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권 - 19화 (311/513)

15권 - 19화

스마트폰을 귀에 댄 상태에서 조태완은 시선을 앞으로 주었다.

“야! 차 좀 세워봐.”

- 예? 형님?

운전하던 덩치가 룸미러로 시선을 들었고, 조수석에 탄 김정훈이 반문했다.

“사거리 건너서 세우겠습니다, 형님.”

“그냥 세우라고.”

조태완이 버럭 고함을 지른 직후였다. 눈치를 살핀 덩치가 속도를 줄이며 오른쪽을 살폈다.

그 직후였다.

사거리에 들어서던 승용차의 왼쪽으로 거대한 트럭이 달려들었다.

‘뭐……?’

콰자작! 콰자자작!

놀란 조태완이 제대로 돌아보기도 전에 세상 전체가 부서지는 듯한 굉음이 울렸고, 이어 에어백이 터졌으며, 그와 동시에 승용차가 오른쪽으로 빠르게 회전했다.

콰작! 콰드등! 퍼석!

뒷바퀴를 중심으로 커다랗게 돈 승용차는 뒤따르던 승용차의 옆을 때렸고, 다시 튕겨 옆 차선의 승합차를 들이받은 뒤에 멈췄다.

뒷문 유리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쳤던 조태완은 처참하게 좌석 아래로 쓰러졌다.

‘이런 개 같은….’

가물가물한 의식 속에서 조태완은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오르는 신기한 현상을 겪었다.

강성태가 으르렁거리며 세우라고 한 덕분에 살았고, 이게 작업이라면 조강치, 이 개 같은 인간이 꾸민 일이다, 라는 두 가지 생각이었다.

“형님! 형니-임!”

잘게 금 간 유리가 반쯤 떨어져 덜렁거리고, 움푹 찌그러진 차의 바깥에서 뒤따르던 숙소 덩치들이 조태완을 애타게 불렀다.

‘내가 여기서 죽을 줄 알아? 보스에게 미안해서라도 그렇게는 못 해.’

어디를 다쳤는지 피투성이인 팔을 뻗은 조태완은 앞 좌석을 붙잡고 악착같이 몸을 일으켰다.

이를 악물며 상체를 세운 그는 앞니가 드러날 정도로 독기를 피워냈다.

조수석에 앉은 김정훈의 상체가 운전석 쪽으로 기울었는데 축 늘어진 머리와 왼편 얼굴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정훈아.”

힘겹게 불렀으나 아래로 쏟아진 김정훈의 머리칼을 타고 피가 방울방울 떨어질 뿐, 대답은 없었다.

‘죽여버린다. 이 개새끼.’

조태완이 섬뜩한 각오를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비켜!”

퍼석! 퍼서석!

바깥에서 고함이 들리더니 반쯤 깨진 유리를 잡아채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

“끄응.”

조태완은 유리가 떨어져 나간 문틀을 붙들고 그쪽으로 움직였다.

순찰차의 경광등이 요란하게 돌아가고, 멀찍이 사람들이 잔뜩 몰려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당겨!”

덩치 넷이 달려들어 발을 걸고서 찌그러진 문짝을 잡아당겼다.

끄등! 끄드등!

“비켜보세요!”

이번에는 구급대원이 다가와 장도리를 문틈에 끼웠고, 덩치들이 다시 달려들었다.

콰드등.

마침내 문짝이 뜯겨나갔다.

“형님!”

“보스에게 연락해. 나는 전에 병원으로 가겠다.”

“예, 형님.”

살벌한 눈매로 지시했던 조태완이 삶을 다 사용한 사람처럼 고개를 늘어트렸다.

“형님! 형님!”

구급차로 들어 올리는 사이 덩치들이 애타게 불렀지만, 조태완은 눈을 뜨지 못했다.

**

황상열은 수술로 인해 올라온 피멍 탓에 시커멓게 변한 얼굴로 병실에 앉은 네 명을 바라보았다.

“민병련, 이 개새끼가 부산 깡치 형님에게 붙는 바람에 뭐 하나 해보지도 못하고 우리만 신강남파와 피 터지게 싸우게 된 거지.”

황상열을 포함해 함께 있는 다섯 명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최금식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을 내놓았다.

“이렇게 되면 신강남파를 깨부숴도 다시 부산 깡치 형님하고 붙어야 하는데, 그 정도로 일이 커지면 호남과 경상도에 있는 조직은 모조리 빵에 달려간다. 그건 너도 알지?”

최금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황상열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하게 말하자. 우리가 이렇게 힘을 실어준 게 상열이 너의 복수를 해주려는 것도 있지만, 막말로 강성태에게 뺏긴 신호남파 도진이 형님의 지분을 되찾아 오자는 거 아니었냐?”

최금식의 말이 떨어진 직후였다.

“형님?”

수술로 인해 입을 제대로 놀리지 못한 황상열이 서운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불렀으나 최금식은 같잖다는 느낌의 반응을 보였다.

“너도 그래. 어떻게 민병련, 그 새끼 하나 제대로 간수 못 해서 일을 이렇게 만들어? 내가 조만간 태완이 형님하고 연락해서 우리는 손 뗐다고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말을 마친 최금식이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똑똑똑.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정장 차림의 덩치가 급하게 들어왔다.

“뭐야?”

“급한 일이라 그렇습니다, 형님.”

상체를 깊게 숙인 덩치가 빠르게 다가와 최금식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눈가를 좁히며 귓속말을 모두 들은 최금식이 궁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태완이 형님은?”

“일단 구급차에 탈 때까지는 살아있었다는데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는 확인해봐야 합니다, 형님.”

조태완이 일을 당했다고?

황상열과 다른 세 명이 눈알을 굴리며 최금식과 새롭게 들어온 덩치를 바라았다.

“운전하던 신강남파 꼬마하고, 정훈이 형님은 현장에서 즉사했답니다, 형님.”

“강성태는 어쩌고 있고?”

“천안에서 올라간 뒤에 보이지 않는답니다. 대림동 종환이 형님이 신강남파 비상 걸고 대기 중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형님.”

“알았다. 깨진 정훈이 장례식장에 애들 보내서 지켜보게 하고 혹시 다른 소식 있으면 바로 들어와.”

고개를 숙인 덩치가 병실을 나선 뒤였다.

최금식을 비롯해 황상열을 돕겠다던 다른 세 명이 각각 이익을 따지느라 잠시 입을 다물었다.

“태완이 형님이 차를 타고 가던 도중에 트럭에 받혀서 병원에 실려 갔단다. 들었다시피 정훈이가 현장에서 즉사했고. 이거 아무래도 깡치 형님 작업 같지?”

“예, 형님.”

최금식이 물었고, 침대 옆에 앉았던 덩치 한 명이 확실하다는 투로 답을 내놓았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공연히 우리가 누명 뒤집어쓰고 신강남파 애들 맞이하게 생겼는데?”

턱을 쓸어내린 최금식이 황상열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에게 시선을 주었다.

“깡치 형님이 작업 시작했다면, 우리가 끼어들어도 도진이 형님 옛날 지분 찾아 먹는 건 틀렸다. 그러니까 괜히 엉뚱하게 피 흘리지 말자.”

“어떻게 하실 겁니까, 형님?”

“내가 박배근이 통해서 강성태를 만나든가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만약 태완이 형님 장례식이 있으면 거기에서 봐도 되고. 대신 그 전에는 괜히 신강남파 건드리는 일이 없도록 해.”

“그럼 상열이는 어떻게 합니까? 천안 민병련이랑 손잡고 병렬이와 진용이 작업했다는 거 강성태도 다 알 텐데, 우리가 빠져버리면 입장 곤란할 거 아닙니까, 형님?”

질문을 받은 최금식은 간절한 표정의 황상열을 먼저 돌아보았다.

“지금 우리가 상열이 뒤 닦아줄 때냐? 나는 일단 신강남파랑 잘 지내는 쪽으로 가닥 잡을라니까, 상열이 돕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편한 대로 해. 강성태와도 각자 만나서 푸는 거로 하고. 이제 갈 길 가자.”

말을 마친 최금식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같이 가시죠, 형님.”

“저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형님.”

뻔한 핑계를 내세우며 다른 두 명이 최금식을 따라 병실을 나선 뒤였다.

“상열아. 너 타던 그 승용차 말이다. 당분간 못 쓸 텐데 그거 내가 좀 타자.”

“예? 형님?”

“뭘 못 알아들은 척해? 육 억짜리 승용차 있잖아? 그거 내가 좀 타자고. 너는 어차피 당분간 못 끌잖아.”

“너무하십니다, 형님.”

“어차피 주차장에 세워놓을 거, 뭐 그리 욕심을 부리냐? 알았다. 내가 더러워서 안 탄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한 명은 세상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병실을 나섰다.

**

수술실 앞은 벽에 붙여놓은 벤치 하나가 전부였다.

환자의 가족이나 보호자를 위해 조금 떨어진 곳에 대기실이 있었는데 벽에 걸린 모니터에 이름과 나이, 그리고 수술중, 회복중 등의 안내가 떠올라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있게 해놓았다.

병원에 온 신강남파의 숫자가 워낙 많았다.

정영권이 숙소 식구들을 데려와 주변을 철저하게 막았는데, 그는 의자를 따로 준비해 수술실 앞에 두었다.

강성태와 이병렬이 앉았고, 이종환부터 유섭우, 권영진, 그 아래로는 전부 서서 수술 결과를 기다렸다.

숨소리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흐를 때였다.

“형수님께서 오셨습니다, 형님.”

권영진이 다가와 상체를 기울이고는 나직하게 소식을 알려주었다.

강성태는 먼저 이병렬을 돌아보았다.

‘가봐. 여기는 내가 지킬게.’

‘부탁한다.’

몸을 일으킨 강성태는 권영진을 따라 대기실 쪽으로 움직였다.

차분한 상의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오세아가 강성태를 향해 먼저 고개 숙였다. 짧게 고개를 숙인 강성태는 주변을 둘러본 뒤에 오세아에게 다가갔다.

오세아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쪽은 자리가 마땅치 않으니까 여기 대기실에 계시다가 결과가 나오면 나오십시오.”

강성태는 텅 빈 대기실을 가리킬 때였다.

“잠시만 조용하게 드릴 말씀이 있어요.”

오세아가 눈물을 가득 머금은 눈으로 입을 열었다.

평소 긴 대화를 해본 적 없는 오세아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나온다면 분명 특별하게 할 말이 있다는 의미여서 강성태는 대기실을 돌아보았다.

“대기실에서 해도 되겠습니까?”

유리 부스로 돼 있어서 들여다보이기는 하지만, 나직하게 주고받는 말이 밖으로 새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강성태의 제안을 들은 오세아가 대기실을 향해 움직였다.

정영권이 문을 열어주어서 먼저 오세아가 들어섰고, 강성태가 그 뒤를 따랐다.

조태완의 생사가 걸린 수술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지금 이렇게까지 따로 할 말이 뭐가 있을까?

“늘 지금 같은 순간을 염려하고, 또 대비하셨어요. 그래서 교통사고나 다른 일을 당해서 의식을 찾지 못하게 되면….”

감정이 올라오는지 오세아는 말 중간에 입을 가리며 눈물을 삼켰다.

“깨어나지 못하면 그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이 있어요. 그러니까 혹시 나쁜 결과가 나오면 꼭 저를 먼저 만나주세요.”

말을 마친 오세아의 커다란 눈에서 거짓말처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일어나실 겁니다. 강한 분이신 데다, 사고 후에 제게 연락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지켜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보스께 얼마나 감사하셨는지 몰라요. 또 형님이라고 불러주셨다고 제게 자랑도 많이 하셨구요.”

오세아를 통해 조태완의 속마음을 전해 들은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흔들리는 감정을 억눌렀다.

“이곳에 계십시오. 수술 끝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조태완이 남긴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백 번 듣는 것보다는 조태완이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일어나서 투덜대주기를 더 바랐다.

대기실을 나선 강성태는 먼저 기다리던 정영권에게 시선을 주었다.

“여기 두 명 세워.”

“알겠습니다, 형님.”

진통제 효과가 끝났는지 걸음을 내디디거나 상체, 팔을 움직일 때마다 살점을 뜯어내는 듯한 통증이 달려들었다. 강성태가 이 정도라면 이병렬 역시 힘들게 버티고 있을 게 분명했다.

강성태가 수술실을 향해 몸을 돌릴 때였다.

“형님.”

등 뒤에서 정영권이 나직하게 불렀다.

고개를 돌린 강성태의 시선 앞에서 박노익이 무거운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박노익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강성태의 인사를 받았다.

“수술중이라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생 몸은? 태완이 형님이 그걸 많이 걱정하시던데.”

“괜찮습니다. 수술실 앞에 의자가 있으니까 그쪽에서 기다리시죠?”

“흐음.”

나직한 숨을 내쉰 박노익이 강성태를 따라 수술실 앞으로 움직였다. 수술실 앞에 서 있던 이종환, 유섭우, 숙소 식구들이 줄줄이 인사할 때였다.

“병렬아.”

강성태가 부르자 몸을 세운 이병렬이 박노익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예상대로 이병렬은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몸도 안 좋은 사람이 왜 이러고 있어?”

“괜찮습니다. 앉으십시오, 형님.”

이병렬이 자리를 권하자 덩치가 조심스럽게 움직여 의자를 하나 더 가져다주었다.

“보스가 가운데 앉는 거야.”

강성태를 가운데 자리에 앉힌 박노익이 왼편 의자에 앉았고, 남은 오른쪽 의자에 이병렬이 자리했다.

“나 때문이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박노익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을 내놓았다.

“깡치 형님의 과거 특기가 트럭으로 작업하는 건데 10년 넘게 그런 일이 없어서 더는 이런 짓을 안 한다고 방심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강성태는 뭔가가 멱살을 움켜쥐는 듯한 느낌에 박노익을 향해 눈가를 좁혔다.

“건물 새로 올렸다고 그 자리에 보스를 초대했었거든. 아직 여유가 있어서 답을 일주일 정도 뒤에 한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이거 방심하게 해놓고 작업한 거 같다.”

속았다는 사실에 분해서 그런지, 박노익은 살기마저 감도는 눈빛이었다.

“자세한 건 더 알아봐야겠지만, 만약 깡치 형님이 그랬다면 경상도 선배를 떠나서 이번 건은 내가 갚아주마.”

박노익이 섬뜩한 각오를 내놓은 직후였다.

수술실의 자동문이 열리며 수술복 차림의 의사 두 명이 밖으로 나왔다.

강성태를 따라 몸을 일으킨 이병렬, 박노익이 급하게 의사에게 다가갔다.

“조태완 환자 보호자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수술복 모자를 벗은 의사가 답을 한 강성태에게 시선을 주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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