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 - 13화
응급치료를 마친 이학의의 왼쪽 눈알은 핏물이 올라와 붉게 물들었고, 검붉은 멍이 올라온 볼은 볼거리에 걸린 아이처럼 퉁퉁 부었으며, 입술은 엄지손가락을 붙여놓은 양, 두꺼웠다.
사람 몸이란 참 신기해서 따귀는 왼쪽만 맞았는데 오른쪽까지 똑같이 부어올라서 베개 위에 놓인 게 이학의의 머리인지 수박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얼굴은 몰라도 부러진 뿌리가 남아서 오늘 밤이라도 치과 응급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만 가봐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옹알이처럼 의사에게 나가란 말을 건네는 순간, 이학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관자놀이를 타고 베개를 적셨다.
차마 더는 권유하지 못한 의사가 나간 다음이었다.
방에 들어온 이선정이 질린 얼굴로 이학의에게 다가왔다.
“그놈은 뭘 하고 있냐?”
“그놈이요?”
고개를 들이밀었던 이선정은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껏 한 번도 연순동을 ‘그놈’이라고 부른 적 없던 이학의가 눈알로 바깥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강 씻은 뒤에 계속 전화를 돌리고 있어요. 그건 그렇고, 알아봤더니 강성태란 깡패가 대단한 모양이에요.”
“뭐어?”
이름만 말했을 뿐인데도 화들짝 고개를 든 이학의가 통증을 이기지 못해 손으로 볼 근처를 감쌌다.
“혹시 건드렸냐? 연락했어?”
“아니에요.”
“하우.”
도대체 얼마나 당했으면 이름만 듣고도 이렇게 놀랄까.
의아해하는 이선정의 시선 앞에서 안도의 숨을 내쉰 이학의가 베개에 머리를 눕혔다.
“그래서 말인데요. 고검장이라고 해도 총장한테는 안 되는 거 아니겠어요? 한 다리 건너면 되니까 연결해 보시면 어때요?”
“네 남편이 검사다. 그놈들 한통속인 게 어디 하루 이틀이냐? 한 다리 건너서 청탁해봐야 고검장이 나서서 검찰을 바로잡네, 비리를 정리하겠네, 한마디면 알아서 하랄 인간이 지금 총장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당하고만 있어요?”
파르르 떠는 딸을 노려본 이학의가 고개를 저었다.
“가서 그놈이나 오라고 해.”
“예.”
더는 어쩌지 못하는 이선정이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나간 뒤였다. 이번에는 왼쪽 눈 주변이 판다처럼 변한 연순동이 방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저, 저 모자란 인간.
왼쪽 뺨에 인쇄해놓은 것만큼이나 선명한 손자국을 지닌 연순동을 보자, 얌전히 고개를 떨군 채 강성태가 말하는 대로 따라 하던 모습이 떠올랐고, 그 순간 이학의의 눈에서 불똥이 탁 튀었다.
참아야 한다.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합의는? 그걸 먼저 해결해야 해.”
“안 그래도 명단을 추려서 전화하던 중이었습니다.”
“돈이 얼마가 들던 오늘 밤 안으로 다 받아와. 그렇게라도 이번 일을 넘겨놓고 방법을 찾자. 알았냐?”
이학의가 힘겹게 내놓은 지시였다. 그런데 연순동은 그 말을 삼켜버린 두꺼비처럼 답을 내놓지 못했다.
“왜? 못 하겠어?”
“그게 아니라 두 명과 통화했는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버님께서 직접….”
“직접 뭐? 속 터져서 죽기 전에 얼른 말 못 해?”
“직접 무릎 꿇지 않으면 합의는 절대 없다고….”
“이런 미친년들이…! 아흑.”
소리를 지르던 이학의가 왼쪽 뺨에 손을 올리고는 물 밖에 던져진 악어처럼 몸을 비틀었다.
“네가 가! 형사부장 검사라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것 아니냐. 가서 무릎을 꿇든 발을 핥든, 합의서를 받아와.”
“제가 갔다가 녹취라도 당하면 사건 덮었다는 증거까지 내놓는 꼴이 됩니다.”
“그럼 이 몰골로 내가 가랴? 내가 가? 내가 가면 녹취가 안 된다든?”
답답한 심정이 머리끝까지 올라온 이학의가 또다시 볼에 손을 올리고 몸을 비틀었다.
“가서 도의적 책임 때문에 이런다고, 법은 몰라도 검사라는 직책으로 미안해서 합의하는 거라고 둘러대. 서둘러.”
“예.”
이학의의 눈에서 불꽃이 피어난 걸 보고서야 연순동이 답을 내놓았다.
“얼른 안 가?”
연순동을 내보낸 이학의는 천장을 향해 시선을 들었다. 그러자 이상하게 또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맞아서 그런가, 술에 잔뜩 취했다가 일어난 것처럼 정신이 멍했고, 얼굴 전체를 뾰족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욱신대는 통증이 이학의를 괴롭혔다.
몸뚱이의 고통은 그렇고, 정작 이학의의 눈물을 뽑아내는 건 이런 억울한 순간에 힘쓸 곳이나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는 비애였다.
검찰에 연락해야 아까 말한 대로 고검장의 뜻대로 흘러갈 테고, 정치권은 이우섭을 누를 만한 인물이 없으며, 방송은 또 소신영을 넘보기가 어려웠다.
“하흐흐.”
묘한 신음을 토해낸 이학의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
조태완과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곧바로 곤잘레스 이두안의 번호를 찾았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라네. 자네가 다시 방문하든, 전화로 알려주든, 확실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기 전까지 나는 내가 했던 말을 철회하지 않을 걸세.”
문 앞까지 배웅하며 그가 했던 말이었다.
지금 번호를 누르면 당분간 소진강, 고강준, 이우섭을 손아귀에 쥘 테고, 조태완과 박노익이 바라던 일을 들어줄 수 있으며, 바르지오 만시니와 존 보스만의 요구까지 해결한다.
강성태의 어깨에 엄청난 짐이 얹어지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안다미와 꿈꾸는 미래가 험난할 수도 있었다.
고민해도 결과는 같았다.
어둠에 몸담은 상태에서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소아처럼 억울한 사람들의 울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리고 그 뒤에 들어올 마약을 막기 위해.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던 강성태는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세 번쯤 울린 뒤였다.
- 여보세요?
곤잘레스 이두안의 대꾸가 있었다.
“강성태입니다.”
- 거절하지는 않겠지?
확신한 듯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당당하게 건넨 그의 음성 아래에 강성태가 거절할지 모른다는 염려가 살얼음처럼 깔려있었다.
“공사를 맡을 건설사를 제가 정해도 되겠습니까?”
- 내가 지금까지 간절하게 바라던 답일세. 담당 임원의 연락처를 문자로 보낼 테니 선정하고 싶은 건설사에 전하게. 나머지는 우리 쪽에서 알아서 하지.
행여나 말이 바뀔 것을 염려하는 사람처럼 곤잘레스 회장은 막힘없이 절차를 내놓았다. 강성태는 연락처만 전하면 끝나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영어로 하는 통화였다.
소신영이 궁금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강성태의 말을 하나씩 곱씹으며 내용을 짐작하려 애쓰는 눈치였다.
“큰 권한을 주신 점에 감사합니다.”
- 권한만 가는 게 아니라고 미리 말했었네. 보리스 파리오와 중국의 탐욕을 잘 정리해주게. 그럼 기쁜 마음으로 건설사의 연락을 기다리지.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하던 일은 아니지만, 큰 권한을 쥐게 되었고, 그 덕분에 얻는 것과 책임져야 할 일이 늘어났다. 또한, 문어발처럼 손을 뻗은 삼합회와 제대로 맞붙게 되었고.
우우웅.
정적이 흐른 상태에서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짧게 울었다.
짐작하지만, 그래도 확인한 문자에는 ‘제임스 튜드’라는 이름과 연락 번호가 찍혀 있었다.
이걸 소신영에게 그대로 넘기면 분명 사방에 뿌려대며 힘을 과시하려 들 게 분명했다.
“아까 조건 기억하지?”
강성태는 시선을 들고서 소신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과 통화했다. 아까와 말했던 이면계약을 작성하면 컨소시엄에 넣어주지. 그전에 만날 생각도 있고. 하지만 우리 쪽 변호사와 이면계약을 작성하는 게 먼저야. 그걸 협의한 뒤에 연락해.”
“말이 그런 거지, 이면계약의 내용이 너무 일방적이잖소?”
상황과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소신영의 한결같은 모습에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3년이다. 3년만 얌전히 따르면 이면계약은 없던 일로 해주지. 어나니머스가 세 사람을 압박하는 일도 다시는 없을 테고, 거기에 영상도 모두 파기한다. 됐지?”
“3년? 3년이라고 했소? 그것도 공증해줄 수 있소?”
“이면계약도 그렇지만, 나중에라도 공증 내용이 알려지면 곤란한 건 내가 아닐 텐데? 원한다면 해주지.”
“크흠. 공증은 생각해 보고 답을 드릴까 하는데 어떻소?”
“편한 대로.”
답을 마친 강성태는 몸을 일으켰다.
오후 2시여서 아직 시간 여유가 있었다.
**
조태완은 머리꼭지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들뜬 상태였다.
언제고 냉정함을 유지하던 강성태였다.
실력은 또 어떤지, 신강남파에 흡수된 덩치치고 강성태를 존경하지 않는 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강성태가 조태완과 박노익의 체면만은 세워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주었다. 그것도 형님의 체면이라고 직접 표현했다.
아무리 들떴더라도 조태완은 처세의 달인이었다.
흥분한 상태에서 전화하면 실수가 생기고, 들뜬 상태에서 설치다 보면 과한 말을 쏟아내서 가벼운 사람이 된다.
홍삼 달인 물을 두 잔이나 마시고, 스무 번쯤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조태완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누구보다 조태완을 잘 아는 오세아가 맞은편에서 빙그레 웃었다.
“왜?”
“오빠 눈이 웃고 있어요.”
“눈이 어떻게 웃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었으나 확실히 조태완의 눈에는 독한 기운이 담기지 않았다.
“중요한 전화 같으니까 들어가 있을게요.”
“들어도 괜찮아.”
“저는 모르는 게 좋아요.”
몸을 일으킨 오세아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최근에는 오세아의 손아귀에 올려진 느낌이 자주 든다는 생각에 조태완은 쓴 입맛을 다셨다. 그러면서도 손을 놀려 번호를 눌렀다.
- 박노익입니다, 형님.
“점심은 했지?”
-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갈비탕 먹었습니다, 형님.
“그랬나?”
갈비탕이면 어떻고, 도가니탕이면 또 어떠냐.
“내가 보스하고 조금 전에 통화했거든.”
- 뭐랍니까, 형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체면이 망가지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느냐면서 곤잘레스 회장이란 분과 의논하고 연락해 준다더라고. 그 뒤에 건설사 만나보자고.”
- 제 사정도 좀 말씀해주시지요, 형님?
“아무렴 동생을 빼놓겠어? 통화 끝에 넌지시 말했지. 그랬더니 태완이 형님이 그렇게 신경 쓰시는데 노익이 형님을 어떻게 빼놓겠냐고 하더라고.”
- 정말입니까? 정말 그렇게 말했습니까, 형님?
“그렇다니까. 흐하하하하.”
조태완이 통쾌한 웃음을 터트린 다음이었다.
“큰형님. 성태 형님께서 앞에 도착하셨습니다.”
현관에 들어선 김정훈이 나직하게 강성태의 도착을 알렸다.
“보라니까. 보스가 이리 왔네. 내가 이야기 끝내고 바로 연락할 테니까 일단 입단속 해. 혹시 연결할 수 있더라도 보스 체면에 손상 가지 않도록 제대로 된 건설사를 섭외하고.”
- 앞뒤 분명하게 살펴서 절대 망신 떠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조태완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현관으로 강성태가 들어섰다.
“전화로 하면 되지, 번거롭게 뭐하러 여기까지 와?”
“이왕이면 뵙고 말씀드리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왔습니다.”
현관으로 움직인 조태완이 손수 홍삼 달인 물을 따라서 강성태 앞에 놓아주었다.
“몸은 어때? 정말 그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움직이고 나니까 오히려 더 낫습니다.”
“참, 체질이다, 체질. 어여 마셔.”
조태완의 권유에 강성태는 홍삼 달인 물을 시원하게 마셨다.
“세계 곳곳에서 이름 좀 있다는 건설사들이 모두 달려든다는데 정말 나와 노익이가 추천하는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겠어?”
“형님이 말씀하시는데 해봐야죠.”
“커흑.”
웃음을 참아보려다 사레가 걸린 조태완이 희한한 소리를 내고는 이어 기침을 연달아 쏟아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의 기침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강성태는 먼저 이학의와 연순동을 두들긴 일을 말했다. 이어서 소신영과 고강준, 이우섭을 손에 쥐려는 계획도 전했다.
“후-. 그 세 사람을 움켜쥘 수만 있다면 국회의원 정도 두들기는 건 일도 아닌데 그것들은 태생이 독사라 언제 보스의 손을 깨물려 들지 몰라. 그에 대한 대비는 생각해봤어?”
“이면계약을 작성하려고 합니다.”
강성태는 계약과 관련된 내용을 하나하나 말해주었다. 그런 뒤에 고개를 끄덕이는 조태완을 향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세종을 이용할까 합니다.”
“이세종? 보도국장 이세종?”
“야비하기로는 소 회장에 뒤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를 두고 소신영 회장을 감시하게 할까 합니다. 또 다른 언론사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흠.”
“검찰 쪽 움직임은 전에 별장에 갔던 강선영 검사에게 기회를 줄까 합니다. 이세종이 뱀 수준이라면 강선영은 그래도 어느 정도 믿을 만합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턱을 만지며 고민하던 조태완이 동의한다는 의미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부터 병렬이가 안산, 안중, 광룡을 정리하면서 말 퍼트린 놈을 찾고, 다음으로 강남과 영등포, 그 외에 식구들을 하나로 묶는 일을 할 겁니다.”
“보스가 허락한 거지?”
“일이 벌어지면 알아서 두들기고 나중에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거야 뭐, 누가 뭐래도 보스가 결정할 일이니까 나는 그 정도로만 알고 있지. 내가 해줄 건?”
“이세종을 불러서 제가 부탁드린 일을 맡겨주십시오.”
길게 늘인 조태완의 눈 끝에 잔인한 독기가 슬며시 배어났다.
“참. 오기 전에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과 통화했었습니다.”
“뭐? 그래서?”
“제가 연락처를 드릴 테니까 노익이 형님과 함께 추천할 건설사에 전해주십시오. 그쪽으로 연락하면 자격이 부족한 점을 보강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겁니다.”
감동의 도가니에 머리끝까지 담갔다가 꺼낸 것처럼 조태완의 눈이 강성태를 향해 촉촉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늘 상견례라고 하지 않았어? 장소가 어디야?”
“상처 때문에 잠시 뒤로 미뤘습니다. 어차피 시간은 낸 거고, 모처럼 속초 근처에 가서 저녁이나 먹고 올까 합니다.”
최치곤의 입장을 생각해 강성태는 솔직하게 오후 계획을 털어놓았다.
“속초에 아는 곳이 있어?”
“인천이나 평택 쪽이 아무래도 불편할 거 같아서 정한 거지, 특별히 아는 곳은 없습니다.”
강성태의 답이 떨어진 직후였다.
“신강남파 보스가 모처럼 하는 데이트인데 그렇게 허술하게 가면 안 되지.”
말을 마친 조태완이 묘한 눈빛으로 히죽 웃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