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권 - 12화 (324/513)

《324》16권 - 12화

박배근은 2층에 들어서는 무리 중 가장 앞에 선 덩치 둘을 보며 눈매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부산의 주인 조강치는 두 명의 심복을 부렸는데 한 명은 남포동 사시미 서창호, 다른 한 명은 부산항 공구리 장세조였다.

호리호리한 체형의 서창호는 워낙 회칼을 잘 쓰는 데다 찢어진 눈매처럼 성격 또한 잔인해서 그와 붙었던 상대치고 몸뚱이를 온전히 보전한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에 반해 부산항 공구리 장세조는 타고난 장사였다.

체격도 김진용보다 컸는데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나 상대방 조직원들을 커다란 드럼통에 넣고 시멘트로 굳혀 바다에 빠트리는 방법으로 조강치의 눈에 든 인물이었다.

사실 서창호와 장세조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만약 조강치가 없었다면 두 사람은 일찌감치 맞붙었을 정도로 각자 관리하는 구역이 분명했고, 따르는 덩치들 또한 색이 달랐다.

실제로 두 사람의 조직원끼리 심하게 충돌해서 조강치가 불러 무섭게 훈계한 것만 서너 번이 넘을 정도였다.

그런 두 사람이 동시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 올라섰다. 서창호와 장세조를 동시에 앞세울 사람은 대한민국에 조강치 한 사람밖에 없다. 그러니 중간에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는 인물은 의심할 바 없이 조강치였다.

이종환과 유섭우가 덩치들을 세워 길을 지키는 참이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선 서창호와 장세조가 시선으로 가리키자 줄줄이 올라온 부산의 덩치들이 두 줄로 늘어서며 길을 만들었다.

신강남파의 장례식에 와서 이종환과 유섭우를 밀쳐내는 모양새여서 여차하면 주먹이 날아가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무례한 행동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형님.”

앞서 걸어온 서창호가 박배근을 향해 느물거리며 인사를 건넸다. 두 살 차이라 적당히 지낼 만은 한데 고개를 까딱하는 인사는 아무래도 시비조에 가까웠다.

“너는 인사할 줄도 모르냐?”

그래놓고 서창호는 또 이종환과 유섭우를 향해 빈정댔다.

“조문부터 해.”

박배근이 서창호에게 안을 가리켰을 때였다.

“배근이 오랜만이다?”

부산의 주인 조강치가 박배근 앞에 나섰다.

깡패가 아니라 돈 많은 건물주가 조직원을 고용해 데리고 다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의 눈매만큼은 칼잡이 서창호에게 밀리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안녕하십니까? 먼 길 오셨습니다, 형님.”

“배근이 너, 요즘 어린 보스 모신다고 고생한다며?”

입가에 묘한 미소를 그려낸 조강치가 박배근 너머로 시선을 들어서 안쪽을 살폈다.

“광주에서 고생했다는 말은 들었다. 네 자존심에 손가락 받치고 고개 숙인 걸 보면 어린 보스가 제법 하는 모양이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형님.”

길게 대꾸해봐야 남는 건 시비밖에 없고, 그렇다고 조강치와 맞설 것도 아니어서 박배근은 안을 가리켰다.

박배근의 속을 읽었다는 듯 조강치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와 동시에 곁에 있던 서창호와 장세조가 같잖다는 투로 이종환과 유섭우를 돌아보았다.

조강치가 민병련을 끌어안은 건 전국에 생활한다는 덩치들이 모두 아는 일이었다. 그런 뒤에 조태완이 트럭에 받혀 죽을 고비를 넘겼고, 가장 아끼던 김정훈을 잃었다.

조강치가 신강남파와 민병련을 중재하려 했다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조강치는 조태완을 작업했다.

결국, 조강치에게 민병련은 핑계거리에 불과했고, 사실은 신강남파가 움켜쥔 서울의 이권과 신호남파에게서 인수한 카지노 지분을 조강치가 욕심내고 있다는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조강치가 안으로 걷기 시작하자, 입구를 지킨 신강남파 식구들과 부산 덩치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맴돌았다.

“얼굴들 펴라, 얼굴들. 이러다가 장례식에서 생사람 잡겠다.”

서창호가 이종환과 유섭우를 향해 던지는 말투가 다분히 시비조였는데 조강치는 귀를 닫은 사람처럼 안쪽으로 움직였다.

**

가격이 20억 원이 넘는 압구정동의 오래된 아파트였다. 강선영은 여러 다리를 걸쳐 알아본 변호사의 집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강성태 선친의 교통사고를 담당했던 검사로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한 탓에 검찰 내부에서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한 가지만 알아내면 교통사고의 퍼즐이 모두 맞춰진다. 가죽 가방을 옆구리에 끼운 강선영은 와인을 든 손을 억지로 들어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시오?”

“갑자기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선배님. 중앙지검 검사 강선영입니다.”

인터폰 카메라에 신분증을 들이민 강선영이 잠시 기다리자 안쪽에서 도어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편안한 골프복을 입은 노년의 남자가 문을 여는 순간, 강선영은 마치 깡패처럼 상체를 90도로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중앙지검 형사부 검사 강선영입니다.”

“중앙지검 검사께서 이 늙은이에게 무슨 일이오?”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지만, 변호사는 90도로 인사하는 강선영이 밉지 않은 눈치였다.

“사건을 하나 진행 중인데 선배님의 조언이 필요해서 찾아뵀습니다.”

“그래요?”

강선영의 뒤를 돌아보며 혼자 온 것을 확인한 변호사가 몸을 비켜섰다.

“들어오시오.”

“감사합니다, 선배님.”

깍듯하게 인사한 강선영은 들고 온 와인을 변호사에게 건넸다.

“빈손으로 찾아뵙기 죄송해서 준비했습니다.”

“검사가 뭐 이런 걸 들고 와요? 허허허. 얼른 들어갑시다.”

머리에서부터 양동이로 부어대듯 흐뭇함에 흠뻑 젖은 변호사가 강선영을 안으로 들였다.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중앙지검 형사부 검사 강선영입니다. 선배님께 조언을 청할 게 있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뵀습니다.”

“허허. 요즘 검사들은 참 밝아.”

현직 형사부 검사가 찾아주었다는 점을 강조하듯 변호사는 부인을 향해 넉넉한 한 마디를 건넸다. 잠시 인사가 있었고, 이어 부인이 차를 내주었다.

검찰총장부터 고검장, 중앙지검장의 이름을 거론해가며 과거와 현재 검찰 내부의 분위기를 덕담처럼 주고받은 다음이었다.

“그래. 내게 도움을 청할 일이 뭐요?”

변호사가 궁금한 얼굴로 강선영을 보았다.

“오래 전 사건이라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23년 전에 교통사고 사망 사건입니다.”

강선영은 들고 온 가방에서 사건 기록을 꺼내 소파 테이블에 올려주었다.

소파 옆 탁자에서 돋보기를 꺼내 걸친 변호사가 서류를 들어서 내용을 살폈다. 내용을 읽어가던 변호사의 눈매와 표정이 흠칫, 변하는 걸 강선영은 분명하게 보았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네. 그런데 20년도 더 된 이 사건을 왜 우리 강 검사가 다시 수사하나?”

“죄질이 흉악한 범죄자를 하나 잡아넣었는데 과거 살인교사 건이 있다고 협상을 하려는 겁니다. 그러면서 들고 나온 게 이 건입니다.”

무슨 소리야?

변호사의 눈매와 표정이 강선영에게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두 달 전에 성폭행과 살인 혐의로 구속한 놈이 이 사건의 운전사였다면서 일반적인 교통사고가 아니라 살인교사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렇죠, 선배님? 그래서 제가 헛소리하지 말라고 뺨을 갈겼습니다. 그랬더니 가혹 행위로 절 걸었지 뭡니까? 사건이 연순동 부장님과 고강준 고검장님까지 올라가서 징계를 먹게 생겼습니다.”

오래전 사건이 드러난 게 싫었는지, 아니면 강선영의 처지가 안됐다는 건지 알 길은 없지만, 말을 듣던 변호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일종의 도박이었다.

변호사가 아직 검찰 내부에 통하는 검사가 있다면, 강선영의 빤한 거짓말은 바로 들통난다. 그러나 평검사로 퇴직한 데다 세월이 제법 흘러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강선영의 판단이었다.

“당시 조서에 마약과 관련한 공익제보자 교통사고 건이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무래도 인터넷에 오르기 좋습니다. 그래서 찾아뵀습니다. 어떤 종류의 공익제보 건인지만 알면 부장검사님께서 기자들에게 미리 손을 쓰시겠다고, 가서 알아오라고….”

고개를 떨궜던 강선영이 입맛을 다시며 시선을 들었다.

“기자에게 미리 손쓰면 진짜 별거 아닌데 사건 담당자인 제가 내용을 모르니까 변명도 못 하겠고, 피의자는 가혹 행위와 엮어서 인터넷에라도 떠들겠다고 설치고, 부장검사님하고 고검장님은 그러게 왜 그런 놈 따귀를 때려서 일을 키웠냐고 몰아세우고.”

난처한 표정을 짓던 강선영은 별것 아니란 투로 말을 이었다.

“어떤 종류의 공익제보인지만 알면 됩니다. 연순동 부장검사님께 보고만 드릴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글쎄. 그게 워낙 오래전 사건이라.”

말을 자른 변호사가 눈 끝으로 돌아간 눈알로 힐끔 강선영을 살폈다.

“공익제보 건까지 파헤쳤는데 아무 이상 없다고 잘라버리면 다시는 말이 나오지 않을 거 같아서 이렇게 찾아뵀습니다. 새카만 후배지만, 선배 검사님의 이름이 다시 오르는 내리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구요.”

“그럼 내 이름은 그 피의자가 말해줬나?”

“그렇습니다, 선배님. 혹시나 싶어서 사건 기록을 확인했더니 실제로 선배님의 이름이 있어서 이렇게 찾아뵀습니다.”

“흐음.”

마치 과거를 더듬듯 창으로 고개를 돌린 변호사가 잠시 시간을 끌었다. 강선영은 상명하복의 검찰 세상에서 선배 검사를 대하는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 채 변호사의 말을 기다렸다.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말해. 그 공익제보가 뭔지.

마약과 관련된 일인 건 알아.

그 뒤에 숨겨진 내용이 뭔지만 알려줘.

간절한 바람을 삼킨 강선영 앞에서 변호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강치라고 부산 깡패가 있었어. 그 깡패가 어선을 이용해 마약을 밀수한다는 제보를 했었던 거 같은데 그걸 기록에 남기지는 않았지.”

“아! 마약이었군요.”

“당시에는 그런 종류의 밀수가 종종 있었지. 하필이면 공익제보자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기자들이 달려들었던 것도 같네.”

“많이 곤란하셨겠습니다.”

강선영은 변호사의 곤란한 처지를 이해한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후배 검사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말하기는 했는데 이미 변호사도 은퇴한 마당이고, 20년도 더 된 사건이니까 이 일로 이름이 거론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네.”

“절대로 선배님의 이름이 언론이나 다른 쪽에서 거론되는 일은 없도록 제가 분명하게 말하겠습니다.”

“허허. 이렇게 당찬 후배를 보니까 검찰의 미래가 밟은 거 같아서 아주 흐뭇하네.”

넉넉하게 웃는 변호사를 보며 강선영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 않으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드러날 것 같아서였다.

**

대한민국에 이렇게 조직의 숫자가 많다는 사실을 강성태는 처음 알았다.

막말로 이름을 아는 도시마다 하나는 반드시 있었고, 그중에는 라이벌 관계인 상대조직까지 포함해 두세 개의 조직이 있는 곳도 허다했다.

거기에 열 명 남짓한 소규모까지, 그야말로 셀 수 없는 조직이 조문을 위해 찾아왔고, 강성태와 인사를 나눴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춘천 집게파 황일규입니다, 형님.”

김진용이 나서서 소개한 춘천 조직만 벌써 세 번째였다.

“먼 길 와줘서 고맙습니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인사드리고 다음에 제대로 인사 올리겠습니다.”

강성태의 손을 마주 잡았던 덩치가 함께 온 다섯 명과 함께 물러나 상체를 깊게 숙였다.

“청주 파라다이스 이병근 형님입니다, 형님.”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하게 돼서 유감이네, 동생. 언제고 시간 되면 청주에 한 번 들러주시게.”

나이 많은 이병근이 반존대와 함께 손을 내밀어 강성태와 악수를 나눴다.

이병근만 그랬지, 함께 온 덩치들은 한 걸음 뒤에서 상체를 깊게 숙여 신강남파 보스에 대한 예우를 분명하게 보였다.

파라다이스의 보스 이병근이 미리 지시하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을 행동이어서 청주 파라다이스파는 강성태를 인정한다는 의미와 같았다.

김정훈이 유족이라 부를 만한 친척조차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런데도 너무 번듯하게 보여서 오히려 슬프게 느껴지는 김정훈의 사진이 정면 벽에 커다랗게 걸렸고, 그 앞으로 항로와 향만 덩그러니 놓았다.

검은 정장 차림의 덩치들이 길게 늘어서 순서에 따라 앞으로 나섰고, 향을 향로에 넣어 예를 표한 후, 강성태 앞으로 다가왔다.

나이가 제법 있는 인물들은 조태완의 영향력이 워낙 큰 데다, 박노익마저 강성태를 깍듯하게 예우하는 바람에 함부로 설치지 못했고, 그 아래로는 박배근과 조덕진의 얼굴을 봐서 조심했다.

강북대장 장태섭, 국내에선 독자적으로 설친다는 광룡을 정리한 강성태고, 그 이후로 안산, 안중, 천안, 대전, 전주, 심지어 하룻밤에 광주를 손에 넣은 일까지 소문나서 문상 온 덩치들은 알아서 태도를 조심했다.

파라다이스 이병근이 한 걸음 물러나 고개를 반쯤 숙였고, 함께 왔던 덩치들이 다시 상체를 깊숙하게 숙일 때였다.

길게 늘어선 줄을 무시하고 한 무리의 덩치들이 강성태 앞으로 나섰다.

호리호리한 인상에 눈매가 쭉 찢어진 남자, 김진용보다 상체가 더 벌어진 남자, 그리고 나이가 육십쯤 됐을까? 성격 더럽게 생긴 인상의 남자를 향해 줄 서 있던 덩치들이 상체를 깊게 숙였다.

“왼편이 남포동 사시미 서창호, 오른쪽은 부산항 공구리 장세조, 가운데 양반이 깡치 조강치.”

재킷을 매만지는 척 입술이 보이지 않게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이병렬이 빠르게 전해준 말이었다.

민병련을 끌어안았고, 조태완을 작업해 김정훈을 죽인 조강치가 행동대장 둘을 앞세운 채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어떡해서든 보스를 자극할 거야. 지금 들이받으면 명분을 모두 잃어. 그러니까 무조건 참아.”

다시 나직하게 들리는 이병렬의 음성을 들으며, 강성태는 먼저 서창호를 보았고, 이어 장세조, 그리고 가운데 걸어오는 조강치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조강치의 입술 끝이 슬며시 움직였다.

‘적당히 하지? 애송아?’

그의 표정이 강성태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별 같잖은 게.’

서창호와 장세조가 강성태를 향해 분명한 눈빛을 던졌다.

강성태의 앞을 지난 세 사람이 김정훈의 영정 사진 앞에 서자, 칠십 명은 될 듯한 부산 덩치들이 뒤로 줄줄이 늘어섰다.

하얀 장갑을 낀 조강치가 가장 앞에 서서 향을 손으로 집어 든 뒤였다.

“저 씨발….”

내내 참아야 한다던 이병렬이 나직하게 욕을 토해냈다.

향을 집어 든 조강치가 어깨높이까지 팔을 들고서는 장난처럼 뿌리고 있었다.

강성태는 조강치의 뒷모습 위로 올려져 있는 김정훈의 사진으로 시선을 들었다.

‘전국 조직이 모두 보고 있습니다. 지금 조강치 형님을 들이받으면 신강남파는 위아래 없이 전국을 먹으려 한다고 오해받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참으십시오, 형님.’

우직하게 조태완을 챙기던 김정훈의 눈이 강성태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거면 전국 다 먹어버리면 되지.”

“뭐?”

혼잣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이병렬이 짧게 물었을 때, 강성태는 조강치를 보며 옅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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