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권 - 18화
제6장. 태완이 형님이 당했다.
작은 체격과 백발, 명품 옷, 일명 ‘깡치’라 불리는 조강치는 올해 쉰아홉 살로 첫인상은 성질 더러운 부자 영감이지, 전혀 조직의 두목으로 보이지 않았다.
거슬리는 상대방을 반드시 제거하는 독한 성품, 그의 지시에 따라 작업한 칼잡이나 덩치를 끝까지 뒤봐주는 치밀함, 마지막으로 고개 숙이고 들어온 사람을 확실하게 움켜쥐는 수완, 그는 그렇게 부산을 장악했고, 이어 경상도를 호령하는 인물이 되었다.
“내가 젊을 때, 부산항은 세관으로 들어오는 게 절반이라면 나머지는 전부 밀수로 들어왔다.”
해운대가 내려다보이는 최고급 호텔의 특실에서 조강치는 과거를 회상하는 노인처럼 말을 꺼냈다.
“일본에서 시계, 담배, 마약 같은 걸 집채만 한 그물에 담아 오면 우리 어선이 그걸 받아오는 거야. 간혹 검문에 걸릴 때도 있었는데 배 밑에 매단 그물까지는 안 뒤졌지. 뒤진다고 해도 돈 먹이면 적당하게 넘어가는 거고.”
말을 마친 그가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달았다.
“돈이 되니까 온갖 잡놈들이 다 달려들었거든. 그놈들? 배 갈라 죽였고, 바다에 던져 고기밥 만들고, 트럭으로 받아서 문지르고, 전부 그렇게 해결했다.”
“대단하십니다, 형님.”
테이블 맞은편에 있던 민병련이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깊숙하게 숙였다.
“가끔 타고 난 놈들이 있다. 그런 놈들은 감당이 안 돼. 그럴 때는 먼저 주변을 치는 거지. 이번에 네가 한 것처럼. 그것까지는 좋았다.”
느긋하게 말을 하던 조강치가 같잖다는 투로 민병련을 돌아보았다.
“네가 실수한 게 뭔지 아냐? 어차피 밀어버릴 거면 일단 문지르고 봐야지 뭐 한다고 어설프게 건드렸냐는 거다. 괜히 독만 올려놨잖아. 독을. 네가 드러나기 전에 트럭으로 갈아버리든가 해서 몇 놈 먼저 해결했어야지.”
“기껏 작업했다가 실패하면 뒷감당을 어떻게 하나 싶어서…. 생각이 짧았습니다, 형님.”
“멍청하기는.”
인상을 찌푸렸던 조강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초대했으니까 지금쯤 마음을 놓았을 거다. 방심하는 거지. 방심. 이럴 때 차로 서너 놈 갈아버리면 아차 할 텐데 그렇다고 당장 나한테 달려들지도 못해. 무슨 말인지 알겠냐?”
“예, 형님.”
“네가 생각하기에 지금 신강남파에서 가장 중요한 놈이 누구냐?”
“그야 강성태란 놈 아니겠습니까, 형님?”
“쯧쯧.”
조강치가 혀를 차는 모습에 민병련은 바로 고개를 움츠렸다.
“그놈을 잡자고 주변을 먼저 친다니까. 그러니까 그럼 다음으로 중요한 놈이 누구냐고?”
“이병렬이라고 친구놈이 있습니다, 형님.”
“모자라다, 모자라다, 너 같은 돌대가리는 처음 본다. 그러니 어설프게 건드려서 조직 와해됐지. 조태완. 조태완을 먼저 갈아야 신강남파는 대가리가 없어져. 알겠냐?”
“예? 형님?”
“조태완이 시작이다. 그놈만 죽으면 신강남파는 계파로 갈라져서 반쯤 무너진다. 알았냐?”
“역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형님.”
상체를 깊게 숙이는 민병련을 보며 조강치는 야비한 미소를 그려냈다.
**
서울에 도착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 바람에 방지병원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퇴근했다던 유헌우가 스태프들과 함께 달려 나왔다.
“원장님! 안쪽에 병렬이 먼저 살펴주세요.”
도움받지 않고 차에서 내리는 강성태를 확인한 유헌우가 스태프들과 함께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팔 뻗을 수 있어요? 여기 잡아요.”
이병렬의 상체를 안다시피 꺼낸 유헌우는 곧바로 이동용 침대에 그를 눕혔다.
뒤에 들어선 승용차에도 두 팀이 달려가 김진용과 최치곤을 꺼내고 있었다.
전에 치료한 상처가 낫지 않은 이병렬이 또다시 회칼에 찔리고 베인 데다, 쇠파이프와 배트에 맞아 돌아온 꼴이었다.
응급실로 급하게 움직일 때였다.
“죄송합니다.”
“하늘의 뜻이라고 봅니다.”
강성태가 나직하게 미안함을 표시했는데, 유헌우는 심오한 표정으로 이해하지 못할 답을 내놓았다.
“성태 씨. 응급수술을 감당할 인원이 세 팀밖에 없어요. 성태 씨는 저쪽에서 치료합시다.”
말을 마친 유헌우가 이병렬의 수술실로 향했다.
얼핏 들으면 강성태를 홀대하거나 가볍게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수술실에 들어가지 않았다뿐이지, 강성태에게도 세 사람의 응급실 스태프가 매달렸다.
안면이 있는 스태프들이 먼저 상처를 살핀 뒤에 엑스레이를 여러 장 찍었다.
“엑스레이로 봐서 다행히 뼈는 이상 없습니다. 상처를 소독하고 봉합할 테니까 조금 참으세요.”
스태프의 말대로 회칼에 갈라진 상처를 소독하고 봉합하는 데 대략 30분쯤 시간이 흘렀다.
“고생하셨어요.”
“할 일을 한 건데요. 주사가 다 들어갈 때까지 움직이지 마세요.”
치료를 마친 스태프들이 나간 다음이었다.
응급실의 침대에 앉은 강성태는 이병렬의 수술실이 있는 방향을 보며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스태프들의 표정이나 움직임을 봐서 이병렬과 김진용, 최치곤, 세 사람 모두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은 눈치였다.
됐다. 이 정도면.
이병렬과 김진용이 무사히 돌아왔고, 최치곤 역시 생명에 지장이 없으며, 넷이서 천안 역전파를 부쉈으니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그런데도 강성태는 어쩐지 찜찜한 기운이 아직 어깨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었다.
혹시 응급실로 호남 조직의 덩치들이 뛰어드나?
잠시 고민하던 강성태는 바지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냈다.
나중에 후회하느니 이종환에게 연락해서 숙소 덩치들을 부를 생각이었다.
막 번호를 찾을 때였다.
수술복 모자를 벗은 유헌우가 커튼 안으로 들어왔다.
“고생하셨어요. 병렬이는 어떻습니까?”
“다른 곳은 괜찮은데 어깨 부위의 근육을 심하게 다쳤어요. 완치 후에도 힘을 못 쓰거나, 심한 경우에는 수전증 등의 후유증이 올 수 있는데 일단 지켜봐야 알 수 있습니다.”
말을 하는 동안에도 유헌우는 강성태에 관한 차트를 들어 내용을 확인했고, 이어 벽에 걸린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이 정도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잠시 후, 유헌우가 안도하는 얼굴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예. 그런데 아까 하늘의 뜻이란 말씀은 뭡니까?”
“하늘이요?”
“병원에 도착했을 때요. 하늘의 뜻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말씀하셨던 거요.”
“아, 그거.”
헐렁한 수술복을 입은 유헌우가 별것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돈이 좀 아쉬워서 어떻게 하나 싶었거든요. 그때 성태 씨가 전화한 겁니다. 현금 환자가 네 명인데 다행히 안 박사님이나 안 선생을 부를 정도는 아니라니까 이게 하늘의 도움이구나 싶었습니다.”
이런 양반에게 질문한 게 잘못이지.
나직한 한숨이 나오는 답변이었으나, 이럴 때는 그저 많이 독특한 인물이려니 하고 넘기는 게 속 편한 일이었다. 다만, 이 정도 병원을 운영하는 그가 왜 돈이 아쉬웠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강성태의 표정에 담긴 의문을 알아보았을 텐데도 유헌우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에 미식축구 선수처럼 상체를 붕대로 칭칭 감은 이병렬이 커튼 안으로 들어왔다.
“성태 씨. 오늘 치료와 지금까지 입원실 사용료, 중간 정산 좀 부탁합시다.”
“알겠습니다.”
“현찰인 거 알죠?”
짧은 당부를 던진 유헌우가 커튼을 나섰다.
“저 양반은 정체가 뭐냐?”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이병렬이 질문을 던졌는데 강성태는 어깨만 들썩였다.
“몸은 괜찮아?”
“진통제를 얼마나 넣는지 몇 번이나 토했다. 심했으면 휠체어 태워서 병실로 데려갔을 텐데, 왼쪽 팔만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게 다였어.”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저기 말이지, 달수한테 가는 건 다음에 하자.”
이병렬이 가라앉은 눈으로 요청을 내놓았다.
강성태는 대답 대신 이병렬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강성태의 부담을 덜어주고 난 뒤에 혼자 조용하게 다녀올 얼굴이었다.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 서달수를 찾지 말라고 하는 건 이병렬에게 너무나 잔인한 일이었다.
“내가 아까 차에서 말했지? 나 보내놓고 달수한테 갈 생각인가 본데 헛소리하지 말고 함께 가.”
“보였냐?”
“그냥 쓰여 있다.”
강성태의 대답에 이병렬이 멋쩍게 웃었다.
“아르윈에게 옷을 좀 구해오라고 할 테니까 병실에 가서 잠깐만 기다려.”
“그럴 게 뭐 있어? 병실에 정장하고 셔츠 몇 벌 있으니까 그거로 갈아입으면 되지. 전에도 내 거 입었잖아?”
“그게 아니고.”
차라리 솔직하게 숙소 식구들을 부르겠다는 말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우우웅.
손에 들고 있던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짧게 울었다.
어쩐지 치료받는 내내 찜찜했던 내용을 받은 듯해서 강성태는 서둘러 액정을 확인했다.
김정훈이 보낸 문자였다.
[태완이 형님께서 달수를 찾아가신다고. 지금 나오십니다.]
급하게 보낸 느낌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가장 앞에 ‘김정훈입니다.’라고 입력하거나 끝내기 전에 적어도 한 번은 ‘형님’이라는 호칭이 들어있어야 했다.
“태완이 형님이 지금 달수에게 출발한다는데? 잠시만.”
이병렬에게 내용을 설명한 강성태는 곧바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강성태입니다.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김정훈을 생각해서 강성태는 문자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 나? 지금 달수에게 가고 있지. 병원에서는 뭐래?
“저랑 병렬이는 치료 끝났습니다. 진용이와 치곤이도 위험한 상태는 아니고요. 그보다 오늘은 아무래도 달수에게 못 갈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다음에 함께 가시죠.”
말을 건넨 강성태는 이병렬에게 눈짓을 던졌다. 다른 생각이 있어서 이런다는 의미였다.
- 내가 보스에게 강남과 영등포를 차별하지 말라고 해놓고, 정작 달수가 있는 곳에 안 갔더라고. 보스가 오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고 출발한 거니까 부담 갖지 마.
조태완의 말이 건너온 직후였다.
더컹. 더컹. 더컹. 더컹.
악몽에서 들었던 바로 그 소리가 스마트폰을 타고 넘어와 강성태의 귀를 파고들었다.
고작 소리뿐이었다.
그것도 스마트폰을 타고 넘어온.
그런데 회칼이 파고드는 것처럼 심장이 뻐근했고, 숨이 턱 막혔다.
- 힘들 테니까 우선 쉬어. 다녀와서 연락할게.
이대로 전화를 끊으면 조태완은 죽는다.
운명이, 감각이, 그동안 고통만 주었던 악몽이 강성태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태완이 형님?”
강성태는 억지로 숨을 들이마시며 조태완을 불렀다.
고통을 이기려는 눈빛과 급한 표정의 강성태를 이병렬이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혹시 걱정돼서 그런 거면 일주일은 안심해도 돼. 내일 말할까 해서 뒀는데 부산 깡치 형님이란 양반이 초대장을 보냈거든. 그 양반에게 답을 줄 때까지는 괜찮아.
더컹. 더컹. 더컹.
저 소리가 끝나면 조태완은 죽는다.
“저와 약속한 거 기억하십니까? 어떤 경우에도 안전에 관한 한 제 말을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제가 아이, 형수님, 형님을 지킵니다. 지금이 그때입니다.”
뜻밖의 말이라서 그런지, 조태완의 답은 없었다.
“앞에 사거리를 지나기 전에 차를 세우세요. 지금은 무조건 제 말에 따라줘야 합니다. 얼른요.”
- 허참.
조태완의 답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규칙적으로 들리던 소리가 끊겼다.
“제발 좀 차를 세우시라고요!”
이제는 독기마저 담아 강성태가 으르렁거린 직후였다.
- 야! 차 좀 세워봐. 그냥 세우라고.
조태완의 음성이 들렸고, 그 직후에,
콰자작! 콰자자작!
끔찍한 소리가 스마트폰을 타고 달려들었다.
귀를 파고드는 충돌음에 강성태가 스마트폰을 내린 바람에 이병렬도 들은 모양이었다.
“뭐야?”
마른침을 삼키는 강성태를 보며 놀란 질문을 던졌다.
통화를 지켜보고 있어서 상황을 얼추 짐작하는 눈치였다.
“형님? 형님?”
스마트폰을 든 강성태가 불렀는데 답은 없었다.
“병렬아! 얼른 정훈이한테 전화해 봐.”
짧게 지시한 강성태는 빠르게 이종환의 번호를 눌렀다.
고작 신호음 두 번 울리는 시간이 마치 1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 이종환입니다, 형님.
“태완이 형님이 당했다. 강남, 영등포 할 것 없이 부를 수 있는 모든 식구들 대기시키고, 가장 빨리 도착할 수 있는 식구 스무 명만 방지병원으로 보내.”
- 예? 형님? 예! 바로 보내겠습니다, 형님.
당황해서 반문하기는 했지만, 이종환은 바로 답을 내놓았다.
통화를 마친 강성태가 시선을 들었을 때, 스마트폰을 귀에 댄 이병렬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끄응.”
강성태는 몸을 돌려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팔에 꽂힌 주삿바늘을 뽑았다.
“주차장에 권총 가진 필리핀 조직원들을 둘 테니까, 숙소 식구들 올 때까지만 이 안에 있어.”
“너는?”
“아르윈하고 움직일게. 출발한 지 얼마 안 됐어. 태완이 형님 집에서 달수에게 가는 길 방향에 있는 다리나 지하차도 근처인 거 같으니까 우선 출발해서 찾아보려고.”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내가 렉카하는 애들하고 경찰에 부탁하면 장소를 더 빨리 찾는다.”
강성태가 답을 하기도 전에 붕대만 감은 이병렬이 움직였다.
말린다고 들을 이병렬이 아니었다.
강성태도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부상이 있어도 달려갔을 게 분명했다.
상체에 붕대만 감은 강성태는 비슷한 몰골의 이병렬과 함께 응급실 밖으로 움직였다.
주차장 벤치에 있던 아르윈이 빠르게 달려왔다.
“조직원들더러 우리 숙소 식구들 올 때까지 여기 지키라고 해. 다른 놈들이 오면 방아쇠 당겨서라도 안에 진용이랑 치곤이 지키라고 하고. 서둘러. 바로 출발해야 돼.”
“예, 형님.”
강성태는 타고 왔던 승용차의 뒤로 움직였다.
통화하는 모양인지 스마트폰을 귀에 댄 이병렬이 강성태의 맞은편으로 몸을 실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