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권 - 4화 (276/513)

14권 - 4화

제2장. 예사롭지 않다.

이종환의 예상이 적중했다.

호텔을 나선 삼합회 두 놈이 약속한 것처럼 평택 방향을 향해 달린다는 보고였다.

“중간에 방향을 바꾸더라도 따라붙으면 되니까 출발하자. 내가 종환이 하고 마윤이란 놈을 맡을 테니까 아르윈이 키란과 문자득을 따라가.”

“예, 형님.”

키란을 돌아보았던 아르윈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대림동 숙소 식구들이 안중에 있어서 숫자가 부족해. 강서구 숙소 식구들을 둘로 나눠서 각자 따라붙어.”

유섭우에게 지시를 마친 강성태는 곧장 프리 스테이션을 나섰다.

“키란. 쉽지 않은 상대니까 조심해. 돌발 상황이 생기면 아르윈이 말하는 대로 따르고.”

“알겠습니다.”

키란을 다독인 강성태는 곧바로 이종환이 기다리는 승용차로 움직였다. 강성태가 뒷좌석에 앉자 이종환이 조수석에 올라탔고, 곧바로 승용차가 움직였다.

“한 시간쯤 걸립니다, 형님.”

네비게이션을 확인한 이종환이 고개를 돌리며 예상 도착시간을 알려주었다.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어디로 갈지, 어느 곳에서 붙잡아 해결할지가 관건이지, 시간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달리는 길에서 강성태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용호와 광룡을 부수는 것으로 분명하게 경고했고, 원자춘을 정리해서 의지를 확실하게 밝혔는데도 삼합회는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수나라, 당나라 시절도 아니고.

뭔 마약을 팔겠다고 계속해서 강성태의 구역을 넘보는 건지, 게다가 대놓고 강성태와 주변 사람들의 목숨을 노리는 건 무슨 짓을 해도 삼합회 대가리는 절대 건드리지 못할 거라고 확신한다는 의미였다.

돌대가리들.

지용호를 시작으로 광룡, 원자춘을 정리하며 그렇게 경고하는 데도 끝까지 알아듣지 못한다면 남는 건 진짜 하나밖에 없었다.

‘438 부산주 섭충명, 너는 일단 목록에 올렸다.’

카르텔의 싸움과 다를 거 없다.

맞고만 있으면, 언젠가는 카운터 펀치에 쓰러질 위험이 존재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서달수와 같이 주변의 누군가를 잃게 된다.

그 모든 위험을 막는 가장 빠르고 현명한 방법은 그전에 지시한 책임자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나직하게 숨을 내쉰 강성태는 앞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종환. 요즘 광룡 놈들 동태는 어때?”

“제대로 잠수 타서 최근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님. 아마 이번에 넘어왔던 삼합회 놈들이 뭔가 해줄 때까지 기다렸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형님.”

“그럼 안중은 어떻게 관리했어?”

“동생들 열 명 내려보내서 관리했습니다. 안중은 마약 밀수하고, 밀항을 빼면 딱히 돈이 도는 곳은 아닙니다, 형님.”

강성태의 질문에 이종환이 막힘없이 답을 내놓았다.

“밀항을 막을 방법이 있어?”

“밀항 전부를 말씀하십니까, 형님?”

내내 막힘없던 이종환이 밀항에 관한 질문에는 뻑뻑한 느낌의 답을 내놓았다.

“밀항은, 형님. 개별적으로 배를 섭외하는 놈이 많은 데다, 그나마 뜨문뜨문 소개받아서 활동하는 놈들이 많아서 그걸 일일이 찾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형님.”

“밀항 조직이 따로 없어?”

“있기는 한데,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숫자가 워낙 많아서 다 잡아내기가 어렵습니다, 형님.”

어쩐지 대답이 뻑뻑하더니 조직이 강해서가 아니라 잡놈들을 모두 잡기가 어려워서 그런 모양이었다.

“중국 쪽의 협조도 있어야 하잖아?”

“중국은, 형님. 돈만 주면 어떤 어선이든 무조건 태워줍니다, 형님. 거기에 미리 약속하고 계약금을 걸면 진짜 목숨 걸고 달려옵니다, 형님.”

“밀항하는 데는 얼마나 들어?”

복잡한 도로를 빠져나간 승용차가 조금씩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다이렉트로 연결되면, 형님. 대략 삼백만 원이면 중국에 들어갑니다, 형님. 그런데 대개는 중간에 연결하는 놈들이 끼어드는데 숫자에 따라 비용이 비싸집니다, 형님. 작년에 접시 하나는 호구 잡혀서 이천만 원 내고 넘어갔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형님.”

“접시?”

“죄송합니다, 형님. 사기꾼을 접시라고 부릅니다, 형님.”

조직 보스 하려면 배워야 할 게 참 많다는 생각에 강성태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직 안중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다단계로 유명했던 조 뭐라는 회장 있잖습니까, 형님. 그 인간이 중국으로 밀항할 때, 공해상에서 중국 배에 오르고 나서 양팔을 높게 들고 만세를 외쳤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형님.”

내비게이션을 살핀 이종환이 밀항과 관련된 사연을 내놓았다.

“그때 지불했던 비용이 2억 원이었답니다, 형님. 밀항 쪽에서 가장 대박 터진 건이었다는데 그거 맡았던 놈들이 광룡이었습니다, 형님.”

지랄들.

하여간 썩어빠진 놈들이 암적인 놈들의 양분이 되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광룡은 잡았고, 밀항까지 틀어막으면 삼합회 놈들이 들어올 때 조금은 조심하겠지?”

“예? 형님?”

“뭘 그렇게 놀라?”

“아닙니다, 형님.”

밀항을 틀어막는다는 말이 이종환에게는 놀랄 일인 모양이었다.

하긴, 숫자가 워낙 많으니까 일일이 잡기도 어렵겠다.

대강 상황을 이해한 강성태는 다시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선 삼합회의 마윤이란 놈을 두들긴 후에 고민할 문제였다.

**

외곽 순환도로에 들어서면서 따라붙던 오토바이가 떨어졌다.

“오토바이는 안 보입니다.”

운전하는 덩치의 보고를 들은 마윤은 뒷좌석에서 비릿한 미소를 그렸다.

“멍청한 놈들.”

병원과 프리 스테이션 근처에서 당한 삼합회 조직원들을 말하는 건지, 따라붙은 신강남파를 가리킨 건지는 확실치 않았다. 다만, 도주하는 상황인데도 마윤은 눈과 입가에 매단 비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하지?”

“40분쯤이면 도착합니다.”

시간을 확인한 마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합회의 하부조직 광룡이 당했던 장소라고 들었다.

지용호가 신강남파 보스 강성태를 피해 악착같이 도주했던 현장이라는 말이 무엇보다 마윤의 흥미를 자극했다.

“너도 그곳에 있었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강성태가 그렇게 대단해?”

마윤의 질문에 운전하는 놈은 바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괜찮으니까 보고 느낀 대로만 말해.”

“제가 보기에는 귀신 같았습니다.”

“귀신?”

“싸움 귀신이 나타난 것처럼 막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윤은 기묘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는 허리에 꽂아두었던 비수 세 자루를 꺼내 손바닥에 올렸다.

“모자란 놈들. 싸움 귀신이라니? 그렇다면 너는 오늘 귀신이 죽는 걸 보게 될 거다.”

웃은 이유를 내놓은 마윤이 손가락을 놀리자 세 자루 비수가 그의 손안에서 현란하게 움직였다.

강성태를 조용하게, 그리고 단숨에 해치우려던 계획은 깨졌다. 그러나 뜻밖에도 목표로 했던 강성태가 마윤을 따라온다면 이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강성태가 오지 않을 수도 있잖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강성태란 놈에게 당했지.”

운전하는 놈의 질문에 마윤은 확신처럼 답을 내놓았다.

“지용호도 그렇고, 원자춘을 마지막으로 상대한 게 강성태였다. 그놈이 주점에 들어가고 나서 병원까지 동시에 덮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한심하다는 투로 웃은 마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 지용호와 원자춘 때와 마찬가지로 나를 노리는 거지. 호텔에 대놓고 오토바이까지 깔아둔 건 어디든 따라붙겠다는 뜻이고. 그러니까 놈은 반드시 온다.”

“듣고 보니까 그럴 것 같습니다.”

너무나 속이 들여다보이는 빤한 감탄에 마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배는?”

“모터보트가 근처에 대기 중입니다.”

더는 대화를 나누기 싫다는 의미로 마윤은 손을 다시 놀려 비수를 움직였다.

정체가 드러나는 바람에 밀항을 통해 빠져나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마윤이 얼마나 우습게 보였는지, 신강남파가 대놓고 따라붙고 있었다.

마윤은 기가 막힌 얼굴로 또다시 웃었다.

삼합회에 대드는 것도 우습지만,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이런저런 조직 몇 개 통합한 보잘것없는 실력을 믿고 설치는 꼴을 보자 저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된 거, 강성태의 목줄을 확실하게 가르고, 덤으로 최대한 많은 신강남파 조직원들의 숨통을 끊는다. 그렇게 많이 죽이고 나면 또 공항으로 출국하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그러니 이러나저러나, 밀항밖에 답이 없었다.

‘같잖은 놈들.’

도로 중간에서 헬멧을 잡아채려고 몸을 띄웠던 강성태를 떠올리며 마윤은 입술을 씰룩였다.

**

스마트폰을 내린 이종환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대놓고 평택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형님. 그런데 아예 따라오라는 투로 차선도 안 바꾼답니다. 앞을 막아버릴까요, 형님?”

“놔둬.”

이종환의 질문에 강성태는 짧은 답을 먼저 내놓았다.

“혹시 한적한 장소에서 멈추더라도 절대 차에서 내리지 말고 지켜보라고 해. 어설프게 달려들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예, 형님.”

고개를 숙인 이종환이 스마트폰의 번호를 누르고는 강성태가 지시한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그래? 알았다. 일단 형님 말씀대로만 해.”

통화를 마친 이종환이 다시 상체를 뒤로 돌렸다.

“아르윈 형님이 따라붙은 쪽도 평택으로 방향을 틀었답니다, 형님.”

강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모터사이클로 달려들었을 정도로 목표가 분명한 놈이었다. 그런 놈이 궁지에 몰렸는데도 일정한 속도로 차선마저 바꾸지 않은 채 달린단다.

대놓고 따라오라고 꼬드기고 있었다.

따라붙는 인원 정도는 자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픽 웃은 강성태는 스마트폰에서 본 마윤의 사진을 떠올렸다.

섭충명의 신뢰를 얻을 실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삼합회 놈들끼리 알아서 한 일이지 강성태와는 전혀 상관없었다.

마윤? 삼합회?

그보다 더한 조직이 달려들어도 신강남파의 구역에서 마약을 팔아먹게 두지는 않는다. 그래서 마윤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창밖을 보며 강성태가 생각을 정리할 때였다.

“형님.”

강성태를 빠르게 부른 이종환이 앞쪽을 검지로 가리켰다.

“저 앞에 검은색 승용차 보이십니까, 형님? 하얀색 승합차 뒤에 있는 승용차입니다, 형님.”

“봤어.”

“그게 삼합회 놈이 탄 승용차고, 그 바로 뒤하고, 오른쪽에 있는 승용차가 우리 숙소 동생들입니다, 형님.”

강성태는 앞유리를 통해 보이는 검은색 승용차를 눈에 담았다.

통화를 통해 알려준 내용처럼 마윤이 탄 승용차는 느긋하게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이 길이 안중으로 가는 건 맞아?”

“여기에서 30분 정도 더 달리면 됩니다, 형님.”

이종환이 답을 한 직후였다.

마윤이 탄 승용차가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세상에, 아무리 안전운행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추적을 당하는 놈이 세심하게 방향지시등을 켤 줄은 몰랐다. 심지어 다음 출구에서 빠져나갈 것을 알려준다는 것처럼 방향지시등을 계속 켜고 있었다.

“저러다가 혹시 방향을 바꿀지 모르니까 차 한 대는 빠지지 말고 곧장 달리라고 하고 우리는 계속 저 차를 따라가.”

강성태의 지시를 들은 이종환이 빠르게 스마트폰의 번호를 눌렀다.

“혹시 모르니까 너는 그대로 달려. 저러다가 갑자기 튈지 모르니까 긴장 늦추지 말고.”

통화를 마친 이종환이 스마트폰을 내릴 때였다.

마윤이 탄 승용차가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도로에 느긋하게 끼어들었다.

이거 봐?

강성태는 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낯익은 모습이었다.

“지용호?”

“예? 형님?”

“여기에서 나가면 리버마린이라고 수상스키 타는 곳 나오는 거 아냐?”

“그렇습니까, 형님?”

“전에 동재 구할 때 신월동 숙소 식구들과 왔었던 곳 같은데? 저기에서 왼편으로 나가면 확실해.”

강성태의 말을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윤이 탄 승용차가 이번에는 좌측 방향지시등을 깜박였다.

“형님 말씀대로입니다, 형님.”

이종환은 기가 찬 모양이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검은색 승용차의 뒷좌석에서 윤곽만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자신에 찬 행동이었다.

아무리 뒤따라와도 너희 정도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도발과 같은 모습이었다.

“개새끼가.”

지용호와 손잡았다가 겪었던 아픈 상황이 떠올랐는지 이종환이 독한 눈으로 나직하게 욕을 뱉었다.

이종환과 달리 강성태는 뒤를 돌아본 남자를 향해 옅게 웃었다.

그 직후였다.

신호가 바뀌면서 검은색 승용차가 좌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좁은 도로를 달린 승용차는 실제로 리버마린의 주차장을 향해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주차장을 커다랗게 돌아 입구를 향해 멈췄다.

강성태가 탄 승용차가 마주 선 직후에 뒤에서 한 대의 승용차가 더 내려왔다.

“내리지 말고 있어.”

“예, 형님.”

이를 악물고 내놓은 듯한 이종환의 답을 들은 강성태는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평택호와 남양호의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훅 달려들었고, 마주 선 자동차의 라이트가 조명처럼 앞을 밝혔다.

문을 닫은 강성태는 승용차의 앞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는 마주 선 두 대의 중간에서 멈췄다.

달칵.

강성태를 확인한 것처럼 맞은편 승용차의 뒷좌석이 열렸다. 그런 뒤에 강성태를 향해 걸어왔다.

눈과 눈이 마주친 상태였다.

강성태와 마윤 모두 뒤에서 라이트가 비추고 있어서 묘한 아우라가 동시에 피어난 느낌이었다.

사진과 약간 다른 느낌이었지만, 확실히 마윤이었다.

만만치 않은데?

서 있는 자세도 그렇지만, 카르텔이나 용병에게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놈의 강한 눈빛이 강성태의 본능을 자극했다.

강성태는 목을 좌우로 꺾었다.

그 직후였다.

엔진 소리, 라이트 불빛과 함께 승용차 세 대가 줄줄이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먼저 들어선 승용차가 크게 돌아 강성태의 앞에 섰고, 나중에 들어온 두 대는 이종환이 타고 있는 옆에 멈췄다.

마윤의 방향에 선 승용차의 뒷좌석에서 덩치가 커다란 놈이 내렸고, 이쪽에서는 키란과 아르윈이 동시에 내렸다.

“아르윈. 차에 있어.”

“예, 형님.”

나서고 싶었겠지만, 삼합회 놈들이 지켜보는 앞이라 아르윈은 순순히 답을 하고 다시 운전석으로 들어갔다.

“키란. 예사롭지 않다. 조심해.”

“예.”

순박한 키란은 여기에 없다.

적을 앞에 둔 구르카 용병의 눈빛과 표정, 태도를 갖춘 키란이 강성태의 경고에 나직하게 답을 내놓았다.

“가자.”

강성태가 먼저 움직였고, 바로 곁에서 키란이 함께 걸었다.

거리는 10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9미터, 8미터, 7미터, 그때 마윤이 손을 허리 뒤로 돌렸다.

훅, 강성태는 마윤을 향해 달려들었다.

최종 보스: 빛을 향해 달리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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