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 - 7화
제3장. 참 속 많이 썩이는 보스.
잠에 빠져든 강성태는 불치병처럼 찾아든 악몽과 마주했다.
방심했었지?
느닷없이 들이닥친 악몽은 지긋지긋한 첫 장면을 펼쳐놓고 그 안에 강성태를 몰아넣었다.
포근한 느낌의 승용차 안이었다.
평화롭기까지 했다.
잠시 뒤에 강성태를 감싸주던 이 모든 것이 커다란 굉음과 함께 사라진다.
알고 있어서, 익숙해서 더 두려운 순간이었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올라서면서 승용차 안으로 일정한 소리가 울렸다.
밤이었나?
앞유리를 통해 달려든 가로등이 일정하게 울리는 소리와 보조를 맞추며 빠르게 뒤로 달려가고 있었다.
뭔가 더 알아낼 건 없을까?
강성태의 바람을 짓밟는 듯 왼편이 어두워지며 굉음이 울렸다.
꿈이었다. 늘 강성태를 괴롭히던.
두려움, 생생한 충격, 세상 모든 것이 부서지는 듯한 굉음, 승용차 안에서 붕 떠 있었는데, 그 속에 있는 강성태는 의아한 심정으로 다음을 기다렸다.
‘왜? 왜 이러는 건데?’
마취제나 강한 진통제를 맞은 것처럼 고통과 충격이 무디게 느껴졌다.
그저 그런 악몽과 다르지 않았다.
누구나 가끔 꾸는 나쁜 꿈이라고 할 정도였다.
허공에 떠올랐던 승용차가 아래로 떨어질 때, 강성태는 자신을 안아주는 따뜻한 품을 새삼 느꼈다.
목숨을 내던진 희생이었고, 본능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승용차가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악몽에서 밀려난 강성태는 확인처럼 눈을 떴다.
“성태 씨?”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안다미였다.
침대 옆에 앉은 안다미가 기도하는 자세로 강성태의 손을 쥐고 있었다.
안다미의 손길 덕분이었나?
생각을 길게 할 틈이 없었다.
환자복을 벗어 던진 이병렬이 티셔츠와 점퍼 차림으로 안다미의 뒤에 앉아 있었다.
점퍼 가슴 부위가 불룩했다.
분명 신문지로 감은 날카로운 회칼을 품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저 몸을 하고도 강성태를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참 속 많이 썩이는 보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옅게 웃는 이병렬의 눈빛이 그랬다. 그 뒤에 서 있던 김진용과 조봉진이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다시 시선을 돌리자 이번에는 조태완과 김정훈, 정영권이 보였고, 이어 문 쪽에서 안도의 숨을 내쉬는 최치곤이 눈에 들어왔다.
의식을 잃는 동안, 뭔가 일이 있었다는 의미였다.
강성태가 시선을 앞으로 돌린 직후였다.
“제발 부탁이니까 혼자서 나서지 좀 마! 이러다가 애도 만들기 전에 심장병으로 죽겠다.”
강성태를 향해 툴툴거린 조태완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병원 지키는 식구들 절반은 숙소로 돌려보내. 그리고 너는 바로 클럽으로 가서 보스가 깨어나서 독 올랐다고 떠들어. 지방에 바로 소식 돌아야 한다. 알지?”
“예, 형님.”
고개를 숙이며 답한 정영권이 강성태를 향해 인사한 뒤에 병실을 나섰다.
알지 못할 긴장감이 병실에 피어날 때였다.
“괜찮은 거요?”
고개를 쳐드는 긴장의 정수리를 짓밟는 것처럼 이병렬이 질문을 툭 던졌다.
“검사 결과에 특별한 이상이 없었으니까 일반적인 쇼크로 봐야 해요. 지켜봐야 하겠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을 거예요.”
안다미의 답을 들은 이병렬이 픽 웃는 얼굴로 강성태를 들여다보았다.
“내가 없으니까 여러 가지로 힘들지?”
뭔 한가한 질문을 하고 있어?, 조태완이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병렬은 태연했다.
“보스가 깨어났으니 망정이지, 이렇게 침대에 누워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면 아래쪽이 진짜 멍청한 결정을 내렸을지 모른다.”
의미심장한 이병렬의 말과 그전에 있었던 조태완의 지시, 안도하는 최치곤의 모습까지, 확실히 강성태가 누워 있는 사이에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진용이 데리고 제가 있겠습니다. 아래에 종환이도 있으니까 형님은 이만 들어가 쉬십시오, 형님.”
“누가 누굴 지켜?”
툴툴대기는 했는데 이병렬을 바라보는 조태완의 시선에 노여움은 없었다.
“어디 싸움 좀 잘하는 사람 좀 찾아봐라. 한 번 더 이러면 딱 두 대만 때려주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놓은 조태완이 침대로 다가왔다.
“고생했어. 이렇게까지 했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마약은 꿈도 못 꾸겠지. 참! 노익이도 다녀갔었다. 내가 먼저 전화할 텐데 나중에 보게 되면 와줘서 고마웠다고 말이라도 해.”
“걱정 말고 들어가십시오, 형님.”
“평생을 듣고 살았던 저 형님 소리에 내가 녹는다, 녹아.”
기가 막힌 얼굴로 웃은 조태완이 “다음에 뵙지요.” 하는 인사를 안다미에게 남기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키란은요?”
“아르윈이 지키고 있어.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놈이 탕수육 하나를 혼자 다 처먹더라. 그놈 걱정 안 해도 돼.”
강성태의 질문에 이병렬이 답을 대신 내놓았다. 그래놓고는 아차 하는 얼굴로 안다미를 돌아보았다.
“음식을 먹였어요? 그것도 탕수육을요?”
“크흠.”
천하의 이병렬이 찔린 표정으로 고개를 모로 틀었다.
하긴, 질책하는 안다미의 시선을 받으면 강성태도 몸이 움츠러드니까 뭐.
이럴 때는 화제를 돌리는 게 가장 효과가 좋았다.
“지금 몇 시나 됐어?”
“새벽 2시 30분. 참! 전화가 겁나 오던데?”
이병렬이 고개를 돌리자 김진용이 다가와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자! 보스 쉬게 우리는 나가자.”
안다미를 슬쩍 보았던 이병렬이 눈을 찡긋하고는 휠체어를 돌렸다.
“쉬십시오, 형님.”
강성태를 향해 인사한 덩치들이 병실을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병실의 공간이 여유로 변해 강성태와 안다미를 감쌌고, 그 바람에 기회를 노리던 긴장이 서운함을 뿌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성태 씨. 악몽 꿨죠?”
강성태의 표정을 살핀 안다미가 그럴 것 같았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였다.
“악몽에 시달린다고 생각했었어요. 정말 신기한 게 뭔지 알아요?”
“다른 일이 더 있었습니까?”
“쇼크 왔었을 때요. 정말 긴급한 순간이었고, 맥박이나 혈압을 봐서 의식을 차리기 어려운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성태 씨가 내 이름을 불렀어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내가 손을 잡아주니까 부르던 거 멈추고 놓지 않은 거예요. 의식이 없는 성태 씨가요. 유 원장님이 죽지는 않겠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어요. 그리고 혈압이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왔고요.”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이름을 불렀고, 손을 꽉 잡았다고 들었다.
“악몽을 꾼 건 맞습니다. 그리고 이전처럼 그렇게 고통스럽지도 않았고요. 악몽에서 깨어날 때면 땀에 젖거나 비명을 지르곤 했는데 그것도 없었을 정도거든요.”
어쩐지 안다미는 감동한 눈빛이었다.
강성태는 조용하게 팔을 뻗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받느라 놓았던 안다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당신 덕분이라느니, 지켜줘서 그런 모양이라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다. 손을 통해 느껴지는 온기로 충분히 감정을 알 수 있었다.
강성태를 부드럽게 바라보던 안다미가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오른 것처럼 입을 열었다.
“내일 상견례는 연기하기로 했어요. 정말 급한 수술이 연달아 걸려서 빠져나가기가 어렵다고 말씀드렸고요. 이모님께 전화 한 번 드리세요.”
그러고 보니 안다미를 만난다고 한 이후로 장숙경은 통 연락이 없었다. 이은주에게서 다른 말이 없는 걸 보면 커피 알리고에도 걸음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많이 서운했을 텐데.
“날 밝는 대로 전화 드릴게요.”
답을 한 강성태는 혹시 하는 심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부재중 전화와 문자가 꽤 있었는데 대부분 소신영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이학의를 불러 따귀를 때려주기로 한 약속을 떠올린 강성태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이학의 이사장을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지 답변을 부탁합니다.]
이 인간이 왜 이렇게 적극적이지?
게다가 문자에도 간절한 뭔가가 담겨 있었다.
“무슨 연락인데 그래요?”
“친구분이요. 조소아 씨. 이학의 이사장이 내일 나온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내일 온대요? 진짜요?”
반갑게 되물었던 안다미가 곤란한 얼굴로 강성태를 살폈다.
강성태가 없는 상태에서 조소아와 이학의가 만나는 게 걸리는 눈치였다.
“내일 만나죠.”
“그 몸으로요?”
“다미 씨가 있는 병원이고, 위에 키란의 병실이 있으니까 그곳에 있다가 이학의만 잠깐 만나는 거로 하죠”
차마 그러라고 하지 못하는 안다미가 곤란한 심정을 표현하듯 입술을 내밀었다.
“이런 일은 시간을 끌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쓸데없는 여유를 주게 됩니다. 친구가 아니라 죽음을 선택할 만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을 돕는다고 생각하세요.”
손을 뻗은 강성태가 침대에 올려져 있는 안다미의 손등을 부드럽게 다독였다.
“내일 근무하려면 피곤할 텐데 잠시라도 쉬세요.”
“오후에 상견례 일정으로 시간 비워놨었잖아요. 내일은 문제없어요.”
“오후에는 이학의 만나야죠. 거기에 오전 근무도 해야 하고요. 잠깐이라도 쉬세요. 아침에 함께 건너가요.”
실제로 안다미는 꽤 피곤해 보였다.
강성태가 재차 권하고 나서야 안다미는 몸을 일으켰다.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일어서자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강성태의 마음을 알았을까?
안다미가 상체를 기울여 가볍게 입을 맞췄다.
“호텔에 안 간 거, 응급실에서 내 이름 불러준 거, 소영이를 위해 애써 준 거, 고마워요. 하지만, 그만 좀 다쳐 와요. 아프지만 않았으면 한 대 때렸을 거 같아.”
날카로운 경고를 잊지 않은 안다미가 병실을 나선 뒤였다. 교대하듯 최치곤이 안으로 들어왔다.
“괜찮냐?”
“견딜 만해. 뒷정리는?”
“아르윈 형님이 네 놈 모두 치웠다. 혹시 문제 될지 모르니까 그 일만큼은 가디언스 파가 전담하는 거로 하자고 깔끔하게 선 긋더라. 보면 볼수록 그 형님 진국이다.”
아직 긴장이 풀리지 않은 모양으로 좋은 평가를 내놓는 최치곤의 눈꼬리가 사납게 올라가 있었다.
“지방이 들썩였다는 건 뭐야?”
“신강남파 보스가 쓰러졌다는 말이 돌았다더라. 의식이 없을 정도로 위급한 상태라 밀고 올라가자는 말도 있었고. 표시는 안 내고 있지만, 태완이 형님이랑 병렬이 형님이 어디에서 말이 새나갔는지 찾고 있어.”
문을 돌아본 최치곤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경상도 쪽은 노익이 형님이 눌렀고, 나머지는 태완이 형님이 수습했는데 아무래도 호남 쪽의 반발이 심한가 보다. 신호남파 깨졌지, 황상열 박살 났지. 나라도 이 갈 만하지.”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합회를 상대하는 건 강성태가 직접 움직인 일이었다. 그 결과가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을 정도고, 의식을 잃은 동안 지방이 들썩였다면 이건 분명 점검해봐야 할 일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말이 새나간 과정은 좀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말처럼 쉽지 않을 거야. 움직인 게 대림동하고 강서구거든. 자칫하면 일 죽어라 하고 의심까지 받는 모양새가 되니까 함부로 파기도 어렵고. 거기에 강남 쪽에서 조사하면 괜히 숙소 간 갈등만 생긴다.”
말을 마친 최치곤이 의아한 표정으로 강성태를 내려다보았다.
“뭐냐?”
“점잖게 이야기하니까 다른 사람 같아서.”
“에이, 진짜! 사람이 모처럼 진지하게 이야기하는데!”
툴툴대는 것과 달리 최치곤은 웃음을 달고 있었다.
“종환이 형님은 키란 병실에 있고, 섭우 형님은 팔 치료하고 강서구로 넘어갔어. 안 가겠다는 걸 병렬이 형님이 억지로 보냈다.”
최치곤과 30분쯤 이야기를 나눈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천천히 팔을 뒤로 움직여 상체를 세웠다.
“화장실 갈래?”
“병렬이한테 가보게. 말은 안 하지만 기다리고 있을 거다.”
“몸이 그런데 이리 부르지?”
“어차피 아침에 움직여야 하고, 내일 일도 있어. 지금은 누워 있을 때가 아닌 거 같다.”
억지로 일어나는 강성태를 최치곤이 부축할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새벽 시간에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강성태와 최치곤이 동시에 시선을 내린 침대에서 소신영의 이름을 올려놓은 스마트폰이 몸을 떨고 있었다.
징그러운 인간.
인상을 찌푸리며 팔을 뻗은 강성태는 스마트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전화를 여러 번 했는데 연락이 없어서 이렇게….
반말을 하자니 켕기고, 그렇다고 존댓말을 하기는 자존심 상하고, 하여간 한결같은 맛은 소신영이 최고였다.
“내일 서라대학병원에서 봐. 오전 11시.”
- 오전 11시. 서라대학병원. 어디로 가면 되겠소?
약속을 확인하는 소신영의 말투가 묘했다.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들으라는 투였다.
“오전에 정확한 장소를 알려줄게. 내가 지금 상태가 별로거든. 감정도 안 좋고. 그러니까 허튼짓하지 않는 게 좋아.”
- 내가 누구요? 나, 소신영이오. 깔끔하게 처리했으니까 염려하지 마시오. 아! 이번 일에는 이우섭 부의장과 고강준 고검장도 크게 도움을 주셨소.
염병들.
“알았어. 내일 봐.”
- 거! 내일 따로 시간을 좀 내주셨으면 싶은데? 긴히 의논할 일이 있어서.
그럼 그렇지. 쓸데없이 적극적이더니 확실히 뭔가 있구나.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여보세요?
“알았어. 그렇게 해.”
답을 건넨 강성태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소신영이 왜?”
“가서 말할 거니까 병렬이랑 한꺼번에 들어.”
강성태는 이를 악물며 걸음을 옮겼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