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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권 - 5화 (277/513)

14권 - 5화

탄력이 붙어 달려드는 강성태를 향해 마윤은 오른손을 뻗었다.

뒤트는 팔뚝, 번득이는 손목, 권총은 아니었다.

강성태가 오른 주먹을 움켜쥘 때, 번쩍하는 빛줄기가 마윤의 손에서 터졌다.

피잇!

상체를 뒤튼 강성태의 목덜미가 뜨끔했다.

그 직후였다.

기묘하게 움직인 마윤의 양팔이 강성태를 향해 달려들었다.

휙! 퍽!

강성태는 달려드는 마윤의 오른팔 팔꿈치를 왼손으로 올려쳤다.

기회였다.

여기에서 손목을 잡아채면 팔꿈치를 부러트린다. 그러나 강성태는 급하게 어깨를 틀었다.

핏!

그 직후에 목 바로 아래에 후끈한 통증이 달려들었다.

그의 손에서 번쩍이는 칼날을 그때 확실하게 보았다.

틀었던 어깨를 돌리는 탄력으로 강성태는 마윤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휙! 퍼버벅! 

주먹은 마윤의 귓가를 때렸다.

처음이었다. 상대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넣지 못한 건.

휘익! 퍼억!

또다시 강성태가 마윤의 왼팔 팔꿈치를 꺾는 순간,

휘익! 핏! 핏!

이번에는 비수가 옆구리를 파고들며 뜨끔한 감촉과 찌릿한 통증이 올라왔다.

휙! 터더덕! 퍽! 터덕! 휘익! 터더덕!

뾰족하게 세운 엄지와 중지로 마윤의 팔을 밀쳐낸 강성태가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고,

쉭! 쉬이익! 쉭! 쉬익!

비수를 손에 든 마윤은 강성태의 목줄과 겨드랑이를 노렸다.

쉬이익! 쉭! 쉭!

마윤의 동작이 화려하고 과장됐다면,

퍼버벅! 터억! 터더덕!

강성태의 공격은 효과적이고, 간결했다.

삽시간에 강성태의 상체가 피로 물들었고,

휙! 퍼윽.

고개를 비튼 덕분에 강성태의 주먹을 비켜 맞은 마윤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쉬익! 쉭!

마윤이 반사적으로 비수를 휘두를 때, 강성태는 이를 악물고 양손을 연달아 찔러넣었다.

퍼버벅! 핏핏! 피잇!

이번에는 강성태가 뾰족하게 세운 엄지와 중지를 마윤의 겨드랑이와 목덜미에 꽂아넣었고,

핏! 피잇! 핏!

마윤은 강성태의 왼편 가슴과 옆구리를 연달아 갈랐다.

눈과 눈이 마주친 직후였다.

쉬익! 퍼버벅! 퍼윽!

마윤의 오른팔을 연달아 두들긴 강성태가 오른손 주먹을 귀 바로 아래에 꽂아 넣었고,

쉭! 푹! 푸욱!

인상을 우그러트리면서도 마윤은 왼팔을 이용해 강성태의 어깻죽지와 가슴에 비수를 연달아 박았다.

“끄응.”

비명은 동시에 터졌다.

그리고 둘이 비슷하게 반걸음씩 물러났다.

마윤은 놀란 눈빛이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와락!

그런 마윤을 향해 강성태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휘익! 퍼윽! 퍽!

이번에도 강성태의 주먹은 마윤의 얼굴을 제대로 때리지 못했다. 그러나 연달아 귀 아래를 두들긴 충격은 분명하게 남아서 처음으로 마윤의 얼굴이 휘청하고 흔들렸다.

핏! 피비빗!

훈련을 통해 나온 동작이었다.

얼굴이 흔들리는 그 순간에도 마윤은 팔을 휘둘러 강성태의 상체를 갈랐다.

터더더덕! 쉬익! 휙! 퍼윽! 핏!

눈 깜짝할 사이에 손과 팔이 오갔고, 그 짧은 사이에 강성태의 주먹이 마윤의 볼을 때렸다. 그러나 마윤 역시 비수를 휘둘러 강성태의 팔뚝을 갈랐다.

어떤 경우에도 손을 멈추는 순간 죽는다.

반대로 말하면, 먼저 손을 멈출 수밖에 없는 고통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쪽이 승리하고 살아남는다.

터덕! 터더덕! 퍼윽! 쉭! 핏!

강성태와 마윤의 싸움은 글자 그대로 악에 받친 싸움이었다.

그에 반해 키란과 문자득의 대결은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3XL 사이즈를 입을 정도로 덩치가 커다란 문자득은 한 방을 노렸다. 반대로 독이 있는 대로 오른 키란은 급소를 연달아 찍어가며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갔다.

퍼윽! 퍽!

키란의 옆구리와 얼굴에 핸드볼 공만 한 문자득의 주먹이 박혔고,

퍼버벅! 퍽! 퍼벅! 퍼윽!

그 짧은 순간에도 키란은 악착같이 문자득의 겨드랑이와 목덜미, 옆구리에 뾰족하게 세운 엄지와 중지를 연달아 찔러넣었다.

양쪽에서 라이트를 비추고 있었다.

실루엣 틈에서 방향을 튼 강성태의 주먹이 마윤의 턱을 갈기는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가,

쉭! 핏! 핏!

기괴하게 뒤틀린 마윤의 손에서 번쩍인 비수가 강성태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종환은 입이 벌어진 줄도 몰랐다.

사람이 저렇게 싸울 수 있다는 거, 진짜 처음 알았다.

저런 상대와 마주 서면 이종환은 무조건 죽는다.

생각이 거기에 멈추자 한편으로는 기가 막혔고, 다른 쪽으로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퍼버벅! 퍼윽!

마윤의 옆구리와 겨드랑이에 엄지를 박아넣은 강성태가 귀 아래를 때릴 때는 저절로 눈가에 힘이 실렸고,

쉭! 쉭! 핏핏핏!

번득이는 비수가 강성태를 훑고 지날 때는 이가 드러날 정도로 인상을 찌푸렸다.

퍼윽! 퍽! 퍼버벅!

그 옆 승용차에 있던 아르윈은 핸들을 꽉 움켜쥐었다.

순박하게 웃던 네팔 청년은 어디 가고, 거대한 문자득을 상대하는 키란은 완전히 독기로 절여놓은 악귀의 형상이었다.

퍼윽!

거대한 주먹을 얻어맞아 눈가와 입 끝이 찢어졌고, 코에서는 숨을 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퍼윽! 퍽!

아르윈이라면 이미 쓰러졌을 상황이었다.

퍼버벅! 퍽! 퍽! 퍼버벅!

그런데도 키란은 악착같이 문자득의 겨드랑이와 명치 목덜미를 찍어대고 있었다.

퍼버벅!

키란이 연달아 목덜미를 때리는 순간, 문자득의 고개가 분명하게 흔들렸다.

퍽! 퍼윽!

그러나 문자득이 악착같이 뻗은 주먹이 어깨와 옆구리에 박히는 순간, 키란 역시 상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린 아르윈은 재빨리 조수석의 대시보드를 보았다.

이런 방식은 조직 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우두머리끼리 붙어서 지는 쪽이 물러나는 낭만 시대도 아니고, 지금은 숫자가 많은 쪽이 망치와 회칼을 들고 달려들어서 빠르게 승부를 가르는 게 정석이었다.

가페와 삼합회는 심지어 권총을 소지한 히트맨까지 보내는 마당인데 굳이 이럴 필요는 없었다.

대시보드에 들어있는 권총을 꺼내 갈기면 끝나는데 보스가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퍼버벅! 터덕! 핏! 핏!

하지만 말이다.

멋모르고 저런 놈들에게 무작정 달려들었다면, 최소 조직원 서넛은 바로 죽었다.

보스 강성태는 그 죽음을 막고 싶었던 게 분명했다.

키란을 남기고, 아르윈에게 차에 타라던 지시, 승용차 넉 대에 탄 신강남파 식구들을 두고 악착같이 홀로 버티는 저 독기가 그 증거였다.

아르윈과 목덜미에 새겨진 해적 문신이 인상을 거칠게 우그러트렸다.

저런 보스를 돕고 싶은 욕심, 그러나 실력이 되지 않는 안타까움 탓이었다.

퍼버벅! 터억! 터더덕!

손과 손이 바쁘게 오가며 겹친 뒤였다.

쩍!

처음으로 강성태의 주먹이 마윤의 눈가를 때렸다.

쩌억! 쩍! 핏! 피잇!

주먹을 피하듯 마윤이 상체를 뒤로 빼는 바람에 힘이 완전히 실리지는 않았다. 그 바람에 기절하지 않은 마윤이 악착같이 휘두른 비수가 강성태의 가슴을 스쳤다.

쩌억! 쩌억!

강성태는 밀려나는 마윤의 얼굴에 또다시 두 번의 주먹을 꽂아넣었다.

한 방만 때리면 끝이다.

아니면 이 싸움이 더 길어지는 거고.

강성태는 마윤이 반사적으로 휘두른 비수에 왼쪽 팔뚝을 가져갔다.

피잇! 푹.

스치던 비수가 팔뚝에 박히는 순간이었다.

콰악. 휘익!

마윤의 오른손을 잡아챈 강성태는 있는 힘껏 당겼다.

‘어?’

당황하는 마윤의 눈을 보는 순간,

쩌어어어억!

이를 악문 강성태는 그토록 원하던 주먹을 마윤의 얼굴에 제대로 꽂았다.

고개가 흐물흐물 흔들리던 마윤이 뻣뻣하게 뒤로 넘어갔다.

철퍼덕.

그런 뒤에 주차장 바닥에 거칠게 넘어졌다.

삼합회?

당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음번은 섭충명 네 차례니까, 기대하고 있어.

“허억. 헉. 허억.”

강성태가 거친 숨을 내쉬며 쓰러진 마윤을 바라볼 때였다.

퍼걱.

지금까지와는 다른 섬뜩한 소리가 키란 쪽에서 터졌다.

“커흑!”

그 직후에 문자득이 왼손으로 목을 붙들고 뒤로 물러났다.

퍼극. 퍼거걱. 퍼걱. 퍼걱.

키란은 집요했다. 독했다.

뾰족하게 세운 중지로 밀려나는 문자득의 목덜미와 목젖을 연달아 찍었다.

털썩.

커다란 문자득이 다리를 길게 편 자세로 그대로 주저앉았다.

휙! 퍼윽! 퍼윽!

주저앉은 문자득의 명치를 두 번이나 걷어찬 키란이 놈의 턱을 향해 거칠게 발을 휘둘렀다.

콰자작!

커다란 문자득의 머리통이 하늘을 향해 번쩍 들렸고, 이어 상체가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키란은 아직 독기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길게 자빠진 문자득에게 달려든 키란은 그의 머리통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위로 들었다가 체중을 실어 그대로 내리찍었다.

퍼석!

뒤통수가 깨졌는지 놈의 머리에서 수돗물을 튼 것처럼 피가 주르륵 번져 나왔다.

코피를 줄줄 흘리는 키란이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커륵.”

눈과 표정을 봐서는 웃으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코가 막혀서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강성태는 오랜만에 씨익 웃었다.

왜 그런지 모른다.

하지만, 흐느끼는 것처럼 강성태가 웃음을 터트렸고, 비슷하게 웃는 키란이 몸을 세워 다가왔다.

“고맙다.”

강성태는 키란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의 뒤통수를 툭툭 쳤다.

구르카 용병 사이에 주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강성태와 키란이 몸을 돌릴 때, 이종환과 아르윈, 그리고 신강남파 덩치들이 승용차에서 내려 달려왔다.

“모시겠습니다, 형님.”

“차는 조금 있다가 탈 테니까, 일단 저쪽으로 가.”

아르윈과 이종환이 두 사람을 부축해서 주차장 구역을 구분하게 쌓아둔 시멘트 구조물 위에 앉혔다.

“병원으로 가십시오, 형님.”

“혹시 뒤에 숨은 놈들이 덮칠지 모르니까 일단 저 두 놈을 먼저 수습해.”

“혹시 몰라서, 형님. 섭우가 숙소 식구들과 함께 이쪽으로 들어오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형님.”

잘했다. 잘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마윤은 만만치 않은 놈이라 저러다가 불쑥 일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우선 두 놈만이라도 수습해. 그 뒤에 갈 테니까.”

“예, 형님.”

강성태의 의지를 확인한 아르윈이 단단하게 답하고 이종환과 함께 몸을 돌렸다.

그 뒤였다.

“형님.”

승용차에서 수건을 가져온 덩치 두 명이 강성태의 목덜미에 난 상처를 눌렀고, 다른 덩치는 키란의 코와 턱을 닦아주었다.

피를 수습해준 덩치 둘이 강성태의 뒤로 가서 손을 앞으로 마주 잡고 선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그제야 몸에 난 상처들과 곳곳이 찢어진 키란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보았다.

“이대로 병원에 가면 많이 혼날 텐데 큰일 났다.”

“형님을 나무라는 사람도 있습니까?”

“안 선생이라고 여자 의사. 이상하게 그 사람이 화내면 꼼짝을 못 하겠다.”

아르윈이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물론 영어로 주고받은 대화라서 뒤에 있는 덩치 두 사람이 알아듣기는 어려웠다.

평택호는 평화로웠다.

이번만큼은 온전히 모습을 보존한 서브마린 건물은 모든 조명을 내린 채 어둠에 숨어 숨을 죽이고 있어서 저녁 잘 먹고 바람 쐬러 왔다면 기분 좋았을 풍광이었다.

염병할. 내일 상견례라고 밥 먹기로 했는데.

시선을 돌린 저 너머에서 타이로 마윤을 꽁꽁 묶은 아르윈과 이종환이 운전했던 두 놈을 끌어내고 있었다.

키란을 병원으로 데려가야 할 때였다.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에서 저런 덩치를 상대하며 맞은 거라 갈비뼈 하나둘쯤 금이 갔을 테고, 어쩌면 코뼈가 부러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성태가 뒤에 선 덩치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형님!”

주차장 안쪽에서 덩치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린 앞에서 아르윈과 이종환이 급하게 마윤을 향해 달렸다.

“이 새끼가 성태 형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형님!”

“뭐야, 이 새끼? 우는 거야?”

바닥에 길게 쓰러져 있던 마윤의 뒷덜미를 잡은 이종환이 놈의 상체를 당겨 앉혀 놓았다.

“뭐라는 거냐?”

“계속 성태 형님을 뵙게 해달라는 말만 하고 있습니다, 형님.”

“씨발놈이!”

짜아악! 짜악!

대림동의 일, 광룡의 기습이 떠올랐는지 이종환이 마윤의 따귀를 세차게 갈겼다.

“얼마든지 때려도 좋으니까 성태 형님만 뵙게 해달랍니다, 형님.”

덩치가 다시 놈의 말을 전하고 나자 아르윈이 이종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는 강성태에게 움직였다.

“형님. 저놈이 형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강성태는 앞에 서 있는 아르윈을 잠시 바라보았다.

처리하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삼합회의 조직원이고, 심지어 강성태를 노린 놈이었다. 그런데도 아르윈이 굳이 이렇게 와서 말할 정도면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

“데려와.”

“알겠습니다, 형님.”

강성태는 키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가 상대했던 놈이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단다. 그놈만 보고 가자.”

“저는 괜찮습니다, 형님.”

키란이 대답할 때, 덩치 둘이 마윤의 양팔을 붙들어 강성태 앞으로 데려왔다.

“꿇어, 이 개새끼야!”

덩치 둘이 마윤을 찍어눌러서 강성태 앞에 무릎 꿇렸다.

“숙소 동생이 중국어를 합니다, 형님.”

뒤따라 온 이종환이 덩치를 소개할 때, 강성태는 마윤을 내려다보았다.

뭐가 분한지 놈은 울고 있었다.

찢어진 눈가에서 흘러내린 피 때문에 피눈물처럼 보였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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