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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권 - 13화 (325/513)

《325》16권 - 13화

조문을 마친 조강치가 반걸음을 물러나 김정훈의 사진을 올려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어쩌면 저 자리에 조태완이 있어야 했다며 아쉬워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조강치가 고개 숙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서창호와 장세조, 뒤쪽에 줄줄이 늘어선 부산 덩치들 누구 한 명 김정훈의 영정을 향해 머리를 기울이지 않았다.

잠시 그렇게 김정훈을 바라보던 조강치가 몸을 돌리고는 강성태 앞으로 다가왔다.

주머니에 늘 넣고 다니는 지갑처럼 그의 얼굴에는 강자의 여유가 한껏 묻어 있었다.

“먼 길 오셨습니다, 형님.”

강성태의 뒤에서 이병렬이 고개 숙여 인사했고, 정영권과 김진용이 반 박자 느리게 상체를 숙였다.

강성태는 조강치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젊은 보스라더니 예절을 모르나?”

“죽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꺼져.”

이병렬이 흠칫한 순간에 조강치의 얼굴에 옅게 깔렸던 여유가 주방 티슈로 닦아낸 물기처럼 삽시간에 사라졌다.

“이 새끼가 미쳤나?”

“서창호? 너도 마찬가지다. 뒈지기 싫으면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말고, 얌전히 부산으로 꺼져.”

“야, 이 새끼야?”

“이 개새끼가 어디에서 욕을 뱉어? 정훈이 장례식만 아니면 너 같은 새끼 울대 바로 끊었어! 자신 있으면 지하주차장에서 기다리든가! 여기 조강치 이 개 같은 늙은 놈이 작업한 거 모르는 사람 있어? 정훈이 보내주기 위해 참는 거니까 주접들 떨지 말고 꺼져!”

전에 없이 거친 말투였다.

아무리 살벌한 싸움에서도 거친 말을 뱉지 않던 강성태가 장례식장에서, 그것도 조강치를 상대로 이러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허어, 지방 몇 개 먹더니 눈알이 뒤집힌 모양이구나.”

“입 닥치고 꺼지라고 했지? 정말 죽고 싶어?”

조강치가 탄식처럼 뱉어낸 말을 강성태가 붙들어 바닥에 패대기쳤다.

전국의 조폭들이 모두 보는 자리였다.

누가 뭐래도 부산의 주인 조강치가 서창호와 장세조를 데리고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신강남파 젊은 보스 강성태에게 잘근잘근 씹혔다는 소문은 막을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 개새끼가?”

“이런 씨발놈이? 너 이리와!”

강성태가 이런 욕을 뱉은 적은 정말 없었다. 그것도 전국 조폭이 보는 앞에서.

“보스! 참아!”

이병렬이 주먹을 드는 강성태를 뒤에서 안았고,

“형님! 참으십시오! 형니-임!”

김진용이 상체를 끌어안다시피 뒤로 당겼다.

“놔! 놓으라고! 저 씨발 새끼들이 작업한 거 여기 모르는 사람 있어? 서창호, 너 이 개새끼! 이리오라고!”

“형니-임!”

정영권은 물론이고, 소란에 달려온 박배근과 조덕진이 앞에서 가슴을 안고 막을 정도로 강성태는 막무가내였다.

“이종환! 유섭우!”

“예, 형님!”

팔과 가슴을 붙들린 강성태가 고함처럼 부르자 이종환과 유섭우가 무섭게 달려왔다.

“2층 문 잠가!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모두 막고! 지금부터 한 새끼도 못 내려가게 해!!”

“예, 형님!”

뭐라고 해도 강성태가 악을 쓰며 내린 지시였다.

이종환이 다부진 눈으로 고개를 던지자 신강남파 덩치들 수십 명이 우르르 달려가 실제로 입구를 틀어막았다.

“보스! 제발 좀 참아!”

강성태가 얼마나 힘을 쓰는지 말리던 이병렬의 어깨와 옆구리에서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피가 배어 나왔다.

진심이구나!

여차하면 정말 조강치와 서창호, 장세조를 여기에서 해결하려는 거구나!

누가 봐도 강성태는 눈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이것들하고 정말 붙어?

입만 열면 강성태가 쌍욕을 해대는 바람에 입술을 씰룩이며 눈매를 뒤튼 조강치가 좌우를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고함에 나와서 지켜보던 조태완과 박노익이 그때 움직였다.

“동생. 나를 봐서 한 번만 참자. 내가 이렇게 부탁한다.”

강남 삼대장 중 한 명인 박노익이 사정조로 강성태를 달랬고,

“정훈이를 봐야지. 내가 이렇게 부탁할 테니까 오늘만큼은 참아.”

역시나 강남 삼대장 중 한 명이었으며, 조강치의 작업에 당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조태완이 앞을 막아섰다.

조태완과 박노익이 지닌 무게감은 조강치도 무시하기 어려운 눈치였다. 게다가 휠체어에 앉은 조태완의 눈매 역시 독이 잔뜩 올라 있어서 여차하면 당장 칼부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눈매를 가라앉힌 조강치가 입술을 씰룩일 때였다.

“후우-.”

거칠게 나서던 강성태는 몸을 세우며 목을 좌우로 꺾었다.

그 동작이 신호라도 되는 양, 이병렬이 팔을 풀었고, 박배근과 조덕진이 비켜섰으며, 악착같이 매달렸던 김진용과 정영권이 몸을 세웠다.

“형님들을 봐서 한 번 참는다. 조만간 부산에 찾아갈 테니까 오늘은 그만 꺼져.”

“말을 좀 가려서 해.”

“야, 이 개새끼야! 내가 조용히 꺼지라고 했지?”

“너, 정말 죽고 싶어?”

더는 밀리지 않겠다는 투로 서창호가 거친 말을 뱉은 직후였다.

강성태는 휠체어에 앉은 조태완과 그 곁에 선 박노익을 향해 상체를 짧게 숙였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강성태가 이렇게까지 조직 보스의 모습을 보인 적은 없어서 조태완과 박노익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볼 뿐,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있는 모든 덩치들이 강성태를 바라보며 이어질 행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말리는 사람은 그게 누구든 신강남파 식구가 아니다.”

차갑게 말을 건넨 강성태는 한 걸음을 움직여 서창호의 앞으로 다가갔다. 앞에 던진 지시가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강성태의 의도를 분명하게 읽어서일까.

이병렬이 여차하면 붙겠다는 얼굴로 강성태의 뒤로 움직였고, 또다시 반 박자 느리게 김진용과 정영권이 따라붙었다.

“한마디만 지껄여. 그러면 정말 죽여줄 테니까.”

칼을 가져왔을까?

독기가 잔뜩 오른 서창호의 입술이 씰룩일 때였다.

“신강남파 대단하네. 오냐. 오늘은 장례식이니 자리를 봐서 이만 돌아가마.”

더는 일을 키우지 않겠다는 투로 조강치가 몸을 돌렸다.

강성태는 서창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또 뒤에 선 이병렬은 김진용과 함께 장세조를 잡아먹을 것처럼 들여다보았다.

“뭐 하냐! 가자!”

입구로 나선 조강치가 날카롭게 한마디를 던지자 입술 끝을 씰룩인 서창호가 몸을 돌렸고, 이병렬을 향해 의미 가득한 눈매를 던진 장세조가 그 뒤를 따랐다.

“하, 이 새끼들이 진짜.”

결국, 조강치가 욕을 뱉었다.

강성태의 지시를 받은 이종환과 유섭우가 아직 입구를 틀어막은 채 움직이지 않아서였다.

강성태가 고갯짓을 던지자 상체를 숙인 이종환이 유섭우와 함께 길을 열었다.

걸음을 옮기면 바로 에스컬레이터였다.

자존심이 심하게 상했는지 걸음을 옮기기 전에 조강치가 독한 눈매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입 닥치고 꺼져. 당장 모가지를 끊어버리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는 거니까.”

“흐흐흐.”

기가 막힌다는 웃음을 던진 조강치가 고개를 젓고는 에스컬레이터로 움직였고, 마지막 여운처럼 시선을 남긴 서창호와 장세조, 그리고 부산 덩치들이 줄줄이 걸음을 옮겼다.

이병렬이 흥건하게 셔츠를 적신 만큼, 재킷을 당긴 강성태의 옆구리에서도 피가 배어 나와 있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 상태에서 강성태는 조태완과 박노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잘 참았어.”

체면을 살렸다는 투로 한마디를 던진 조태완이 시선을 돌리자 덩치가 그의 휠체어를 밀었다.

강성태를 향해 눈 끝으로 웃은 박노익이 돌아서면서 아직 길게 늘어서 있던 문상객들이 차례로 나섰다.

향을 사르고 고개를 깊게 숙였던 덩치가 열 명쯤 되는 식구들을 이끌고 강성태 앞으로 움직였다.

“대전 신사거리파 임춘배입니다.”

김진용이 나직하게 조문한 덩치를 소개했고,

“와줘서 고맙습니다.”

강성태가 손을 내밀었다.

“기회가 되시면 덕진이 형님과 함께 모시겠습니다, 형님.”

강성태의 손을 잡은 임춘배가 공손하게 몸을 숙인 뒤에 다시 한 걸음을 물러서서 함께 온 덩치들과 함께 깊숙하게 상체를 숙였다.

새롭게 도착한 조직들이 줄줄이 2층으로 올라왔다가 긴 줄의 뒤로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강성태의 뒤에 선 이병렬은 복잡하게 올라오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삭이기 위해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모두 오늘만큼은 강성태가 참아야 하는 자리이고, 그래서 부산의 주인 조강치에게 눌릴 거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이병렬마저 한 수 접어주는 게 옳다고 여겼다. 그러나 강성태는 대놓고 조강치를 들이받았다.

흥분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진짜 강성태가 일을 벌일 생각이었다면, 평소 모습대로 주먹을 먼저 날리고 말지, 절대 쌍욕을 입에 담지 않았다.

이병렬은 문상을 위해 길게 서 있는 전국의 조직원들을 슬며시 돌아보았다.

당장 저들은 강성태와 신강남파를 부산 조강치와 동급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둘은 반드시 맞붙는다. 그럼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조용하게 구경할 수도 있지만, 얽히게 된다면, 혹은 도움을 요청받는다면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

김정훈의 일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며 대놓고 조강치를 들이받는 강성태, 그리고 오래도록 군림하던 부산의 조강치. 선택은 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장은 신강남파에 기울 확률이 높았다.

다음은 조태완의 체면을 완벽하게 세워주었다.

막말로 조강치가 찾는다면 아무리 뒤에서 작업 당했다고 해도 당장 조태완은 전국 조직들이 보는 앞에서 고개 숙여 맞아야 했다.

강성태는 조강치를 씹어대며 판을 뒤집었고, 심지어 쌍욕을 퍼붓던 그 자리에서 조태완에게 고개 숙여 예의를 보였다.

누가 봐도 조강치는 강성태에게 욕을 처먹는 인간이고, 조태완은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고개 숙여 양해를 구하는 형님으로 남았다.

또, 강성태는 마지막까지 조강치가 조태완에게 말 걸 틈을 주지 않아서 조직의 서열에 따른 인사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무섭다, 강성태는.

그런 한편으로 이 사람과 한식구라는 게 고맙다.

아까 그 모습을 보았다면 김정훈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병렬이 슬며시 김정훈의 영정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가서 상처 치료하고, 셔츠 갈아입고 와.”

새롭게 나선 조직이 향을 사르는 틈에 강성태가 고개를 돌려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

눈과 눈이 마주친 직후에 이병렬의 눈을 들여다본 강성태가 스치는 바람결처럼 옅게 웃으며 직전에 있었던 사건이 의도적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었다.

“그런데 치곤이 이 새끼는 왜 안 보여?”

괜히 멋쩍어서, 실제로 안 보이는 최치곤이 궁금해서 이병렬이 건넨 질문이었다.

“섭우가 심부름 보냈다던데?”

신강남파 정말 뺑뺑 돌아가네.

지금 서 있는 곳이 장례식장이고, 조문을 위해 조직들이 줄줄이 서 있는 상황이어서 이병렬은 나오는 웃음을 꿀꺽 삼켰다.

**

최치곤 역시 부상이 심했다. 그러나 그는 승용차의 조수석에 눕다시피 하고서 눈을 한껏 옆으로 돌렸다.

논현동 이면 도로에 있는 고급빌라의 앞이었다.

독일제 승용차가 멈추고 깡패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덩치 셋이 먼저 나오더니 마지막에 김종수가 뒷문에서 내렸다.

“가자.”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말을 뱉은 최치곤은 조수석에서 내려 빌라의 입구로 빠르게 움직였다.

현관을 막아선 최치곤을 본 김종수가 움찔한 다음이었다. 뒤따라 차에서 내린 덩치들과 뒤편 승합차에서 달려온 덩치들이 김종수를 둘러쌌다.

“오랜만입니다, 김 사장님?”

“너? 최치곤? 맞지?”

김종수는 최치곤 정도는 별로 무섭지 않다는 투였다.

“무슨 일로 왔는지 모르겠다만, 오늘은 피곤하니까 다음에 와라.”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아, 그 새끼 참. 야, 인마! 너 조직에 들어와서 청소에 빨래할 때 나는 엔터 대표했었어. 아무리 생활 접었다고 해도 위아래가 있지, 어디에서 어린놈이 깡패 냄새를 풍겨?”

최치곤을 다부지게 꾸짖은 김종수가 차에서 함께 내린 덩치 셋을 돌아보았다. 현관 앞을 막은 최치곤을 어떻게 해보라는 의미였다.

김종수의 시선을 받은 덩치 셋이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이 씨발 새끼들이 진짜 뒈지려고.”

거칠게 욕을 뱉은 최치곤이 대뜸 허리춤에서 회칼을 뽑았다.

“어느 조직인지 모르지만, 생활하는 양반들이면 들어와 봐. 대신 생활하는 놈들이 아니면 너희는 진짜 발목 하나씩 끊어질 줄 알아.”

도베르만처럼 으르렁거린 최치곤이 눈이 하얗게 보일 정도로 살벌한 인상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어디 형님 밑에 계신지 족보 좀 까 봐.”

“저기, 우리가 생활한 건 아니고, 전에 대전에서 덕진이 형님 모시고 잠깐 지냈는데 말이오.”

“그래도 씨발, 개 족보를 파네? 너, 내가 지금 덕진이 형님께 전화해서 확인할 건데 모른다고 하시면 진짜 발목 잘라줄 테니까 어디 보자.”

살인마처럼 보이는 최치곤이 스마트폰을 꺼내 든 순간이었다.

“우리는 김종수 사장님이 부탁해서 함께 다닌 거뿐인데 그게 잘못은 아니잖소?”

“야, 이 개새끼야! 분위기 보면 몰라? 조직 일에 왜 다리 걸치고 깡패 냄새를 풍기냐고 묻잖아?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고? 붙어? 아니면 조용히 꺼질래?”

최치곤이 현관에서 한 걸음을 내딛자 세 놈이 주춤대며 뒤로 밀렸다.

“야, 최치곤! 너 이 새끼?”

“김종수 사장님. 판때기 다 드러났어. 자꾸 염장 지르면 한칼 먹이고 모시는 수가 있으니까 지금은 입 좀 닥치고 계셔. 알았어?”

왜 그런지 독이 있는 대로 오른 최치곤을 김종수도 더는 어쩌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한칼 먹고 가실래요? 아니면 조용히 가실래요?”

여차하면 진짜 회칼을 들이밀 것처럼 달려드는 최치곤을 보며 김종수는 입을 열지 못했다.

“모셔.”

최치곤이 나직하게 건넨 지시에 숙소 덩치들이 그의 양팔을 붙들고 타고 왔던 승용차로 끌고 갔다.

“야! CCTV에 다 찍혔으니까 내가 연락 없으면 신고해!”

차에 타기 직전에 발악처럼 고함을 지르는 김종수를 덩치들이 승용차에 욱여넣었다.

“신강남파 최치곤이다. 이 일로 나하고 마주치면 조직에서 나서서라도 어디 파묻어 버릴 테니까 지금 그 차 끌고 가서 숨죽이고 지내.”

걸음을 옮기던 최치곤이 삐딱하게 고개를 비틀며 아직 서 있는 셋을 노려보았다.

“가자.”

최치곤의 시선을 받은 셋이 어쩔 수 없다는 투로 승용차에 몸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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