시했다는데 사건 기록 어디에도 관련 내용은 없어. 조서를 쓰는 과정에서 공익제보 내용을 삭제했던 거 같아.

조강치였었나?

신강남파 보스 자리에서도 대놓고 붙기 어려운 조강치를 상대로 공익제보를 했다고?

- 당시에는 공익제보 기록을 수기로 작성했어. 제보자 신원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열람도 막았는데 그 핑계로 기록 자체를 누락하는 일이 종종 있었나 봐. 알지? 서로 손써서 빼버리는 거.

오래도록 알고 싶었던 일이었다.

교통사고에 무언가 숨겨진 일이 있으리라 짐작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듣고 나자 가슴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마치 이병렬, 혹은 김진용과 관련된 일을 듣는 것처럼 오히려 덤덤했다.

- 알아보니까 조강치가 엄청난 거물이던데 당장 달려들지 말고 나랑 의논한 뒤에 움직여.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해서 도울게.

“알았어. 고맙다.”

- 괜찮은 거지?

강성태의 음성을 듣고 나자 강선영은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이는 눈치였다.

“만났다는 검사 이름, 주소, 연락처나 보내줘.”

해코지하면 어떻게 하지?

강성태의 요청을 받은 강선영이 멈칫했다가 답을 내놓았다.

- 문자로 보낼게. 시간 되면 연락 주라.

통화는 거기까지였다.

음성이야 평소와 같았는지 몰라도, 무서울 만큼 가라앉은 강성태의 얼굴과 눈빛을 이병렬과 김진용은 분명하게 알아보았다.

한편이었다.

죽을 자리에 씨익 웃으며 달려가는 내 편.

나중에 봐서 또 말해주겠지.

궁금한데도, 무슨 일인지 묻지 않은 채 숟가락을 드는 이병렬을 향해 강성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어릴 적 교통사고로 부모님 잃었다는 건 알지?”

심상치 않은 일이구나.

상체를 세운 이병렬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옆에 있던 김진용은 ‘저 새끼란다’ 하고 찍어주면 바로 달려갈 것처럼 독해진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약과 관련한 공익제보를 하셨고, 그 직후에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는데, 제보 대상이 조강치였단다.”

“조강치? 지금 조강치라고 그랬어?”

집중해서 듣던 이병렬의 표정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어선을 통한 마약 밀수를 제보했는데 그 뒤에 바로 교통사고가 있었던 거지.”

“조강치, 이 개새끼. 이런 줄 알았으면 아까 왔을 때, 모가지 끊어버리는 건데.”

당장에라도 달려가자는 투로 이병렬이 거칠게 욕을 뱉었다.

“병렬아. 장세조는 맡겨줄 건데, 조강치는 손대지 마라.”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내가 무슨 수를 쓰든 잡아다 줄 테니까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이병렬의 반응을 보며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어쩌면 조강치가 다녀간 다음에 들은 게 오히려 잘된 일인지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냉정하지 못했을 테고, 괜히 경계심만 잔뜩 올려주었을 것 같아서였다.

“먹자. 먹어야 힘내서 조강치를 끌어내지.”

강성태의 반응을 힐끔 본 이병렬이 사명을 받은 전사처럼 숟가락을 들고서 육개장을 듬뿍 떴다.

음식을 넣기 위해 고개를 기울였던 이병렬이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그 어떤 때보다 화가 치밀었을 강성태가 깍두기를 집어 밥 위에 올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조강치를 못 잡아도 괜찮으니까 여기에서 더 다치지는 말자.”

대답 대신 이병렬은 강성태의 눈을 들여다보며 숟가락을 위로 들었다. 국물과 밥이 반쯤 흘러내려 그의 입가와 턱을 적셨는데 이병렬은 닦지도 않은 채 우적우적 깍두기를 씹었다.

“어려운 일 맡겨서 미안한데 진용이랑 함께 부탁한다.”

육개장 국물을 피처럼 묻힌 이병렬이 잔인하게 웃었고,

“감사합니다, 형님.”

김진용이 비장하게 답했다.

**

짙어진 어둠이 공포심을 있는 대로 자극하는 밤이었다.

“동생! 동새-앵!”

“에이, 씨발! 시끄러워 죽겠네!”

부응! 붕!

퍼넣은 흙을 밟고 구덩이 위로 반쯤 올라선 김종수가 무섭게 날아드는 삽자루를 피해 몸을 이리저리 구부렸다.

“동생들!”

어찌나 마음이 급했던지 구덩이 한가운데로 움직인 김종수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치곤이한테 5백억을 조건 없이 내놓는다고 말 좀 해줘! 그걸 가져가면 동생들도 욕먹지는 않을 거 아니야? 제발 한 번만!”

흙을 얼굴에 맞는 바람에 입안에 온통 흙투성이로 변했는데도 김종수는 절박한 외침을 그치지 않았다.

“야, 잠깐 기다려 봐.”

덩치 한 명이 삽자루를 세우고 외치자 남은 덩치들이 몸을 세웠다.

꾸물꾸물, 그 와중에 살아보겠다고 팔과 다리가 꽁꽁 묶인 조성만이 옆으로 누운 몸뚱이를 움직여 반쯤 덮인 흙 위로 올라왔다.

조성만의 그런 모습이 김종수에게 더 큰 공포를 던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한 가지만 말하겠는데, 또 뭐, 우리 치곤이 형님한테 살려줄 방법을 제시하라느니, 보장하라느니 하는 조건 달면 그때는 울대 먼저 끊고 시작할 거야.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 동생!”

김종수가 고개까지 끄덕여 답을 한 뒤였다.

“야, 칼 한 자루 줘 봐.”

보란 듯이 회칼을 받아서 허리춤에 꽂은 덩치가 아무래도 의심스럽다는 시선으로 김종수를 다시 보았다.

“내가 저 인간한테 속아서 괜히 욕먹을 짓 하는 거 아냐?”

“아니야! 아니라고!”

대놓고 한숨을 내쉰 덩치가 재킷의 앞을 당긴 뒤에 승합차로 다가갔다.

“형님! 형님!”

그가 두 번 부르고 나서 승합차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 켜진 불빛에 따라 나방과 깔따구들이 삽시간에 몰려들어서 승합차 앞쪽이 뿌옇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형님께 드릴 말씀이 있답니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어두운 밤이고, 깊은 산 속이라 덩치가 하는 말이 구덩이까지 고스란히 들렸다.

“동생! 기회를 줘!”

이제는 목이 갈라져 쇳소리까지 묻어나서 김종수의 애원은 아예 절규처럼 들렸다.

“지랄들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승합차에서 내린 최치곤이 구덩이 앞으로 다가왔다.

흙을 완전히 뒤집어쓴 상태에서 무릎을 꿇었는데 흙을 온통 뒤집어써서 김종수의 모습은 처참했다.

“말해 보쇼.”

“민병련 확인시켜 주고, 내일 5백억 모두 동생 앞으로 돌릴 테니까 살려만 줘. 내가 믿을게. 내가 동생을 믿을 테니까 기회만 줘.”

“전화기 어디 있어?”

“재킷 주머니에.”

최치곤이 승합차로 부르러 왔던 덩치를 돌아보았다.

“야, 가서 가져와.”

“예, 형님.”

회칼을 허리춤에 꽂았던 덩치가 훌쩍, 아래로 뛰어내려서 무릎 꿇은 김종수에게 다가갔다.

“안쪽 주머니에 있어.”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김종수가 알려주어서 덩치는 쉽게 스마트폰을 찾아냈다.

“귀찮다. 거기에서 번호 입력해 봐. 아니면 그냥 울대 따고 나오면 되겠다.”

김종수를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투로 최치곤이 지시를 내린 다음이었다.

“비밀번호 입력해. 그런 다음 천안 동생이라고 찾아. 그게 민병련이 지금 받는 번호야.”

김종수가 다급하게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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