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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 - 11화 (283/513)

14권 - 11화

제4장. 혹시 신강남파 강성태라고 아세요?

조소아의 병실을 나선 다음이었다.

안다미는 강성태를 데리고 외과의 처치실로 향했다. 외과에서 진료받은 환자들이 소독이나 기타 간단한 시술을 받는 장소여서 칸막이가 따로 설치돼 있었다.

“앉아요.”

병원에서 진료와 관련된 지시를 내리는 안다미는 강하다. 강성태는 얌전히 안다미가 가리킨 검은색 침대에 걸터앉았다.

라텍스 장갑을 착용한 스테인리스 함에 거즈와 소독약, 그 외에 약품을 가져왔다. 그녀는 익숙하게 강성태의 목덜미에 붙은 거즈를 뜯어냈고, 이어 소독약에 담긴 솜을 핀셋으로 집어 상처를 소독했다.

“나쁜 사람들에게만 잔인한 거죠?”

“예.”

소독했던 솜을 툭 던진 안다미가 이번에는 약이 잔뜩 묻은 솜을 집었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는 거죠?”

“예.”

두 번째 답을 들은 안다미가 이번에는 거즈를 집어서 상처에 붙였다.

질문은 없었다. 대신 거즈를 다 붙여준 안다미가 커튼 바깥을 살핀 뒤에 강성태의 앞에 얼굴을 가져왔다.

“오늘 고마웠어요.”

정말 아름다운 미소였다.

자신이 선택한 남자에 대한 믿음이 그녀의 눈에 진하게 담겨 있었다.

안다미의 고개가 다가오면서 소독약 냄새가 강성태의 코로 들어왔고,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을 스쳤다.

“저녁에 시간 돼요?”

눈빛에 담긴 오묘한 언질을 강성태는 분명하게 보았다.

이런 기회를 놓치라고?

“무조건 됩니다.”

재미있다는 투로 웃은 안다미가 몸을 세우고는 커튼을 밀쳤다.

“저녁 먹어요. 5시 어때요?”

“병원으로 올게요.”

숨을 들이마신 강성태가 보기 좋은 얼굴로 웃을 때, 간호사가 들어섰다.

“어머, 안녕하세요?”

“네. 오랜만입니다.”

응급실에서 보았던 간호사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강성태는 안다미와 함께 처치실을 나섰다.

“키란에게 들렸다가 JBC 방송국에 갈 겁니다. 1시 약속이니까 끝나는 대로 이모께 전화 드리려고요.”

“아침에 제가 전화 드렸었어요. 수술이 너무 밀려서 죄송하다고 했고요. 아빠와 이모님 가족은 그냥 예정대로 식사하신대요.”

“예?”

멍한 눈으로 반문하는 강성태를 보며 안다미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아빠가 제안하셨대요. 이미 예약했는데 아쉬우니까 식사하시면 어떠냐고요? 이모님도 괜찮다고 하셔서 그냥 모이기로 하셨대요.”

당사자 빠진 생일 파티도 아니고.

“우리는 오후 5시에요.”

“그럼요. 오후 5시.”

연순동을 흉내 내듯 강성태가 답을 한 다음이었다.

또다시 오묘한 느낌으로 어깨를 들어 보인 안다미가 몸을 돌렸다. 그 어떤 명품 원피스보다 그녀가 걸친 수술복과 가운이 아름답게 보였다.

강성태가 입가에 미소를 걸고 있을 때였다.

“뭘 그렇게 보냐?”

고개를 들이민 최치곤이 강성태의 시선을 따라 두리번거렸다.

“그냥 본 거야. 그보다 이학의는?”

“애들이 모포로 덮다시피 해서 차에 태웠다. 적당히 할 줄 알았더니 아예 아작을 내놨더만. 보니까 이학의인가 하는 인간은 옥수수까지 전부 털렸던데?”

말을 마친 최치곤이 통쾌하다는 얼굴로 히죽 웃었다.

“다른 사람의 육체와 마음을 동시에 죽여가며 쾌락을 얻은 놈이잖냐. 그것도 여러 명을. 육체적으로 죽은 게 아니라서 성폭행이라 부르는 거지, 정신적인 살해로 따지면 연쇄살인범으로 취급했어야 할 놈이지.”

병원 입구를 돌아보며 이학의를 평가한 강성태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움직였다.

“사위 새끼가 형사부장 검사라며, 뒤탈 없겠어?”

“고검장이 막아준다니까 믿어봐야지. 그렇지 않아도 조금 뒤에 소신영을 만나기로 했다.”

“그 새끼는 또 뭘 잘못했길래 찾아가? 이러다가 그놈들 뺨보다 네 손바닥이 안 남아 남겠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가서 들어보려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위층으로 올라간 강성태는 최치곤과 함께 키란의 병실로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형님?”

몸을 일으키는 아르윈과 침대에 누워서 인사하는 키란의 얼굴에 웃음이 묻어 있었다.

“뭐야?”

“키란이 형님….”

“형님!”

뭔가를 말하려는 아르윈을 키란이 간절하게 부르며 입을 막았다. 그러니까 더 궁금한 게 사람 심정이었다. 강성태가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아르윈이 입을 열었다.

“혹시 필리핀 아가씨 소개받을 수 없냐고 해서 가수 중에서 몇 명 보여줬습니다, 형님.”

흐느끼듯 웃은 강성태는 키란의 침대로 다가갔다.

부끄럽고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 키란의 순박한 눈빛을 보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마음에 드셔야 하잖아?”

“아닙니다. 그냥 해 본 말인데….”

농담을 좀 더 건넨 강성태는 아래층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다른 일은 없을 거 같은데 혹시 검찰이나 경찰에서 오면 일단 순순히 따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몇 가지 당부를 전한 강성태는 키란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점심 어떻게 할래?”

“아르윈 형님과 김밥을 먹을까 했습니다.”

강성태는 최치곤에게 고개를 돌렸다.

“치곤아. 우리도 김밥으로 점심 먹고 건너가자. 어때?”

“준비하겠습니다, 형님.”

“빤한 식구끼리 있을 때는 불편하게 하지 말랬지?”

“조심하겠습니다, 형님.”

아르윈을 의식한 모양이었다. 고개를 깊게 숙인 최치곤이 스마트폰을 꺼내며 병실을 나섰다.

“볼수록 든든합니다, 형님.”

그런 최치곤을 아르윈이 굵직한 음성으로 평가했다.

**

이학의와 연순동은 피투성이 얼굴을 겨우 가린 몰골로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어머나!”

두 사람을 맞은 이선정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의사를 불러다오.”

굳이 이학의가 말하지 않아도 상태는 심각했다.

“말이 새나가지 않게 아랫사람들 단속해.”

침대에 누운 이학의의 당부였다. 먼저 의사에게 연락한 이선정은 운전기사와 가사도우미를 불러 쌍심지가 독하게 올라온 눈으로 경고를 전했다.

다음으로 뜨거운 물을 받은 이선정은 이학의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사이 욕실에 들어간 연순동이 얼굴을 닦고 나왔는데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나중에 말하자.”

“당신이 중앙지검 형사부장이에요. 이게 지금 말이나 돼요?”

“알았으니까 나중에 말하자고.”

고작 몇 마디 말을 했을 뿐인데 터진 연순동의 입술에서 새로 피가 새나왔다.

더 물어봐야 당장 답을 줄 것 같지도 않았다.

독기로 파랗게 빛나는 눈을 한 이선정은 방으로 들어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번호를 누르고 잠시 기다린 다음이었다.

- 예, 사모님.

난처한 음성의 대꾸가 건너왔다.

“이사장님과 우리 검사님 오셨어요. 누굴 만나신 거예요?”

- 그게 사모님.

“과장님. 아버지 다음에 누가 이사장이 될 거 같으세요? 제가 꼭 서장님께 전화해야겠어요?”

망설이는 수사과장을 이선정이 독하게 몰아붙였다.

- 두 분께서는 오늘 조소아라고 이사장님께 성폭행당했다는 기간제 선생을 찾아갔었습니다.

“이 쌍년이?”

팔짱을 끼고 창으로 몸을 돌린 이선정이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그 자리에 또 누가 있었어요? 지켜봤으니까 이사장님과 우리 검사님 상태를 봤을 거 아니에요? 그년이 무술을 배웠어요? 아니면 누굴 불러다 놓은 거예요? 뭐예요? 속 시원하게 말 좀 해보세요.”

- 신강남파가 이번 일에 관련된 거 같습니다, 사모님.

“신강남파요? 깡패를 말하는 거예요?”

- 예. 신강남파 두목인 강성태가 직접 나섰습니다.

“그럼 그 인간을 잡아넣어야죠! 수사과장이 뭐 하는 거예요?”

- 폭행 건입니다. 이건 신고나 고소가 들어와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거기에 형사부장 영감님이 함께 계셔서 함부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듣고 보니 그렇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서 이선정의 화가 풀린 건 아니었다.

“지금 뭐라는 거예요? 일단 체포해서 유치장에 넣으세요!”

- 사모님. 112에 신고 전화라도 넣어주십시오. 그럼 처리하겠습니다.

입술을 암팡지게 삐죽였으나 신고를 하려면 이학의의 허락이 필요했다. 그러니 더는 수사과장을 족칠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화가 풀어진 것도 아니었다.

“과장님의 처신 잘 알았습니다. 다음에 아쉬울 때가 있을 텐데 그때 보시지요.”

- 그게 아니고.

급하게 내놓는 수사과장의 변명을 이선정은 종료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끊었다.

“말도 안 돼!”

이학의가 누워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던 이선정은 기가 막힌 심정을 혼잣말로 토해냈다. 이사장과 검사가 가서 깡패 두목에게 얻어맞고 오다니.

눈을 뒤틀던 이선정은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급하게 다시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나예요. 거기 건설사에서 부리는 깡패들이 있다고 했었죠?”

- 예? 깡패요?

“건설사에서 깡패들을 부린다고 했었잖아요?”

- 예. 연결되는 건달들은 좀 있습니다.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건설사에 이사로 있는 연줄이었다. 학교에 다닐 때부터 장학금을 줘가며 키운 제자라 믿을 만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학의와 연순동이 얻어맞고 왔다는 말을 쉽게 하기는 어려웠다.

“저기, 깡패 두목이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을 좀 혼내줘야겠어요. 우리 검사님께서 잡아넣기 전에 기회를 줄까 해서 따로 만날까 하거든요.”

- 그런 내용이라면 조직 두목이 고개를 조아리며 찾아뵐 겁니다. 누굽니까, 그 사람이?

“강성태요.”

이선정이 이름을 말한 직후였다. 상대방의 음성이 전혀 넘어오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한 이선정은 스마트폰을 내려 연결이 끊겼나를 확인했다.

“여보세요?”

- 지금 누구라고 하셨습니까?

“강성태요. 왜요?”

- 혹시 신강남파 강성태라고 하지 않던가요?

뭐야, 유명한 깡패였나?

묘하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이선정은 물러설 마음이 없었다.

“맞아요. 그렇게 들었어요.”

- 사모님.

강성태를 확인한 상대방이 쫙 깔린 음성으로 이선정을 불렀다.

- 지금 대한민국 5대 건설사가 강성태 회장을 만나려고 혈안이 돼 있습니다. 거기에 신강남파 강성태를 혼내줘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지간한 조직은 그쪽에 먼저 달려가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전할 겁니다.

“깡패잖아요. 그런 사람을 5대 건설사가 왜 찾아요?”

- 그런 일이 있습니다. 하여간 강성태 회장은 제 선에서 못 건드립니다. 아! 혹시 이사장님과 부군께서 강성태 회장을 만나셨다고 하셨습니까? 그럼 저도 만날 기회를 얻을 수는 없겠습니까?

따귀를 처맞고 피를 줄줄 흘리고 싶어?

울컥 올라온 말을 이선정은 악착같이 삼켰다.

- 사모님.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강성태 회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정말 연결되시면 저도 좀 만날 수 있게 다리를 놓아주십시오.

이거야 원. 불난 집에 강풍기를 돌리는 것도 아니고.

“됐어요! 끊어요!”

이선정은 습관처럼 파르르 떨며 종료버튼을 눌렀다.

그 직후였다.

“사모님. 의사 선생님 오셨습니다.”

가사도우미가 조심스럽게 방 밖에서 의사가 왔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조금 있다가 나갈 테니까 얼른 이사장님 방으로 모시세요.”

지시를 내린 이선정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스마트폰의 번호를 찾아 눌렀다.

- 예, 사모님.

“김 기자님. 죄송한 청이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 사모님께서 죄송할 게 뭐가 있습니까?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혹시 신강남파 강성태라고 아세요?”

이선정이 질문을 던진 직후였다. 건설사의 이사처럼 또다시 먹먹한 침묵이 먼저 건너왔다.

이것들이 진짜 무슨 깡패한테 이렇게 절절 매?

이선정이 분한 심정으로 입술을 깨물며 짧은 정적이 흘렀다.

-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그 사람 뒷조사를 좀 해볼까 하는데요. 악행에 관한 기사도 좀 올리고요.”

-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를 여쭤본 겁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겠어요? 다만, 깡패가 설치는 세상을 그냥 두는 건 기자의 도리가 아니잖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통화하는 김 기자는 절대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아니었다.

- 사모님. 어지간하면 모른 척하십시오.

“기자잖아요? 그 사람이 설마 기자를 어떻게 하겠어요?”

- 저더러 경찰청장이나 다른 재단 이사장의 비리를 파라시면 달려들겠지만, 신강남파는 아닙니다, 사모님.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창을 향해 시선을 돌린 이선정은 처음으로 세상이 그녀를 찍어누르는 느낌에 한쪽에 있던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럼 혹시 강성태를 누를 만한 조직을 소개해 주실 수는 있어요?”

- 아! 사모님. 마침 약속했던 취재원이 오셔서요.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이선정은 스마트폰을 내리고는 멍한 얼굴로 숨을 내쉬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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