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권 - 6화 (318/513)

《318》16권 - 6화

제3장. 최금식은 안에 있어?

깊은 새벽이었다.

서라대학병원 앞에 도착한 승용차는 빠르게 달리는 차들을 피하듯 맞은편 탄천공원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밤을 잊은 듯 불을 밝힌 병원과 달리 맞은편의 아파트는 대부분 어둠을 품고 잠이 든 시간이었다.

차에서 내린 김진용은 최치곤과 함께 구석의 벤치로 움직였다.

“그 새끼 이리 데려와.”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숙소 덩치들이 빌라에서 끌어낸 남자를 김진용 앞으로 데려왔다.

키는 작았는데 가슴 부위와 팔뚝이 땅땅한 게 벤치프레스 꽤 들었구나 싶은 체형이었다. 저래놓고 깡패들에게 눌려서 노부모에게 주먹질을 해대는 겁 많은 놈이기도 했다.

“이리 와.”

숙소 덩치들이 둘러싼 안쪽에서 남자는 김진용의 손짓에 따라 쭈뼛거리며 움직였다.

김진용은 그렇게 다가온 남자의 볼살을 엄지와 검지로 꽉 잡고서 서로 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바싹 당겼다.

“너 이름이 뭐야?”

“지성배입니다.”

“뭐야? 너, 사람 새끼였어?”

“아! 아아아!”

김진용이 볼을 비틀자 지성배가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토해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오겠냐? 더 크게 소리를 질러야지.”

“아아!”

볼을 뜯어낼 것처럼 비트는 바람에 실제로 지성배의 고함은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이 새끼가 진짜! 어벙한 척하면서 잔머리를 굴리네? 야! 연장 하나 가져와!”

깨진 머리에 붙인 거즈, 이마와 눈가, 볼, 턱, 목덜미, 심지어 손등에 나 있는 생생한 상처들이 김진용을 무척이나 잔인하고 강렬한 느낌으로 꾸며주었다.

“이리 줘.”

덩치가 내민 회칼의 자루를 왼손으로 움켜쥔 김진용은 볼살을 붙잡힌 바람에 옆으로 기울어진 지성배의 눈을 바싹 들여다보았다.

가뜩이나 천안에서 한바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느물거리던 것과 달리 김진용은 당장에라도 난도질을 할 듯한 눈매였다. 독한 시선을 마주한 지성배의 눈이 방향을 잃은 것처럼 흔들렸다.

주변 불빛만으로도 물결무늬가 선명하게 보일 만큼 날이 바싹 선 회칼을 김진용은 지성배의 눈 바로 앞으로 들이밀었다.

“자신 있으면 얼마든지 소리 질러. 대신 혀를 잘라줄 거니까 그건 알고 질러. 알았냐?”

엄지와 검지로만 잡았던 것과 달리 김진용은 진짜 살점을 뜯어낼 것처럼 지성배의 볼살을 오른손으로 꽉 쥐었다.

“야, 이 개새끼야! 낳으실 제 괴로움을 다 잊으시고는 어머니가 잊는 거지, 너더러 잊으라는 게 아냐. 오히려 너는 절대 그걸 잊으면 안 되는 거야. 알았냐?”

“끄으….”

김진용이 볼을 움켜쥔 오른팔을 위로 들자 까치발을 한 지성배가 대답도, 비명도 아닌 묘한 신음을 터트렸다.

“살을 갈라 아이를 낳는 고통을 모르지? 그래서 내가 배를 가르는 고통이 어떤 건지 직접 느끼게 해줄 테니까 앞으로 절대 잊지 마라.”

말을 마친 김진용은 지성배의 배를 향해 왼손에 든 회칼을 밀어 넣었다.

“끄으윽.”

실제로 배를 파고드는 회칼의 끝을 피해 필사적으로 허리를 뒤로 빼던 지성배가 볼을 움켜쥐고 있던 김진용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 직후였다.

김진용은 붙들고 있던 지성배의 볼을 힘껏 밀었다. 상처가 울린 탓에 김진용이 인상을 버럭 찌푸렸는데 실제로 통증과 고통도 김진용이 더 심한 것처럼 보였다.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김진용은 최치곤에게 눈짓을 건넸다.

최치곤 역시 조직 생활로 따지면 검은 띠를 따고 남을 수준이어서 김진용의 눈짓이 의미하는 점을 바로 알아차렸다.

“아오, 요 씨발 새끼!”

사인을 확인한 최치곤은 쓰러진 지성배에게 다가가 목덜미와 가슴, 배, 허리를 마구 짓밟았다.

“아윽! 윽! 끄윽! 윽!”

“그 노인네 눈가와 목덜미에 손을 대고 싶든? 이 사람 아닌 새끼야?”

짧게 토해내는 비명을 비트 삼아 최치곤은 찰진 욕을 시원시원하게 뱉어냈고, 손으로 막지 못한 부위를 집요하게 밟았다.

잠시 그렇게 바닥에서 몸부림치던 지성배가 축 늘어진 뒤였다.

내내 밟아대는 과정을 지켜보던 김진용이 입을 열었다.

“그 새끼, 숙소로 데려가. 가서 아침, 점심, 저녁, 식후 30분마다 20분씩 두들겨. 사정 봐주거나 친해졌다고 어설프게 굴면 내가 너희를 한 달간 처방할 거니까 알아서 해.”

“예, 형님.”

숙소 덩치들이 묵직하게 대답할 때였다.

라이트 불빛이 일렁이며 탄천공원으로 승용차 여러 대가 들어왔다.

주차장으로 갈 것도 없이 승용차는 곧장 김진용과 최치곤, 덩치들이 있는 앞으로 달려왔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유섭우와 최치곤이 순서에 따라 인사한 다음이었다.

“병렬이 형님께서 상표 데려가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형님.”

“저기 차에 실어뒀다. 가져가.”

“예, 형님. 그리고 병렬이 형님께서 다른 생각하지 말고 얼른 병원으로 돌아가란 말씀 하셨습니다, 형님.”

유섭우의 말을 들은 김진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섭우야.”

그런 뒤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유섭우를 불렀다.

“혹시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그냥 나를 불러. 욕을 먹든, 병렬이 형님께 따귀를 맞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대신 이번 일 확실히 처리해라. 알았냐?”

이광준 때문에 뻑뻑한 상황이 생기면 부르라는 의미였다. 전에 강서구 호텔 레스토랑에서처럼 김진용이 날뛸 테니 악역이 필요하면 맡기라는 당부이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김진용의 뜻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내용을 이해 못 하면 뜬금없이 들릴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긴 유섭우가 몸을 돌렸다.

“나머지는 섭우가 알아서 할 거다. 이제 우리는 병원으로 가자.”

문상표와 조성만을 넘긴 직후였다.

김진용은 지친 얼굴로 힘겨워 보이는 최치곤에게 말을 건넸다.

둘이서 승용차로 걷는 길이었다.

“너 아까 그 아가씨 좋아하지?”

“예? 형님?”

“빌라를 나서는데 멋있게 보이려고 목에 힘을 빡 줬더구만.”

뒷좌석에 오르기 전에 김진용은 답을 하지 못하는 최치곤을 넌지시 보았다.

“전에 병렬이 형님께서 정말 좋아하던 분이 계셨다. 깡패는 절대 싫다고 하는 바람에 형님께서 많이 힘들어하셨지. 그 순간을 지나고 병렬이 형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는데 지금 너한테 꼭 필요한 교훈이 될 거 같다.”

길을 알려주십시오, 선생님!

혼을 빨린 사람처럼 최치곤은 간절한 표정으로 김진용이 전해줄 교훈을 기다렸다.

“여자는 새끼야, 우리 같은 놈들이 무슨 가정을 꾸린다고 여자를 찾아? 그거 나중에 전부 죄 된다. 얼른 정신 차리고 일이나 똑바로 해.”

말을 마친 김진용이 피하듯 뒷좌석에 몸을 실었고, 멈칫했던 최치곤이 씁쓸하게 웃으며 조수석에 올랐다.

**

광주 4개 조직이 약속이나 한 듯, 룸살롱을 운영 중이었다. 그중에 최금식만은 덩어리가 좀 더 있는지 클럽을 소유했는데 말이 클럽이지, 접대부 아가씨들을 고용한 클럽, 또는 춤추는 공간을 꾸민 룸살롱 수준이었다.

강성태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대비했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것처럼 룸살롱 앞쪽을 검은색 승용차로 빽빽하게 막았고, 덩치들 이십여 명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막말로 룸살롱으로 들어가려면 승용차의 트렁크에 먼저 올라간 다음, 이어 징검다리를 건너듯 천장과 엔진룸 위를 달려야 했고, 내려서는 순간, 이십여 명의 덩치들과 싸워야 했다.

유흥가여서 새벽 시간인 데도 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중 몇몇은 궁금하거나 두려운 시선으로 룸살롱 앞을 살폈다.

“제가 알아서 해도 되겠습니까, 형님?”

뒷좌석에 앉은 강성태는 빽빽하게 세워둔 승용차들과 그 앞을 막아선 최금식의 숙소 덩치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조용하게 해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저 모습은 최금식이 일을 크게 만들려고 준비한 장면일 가능성이 높았다.

혹시나 강성태에게 멋진 성과를 보이겠답시고, 너무 요란스럽게 싸울까 봐 걱정됐으나 이미 무등산에서 약속했던 일이었다.

룸살롱을 바라보던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하고 인사한 박배근이 차에서 내렸다.

박배근이 차에서 내린 직후였다.

정영권, 조덕진을 신호로 함께 왔던 신강남파 강남 숙소, 대전, 전주의 덩치들이 룸살롱 건너편에 빽빽하게 늘어섰다.

유흥가 도로가 그렇듯이 폭이 넓지 않아서 드문드문 오가던 이들이 몸을 움츠리며 주변 골목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팽팽하게 맞선 상황이었다.

“오랜만이다?”

그런데도 박배근은 모처럼 룸살롱에 놀러 온 손님처럼 편안한 인사말을 던지며 빽빽하게 막아놓은 승용차로 움직였다.

박배근에게 맡긴 상황이었다.

도움을 청할 때까지 승용차에서 기다리기로 한 강성태는 혹시 모를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 주변을 확실하게 살폈다.

“아무리 날을 들고 마주 섰지만, 학교랑 행사장에서 본 세월이 얼마인데 모른 척해?”

“죄송합니다. 금식이 형님께서 말씀을 주신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룸살롱의 입구를 지킨 덩치는 형님이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예의를 잃지 않은 태도와 음성으로 답을 내놓았다.

“소식 들었겠지만, 보스께서 직접 나서신다는 걸 내가 매달려서 이렇게 나왔다. 다른 놈은 몰라도 너는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니까 동생들 데리고 이만 물러나.”

대뜸 욕을 하며 달려들 줄 알았던 덩치는 뜻밖에도 고민 많은 얼굴로 뒤에 선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너 나, 알지? 내가 원래 명품 좋아하고 나눠 먹는 거 못하는 인간 아니냐? 이런 내가 진심으로 고개 숙이고 모시는 분이 생겼다. 그리고 오늘이 그 보스께 매달려서 받은 첫 일이고.”

전주 바닥에서 먹어준다더니. 이 바닥에서 박배근은 그만한 힘과 연륜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무 연관도 없는 신강남파 건드린 건 금식이다. 상열이랑 양아치 짓 한 건 너도 잘 알 거고. 마지막이다. 얼굴 빤히 아는 너랑 옆에 동생들 다치게 하기 싫으니까 조용하게 물러나.”

넉넉하게 말을 하던 그가 말끝에 쇳소리를 섞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그런데도 입구를 지키던 덩치는 대꾸가 없었다.

“알았다. 너도 입장이 있을 텐데 이해한다. 나중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학교에서 함께 지냈던 세월은 잊지 말자.”

마지막을 예고하는 말을 던진 박배근이 정영권과 조덕진을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앞에 승용차를 넘어오시면 경찰에 신고합니다.”

“뭐?”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덩치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금식이 형님께서 영업방해로 신고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을 전한 덩치의 눈에 수치스러운 기색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래서일까. 신고하겠다는 말이 협박이 아니라 오늘은 치사하게 나올 수밖에 없으니 다음에 오든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강구하라는 조언처럼 들렸다.

“하여간 최금식이 이 양아치 새끼는 상도라는 게 없어.”

갑갑한 듯 속을 터트린 박배근이 덩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 내가 혼자 넘어갈 테니까 신고해. 너랑 내가 경찰서 가면 그 뒤로는 신고할 놈이 없잖아?”

“승용차를 넘어오시면 칼 드려야 합니다.”

“그래. 주라, 칼. 그래야 너도 체면이 서지.”

말을 마친 박배근이 혼자서 승용차의 트렁크에 올라섰다.

룸살롱의 입구를 막아선 덩치의 눈빛을 확인한 강성태는 바로 승용차의 뒷문에서 내렸다.

“박배근! 뭐 하는 거야!”

트렁크를 밟고 승용차의 천장에 올라선 박배근이 강성태를 향해 몸을 돌렸다.

“빵에 있을 때 저를 수발했던 동생입니다, 형님. 조직은 달라도 친동생 같던 놈이고, 사리분별이나 의리도 있는 놈입니다, 형님. 제가 칼 맞는 대신 이놈은 살펴주십시오, 형님.”

박배근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어?

강성태에게 고개를 숙인 박배근이 작정한 얼굴로 엔진룸으로 걸었다.

염병! 가뜩이나 상처가 울리는데!

강성태는 인상을 찌푸리며 박배근을 향해 달렸다.

훅, 트렁크로 뛰어올랐고, 단숨에 엔진룸까지 달려서 막 내려선 박배근의 곁으로 내려섰다.

주춤주춤, 입구를 막아섰던 덩치들이 두어 걸음 물러서서 강성태와 박배근에 대비하는 상황이었다.

“식구들이 달려들면 신고하라고 했답니다, 형님. 제가 이렇게 넘어와야 이 동생이 신고할 수 있으니까 그 뒤에 영권이와 덕진이가 밀어붙이면 됩니다, 형님.”

짧은 말로 박배근은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나이 든 박배근이 젊은 강성태를 조직의 형님으로 대우하는 모습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 외에도 직접 본 강성태의 외모와 태도에 당황하는 느낌도 있었다.

“최금식은 안에 있어?”

강성태의 질문에 답은 없었다. 그러나 덩치의 시선이 “예.”라고 소리친 것만큼이나 또렷하게 답을 하고 있었다.

“신고만 못 하게 하면 되지?”

그런 방법이 있어?

강성태의 질문에 박배근과 입구를 막아선 덩치가 비슷한 느낌의 시선을 동시에 던졌다.

“그건 그렇습니다, 형님.”

박배근의 답이 떨어진 직후였다.

강성태는 박배근이 아낀다는 덩치에게 몸을 돌렸다.

‘설마?’

놈의 눈이 물었고, 대답처럼 강성태가 옅게 웃었다. 그리고.

쩌어어어억!

강성태가 힘껏 뻗은 주먹에 얻어맞은 덩치가 흐물거리다가 뒤로 넘어갔다.

쩌어억! 쩌어어억!

입구를 정면으로 막은 덩치 둘을 쓰러트린 강성태는 곧장 입구의 계단을 향해 뛰어들었다.

“움직이지 마, 이 새끼들아! 충일이가 너희 다치는 거 막으려고 이랬다는 거 몰라!”

달리는 뒤편에서 쇳소리 가득한 박배근의 고함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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