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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권 - 17화 (309/513)

15권 - 17화

고통에 몸을 비트는 신부동의 건너편 침대에서 조문섭은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하는 눈치였다.

뒤통수가 두툼하도록 붕대를 감은 조문섭은 자대 배치를 받은 신병처럼 정자세로 앉아 팔까지 뻗은 자세로 긴장을 타고 있었다.

신부동을 내려다보던 이병렬이 몸을 돌리자, 조문섭의 머리가 움찔했다.

“달수 찾아가서 만난 적 있지?”

“예, 형님.”

겁에 질린 만큼 조문섭의 음성은 공손했다.

“두 놈이었다고 들었는데 다른 놈은 누구냐?”

“예? 형님?”

“진용아. 이 개새끼 발목 하나 썰어.”

이병렬의 냉정한 지시에 김진용은 거침이 없었다.

“광주 영광이랑 함께 갔었습니다, 형님!”

김진용이 걸음을 채 내딛기도 전에 고함을 지른 듯한 조문섭의 답이 있었다.

“무등산 식구 오영광이 말이냐?”

“예, 형님.”

이제야 윤곽을 확실하게 알겠다는 듯 이병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일식집에 갔었다고 들었는데 뭘 부탁하려고 우리 달수를 부른 거냐?”

“예? 형님?”

“그런데 이 개새끼가?”

최치곤의 손에서 쇠파이프를 뺏어 든 김진용이 정자세로 앉아 있던 조문섭의 등판을 세차게 갈겼다.

부으응! 퍼으윽!

덩치가 커다란 김진용이 남은 힘을 모두 쏟아붓다시피 내리친 매질이었다.

불에 올린 오징어처럼 몸을 비틀던 조문섭은 꺽꺽대는 소리만 토해냈다.

“만나서 뭘 부탁하려고 한 거냐?”

“빨리 대답 안 해? 이 개새끼야?”

“업장을…. 서울에 업장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답을 내놓는 조문섭을 향해 이병렬은 같잖다는 투로 웃었다.

“야, 이 개새끼야. 달수 또래인 네가 광주 오영광이랑 둘이서 업소를 차린다고? 이 새끼가 나를 완전히 일삼오칠구로 보네? 진용아?”

“그게 아니고, 형님.”

팔까지 들어가며 말할 시간을 달라고 매달린 조문섭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광주 쪽 큰형님께서 스폰서를 구하셨다고, 형님. 일단 서울하고 천안에 업장을 만들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조직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밀어주는 거니까 능력껏 차려보라고 하셔서 달수 만났었습니다, 형님.”

조문섭을 전혀 모르는 강성태가 보기에도 거짓말로 들리지 않았다.

적당히 하고 그만 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더 달려올 놈들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칼에 찔리고 갈라진 이병렬과 김진용, 최치곤의 상태가 걱정돼서였다.

강성태의 걱정을 알아차렸을까?

“너는 뒤통수 갈라진 거로 용서하마. 하지만 네 입에서 또 한 번 달수 이름이 나오면 너는 무조건 죽는다. 알았어?”

“감사합니다, 형님.”

이병렬은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런 뒤에 몸을 돌린 그가 강성태를 빤히 보았다.

“뭐 해? 내려가자?”

병원에 들어서던 강성태의 말투를 흉내 낸 권유였다. 기가 막혀 하는 강성태를 향해 피 묻은 이병렬의 눈 끝이 웃고 있었다.

일단 함께 있는 세 사람의 치료가 급했다.

지금은 씩씩하게 버티고 있지만,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통증이 심해질 테고, 쇼크가 올 수도 있었다.

강성태는 검사실을 나서 곧바로 계단으로 향했다.

벽에 튀어 아래로 길게 늘어진 핏자국, 구석에 널브러진 덩치들, 처절한 싸움의 흔적이 가득한 계단을 내려갔다.

로비는 좀 더 처참한 모습이었다.

깨진 유리, 거칠게 붓을 놀린 듯 끌린 핏자국, 여기저기 고인 피, 아직 쓰러져 있는 덩치들, 그리고 강성태를 보며 질린 기색으로 물러나는 덩치들까지, 그 사이를 뚫고 강성태는 곧장 병원 현관을 나섰다.

강성태가 계단을 내려서자 바깥에 있던 덩치들이 피투성이인 팔을 감싼 채 좌우로 벌어졌다.

역전파 덩치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이었다.

“아르윈!”

정문을 향해 고개를 돌린 강성태는 커다랗게 아르윈을 불렀다.

그 직후였다.

두 대의 승용차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왔고, 앞쪽에서 내린 아르윈이 고개를 숙였다.

“치곤이가 몰고 온 차를 맡아줘. 진용이가 가져온 차를 운전할 조직원도 필요하고.”

“예, 형님.”

지시를 이해한 김진용이 아르윈에게 차 키를 건네주었다.

“진용아. 치곤이랑 그 차 타고 방지병원으로 와.”

“알겠습니다, 형님.”

느긋하게 행동하고 있는데도 역전파 덩치들은 기가 꺾인 모양으로 달려들지 못했다.

아르윈이 차의 뒷문을 연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병원 입구에 몰려 서 있는 역전파 덩치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신부동과 조문섭으로 끝낸다. 하지만, 이 싸움은 민병련이 주저앉을 때까지다. 천안 역전파 민병련에게 대가리 잘 감추고 있으라고 전해. 신강남파를 상대로 얼마나 버티는지 볼 테니까.”

경고를 던진 강성태는 곧바로 차에 몸을 실었다.

감동한 얼굴로 강성태를 지켜보던 이병렬이 옆자리에 올랐고, 김진용과 최치곤은 필리핀 조직원이 운전하는 이병렬의 승용차로 움직였다.

아르윈이 병원을 빠져나오면서 김진용과 최치곤이 탄 차가 따라붙었고, 그 뒤로 필리핀 조직원이 몰고 온 승용차 두 대가 꼬리를 물었다.

“방지병원 알지?”

“예, 형님.”

목적지를 정해준 강성태는 차의 뒤편에서 티슈를 꺼내 이병렬에게 내밀었다.

“어떻게 된 거야? 오늘 멕시코 회장님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 건설 맡으려면 꼭 만나야 하는 양반 아냐?”

“그게 걱정되는데 이런 짓을 해?”

퉁명스러운 강성태의 질문에 이병렬이 멋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침부터 이상하게 달수 생각이 나더라. 그런 상황에서 진용이 타깃 삼으려고 달수를 입에 담았다니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강성태 역시 느꼈던 감정이라 다른 말을 하기 어려웠다.

“달수 건에 진용이 엮이니까 절대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거 알겠어?”

“몸은?”

“이까짓 거야 뭐.”

허탈한 느낌으로 웃은 이병렬이 상처를 내려다보았다.

“어쩐지 달수를 그렇게 보낸 벌을 받는 느낌이어서 차라리 속은 편했다.”

“상처 먼저 치료하자. 그리고 아무리 늦더라도 오늘 달수에게 다녀오자.”

상처를 내려다보던 이병렬이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다. 달수를 가장 먼저 찾아갔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여태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씨발. 냉정한 보스가 됐다고 좋아했더니 차 문을 열어주지를 않나,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지 않나, 내가 완전히 잘못 알았던 거네.”

감정을 감추고 싶은 이병렬이 툴툴댄 뒤에 픽 웃었다.

“그건 그렇고. 그 부자라는 양반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만나서 의논은 해야겠고, 너한테도 가야겠는데 방법이 있어야지. 그냥 드라이브하자고 우겼다.”

“이걸 믿어야 하는 거야, 뭐야?”

황당해하는 이병렬에게 강성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잘됐지, 뭐. 멕시코에 건설 공사가 있잖아. 그 공사의 발주자가 곤잘레스 회장이라는 건 어느 정도 소문을 퍼졌으니까 그분을 팔아. 그 양반 때문에 천안에 갔던 거지. 갔다가 들렀는데 네가 당하고 있었던 거고. 이 정도면 명분은 충분하지 않냐?”

갸웃했던 이병렬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치료하고 달수 보러 가자니까.”

“그거 말고. 호남 조직이 뒤에 붙은 거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이번 일을 어떻게 처리할 거냐고?”

“네가 알아서 해. 천안이랑 전쟁을 하든, 뒤에서 협상을 하든, 네가 알아서 진행해. 호남도 마찬가지고. 대신 오늘처럼 붙게 되면 반드시 날 불러. 가능하면 아흐레 안에 끝내고.”

“아흐레? 아홉 밤?”

“말 배우냐? 아홉 밤이 뭐냐?”

강성태의 농담에 이병렬이 장난스럽게 눈매를 비틀었다.

“열흘 뒤에 마카오에 가야 돼. 그전에 대강이라도 끝내.”

“마카오는 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퇴근 시간이 끝나지 않아서 내려올 때보다 고속도로가 꽤 막혔다.

마침 아르윈도 있어서 강성태는 보리스 파리오와 삼합회를 깨부수려 한다는 계획을 느긋하게 들려주었다.

“금방 돌아오겠지만, 가능하면 출국 전에 이번 일을 정리하는 게 좋아. 아! 그리고 한 가지만 더.”

궁금한 눈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는 이병렬을 향해 강성태는 주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중2병 걸렸냐? 무슨 비련의 주인공이야? 둘이서 죽을 자리 찾아가는 거 좀 유치하다는 생각 안 들었어?”

“야, 이…!”

“같이 하자, 좀! 그러자고 함께 지내는 거 아니었냐? 명분을 뺏기게 생겼으면 의논해서 방법을 찾아야지, 고작 생각해 낸 게 죽을 자리에 회칼 들고 달려가는 거야?”

“알았다.”

“에이, 이 중학생.”

“알았다니까.”

투덕거리는 강성태와 이병렬 앞에서 핸들을 붙든 아르윈이 웃음을 삼키고 있었다.

**

통화를 마치고 채 내려놓기도 전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조태완은 과중한 업무에 빠진 사람처럼 지친 기색으로 스마트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박노익입니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어디까지 들었어?”

- 보스가 천안 역전파를 깨부쉈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소문은 파다하게 퍼졌는데 내용을 정확하게 아는 놈은 없어서, 신강남파가 대형 버스 세 대를 동원했다는 놈도 있고, 보스 혼자서 백 명을 쓰러트렸다고도 하고, 믿을 만한 말은 없었습니다.

카페처럼 꾸민 1층의 공간이었다.

골치 아픈 얼굴로 눈가를 문지른 조태완이 앞에 놓인 빈 유리잔을 두들겼다.

“천안 역전파 민병련 알지?”

- 예, 형님. 행사에서 몇 번 봤습니다.

답을 한 조태완은 신부동과 조문섭이 김진용을 찾아간 내용부터 오늘 있었던 일, 그리고 지금 네 사람이 모두 방지병원에 있다는 사실까지 감추지 않고 전해주었다. 그사이에 김정훈이 홍삼 달인 물을 담은 유리잔을 가져와 그의 앞에 내려주었다.

- 보스는 괜찮습니까?

“병렬이, 진용이, 치곤이는 몇 군데 칼을 먹었는데 보스는 크게 다치지 않은 모양이다. 대신 파이프로 맞은 곳이 많아서 엑스레이 검사를 했다고 들었다. 다른 말 들은 건 없어?”

- 민병련이 호남에 있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형님.

“그 개새끼.”

- 신강남파가 민병련 잡으려고 칼잡이 풀었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입니까, 형님?

박노익의 말에 조태완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거? 보스가 역전파 놈들 두들기고 나서 다음은 민병련 차례니까 고개 처박고 잘 숨어있으라고 해서 나온 말 아닌가 싶다. 신강남파 상대로 얼마나 버티는지 보겠다고도 했고.”

- 어지간해서는 그런 말 안 했을 텐데 화가 많이 난 모양입니다, 형님.

“우리 보스가 좀 다르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유리잔을 들어 홍삼 물을 들이켠 조태완이 입가를 손으로 닦았다.

“이권이고 뭐고 식구들 건드리는 꼴을 못 보는 성격인데 하필 아픈 손가락인 달수에 병렬이, 진용이를 건드렸잖냐. 민병련, 이 모자란 새끼가 사자 입에 대가리를 넣은 뒤에 수염을 당긴 꼴이지.”

말을 마친 조태완이 다시 잔을 잡을 때였다.

- 저기, 형님. 부산 깡치 형님이 조금 전에 전화했었습니다.

“깡치? 부산항 조강치 형님 말이냐?”

- 예, 형님. 이달 말에 건물 올린 기념으로 자리 마련할 텐데 신강남파 보스와 함께 내려오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형님.

“후-.”

- 아무래도 민병련이 그쪽에 매달린 건 아닌가 싶습니다, 형님.

짜증이 버럭 올라온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던 조태완이 또다시 “후-.” 하며 답답한 속을 토해냈다.

“거기 호남 식구들도 다 올 거 아냐? 깡치 형님이 중재하는 데 말 듣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작업하겠다는 거잖아?”

- 깡치 형님이라면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그렇게 하실 겁니다, 형님.

“아니, 씨발. 그 정도 나이 먹었으면 은퇴를 하든가 하지, 왜 다 늙어서 오라 가라야? 아, 이거. 자칫하면 호남하고 경상도를 한꺼번에 상대하게 생겼네.”

상대한다고 표현했지만, 말을 뱉은 조태완이나 맞은편에서 듣고 있는 김정훈 모두 신강남파 홀로 호남과 경상도 조직 전체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조직원들의 숫자만 따져도 너끈히 열 배 이상의 차이였다. 다르게 표현하면, 호남과 경상도의 독종과 칼잡이만 골라도 신강남파 조직원의 숫자와 비슷할 정도라서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플 일이었다.

“일단 보스가 일이 많아서 그렇다고 핑계 대고 며칠 정도만 시간 끌어봐.”

- 일주일 정도는 제가 알아서 끌겠습니다. 의논하셔서 결정되면 연락 주십시오, 형님.

“그럴 게 아니라 내일 시간 되면 나랑 같이 보스를 보자. 어때?”

- 내일은 아무 약속도 없습니다, 형님.

“알았다. 연락할게.”

긴 통화를 마친 조태완은 더러운 물건을 내려놓듯이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툭 던졌다.

“허, 참. 우리 보스 성향으로 봐서 언제고 한 번씩은 부딪칠 거라고 짐작이야 했지만, 이런 식으로 한꺼번에 감당하게 될 줄은 몰랐네.”

소파의 팔걸이에 양팔을 걸친 조태완이 갑갑한 심정을 혼잣말로 토해냈다.

“가만?”

그러던 그는 생각난 게 있다는 투로 고개를 들었다.

“보스가 달수에게 간다고 하지 않았냐?”

“병렬이 형님 치료 끝나는 대로 움직이신다고 들었습니다, 형님.”

“그렇지? 그럼 나도 그리 가야겠다. 준비해.”

조태완의 지시를 받은 김정훈이 곤란한 얼굴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왜 그러고 있어? 얼른 준비해.”

“저, 형님. 성태 형님께서 며칠 동안은 외출을 삼가시라고….”

“보스를 보러 간다는 거 아냐? 헛소리 말고 준비해.”

“예, 형님.”

조태완을 감당하기 어려운 김정훈이 마지못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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