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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권 - 6화 (298/513)

15권 - 6화

토막잠에 익숙한 응급실 의사답게 그 짧은 잠에도 안다미는 피곤을 어느 정도 풀어낸 얼굴이었다.

“나 때문에 밖에 있었어요?”

“그냥요. 오랜만에 별을 보는 것도 좋구요.”

승용차의 앞쪽을 돌아 다가온 안다미가 강성태의 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기하죠? 밤이면 저런 별이 항상 있었던 건데 도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잖아요.”

왼편에서 오른편을 쭉 둘러보던 안다미가 손가락으로 하늘 한 곳을 가리켰다.

“저 별이 우리 성태 씨 별쯤 될까요?”

닭살이 돋는 질문을 던진 안다미가 강성태를 향해 심술궂게 눈을 흘겼다.

“표정이 그게 뭐예요? 하여간 분위기를 몰라.”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까지 말해줘야 알아요?”

유쾌함을 만들어내는 이 강단이 힘든 응급실 생활을 버텨내는 힘이고, 강성태를 선택해서 계속 곁을 지켜주는 원천일지 모른다.

고마워서, 그리고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서, 강성태는 안다미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그녀의 입술에 고개를 숙였다.

풀벌레 소리, 푸른 산의 냄새, 그 속에서 안다미의 숨결과 입술의 부드러움을 느끼며 시간이 흘렀다. 고개를 든 강성태는 안다미를 품고서 그녀의 머리칼과 등을 쓰다듬었다.

“첫 번째 데이트로 나쁘지 않네요.”

시선을 들었던 안다미가 방향을 돌려서 강성태의 품에 등을 기댔다. 안다미에게 다가서는 축축함과 서늘함을 막는 것처럼 강성태는 등 뒤에서 손을 뻗어 그녀를 안아주었다.

“서운하지 않아요?”

“이 멋진 밤하늘을 선물해줬잖아요. 아픈 아이를 외면하지 않는 성태 씨라서 더 좋았어요.”

둘이서 함께 쏟아질 듯 가득한 하늘의 별을 둘러본 다음이었다.

“여기 있어야 하죠?”

안다미가 물었고,

“한 시간쯤 뒤에 서울에서 연순동 중앙지검 형사부장과 그 부인이 내려오거든요. 만나서 정리할 일이 있습니다.”

강성태가 아쉬운 음성으로 답했다.

“중앙지검 형사부장이요?”

고개를 돌리는 안다미의 놀란 눈을 향해 강성태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피해자들이 이학의와 합의한 건 아시죠? 그 일을 마무리하러 오는 거니까 걱정할 것 없습니다.

“한 시간 뒤라고 했죠? 그 사람들이 오면 나 먼저 올라갈게요.”

대답 대신 강성태는 안다미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을 더 주었다. 일이 꼬이려고 그랬겠지만, 아무튼 이선정이 날뛰면서 서울에 함께 올라갈 기회마저 완전히 날려버린 게 몹시도 서운했다.

**

조태완은 스마트폰을 들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가 온다고 했다니까 틀림없겠지. 아까 봤을 때 이선정이라는 년이 가진 걸 뺏겠다고는 했는데 정확하게 뭘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 그 여자 남편이 연순동이라고 중앙지검 형사부장입니다.

“그야 알지. 그 미친년도 그걸 믿고 설쳤을 테고. 하여간 있는 것들이 더해.”

- 보스가 다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게 걱정입니다.

박노익의 걱정을 들은 조태완이 재미있다는 투로 웃었다.

“염려할 거 없어. 괜히 설쳤다가 따귀나 처맞고 가겠지.”

- 따귀요? 아무리 그렇다고 중앙지검 형사부장의 따귀를 때리겠습니까?

“더 대단한 인간들도 따귀를 맞았는데 그것들쯤이야 뭐.”

- 예? 형님?

“그런 게 있어. 이쪽에서 일 끝나면 전화해 줄 테니까 너무 염려하지 마.”

-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할 일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형님.

“그래. 들어가.”

조태완이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다음이었다.

“경찰서에 갔던 동생들 셋이 모두 나왔습니다, 형님.”

기다리고 있던 김정훈이 바깥의 상황을 나직하게 전달했다.

“고함치는 건 자정까지만 해. 애들은 계속 깔아두고.”

“예, 형님.”

지시를 마친 조태완은 조금은 지친 얼굴로 옆에 앉아 있던 조철호를 돌아보았다.

“중앙지검 형사부장을 오라, 가라,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 그런 거 보면 나하고는 그릇 자체가 다른 거지. 내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던 거야.”

뒤늦은 감상처럼 조태완은 혼잣말을 쏟아냈다.

**

자정에서 20분이 더 지났을 때, 연순동의 번호가 액정에 올라왔다.

- 군청 앞의 공용주차장이오.

“사람을 보낼 테니까 잠깐 기다려.”

- 알았소.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최치곤의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치곤아. 연순동이 도착했다니까 군청 앞으로 가. 가서 아까 거기로 데려가. 아, 참. 혹시 모르니까 병렬이가 가지고 다니던 의자 있잖냐. 그것 좀 챙겨주라.”

- 오케이. 너는 그리 바로 올 거야? 저쪽에서 다미 씨를 봐서 좋을 거 없잖아?

최치곤의 질문을 들은 강성태는 아차 하는 얼굴로 안다미를 돌아보았다.

“그러네. 어떻게 하지?”

- 국도에서 밀동으로 들어오는 길 있지? 그리로 와. 내가 너 태워서 연순동에게 함께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최치곤의 제안이 나쁘지 않았다.

“그럼 지금 밀동 읍내로 갈 테니까 입구에서 보자.”

- 다미 씨 있을 객실 하나 챙겨?

“아니. 지금 먼저 서울로 갈 거야.”

통화를 마친 직후였다. 지켜보던 안다미가 시동을 걸었다.

“밀동 군청 가는 길에서 만나기로 한 거죠?”

“예. 밀동으로 꺾는 곳이요.”

어스름하게 내린 밤안개가 비처럼 차창에 매달린 탓에 안다미가 와이퍼를 움직였다. 운전하기는 불편하겠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처음보다 규모가 커진 거죠?”

“예?”

“성태 씨가 처음 몸담겠다고 할 때보다 조직 규모가 커진 거 아니에요?”

“그때보다는 확실히 커진 거 같습니다.”

질문에 답을 건넸을 때, 안다미가 승용차를 한쪽으로 세웠다. 그와 동시에 맞은편에서 라이트를 번쩍이는 승용차 세 대가 달려와 도로를 가로질러 뒤편에 줄줄이 섰다.

“조심해요. 서울에 오면 전화하고요.”

“늦게 끝나면 내일 오전에 문자 하겠습니다. 내리지 마세요.”

서운함은 같았다. 함께 차 안에 있어서, 그리고 시선으로 공유하는 감정이라 강성태와 안다미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강성태의 손등에 손을 얹고서 장난치듯 문지른 안다미가 코를 찡긋하며 웃었다.

“갑니다.”

비슷하게 웃은 강성태는 조수석에서 내려 뒤편으로 시선을 주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인사하는 최치곤과 덩치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다음이었다. 시선을 내린 강성태는 먼저 출발하라는 투로 안다미를 향해 손짓을 건넸다.

부으으응.

안다미의 흰색 승용차가 도로를 가로질러 서울 방향으로 움직였다. 멀어지는 승용차를 잠시 바라보던 강성태는 뒤편으로 움직였다.

“의자는?”

“커피도 준비했어.”

“커피를?”

“그래도 호텔이라고 보온병이 다 있더라고. 거기에 아메리카노 잔뜩 담아서 트렁크에 실어뒀어. 컵도 챙겼고.”

“잘했다.”

강성태에게 바짝 붙어서 편하게 대화를 나눈 최치곤이 뒷문을 닫아준 뒤에 조수석에 올랐다. 그리고 승용차가 곧바로 출발했다.

여러 설명할 필요 없이 밀동은 작은 동네였다. 안다미를 보낸 서운함을 수습하는 짧은 사이에 승용차는 군청 앞의 커다란 나무 로터리를 돌았다.

연순동을 찾아 두리번거리거나 전화할 필요도 없었다. 가로등 두 개가 외롭게 켜져 있는 군청 앞의 공용주차장에 진청색 독일제 승용차가 라이트를 켠 채 서 있었다.

“치곤아.”

강성태가 부르기 무섭게 최치곤이 조수석에서 내렸다. 그가 진청색 승용차의 운전석으로 가는 동안, 강성태는 창문을 내려 얼굴을 드러냈다.

“이 차를 따라오십시오.”

불편한 기색으로 최치곤을 보았던 연순동이 시선을 돌려 강성태를 확인했다.

따라오기 싫으면 돌아가고.

강성태는 의미가 확실한 표정으로 창문을 올렸다.

아쉬울 거다. 그래서 더 아니꼬울 테고. 적당히 넘어가 주었으면 싶을 텐데, 불행하게 강성태는 그럴 마음이 깨알만큼도 없었다.

“너희가 가장 뒤에서 따라와!”

뒤쪽 차에 지시한 최치곤이 조수석에 타고나서 승용차가 다시 움직였다.

5분쯤 국도를 달린 승용차는 바로 산길로 들어섰다.

밀동에서 살며 외부로 나가지 않는다면 1년 내내 차를 이용해도 주행거리 2, 3천 킬로미터를 넘기 어려울 거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이 뒤뚱거리며 달린 승용차가 낡은 카페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최치곤이 뒷문을 열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멈춰선 독일제 승용차 운전석에서 연순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다미와 있을 때는 이슬비처럼 운치 있게 느껴지던 습기가 지금은 몸을 적시는 눅눅함과 질척임으로 다가왔다.

“치곤아, 의자.”

“예, 형님.”

확실히 최치곤은 이런 면에서 생각이 빨리 돌았다. 덩치 두 명과 트렁크로 움직인 최치곤이 접이식 의자 세 개와 지시하지 않았던 간이 테이블까지 가져와 강성태의 앞에 놓았다.

“앉으십시오, 형님.”

연순동에게 보란 듯이 고개를 숙인 최치곤이 시선을 돌려 덩치에게 눈짓을 건넸다. 시선을 받은 덩치 한 명이 다가와 상체를 깊게 숙인 뒤에 보온병과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중앙지검 검사가 보기에는 눈에 쥐 나는 장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연순동은 묵묵한 태도로 강성태 앞으로 다가왔다.

“앉아.”

그런 뒤에 허락을 기다렸던 사람처럼 맞은편에 앉았다.

자동차의 라이트 불빛에도 또렷하게 드러나는 손자국을 뺨에 지닌 연순동이 품에서 반으로 접은 서류 봉투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봉투를 내려다본 강성태는 시선만 들었다.

“합의서…요.”

통화할 때와 달리 마주하고 나서는 반존대가 쉽게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연순동의 말끝이 묘했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성의를 봐서 집사람 건은 이 정도에서 넘어가 주면 어떻소? 그에 대한 보상은 따로 하겠소.”

참 편하게들 산다.

나직하게 한숨을 내쉰 강성태는 우선 서류 봉투를 집어 들었다.

“박노익에게 주기로 했던 2억에 2억 원을 더 드리겠소. 이런 곳까지 달려온 성의를 봐서 그 정도에서 넘어가 주시오.”

아직 시동이 걸린 채로 서 있는 독일제 승용차를 돌아본 강성태는 연순동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학의에게 당한 선생님들 말이야. 그분들의 간절함이 당신 부인보다 더했을 거 같은데 그때는 어떻게 처리했어?”

“그 죄로 장인어른은 정신이 혼란한 상태에서 응급수술에 들어갔고, 나 역시 수모를 당하면서….”

말을 하다 맞던 순간이 떠올랐는지 숨을 한번 조절하고서야 연순동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와서 사정하는 거 아니오? 그러니….”

“여기까지 와준 것도 대단한 일이니까 그냥 봐달라?”

강성태는 고개를 비틀며 잠시 시간을 끌었다.

“이렇게 하자. 내가 10억을 주지. 현금으로. 부인을 여기에 두고 서울로 올라가.”

연순동은 울컥한 눈으로 강성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그는 서둘러 시선을 떨궜다.

“내 목숨을 노린 건 4억으로 되는데, 워낙 고귀한 분이라 10억으로 안 되겠어? 좋아. 20억으로 하자. 내 목숨값의 다섯 배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강성태는 다시 입을 열었다.

“궁금해서 그런데 내가 4억 원이면 여기 서 있는 식구들의 목숨값은 얼마라고 생각하냐? 보스가 아니니까 한 1억쯤 하나? 아니면 5천?”

질문을 던진 강성태는 보란 듯이 픽 웃었다.

“컴퓨터 게임하냐? 보스급은 4억, 뒤에 서 있으면 5천에서 1억, 이사장 딸이고, 부장검사의 부인이 되면 20억, 계산 확실해서 좋다.”

말문이 막혔는지 연순동은 꺼진 듯한 눈빛으로 듣고만 있었다.

“나도 하나, 너도 하나, 차 안에 부인까지 모두 하나뿐인 게 사람 목숨이다. 그래서 가진 놈이나 없는 사람이나 하나밖에 없는 삶이고. 네가 아무리 검사라고 해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짓밟을 권리는 없어. 그런데 이사장 딸이고 검사 부인이라서 날 노린 걸 그냥 넘어가라고?”

“그런 게 아니라….”

“약을 이용해 성폭행하려는 걸 알고서도 부하 여검사를 주점에 두고 갔었지? 그 여검사의 목숨값은 얼마나 하냐? 1억? 2억?”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소?”

더는 견디지 못하겠다는 것처럼 연순동의 음성이 높아졌다.

“최치곤. 회칼 하나 가져와.”

“예, 형님.”

움찔하는 연순동 앞에서 회칼을 꺼낸 최치곤이 간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손가락 하나 놓고 가. 그럼 봐줄 테니까.”

강성태가 나직하게 조건을 내놓는 직후였다.

연순동의 뒤편에 서 있던 승용차 안에서 이선정이 운전석으로 움직였다.

“저기 승용차 못 움직이게 앞뒤로 막아.”

“예, 형님.”

상황을 알아챈 최치곤이 뒤를 받친 덩치들을 돌아보았다.

“막아! 얼른!”

“예, 형님.”

연순동이 고개를 돌렸고, 달려간 덩치들이 승용차 운전석에 올라탔을 때, 독일제 승용차가 부응, 하며 앞을 돌렸다.

부아앙. 콰자작.

재빠르게 달려든 승용차가 이선정이 움직인 독일제 차량의 앞을 세차게 들이받았고,

콰자자작.

잇따라 또 다른 승용차가 뒤편을 강하게 받았다.

운전석에 있는 이선정은 완전히 얼이 빠진 얼굴로 핸들을 붙들고 있었다.

“이게 네가 말하는 사과하는 사람의 자세냐?”

“그거야 칼을 내놓으니까 그런 거 아니오? 장소도 이렇게 험하고.”

연순동을 본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너무 같은 말을 해서 지겨운데 한 번 더 해주마. 다른 사람의 목숨을 노리려면 네 목숨이 끊길 수 있다는 것도 알아둬. 내 목숨 대신 손가락 하나 달라는 건데 그것도 못 받아들이겠어? 그럼 내 방식대로 해주마.”

어떻게 하려고?

놀라는 연순동의 시선 앞에서 강성태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치곤아. 운전석에 있는 여자 데려와.”

“예, 형님.”

강성태가 지시했고, 최치곤이 답할 때였다.

“거기 가만 안 있어?”

최치곤을 향해 형사부장 검사의 위엄을 짜낸 음성으로 연순동이 으르렁거렸다.

웃기지도 않는다.

최치곤을 한 번 더 노려본 연순동이 재빠르게 시선을 내려 강성태의 오른손을 확인하고 있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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