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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 - 6화 (278/513)

14권 - 6화

중국에서 설치던 놈이 한국이란 땅에서 이렇게 당하는 게 억울하다는 건가?

잠시 마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강성태가 고개를 돌렸다.

“뭐 때문에 보자고 했는지 물어봐.”

“예, 형님.”

답을 한 대림동 덩치가 능숙하게 중국말을 쏟아냈다.

짧은 답을 내놓았던 마윤은 대림동 덩치가 말을 전하기 전에 다시 기다란 중국말을 쏟아냈다.

“기회를 달랍니다, 형님. 한 번만 사람답게 살 기회를 얻어보고 싶답니다, 형님.”

갑자기 사람답게 살고 싶다니?

내내 강성태를 죽이고자 온갖 짓을 해놓고 죽기 직전에 느닷없이 삶에 애착이 생겼나 싶은 생각에 강성태는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전혀 이해가 안 가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삼합회나 중국의 조직 문화가 있나?”

“예? 형님?”

“항복한 놈이나 우는 놈을 살려준다거나 그런 거?”

“아닙니다, 형님. 삼합회는 조직 간의 싸움에서 진 쪽에 잔인하게 굴기로 유명합니다, 형님.”

덩치가 내놓은 답은 강성태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왜 이런 놈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 했을까?

하마터면 아르윈을 돌아볼 뻔했다. 하지만, 이종환과 다른 숙소 식구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자칫하면 질책하는 모양새가 되는 터라 강성태는 덩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마지막이라고,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해.”

덩치가 중국말을 건넨 뒤였다.

마윤이 말을 내놓았다. 그래놓고는 코피가 흐르는 얼굴을 돌려 강성태를 바라보았다.

“소림사에서 무술을 익혔답니다, 형님. 거기에서 권력자의 아들들에게 당해서 삼합회에 몸을 담았는데 처음으로 이렇게 당한 거랍니다. 맞고 났을 때 울음이 터졌는데 이렇게 죽는 게 너무 억울하답니다, 형님.”

“미친놈.”

강성태가 혼잣말로 뱉은 욕이었다. 그런데 충직한 덩치가 마윤을 향해 중국말로 강성태의 욕을 그대로 전했다.

그 직후였다.

간절한 눈으로 강성태를 바라보던 마윤이 느닷없이 상체를 바닥에 처박았다.

콰직.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있는 힘을 다한 박치기였다.

상체를 세운 마윤의 이마가 깨졌는데 주사기로 쏘는 것처럼 삐죽삐죽 피가 튀어서 삽시간에 온 얼굴을 덮었다.

그렇게 눈썹과 눈, 볼과 턱을 피로 물들인 마윤이 마지막을 각오한 눈으로 강성태를 다시 보았다. 그런 뒤에 그가 비장한 음성으로 중국말을 쏟아냈다.

“헛되이 죽을 바에는 권력자 아들놈들이라도 죽이게 기회를 달랍니다, 형님. 대신 형님이 찍어주시는 사람 한 명을 분명하게 죽이고 자결하겠답니다, 형님.”

이제야 마윤의 바람을 정확하게 이해한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다. 우리 구역에 마약을 팔기 위해 삼합회가 너를 보낸 거고.”

덩치가 중국말을 전할 수 있도록 강성태는 잠시 틈을 주었다.

“네가 이겼다면 내가 죽어서 늘어져 있겠지. 그때는 어떤 생각을 했을 것 같냐? 그동안 네가 죽인 사람들은? 그들에게는 기회가 필요 없었을 거 같냐?”

말을 마친 강성태는 달려드는 통증을 이겨가며 몸을 일으켰다.

“머리를 백번 처박아도 네놈이 죽인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해. 마약에 당한 피해자들의 고통이 줄어들지도 않고. 크기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누구나 억울한 순간이 있다.”

피로 얼굴을 뒤덮은 마윤이 멍한 얼굴로 강성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네놈이 죽인 사람들의 가족은 어떤 심정일 거 같냐?”

강성태의 말을 덩치가 중국어로 전한 직후였다.

마윤이 또다시 바닥에 머리를 세차게 처박았다.

콰직.

그런 뒤에 고개를 드는 마윤을 향해 강성태는 차갑게 웃었다.

“순서가 틀렸다.”

강성태의 말을 전해 들은 마윤이 마른침을 삼켰다. 혹시 기회를 주려나 싶은 모양이었다.

“네가 죽인 사람들, 네가 앞장서서 뿌린 마약에 당한 사람들, 적어도 네놈이 한 번쯤 기회를 더 얻고 싶었다면, 어쭙잖은 복수보다는 그들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 먼저여야 했다.”

말을 마친 강성태는 아르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르윈. 뒤를 맡겨도 되겠지?”

“예, 형님.”

아르윈이 비장한 표정으로 답을 내놓았는데 이종환과 함께 있는 신강남파 덩치들 모두 그와 비슷한 표정과 눈빛을 하고 있었다.

“혹시 광룡 놈들이 뒤늦게 덮칠지 모르니까 마지막까지 경계 늦추지 마.”

주의를 건넨 강성태는 이미 서서 기다리던 키란을 돌아본 뒤에 한쪽에 세워둔 승용차를 향해 걸었다.

“아르윈 형님. 제가 형님 모시고 병원으로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밖에 섭우랑 강서구 숙소 동생들이 있으니까 인원 필요하시면 그쪽에 말씀하십시오, 형님.”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서 형님 모셔.”

이종환이 덩치 한 명과 함께 강성태를 따라붙었다. 그리고는 강성태와 키란을 부축해 차에 태운 뒤에 운전석과 조수석에 빠르게 올라탔다.

승용차는 곧바로 움직였다.

“들어가십시오, 형님.”

이쪽을 바라보던 아르윈과 덩치들이 강성태가 탄 승용차를 향해 깊게 고개 숙였고, 그 중간에서 무릎 꿇은 피범벅인 얼굴의 마윤이 애타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개만도 못한 새끼.

뻔뻔한 놈들을 참 많이 봤지만, 저렇게 본인만 생각하는 놈은 또 처음이었다. 만약 권력을 잡았다면 제 놈이 당했던 것보다 더한 짓을 하고 남을 인간이었다.

주차장 입구를 빠져나온 승용차는 곧바로 큰길을 향해 달렸다.

멀리서 빛나는 불빛을 품은 평택호가 헤어짐이 서운한 듯 일으킨 물결로 강성태를 배웅했고, 긴장했던 서브마린 건물이 안도의 숨을 내쉬듯 승용차의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큰 도로로 합류하는 출구에 도착하자 앞을 막고 있던 승용차가 빠르게 길을 내줬다.

좁은 틈을 빠져나가는 동안, 이번에는 유섭우와 덩치들이 서열에 따라 줄줄이 상체를 숙였다.

인사를 받으며 강성태는 한숨을 나직하게 내쉬었다.

저들도 마윤과 마찬가지였다.

강성태가 느슨해지는 순간, 온갖 죄를 저지르며 배를 불릴 테고, 결국은 교도소에서 늙어가거나 어딘가에서 연장을 맞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확률이 높았다.

큰 도로에 합류한 승용차가 속도를 높이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강성태의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손에 묻은 피를 상의에 슬쩍 문지른 강성태는 인상을 찌푸려가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지간하면 모른 척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전화는 무조건 받아야 했다.

“여보세요?”

- 성태 씨? 밤에 중요한 일이 있는 건 아는데요, 키란 씨가 없어졌어요. 어디 있는지 혹시 알아요?

올라오는 화를 억지로 누른 음성이었다.

오늘 밤에도 클라리사와 호텔 방에 있는 거로 알아서인지 그런지 서늘한 냉기도 감돌았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안 되겠지만, 듣기 좋게 꾸미는 건 괜찮지 않을까?

- 여보세요? 성태 씨?

특히 이렇게 냉랭한 음성을 듣고 있는 순간에는.

“키란은 지금 나랑 있습니다.”

- 어딘데요?

“오늘 밤에 또 호텔에 가는 건 아닌 거 같아서 그냥 무식한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상대가 두 놈이라 키란이 꼭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있습니다.”

안다미는 당장 대꾸가 없었다.

지금 강성태가 건넨 말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느낌이었다.

“한 시간 안으로 병원에 돌아갈 텐데 키란이 또 좀 다쳤습니다.”

- 미쳤어요? 키란 씨는 아직 완쾌되지…. 성태 씨는요? 성태 씨는 괜찮아요?

“키란보다는 좀 낫습니다.”

- 얼마나 다쳤는데요?

“그냥 칼에 좀.”

- 내가 미쳐, 진짜! 그냥 호텔에 가지!

타박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의 음성에서 냉랭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병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 얼마나 걸린다고 했죠? 출혈은요? 춥거나 떨리지는 않아요?

“한 시간쯤 걸립니다. 응급실은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러니까 병실로 함께 올라갈게요.”

- 그러지 말고 방지병원으로 가세요. 내가 전화해놓고 그리 갈게요. 알았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 진짜 괜찮은 거죠?

마지막 질문에서 안다미는 이전처럼 따듯한 음성이었다.

“그럼요. 병원에서 뵐게요.”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홀가분한 심정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안다미의 따뜻한 말을 듣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먼저 방지병원으로 가.”

“예, 형님.”

고개를 돌린 옆에서 키란이 무슨 일인가 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말했던 안다미 선생 전화. 다쳤다고 했더니 걱정하더라.”

“잘된 겁니까?”

“그런 거 같다.”

말을 마친 강성태는 뒷좌석에 머리를 기댔다.

힘겨운 싸움이었다. 하마터면 급소를 찔려 단숨에 숨이 끊어질 뻔한 위기도 있었다.

미친놈처럼 싸우고는 있지만, 숫자로 신강남파는 삼합회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자동차의 천장을 보며 강성태는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이 싸움을 빨리 끝내야겠다는 각오 때문이었다.

**

연순동의 부인이자 이학의의 딸인 이선정은 치욕이 목구멍을 틀어막은 느낌이었다.

명함을 찾아다 준 뒤에 이학의는 실제로 소신영에게 전화를 걸어 비굴하다시피 매달렸다.

“반드시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이번 일을 끝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십시오.”

판사, 병원 원장, 대학의 총장도 감히 이학의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는데 사위인 연순동의 불손한 태도는 말할 것 없고, 소신영, 고강준, 이우섭이 그런 부친을 쥐잡듯 몰아댔다.

분해도 이렇게 분할 수가 없었다.

선생을 시켜달라며 옷을 벗었던 년들이 적반하장 식으로 성폭행으로 부친을 괴롭히다니, 기간제 교사로 기회를 줬는데 실력이 부족하자 몸을 던졌던 년들이 말이다.

횡령도 그렇다.

학교를 누가 세웠나?

부친이 피 같은 돈 들여서 세운 학교였다. 그 안에 있는 돈을 좀 쓴 게 이토록 고개를 조아려야 할 일인가 말이다.

‘두고 봐.’

통화를 마친 부친을 바라보며 이선정은 이를 악물며 눈에 올라온 독기를 가라앉혔다.

“물 좀 가져와.”

이학의의 요구에 이선정은 몸을 일으켜 유리잔에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는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거실을 빠져나왔다.

평소 그녀가 쓰던 방에 들어간 이선정은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번호를 누른 그녀가 잠시 기다린 뒤였다.

“여보세요? 나예요. 알아볼 게 있어요.”

그녀는 먼저 오늘부터 연순동을 뒤따르라고 지시했다. 이어서 세 사람이 이학의를 몰아붙이는 이유를 알아보라고 요구했다.

- 사모님. 그 정도 급은 제가 함부로 나서기 어렵습니다.

“동향은 파악할 수 있을 거 아녜요? 내일 아버지를 따라가 보세요. 그 자리에 나타나는 사람들을 보면 알지 않겠어요?”

- 일단 따르기는 하겠습니다.

“그 자리에 넣어주신 게 아버지예요. 이럴 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과장님 앞날이 달렸다는 것만 명심하세요.”

- 알겠습니다.

관할 경찰서 수사과장을 몰아붙인 이선정은 통화를 마치고 이를 다시 깨물었다.

**

방지병원 주차장에 승용차가 들어섰을 때, 안다미는 주차장에 있었다. 그래놓고 승용차가 멈추는 순간에 바로 다가왔다.

마음 같으면 씩씩하게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서브마린 주차장에서 차를 탈 때만 해도 괜찮았던 몸이 시간이 지날수록 욱신거렸고, 지금은 팔 한번 움직이는 데도 인상이 찌푸려질 만큼 통증이 심했다.

“이게 뭐예요?”

“피 묻습니다.”

“지금 그게 문제예요?”

타박은 한마디가 전부였다.

팔을 뻗어 강성태를 부축한 안다미는 바로 휠체어에 앉혔다.

“휠체어 하나 더 있어요. 키란 씨도 얼른 거기 앉히세요.”

이종환과 운전했던 덩치가 부축해서 키란을 휠체어에 태웠고, 안다미를 따라 응급실로 움직였다.

“원장님!”

“단골 환자 오셨네.”

안다미의 급한 외침을 들었던 유헌우가 능글맞은 대꾸를 내놓고는 강성태에게 다가왔다.

“얼른 눕혀.”

말을 그렇게 했지만, 강성태를 살핀 유헌우는 서두르고 있었다.

“저쪽 환자는 엑스레이부터 찍어.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바로 CT로 넘기고.”

상처만 보고 상태를 짐작한 모양으로 빠르게 지시를 내린 유헌우가 칸막이 안으로 들어왔다.

가위로 옷을 자를 때마다 새롭게 피가 흘러나와 침대를 흠뻑 적셨다.

혈압과 체온을 확인했고, 이어 링거를 줄줄이 달았으며, 곧바로 여러 종류의 기계를 연결했다.

그사이 강성태를 살핀 유헌우가 “안 선생. 수술 준비해.” 하고는 고개로 바깥을 가리켰다.

강성태를 돌아본 안다미가 커튼 밖으로 나간 뒤였다.

“심한 상처가 몇 곳 있어요. 수술을 해야 하니까 마취할 겁니다. 준비하고 올 테니까 잠깐만 견디세요.”

말을 한 유헌우가 몸을 돌리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내일 상견례라고 하지 않았어요?”

강성태의 표정을 본 유헌우가 한숨을 나직하게 내쉰 뒤에 급한 동작으로 커튼을 나섰다.

일정하게 울리는 기계음, 강성태의 위에서 밝게 빛나는 조명, 줄줄이 매달린 비닐 팩, 바쁘게 무언가를 하는 병원 스태프까지.

긴장이 풀리는 순간, 지금까지 어떻게 견뎠나 싶을 정도로 한순간에 졸음을 쏟아졌다.

잘했다. 잘 견뎠다.

삼합회에 제대로 경고했고, 안다미도 지켰다.

눈을 감은 강성태는 몰려드는 잠에 빠져들었다.

“선생님! 환자 혈압이 갑자기 떨어져요!”

아득한 가운데 아주 멀리서 떠드는 듯한 스태프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갑자기 왜 이래? 성태 씨! 강성태 씨!”

유헌우의 음성이 마지막이었다. 그 뒤에 강성태는 의식을 잃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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